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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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호라이즌, 혹은 사건의 지평선.
이 무지막지한 빛의 광란을 보고서도 형진이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오랜 수련 끝에 터득한 바로 이것 때문이다.
중력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가운데 가장 약하다. 어느 정도냐면, 책받침을 옷에 비벼서 생기는 미약한 정전기의 힘만으로도 지구라는 거대한 천체가 만들어내는 중력을 이겨내고 깃털 같은 가벼운 물체를 떠오르도록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약한 중력도 한계점을 넘어서면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빠른 빛조차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강력한 함정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이벤트 호라이즌, 또는 사건의 지평선이다.
엄밀히 따지면 형진이 만들어내는 이벤트 호라이즌은 자연 내에 존재하는 그것과는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정의대로, 중력을 에너지에 의한 시공간의 왜곡으로 판단한다면 이것은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린다. 뭐라 해도, 형진이 만들어내는 이벤트 호라이즌은 그 자체가 막대한 에너지의 중첩을 통해 만들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우주에 충만한 생명. 그 생명 중에서도 스스로의 의지를 갖는 지성체. 또한 그 지성체가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맡긴 의지의 가닥인 신앙. 신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해진, 인과를 왜곡시킬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바로 신이 지니는 힘의 본질이다.
형진은 여기에 더해 언데드의 힘이라 불리는, 우주라는 존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대한 에너지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는 하나의 우주 안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신보다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음과 양이라 할 수 있는 이 거대한 두 가지 힘만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신이라는 지위에 만족하지 않은 채, 다른 수많은 지성체들이 일궈놓은 지식의 탑 아래서 고련을 거듭한 결과가 바로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벤트 호라이즌의 실체인 것이다.
그래서 형진은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영역이라는 형태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집과 독선으로 얼룩진 이 빛의 영역과는 달리 이벤트 호라이즌은 다른 모든 이들의 의지와 지식과 노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
그저 흙만으로 쌓아올린 토담과, 골조를 짓고 돌과 진흙과 풀을 이겨 쌓아올린 제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거친 폭우와 풍랑이 밀어 닥치면 그 가치가 여실하게 드러나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먹어 치워라!”
어둠 속에 잠기며 그가 외친 한 마디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작은 어둠 하나 하나에 의지를 부여했다.
백만 광년에 육박하는 거대한 빛의 덩어리 앞에서, 그가 만들어낸 어둠은 작은 점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규모의 차이가 커서, 감히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무채색의 빛으로 충만한 그 공간 안에서, 그의 밤은 마치 태양 속에 자리 잡은 흑점처럼 또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빛 앞에서 위태로워 보이던 그 작은 점은 어느 순간이 되자 주위에 소용돌이치는 무자비한 속도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
다급하게 각지의 전투 상황을 조율하고 있던 미아의 손길이 어느 순간 멈춘다. 그녀의 작은 목소리에, 상황실에 있던 다른 이들의 손길 역시 우뚝 멈추어 선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점처럼 보이던 그것이, 주위에서 소용돌이를 먹어치우며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빛과 어둠이 서로를 감싸며 휘몰아치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저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연설인지 신앙고백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 바탕 쏟아붓고 조금은 지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네아는 물론이고, 그녀의 곁에 모여 있던 별궁의 아가씨들 역시 하늘 위에 새겨진 그 장대한 소용돌이의 모습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과 어둠이…”
항복을 완강하게 거부하며 빛의 신전 내에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추종자의 눈에도, 그곳을 내려다 보며 병력 투입을 준비하고 있던 노스페라투의 눈에도 그 현상은 어김없이 보였다.
우주 각지에서 고립된 적을 몰아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던 누에의 눈에도, 가망 없는 전투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종말의 예감을 감내하던 자의 눈에도 그 현상은 또렷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제기랄…”
처음에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빛을 먹어치우던 어둠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자 형진은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무한히 빛을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둠에도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그건, 이를테면 서로가 가진 시간이라는 벽으로 인해 만들어진 한계였다. 모르긴 해도 그가 지금 맞싸우고 있는 빛의 신은 포트니아 테론과 비슷할 정도의 시간을 거쳐 온 존재일 것이다. 그에 반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기는 했어도 형진은 신이 된 것조차 얼마 되지 않는 햇병아리일 뿐이다. 서로가 거쳐 온 시간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을 정도의 그런 차이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거…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괜히 큰 소리 땅땅 치고 나온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떠올리며 형진은 작전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무한정 상대의 힘을 먹어치우는 것에서, 균형을 무너뜨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가랏!”
그의 손이 휘둘러지자 송곳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어둠이 날아들어 빛의 폭풍을 찔러 들어간다.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올려놓은 능력, 인스턴트 킬이 어둠이라는 형태로 구현되어 빛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퍽! 퍼퍽!
물론 이런 식의 공격은 고작 해야 상대의 겉껍질을 깨트리는 정도의 효과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이 거대한 빛의 폭풍 안에 감춰진, 놈의 실체를 직접 가격하지 않는 이상.
하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집어 삼키기 위해 소용돌이치던 힘의 균형이 연속해서 터진 인스턴트 킬에 의해 형진에게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빛의 폭풍 안에서 한 줄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뭐?”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 상황에서 그에게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존재라고는 오직 빛의 신 뿐. 하지만 분명 처음 접하는 것일텐데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낯설지가 않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들어봤던 그런 목소리.
분명, 자신이 잘 알고 있던 누군가의 것과도 같은 목소리.
그런 기분을 느낀 순간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고, 바로 그때 빛의 폭풍 안에서 거대한 사념의 덩어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수많은 얼굴들이 순간 형진의 눈앞에 떠올랐다. 수많은 목소리가 형진의 귀에 전해져 왔다. 수많은 의지가 그의 영혼을 울린다. 그것은 빛의 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시간의 모든 것이었으며, 또한 그 모든 것이 쌓아올린 기억이었다. 그 자체로 계량이 불가능할 정도의 막대한 양의 정보가 갑자기 형진을 덮치듯 쏟아져 나온 것이다.
“윽…”
만약 형진이 일반적인 신이었다면, 그 막대한 양의 정보에 휩쓸려 그대로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빛의 신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신들을 어떤 방법으로 먹어치웠는지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먹어치운 것조차 아니었다. 마치 바닥없는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이 우주의 신들 역시 이 막대한 정보의 격랑에 휩쓸려 매몰되고 그대로 그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형진은 달랐다. 그는 이미 거대한 우주의 사념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라 할 수 있는 언데드의 힘을 다스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막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건의 지평선 자체가, 정보마저 빨아들이는 영역이기에 자신을 매몰시키려 드는 이 압도적인 격류 앞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다.
“미친…”
하지만 형진은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을 깨닫자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리는 느낌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는 이 싸움의 본질을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힘대 힘의 싸움이 아니었다. 누가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고, 누가 더 강력한 신격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식의 싸움조차 아니었다. 그는 지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을 건 싸움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존재 바로 그 자체를 건 싸움이었던 것이다.
형진은 입술을 깨물고 갑작스럽게 덮쳐 왔던 사념으로 인해 혼란되었던 마음과 육체를 가다듬었다. 이런 식의 싸움이 계속 된다면,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들 오래 버텨낼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랬나. 그래서 이 놈이 지금까지 스스로 나서지 않았던 건가.”
빛의 신이 자신처럼 추종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놈은 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이미 극도의 혼란으로 뒤엉켜 있는 상태였다.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여 도구처럼 사용하던 자신과는 달리, 놈은 존재하던 모든 것들의 정보를 받아들이려다 폭주하여 그 모든 것이 마구 뒤엉킨 채 이미 뭐가 뭔지도 모를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것 자체가, 놈이 지닌 마지막 자제심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이거… 바보짓을 한 건지도 모르겠어.”
그냥 가만히 두었다면, 모른 척 놔두었다면 차라리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진은 이내 고개를 저어 그런 생각을 떨쳐 버렸다. 물론 그런 식의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녀석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채 자신이 속한 우주는 물론이고 그것이 뻗어 나온 모든 다중 우주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물로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막아설 엄두는 내지도 못한 채 앞서 자신을 뒤흔들고 지나갔던 막대한 양의 사념체에 매몰되어 버렸으리라. 자신의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들까지 전부.
으득.
형진은 이를 악물고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행동을 따라하듯 어둠의 힘이 뭉쳐지며 거대한 송곳 같은 형상을 만들어 냈다. 또다시 방금과 같은 사념의 공격을 받기 전에, 최대한 상대의 힘을 박살내버리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처 그가 공격을 가하기도 전에, 다시금 한 무더기의 사념체가 폭발하듯 그의 눈앞에 쏟아져 나왔다.
“크윽!”
형진은 반사적으로 끌어올린 힘을 사용해 그 사념체를 박살내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는 눈앞에 나타난 영상과 환청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는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빠앗!’
‘꺄하하하하하!’
그것은 어쩌면 조건 반사와도 같았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전해지는 순간, 그가 끌어올렸던 모든 적대적인 의지가 수그러들고 만다.
“어째서?”
착각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에게 있어서 이것만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귀여운 열두 명의 딸아이들의 모습을 어찌 착각할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그가 다시금 중얼거리자, 마치 그 말에 대답하듯 또다시 사념의 파도가 그를 덮쳐 왔다.
“…”
앞서와는 달리, 형진은 그 모든 정보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젠장! 살아남기만 해봐라! 당장 가서 아란씨 엉덩이부터 만질 테다!
-어머, 그거 고백인가요? 진씨.
-어차피 우리들 꽤나 오래 볼 사이인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쪽 저쪽 나 너 여보 당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뭐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든다면야 상관 없지만.
-유아입니다.
-얼마든지 원하시는 연령대의 원하시는 모습으로 맞추어 드릴 수도 있어요. 아니면… 전부를 원하시나요?
마치 파노라마처럼 지금껏 겪어왔던 모든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째서?”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순간 자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뒤늦게 소름이 돋았다.
그랬다. 빛의 신이라 불리던 놈이, 자신에게 처음 전한 말도 그것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것을 알아차리자, 형진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돼…”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우주가 어떤 곳인지, 열두 종족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 빛의 신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째서 놈이 균열을 그토록 집요하게 노렸던 것인지.
형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넌… 나였던 거냐.”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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