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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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거짓된 천국을 접하는 일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는 듯 보였지만, 막상 그 날이 되자 엄마들 가운데 한 명인 하엘이 문제를 제기했다.
“아직 흑요호로서의 정체성이 완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종족의 삶을 경험하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다른 종족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경험하는 건, 차후 신이 될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엄연히 흑요호로서 태어났으며, 또한 앞으로 많은 세월을 흑요호로 살아야만 한다. 교육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아직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란을 줄 만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하엘이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확실히… 그건 하엘님의 말이 옳아요.”
“다른 무언가를 알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하엘의 지적을 들은 다른 엄마들 역시 바로 그녀의 뜻에 찬성의 의사를 표했다. 형진이 듣기에도 그것은 분명 일리가 있는 얘기였기 때문에 결국 계획은 변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웅… 다른 종족이 되어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몇몇 아이들, 특히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난 니샤와 니야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쉽지만 이건 엄마들의 말이 옳다. 미처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생각지 못한 아빠의 잘못이야. 미안하구나.”
남자 아이인 니샤는 괴력을 지닌 환수인 나티, 여자 아이인 니야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아름다운 종족인 알마네아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아이들로서는 정체성이니 뭐니 하는 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형진의 모습을 보니 무작정 떼를 쓰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비록 아직 어리긴 했어도 정말로 아무 문제 없이 가능한 일이라면 형진이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응? 하늘아. 왜?”
아쉬워 하는 니샤와 니야를 달래는 형진을 지켜보고 있던, 미엘의 일곱 아이들 가운데 맏이인 하늘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조금 알아봤는데요. 거짓된 천국에서 흑요호는 선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들었는데, 저희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 다녀도 괜찮은 걸까요?”
하늘이의 말대로 흑요호는 이번에 업데이트된 종족들 중에서도 상당히 선택하기 어려운 쪽에 속한다. 그런 흑요호가 열둘이나 떼지어 다니면, 유저들로서는 당연히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강한 캐릭터에 대한 열망은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흑요호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귀찮게 굴 수도 있는 일이다.
“아, 그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 없단다.”
“어째서요?”
“흑요호는 분명 선택하기 어려운 종족이지.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흑요호가 어떤 종족인지 알기도 어렵다는 뜻 아닐까?”
“아…”
그렇다. 이 문제에 있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일반인들도 흑요호가 어떤 종족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아이들을 보는 순간 종족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너희들 흑요호지 하고 물어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흑요호가 지니는 외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동물의 그것을 닮은 귀라든가 풍성하고 포근한 느낌의 검은 꼬리들 같은 것을 지닌 채 현실에서 활동했다면 당연히 눈길을 끌 수밖에 없겠지만, 게임 안에서라면 오히려 그런 식의 외모는 평범한 쪽에 속한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호버 보드를 비롯해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퍼스널 모빌리티가 가득 존재하는 게임 안에서라면 하늘을 나는 흑요호의 모습도 딱히 이상하게 볼 이유가 없다.
물론 형진의 아이들이 게임 안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눈길을 끌기는 할 것이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공주님들이 열두 명이나 우르르 몰려다니면 한번쯤은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그런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말을 걸어보는 사람들은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접근하는 이는 적어도 흑요호라는 종족의 특징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들어맞는 내용이다.
“얘들아. 안녕.”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크루그와 카트린이 아이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아빠랑 같이 가겠지만, 앞으로는 카트린 고모와 크루그 삼촌이 함께 하게 될 거다.”
“그럼 앞으로 빠아랑 같이 못 가요?”
“갈 수야 있지만… 너희들끼리 노는데 아빠가 같이 있으면 좀 그렇지 않을까?”
“왜요?”
“그, 그게…”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이들 노는데 아빠가 끼어봐야 눈치만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형진의 눈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있어, 아빠는 다른 누구보다도 친근한 놀이상대다. 못 하는 것도 없고 못 만드는 것도 없는, 문자 그대로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랄까.
“그럼 앞으로는 빠아랑 같이 못 노는 거에요?”
여섯째인 예린이가 눈물마저 그렁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당황해서 얼른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 그럴리가. 물론 그건 아니지.”
“그럼 같이 노는 거에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걱정말아라.”
요즘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크루그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카트린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쩔쩔 매는 형진의 모습을 보고는 키득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랄까. 참 한결 같다고 해야 하나.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대했던 모습마저 얼핏 떠올라서 카트린의 입가에서는 푸근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지나자, 아이들은 특별히 마련된 요람에 몸을 눕힌다음 거짓된 천국으로의 접속을 시작했다.
만에 하나라도 본신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히 마련된 요람에 몸을 눕히고 잠깐 꾸벅 조는가 싶었는데, 아이들은 어느 틈엔가 자신이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다.
“자,느낌이 어떠냐.”
“지금 거짓된 천국으로 들어온 게 맞나요?”
“그 말대로다. 뭔가 불편한 느낌은 없고?”
“네. 너무 신기해요.”
아이들은 곧바로 서로의 꼬리나 귀를 만져보는 식으로 처음 접해보는 아바타의 느낌을 공유했다. 거짓된 천국의 안정성은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증명된 바가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형진은 주의 깊게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만 밖으로 나가볼까.”
“네!”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처럼, 아니 그보다는 어미 오리를 쫓아가는 아기 오리 같은 아이들의 모습에 크루그와 카트린은 피식 웃으며 뒤를 따랐다. 본래는 둘이서 아이들을 데리고 게임 안을 구경시켜줄 예정이었지만 형진이 함께하는 이상 굳이 그들이 앞설 필요는 없다. 대신 혹시라도 길을 잃거나 따로 떨어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주의 깊게 살피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신을 뵙습니다.”
“신을 뵙습니다.”
형진이 아이들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자, 길드성 안쪽에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수련중이던 이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온다.
“수고가 많군.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보도록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별궁에서 네아와 함께 지내고 있는 아가씨들이야 그렇다 쳐도, 크루그에게 수련을 받고 있는 왕족 떨거지들은 생각보다 형진을 직접 볼 일이 별로 없었다. 각국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형진의 뜻을 반영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일로 인해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누구보다도 형진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져 있는 이들이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지시를 받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식의 일은 그야말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평소라면 왕족 나부랭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오늘의 형진은 조금 반응이 달랐다. 아빠가 이런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콧대를 높이고 잘난 척 하는 모습에 아이들과 카트린은 키득거리며 웃기 바쁘다. 오죽하면 말없이 뒤따르던 크루그마저 피식 웃어버릴 정도다.
“크흠. 일단 길드 가입부터 해보자.”
그러자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하엘의 다섯 아이들 가운데 맏이인 라하가 문득 가만히 손을 들어 보인다.
“저… ”
“응? 왜?”
“사실은 그거… 길드라는 거에 대해서 저희들끼리 한 얘기가 있거든요.”
“무슨?”
아이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기왕이면, 저희들끼리 그 길드라는 걸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너희들끼리?”
“네.”
거짓된 천국에 접속해도 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아이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그곳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를 모았다. 당장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카트린부터 시작해서, 요즘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물으면 흔쾌히 대답해줄 이들이 왕성 안에는 얼마든지 있었다. 길드에 대한 것도 그런 식으로 끌어모은 정보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같은 길드에 속하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던 형진은 조금 당황스런 표정이 되어 버렸다.
“너희들끼리?”
“네.”
“…”
확인하듯 다시 한 번 묻는 형진의 말에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세연이 같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다른 종족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 실망한 기색을 보이던 니샤와 니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사전에 자기들끼리 미리 계획을 다 세워두었던 모양이다.
“길드가 뭔지는 아는 거겠지?”
“물론이죠.”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잖아요.”
“…”
사실 나쁜 생각은 아니다. 길드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그것을 꾸려가는 것 역시 단순히 말 몇 마디로는 배울 수 없는 훌륭한 경험이 되니까. 언젠가는 한 번 그런 것도 시켜봐야겠다 싶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니 아직 품안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형진으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 되나요?”
하엘의 다섯 아이들 가운데 막내인 노하가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그제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얼른 대답했다.
“아, 안 되긴. 당연히 되지. 그럼… 말 나온 김에 길드 사무소로 갈까? 길드를 창설해야 하니까.”
“네!”
혹시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던 모양인지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들은 형진의 말에 일제히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진은 어쩐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시원섭섭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얼굴 좀 펴요. 누가 보면 애들 시집 보내는 줄 알겠어요.”
“뭬야!”
“까, 깜짝이야. 오빠도 참,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크흠. 미안.”
카트린과 형진의 대화를 지켜보며 크루그를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형진이 심각한 딸바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저 모양이면 앞으로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귀여운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열넷이나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에,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귀엽기만 한 것도 아니고, 어지간해서는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닮은 아이들이 동물귀에 풍성한 꼬리를 단 채 자기들끼리 떠들며 지나가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킨 채, 형진은 길드 사무소에 도착해서 길드 창설에 대한 것을 준비했다. 사실 이미 거짓된 천국의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한 그라면 그냥 길드성에서 전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서는 아이들이 모처럼 직접 길드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니, 사실 형진은 지금 그런 것을 자기 선에서 혼자 뚝딱 해치울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 정도로 그는 지금 경황이 없었다.
어쨌든 기본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그것을 하나 하나 해결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형진은 마침내 길드 이름을 짓는 과정이 다가오자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이제 길드명을 지으면 된다. 생각해 둔 것이 있니?”
아이들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다행이구나. 그래, 어떤 이름으로 할래?”
그러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 목소리로 답했다.
“‘빠아’요!”
“뭐?”
“빠아로 할래요. 괜찮죠?”
“그, 그거야… 너희들이 원한다면.”
형진이 당황한 사이, 아이들은 말릴 틈도 없이 길드명을 ‘빠아’로 정해 버렸다. 그렇게, 신조차도 당황하게 만드는 악동들의 길드가 탄생해 버렸다.
========== 작품 후기 ==========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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