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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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족 알마네아의 도시는 여타의 종족들과 다른 특징적인 면이 있다. 다른 종족들이 대부분 지면과 가까운 수평적인 구조의 건축물을 선호한다면, 알마네아들은 마치 지구의 대도시들을 연상시키는 높은 마천루들을 선호하는 쪽이다.
이런 식으로 수직적인 구조를 가진 건축물들이 알마네아들에게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된 시점은 그들이 지금과 같은 고도 문명을 이루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모든 하늘을 나는 생물들처럼, 그들에게 있어 하늘이란 삶의 터전이자 다른 천적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들은 하늘을 날지 못하는 다른 생물들이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이나 높은 나무 위 같은 곳에 주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전통은 더 이상 그들이 숲이나 해안 같은 곳에 주거를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문명을 갖춘 이후에도 그래도 남게 되었다. 마치 고양이가 캣타워에 오르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그들 또한 지면에 가까운 주거보다 하늘 위에 우뚝 솟은 주거에서 더 강한 안정감을 느낀다.
“길이 있군.”
알마네아들이 모여 사는, 그들만을 위한 도시이므로 어쩌면 길 같은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도시를 살펴보니 의외로 꽤 잘 포장된 길이 이곳 저곳에 잘 뚫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만 움직이는 것이라면 몰라도, 물품을 운송하는 것까지 전부 하늘을 이용할 수는 없어서입니다.”
“그렇군. 그런 문제가 있었어.”
스스로의 이동 같은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물건을 잔뜩 짊어지고 하늘을 나는 건 제 아무리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한 알마네아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무거운 물건도 마구 들어 올린 채 하늘을 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그들의 신체가 최대한 무게를 줄이는 쪽으로 진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마네아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행성 알마네스터에는 현재 거대한 누에의 둥지가 마치 위성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는 그들의 동맹이며 든든한 아군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신의 수하가 되어 자신들의 행성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 광경에 알마네아들은 모두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지상으로 내려와 파괴를 쏟아낼 것만 같았던 누에들은 우주 공간에 자리 잡은 알마네스터 게이트를 점거한 채 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너희들 따위는 흥미조차 없다는 듯이.
게이트가 점거된 시점에서 빛의 신에게 지배되는 다른 지역과의 통신도 끊겨 버렸기 때문에 알마네아는 현재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반격을 해서 게이트를 탈환해야 할지,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지조차 그들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던 상황이 바뀐 것은, 위급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비상용 게이트를 통해 한 사람이 도착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는 바로, 대성전에서 빛의 신전을 이끌어 가던 장로 가운데 한 명인 쿠치넬리이라는 자였다.
쿠치넬리는 빛의 신전을 구성하는 열두 종족 가운데, 뤼넬이라고 불리는 종족의 일원이다. 이 종족은 신체 능력이 매우 빈약한 반면, 그것을 보조할 수 있는 높은 기계 문명을 소유하고 있었다.
신의 권능이 인정되고 그것이 널리 추종자들에게 쓰이는 세상에서, 기계 문명의 입지는 생각외로 굉장히 낮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뤼넬이 열두 종족의 하나로 인정받고 장로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또한 빛의 권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을 피우고 등을 밝히는 식의 기물 같은 것까지 일일이 권능을 써서 해결하는 건 오히려 불경스러운 일로 치부되었고, 때문에 그러한 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뤼넬이 열두 종족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모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뤼넬의 입지는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열두 종족의 일원이라고는 해도 최고 장로를 배출한 알마네아와는 기본적으로 명성이나 대우등의 면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빛의 신전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신에게 인정을 받고 열두 종족의 일원으로 뽑혔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의외로 그들은 빛의 신에게 가장 총애 받는 알마네아보다도 더 한 광신도들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는 실로 천금 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열두 종족 가운데 무력의 큰 축을 담당하던 누에가 변절하고 대성전이 파괴되었으며 요충지의 게이트들이 점거되어 물자와 정보의 운송이 단절된 지금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공헌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권세를 누리는 것이 가능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빛의 신이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의 불리한 상황은 누에처럼 내부에 암덩이처럼 퍼져 있던 변절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빛의 신이 스스로 자처한 일종의 시험이라고, 뤼넬이라 불리는 이 작고 나약한 신체의 광신도들은 믿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그 모습만으로도 신비함이 묻어나는 알마네아의 회합에 저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초대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 예…”
뤼넬 출신의 장로 쿠치넬리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인사로 자신을 환대하는 알마네아의 대표들을 반겼다.
쿠치넬리는 조금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작고 주름진 마치 막 태어난 쥐새끼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외모를 치장하려는 것인지 매우 크고 강력해 보이는 장비를 착용한 상태다.
개념상으로는 지구에서도 개발이 진행 중인 강화외골격과 매우 닮았지만, 실제 모습은 차라리 탑승형 로봇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정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본래는 신장이 고작해야 어른 무릎에나 올까 싶은 정도에 불과함에도 그것을 갖춰 입은 상태에서는 다른 여러 종족들 가운데서도 꽤 훤칠한 편에 속하는 알마네아보다 머리 한두 개는 더 커 보인다. 어떻게 보면 뤼넬의 높은 기술력은 그들의 작고 나약한 신체를 그런 식으로라도 포장하고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발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알마네아의 회합장은 다른 종족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거대한 원형의 돔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은 다른 여러 종족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회의장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원탁은 마치 탑처럼 우뚝 솟아 있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오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의자 같은 건 원래부터 없는 그곳에서, 오직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알마네아만이 회합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쿠치넬리 역시 이 회합에는 참석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는 뤼넬 종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안의 중대성은 물론이고, 그가 다른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회합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언한 상태라서 특별히 허락이 되었다.
회합장의 외곽에서 그것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알마네아 앞에서 쿠치넬리는 자신이 착용한 장비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장비의 등 부위에 위치한 구멍으로부터 불꽃이 터져 나와 그의 몸을 하늘로 밀어 올린다. 이를테면 일종의 제트팩인 셈이다.
“하하, 어떻습니까.”
“네. 뭐… 대단하군요. 나름.”
쿠치넬리는 자신이 착용한 장비가 알마네아들을 경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태어나기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종족으로 태어난 알마네아들로서는 저게 뭔 헛짓인가 싶을 뿐이다.
“그럼 회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의장의 선언과 함께 알마네아들은 곧바로 격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내용은 그들의 영토 안에서 빛의 신전과 게이트가 점거되고 다른 지역과 물자와 통신이 끊겨 버린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물자입니다. 일단 비축 물자가 어느 정도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생필품의 대부분이 삼개월 정도면 동이 나버릴 겁니다. 자급을 하고자 해도 공산품이나 비료 같은 것은 이곳 알마네스터에 생산 기반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상태를 관망하는 것도 삼개월이 고작이라는 얘기입니다. 그 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이 행성 안에 고립된 채 지금까지 일궈놓은 모든 문명이 퇴보하는 것을 멀쩡하게 눈 뜨고 지켜봐야만 할 겁니다.”
알마네아는 빛의 신의 지배 하에서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만큼 매우 부유한 쪽에 속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재화가 아무리 많아도 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알마네아 내부에서도 불만이 속출하고 있었고, 지금의 회합은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결단이라고는 해도,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빛의 신전을 다시 탈환할 수 있다면, 게이트를 통해 지원군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지금 게이트를 점거하고 있는 누에의 둥지 하나쯤은 빛의 군세가 오면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전 주위의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 않습니까.”
사실 지금과 같은 대화는 게이트가 점거되고 난 뒤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마냥 되풀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는 고립되어 망할 수도 있다. 그걸 막으려면 게이트의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빛의 신전을 되찾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고립되어 망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의미 없는 논쟁만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쿠치넬리는 드디어 자신이 나설 차례가 왔음을 알았다.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슬슬 반복되는 의미 없는 논쟁에 지쳐가던 알마네아들은 어쩐지 조금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모습으로 말을 꺼내는 쿠치넬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어떤 방법입니까.”
“바로 이겁니다.”
쿠치넬리는 품에서 야구공보다 조금 큰 정도의 둥근 물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건…”
“빛의 권능을 압축시킨, 일종의 폭탄입니다.”
“…”
알마네아들은 흠칫 놀랐다. 그런 것을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드러내다니, 자칫해서 터지기라도 하면 이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음을 면치 못한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여기 보이는 이 고리… 응?”
“…”
“어라, 이게 어디 갔지?”
순간 폭탄을 들고 있는 쿠치넬리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알마네아 역시 그대로 굳어버렸다. 당연히 거기 꽂혀 있어야할 안전 고리가 꺼내는 도중에 빠져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그제서야 알아챈 것이다.
미친.
역시 뤼넬 따위를 회합장에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미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알마네아들은 뒤이어 찾아올 거대한 폭발을 예감하며 몸을 움츠렸다. 제법 반사신경이 빠른 몇몇은 다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그래봐야 빛의 신전을 감싼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만든 폭탄이 코앞에서 터지면 죽기는 매한가지다.
“…”
하지만 그 순간, 쿠치넬리는 보았다.
어디선가 검은 빛의 무언가가 한줄기 바람처럼 날아들더니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던 폭탄을 감쌌다.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너무 짙어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는 검은 빛이 잠시 그렇게 허공에 머무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나타났을 때처럼 다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이건…”
방금 전에 본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쿠치넬리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폭발이 일어나 전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난입해서 그 상황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된거지?”
“글쎄. 불발인가?”
원래대로라면 폭발이 일어나 다 죽었어야 옳은 상황에서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자 알마네아들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움츠렸던 몸을 펴고 눈을 뜬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그들의 눈앞에서 한줄기 빛이 천장을 통해 내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오는 듯한 그 신비한 모습에, 방금 전 영문도 모른 채 죽을 뻔 했던 알마네아들은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저, 저건…”
“설마… 네아님이신가?”
빛 그 자체로도 충분히 신비로웠지만, 마치 그 빛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아름다운 한 존재의 모습에 알마네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다, 당신은… 분명히 죽었을 텐데?”
하지만 대성전에서 네아가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았던 쿠치넬리는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에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네아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빛을 타고 내려오다가, 이내 원탁 주위를 한번 크게 날아돌고는 그 중앙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제 이름은 네아. 한때 빛의 신을 모시는 대성전에서 최고 장로의 자리에 있던 자입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세, 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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