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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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 회합장에 모인 알마네아 치고 그녀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빛의 신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성전의 최고 장로가 된 그녀의 존재는 종족의 자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빛의 신을 그 몸에 직접 강림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대성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그런 기적을 선보인 인물은 몇 되지 않는데다, 그런 이가 지금 이렇게 신비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눈앞에 등장했으니 알마네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는 자들마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또다른 대성전의 장로인 쿠치넬리는 이 순간 알마네아들과는 다른 이유로 그녀의 등장에 놀라고 있었다. 신을 스스로의 몸에 강림시킨다는 건, 바꿔 말하면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생기어린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그로서는 지금의 상황을 납득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네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놀라서 입만 뻐끔꺼리고 있는 쿠치넬리를 발견하고는 고운 눈을 찌푸렸다.
“당신은 여전히 경솔하군요. 쿠치넬리 장로.”
방금 전에 있었던,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이긴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대참사가 되었을 것이 분명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그건 사소한 실수로…”
“그 사소한 실수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갈 뻔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셈입니까.”
“…”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없는지라, 쿠치넬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했다. 네아는 그런 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다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죄는 나중에 묻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물러나 계세요.”
“네? 하지만… 억!”
폭탄의 일이야 그렇다 쳐도, 일단 자신의 임무는 알마네아들을 규합해서 좀 더 극렬하게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이니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반발하며 다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의 생각이 말로 변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앞서 폭탄을 집어 삼켰던 검은 빛이 그의 몸을 감싸버렸고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쿠치넬리의 모습 역시 사라져 버렸다. 마치, 지워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런 네아의 등장에 놀라던 알마네아들은 쿠치넬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방금 전 폭탄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렸다. 또한 몇몇 현명한 알마네아들은 방금 전 네아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했던 말에 담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한때 대성전에서 빛의 신을 모시는 최고 장로의 자리에 있던… 그것은 명백한 과거형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굳이 과거형으로 자신을 소개한다는 것은, 이제 네아라는 인물이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방금 전 쿠치넬리 장로를 감싸 사라지게 만든 힘은, 누가 봐도 빛과는 거리가 먼 종류의 것이다. 마치 공간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새카만 암흑은 아무리 생각해도 밤의 신이라 불리는 적의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살았다고 안도할 틈도 없이, 알마네아들은 이제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사… 하셨습니까.”
회의에 나섰던 알마네아들에게 시선을 받은 의장이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대표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걱정해주신 덕분에, 보시는 바와 같이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선선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전해 듣기로, 대성전의 전투에서 모습을 감추셨다기에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간의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네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동족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대성전의 전투 이후, 밤의 신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
혹시나 싶었던 일이 역시나 현실로 드러나자 알마네아들은 크게 놀랐다. 그것은 네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있던 의장 역시 마찬가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렇다면… 방금 전에 쿠치넬리 장로에게 사용하신 그 힘은…”
“밤의 권능입니다.”
“헉!”
알마네아들은 이제 당혹해서 어쩔 줄 몰랐다. 대성전의 최고 장로로서 그들 종족의 자랑이었던 인물이 이제는 적의 추종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빛의 신을 스스로의 몸에 강림시켰던 자가.
“많이 놀라고 당혹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네아가 그들을 돌아보며 다시 말문을 열자, 문득 젊은 알마네아 하나가 그녀를 향해 외쳤다.
“이 배신자! 어찌 그리도 뻔뻔한 얼굴로 이곳에 돌아올 생각을 했단 말인가!”
주위의 다른 알마네아들이 기겁을 하며 얼른 그 젊은이의 입을 막았다.
사실 말은 않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고향이 다른 세계와 단절되어 고립된 상황에서 항복이든 뭐든 사절을 보내오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던 이들은 밤의 신이 의외로 자신들에게 매우 적합한 인물을 골라 보낸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최소한 막무가내로 자신들을 짓밟지는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기 때문이다.
네아는 조금 씁쓸한 얼굴로 발버둥치는 젊은 알마네아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배신자. 네. 그렇게 부르셔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빛의 신을 저버리고, 밤의 신에게로 전향했으니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굳이 변명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동포들이 현재의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회의가 제대로 진전이 되지 않는 것도, 적절한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결국은 현재의 정황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정보 체계가 단절되어 버린 탓이다.
저항을 계속하든 항복을 하든,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려면 최소한의 정보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빛의 신전을 통해 밤의 신과의 전쟁을 위해 동원령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과 게이트가 점거 되어 그들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단절되어 버렸다는 점 하나 뿐이다.
물론 네아가 전해주는 정보가 확실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녀가 밤의 신에게로 돌아선 것을 확실하게 밝힌 이상, 지금부터 전달될 정보가 왜곡되었을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하지만 당장 아무런 정보도 얻을 길이 없는 알마네아들은 그런 정보라도 일단은 얻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그들은 현재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이것을 봐 주십시오.”
그녀의 손이 한 번 허공을 휘저어 보이자, 그곳에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아로새겨진 우주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그들이 살고 있는 알마네스터 인근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확대되어 빛의 신이 지배하는 우주 전역으로 확대되는 그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 보시는 이것은 빛의 신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우주를 간략하게나마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고향인 알마네스터는 이즈음에 위치하고 있죠.”
“으음… 대단하군요. 이런 표현 방식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현재 알마네아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른바 우주 지도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3차원적인 공간을 2차원적인 종이에 표시하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을 표현해야 할 범위가 일반적인 수치로 표기하는 것이 곤란할 정도의 광대함을 자랑하니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지도가 더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방금 네아가 선보였던 것과 같은 입체적인 환상을 통해 표현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신전에서 고위직에 속하고 그들의 대부분은 이런 하찮은 일이 빛의 권능을 사용하는 것을 신에 대한 불경이나 모독으로 생각했다.
회합장 안을 가득 메운 입체 영상에 알마네아들이 감탄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네아는 그곳에 다른 정보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건설된 게이트의 위치입니다.”
곧바로 입체 영상에 반짝이는 거울 모양의 게이트들이 수없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많다…”
“게이트가 이렇게 많이 있었다니.”
알마네아들은 빛의 신전에 속한 종족 중에서도 특권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위치에 있었고, 이번 회합에 참석한 이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종족을 대표할 만한 이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들의 고향인 알마네스터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빛의 신전에 속한 게이트는 일반인들이 여행 목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대중화된 수단이 아닌 탓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현재 밤의 신이 점거한 게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네아의 말과 함께 곧바로 몇몇 게이트에 검은 빛이 어린다. 알마네아들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에 처음에는 조금 안도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점거된 게이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는 얼굴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으음… 이런 상황이라면…”
“사실상 게이트 간의 교류는,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겠군요.”
애초에 모든 게이트를 다 점거하는 것 자체가 낭비다. 가장 중요한 교차점 몇 곳만 점거해도 그 아래의 다른 여러 게이트들까지 전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아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빛의 군세가 자리 잡은 곳입니다.”
“!”
다시금 영상에 빛의 군세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상세하게 표시가 되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력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비축하고 있는 물자의 양과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상세하고 적나라하게 모두 표시되어 버린다.
“이건…”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전략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이미 지금의 상황이 전쟁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중요한 지점의 게이트 몇 군데가 점거된 것만으로도 이미 이 전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빛의 군세가 스스로 자멸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급하게 서두를 필요도 없고, 그저 점거한 게이트만 단단하게 지키고 있어도 가능한 일이다.
몇몇 알마네아들은 급히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하려 했지만, 네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보여드린 이 정보를 믿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것이 거짓이라고 매도하는 것 또한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이것만큼은 여기 계신 어떤 분도 거짓이라고 하기 어려울 겁니다.”
네아는 천천히 공중으로 날아올라 여전히 빛이 쏟아지는 천장 근처로 날아올랐다.
밤의 신에게로 전향하고서도 여전히 빛의 신에게 입은 은총을 잃지 않은 듯한 모습. 날개가 한번 힘차게 퍼덕일 때마다 마치 주위에 무지개가 뿌려지는 듯한 그 아름다운 광경을 몇몇 알마네아들은 넋을 잃고 홀린 듯한 모습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미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스스로의 몸에 빛의 신을 강림시켰습니다.”
네아는 쏟아지는 빛의 폭포 아래서 조용히 그때의 일을 회상하듯 입을 열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 경험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는 다시 알마네아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강대한 힘을 가지고도, 결국 패했습니다. 직접 모습을 드러낸 밤의 신에 의해서.”
“지, 직접!”
“그럼… 대성전이 파괴된 것도…”
“밤의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란 말인가!”
빛의 군세가 패퇴하고 대성전이 파괴되었다는 말은 전해 들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전투가 벌어졌는지, 알마네아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밤의 신은 그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 스스로의 몸에 신을 강림시킨 채 폭주하고 있던 저를 침묵시키고 거두어 들였을 뿐입니다. 그 분께서는 그와 같은 일을 행한 뒤 대성전 주위에 일어난 파괴를 진정시키고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셨죠.”
네아는 그런 말과 함께 파괴된 대성전 인근의 모습을 다시 알마네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처참하게 파괴되어, 더 이상 대성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떠올릴 정도로 황폐해진 그 모습에 알마네아들은 무거운 침묵 속으로 잠겨들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네아는 그런 동족들을 향해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빛의 신을 스스로의 몸에 강림시키고서도, 저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확실하게 패했습니다.”
“…”
“그리고, 밤의 신은 그런 저조차도 인정하고 포용하여 받아들이셨습니다.”
네아의 말과 함께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던 빛은 사라지고, 이내 회합장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며 빛나는 우주의 모습만이 남게 되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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