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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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전향으로 인해 균열에 대한 적의 공세는 다시 무위로 돌아갔다. 그들로서도 각지에 퍼져 있는 누에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것에 걸맞은 대처를 하려면 정신이 없을테니 전방의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미 전향한 클로리스인들의 문장을 숨기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군. 그들에게 문제가 생겨선 안 되지.”
곧바로 꽃과 바람에게 연락해서 추종자들의 문장을 임의로 비활성화시키는 작업을 실행했다. 꽃과 바람은 새롭게 맞이한 추종자들의 안위를 걱정하여 순순히 허락했지만, 오히려 반발은 클로리스인들에게서 나왔다.
“우리들은 여신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들도 바로 전향의 의사를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머리에 꽃을 달고 있는데다 식물들을 돌보는 일에 특화되어 있는 종족이라 모두 순둥이일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과격한 성향도 지니고 있어서 조금 놀라 버렸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날 것처럼 난리를 쳐대던 클로리스인들은 꽃과 바람이 나서서 한 마디 하자 이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공손하게 그 뜻을 받들었다.
“어째… 나한테 보이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지 않아?”
“하하…”
하기야 클로리스인들이 보기에 중간에 다른 신이 끼어서 자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황이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들이 그렇게 나서면 꽃과 바람이 한 번 더 나서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고. 주신이니 뭐니 해봐야 저들에게는 여신과 자신들 사이에 끼어든 잡신에 불과할 테니까.
이래서 광신도들이란.
어쨌든 클로리스인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비를 하는 일을 마치자, 다시 형진은 누에들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얘들은 뭐야?”
“그게… 공주들이래요.”
“뭐?”
처음에는 요정들이 코스프레라도 하는 건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다. 마치 하얀색 모피 코트를 뒤집어 쓴 것처럼 하얀색의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인 몸 바깥으로 나있는 팔다리는 절지동물의 그것처럼 외골격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뽀얀 솜털로 뒤덮인 날개는 쉴 새 없이 파닥거리며 움직이는 중이고, 새카만 눈동자 역시 자세히 보니 곤충의 겹눈이었다. 머리에는 나방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더듬이도 붙어있다.
곤충이라는 선입관만 버린다면, 크고 동그란 눈동자라든가 복슬복슬한 털이 꽤 귀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미아도 처음 누에들을 마주했을 때와는 달리 친근하게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 봤을 때의 사이즈가 진짜 제 모습인 줄 알고 거기에 맞춰서 모습을 바꾼 모양이에요.”
“의태인 모양이군.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신기하죠?”
커다란 누에들은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미아를 위해 여왕이 특별히 마련한 대책이 아닐까 싶다. 자세히 보면 곤충의 특징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해도 이런 작은 사이즈에 요정을 연상시키는 외모라면 벌레라면 질겁하는 미아로서도 조금은 친근하게 대할 수 있을 테니까.
명확하게 어떤 신에 의해 이런 모습이 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신의 권능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누에들에게 있어서, 미아의 관심과 애정은 어쩌면 그들이 존재해 나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미아는 벌레라면 질겁하는 쪽. 이래서야 자칫하면 종족의 생존마저도 위험해질지 모르는 일이니 재빨리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런 대책을 마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시녀쯤 되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말을 배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긴, 지금 가장 급한 건 역시 의사소통이니까.”
공주 누에의 수는 고작 해야 서너 마리 정도. 게다가 다른 거대한 누에들에 비해 미아의 환심을 사는 데만 주력한 개체들이다보니 여러모로 연약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 공주 누에들은 전투를 위한 개체들도 아니고 오직 미아와의 소통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누에 버전의 정보 단말이라고나 할까.
“말은 잘 배우고?”
“네. 아기들한테 말을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즐거워요.”
“다행이네.”
형진 역시 공주 누에들과 좀 친해 보려고 했지만, 그가 손을 뻗으면 얼른 미아의 머리카락 사이로 숨어 버려서 별로 소득을 얻을 수가 없었다.
“쳇. 클로리스인들도 그렇고 누에도 그렇고, 나만 미워하는 것 같아.”
“제가 잘 가르쳐 놓을게요. 얘들아. 아빠야. 아빠 해봐.”
“하하… 그건 좀.”
미아의 말에 형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얼핏 들으면 이상할 것이 없는 말 같지만, 이래서는 여왕이 형진의 아내란 말이 되지 않는가. 아무리 여자를 좋아하는 형진이라도 누에 여왕은 여러모로 감당이 안 된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미아에게 맡겨놓으면 되겠지만, 무작정 그녀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길 기다릴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것도 아니니까.
“흠… 저들과 직접적인 정보 교환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허세와 망상은 대번에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말이 통하는 상대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아예 컴퓨터를 연결하듯이 직접적으로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달라니 그로서는 살짝 당황스러운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다.
“실은 그것에 대해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어떤?”
“그것에 대해 설명하자면, 먼저 저들의 의식 체계에 대해 설명해야겠군요.”
형진은 누에들의 집단 지능과 더불어, 그것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놀랍군.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모든 개체가 하나의 일치된 사고를 통해 움직일 수 있다니.”
“처음에는 저도 설마했습니다만, 미아… 그러니까 보호와 균형의 문장을 받는 순간 모든 개체들에게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부터 시작해서,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일반적인 통신 방법으로는 수십 수백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각각의 개체로부터 그런 식의 변화가 동시에 발현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자네는 저들의 그러한 통신 능력을 손에 넣고 싶은 건가?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도 그리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보는데.”
물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장 형진도 황혼의 권능을 이용해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실시간으로 통신하는 것이 가능한 상태니까. 더구나 이번에 틈새 공간에 대한 것이 밝혀지면서 권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틈새 공간을 매개체로 사용해 통신을 주고 받는 방법 또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물론 통신 수단이야 여러 가지 방법을 마련해 놓으면 한 가지가 무력화되더라도 다른 수단을 활용할 수 있겠지만, 당장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것에 힘을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저는 이들의 능력을 단순히 통신 능력에만 국한 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허세와 망상님이 예전에 만든 무언가와, 이들의 능력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모르시겠습니까?”
“내가 만든 것?”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거짓된 천국을 비롯해서 상상 속에서나 실현 가능하리라 생각되던 많은 것을 만들었지만, 살아있는 종족들에게 손을 댄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겠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대미궁의 코어입니다.”
“뭐?”
허세와 망상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대미궁의 코어? 타나토스에 있는 그것 말인가?”
“그렇습니다.”
형진은 허세와 망상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각각의 누에들이 지닌 사고 능력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에 있어서는 집단 지능이고 뭐고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각각의 개체들이 알아서 그 일을 해결하는 식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여왕을 중심으로 집단 지능이 발현됩니다. 이런 방식, 대미궁의 코어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으음…”
대미궁의 코어는 수많은 코어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고 그렇게 모여진 연산 능력을 통해 거짓된 천국으로의 연결등 복잡한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개개의 코어들이 지닌 연산 능력은 크지 않지만, 그것이 한데 모이는 것으로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셈이다. 이를테면 마법 버전의 분산 처리 컴퓨터인 셈이다.
누에들의 집단 지능 역시 그와 비슷하다. 각각의 개체 들이 지닌 사고 능력은 보잘 것 없지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 엄청난 수의 개체들이 모임으로서 그들은 다른 어떤 종족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사고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굳이 이것도 비유를 하자면, 생체 버전의 분산 처리 컴퓨터라고나 할까.
“허… 설마 자네는 저들 종족을 살아있는 컴퓨터로 활용하고 싶은 건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는 일단 저들과 우리가 지닌 정보 기기 사이에 보다 직접적이고 원활한 데이터 교환을 실현하고 싶은 겁니다. 사고 능력은 논외로 치더라도, 당장 저들이 가진 정보만이라도 컴퓨터를 쓰듯이 활용할 수 있다면, 이 새로운 우주를 이해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거 참… 정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내두르는 허세와 망상의 모습에 형진은 빙긋 웃었다.
“어렵겠습니까?”
“글쎄.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하지만 자네의 말을 실현하려면, 적어도 한 개체 이상 단말로 사용할 존재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것이라면 제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진은 다시 미아에게 가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런 거라면… 얘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봐. 원한다면 굳이 떨어져 있을 필요도 없고. 어쨌든 저들의 사고와 연결될 통로가 필요한 것 뿐이니까.”
“다행이네요.”
그제서야 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공주 누에들을 해부한다거나 그런 식의 얘기가 나오면 어쩌나 싶었던 모양이다.
허세와 망상은 공주 누에들을 보고는 다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허겁지겁 작은 악세사리를 만들어냈다. 얼핏 보기에는 반지 같은 느낌의 하지만 누에 공주들에게는 목걸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듯한 물건이다.
“원래는 좀 더 큰 사이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건 또 의외로군. 이렇게 자유자재로 개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종족이었나.”
“글쎄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도 저들과 보다 원활한 대화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미아의 머릿결 속에 숨어 있는 공주 누에들을 슬며시 훔쳐보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이건 코어를 이용한 단말기라고 할 수 있지. 자네가 만든 회합장의 원리와 비슷하게, 저들의 의식을 대미궁의 코어와 연결시켜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저들의 사고 체계가 어떤 식인지는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져야겠지만, 일단 연결 자체는 이것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그렇군요.”
문제는 결국 코어와 누에 사이에 오갈 정보를 변환시킬, 이를테면 프로토콜의 개발이다. 어찌보면 단말보다도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맡겨 두게.”
대답을 하는 허세와 망상의 등 뒤로 눈가가 다크서클로 검게 물들어 있는 잡신들이 한숨을 푸욱 내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형진은 모르는 척 미아와 함께 다시 스틱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순간 형진은 물론이고 미아 역시 기겁을 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건.”
놀란 형진을 향해 규설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누에 여왕이 보내왔습니다. 여신님을 모실 시녀들이라면서.”
“…”
그곳에 도열해 있는 것은 또다른 누에 공주들이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인간 사이즈에 맞춰진 데다 미아가 입고 있는 비서 타입의 원피스 정장마저 갖춰 입은 모습으로.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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