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117)
〈 117화 〉 117. 아르바이트
117. 아르바이트
따악.
슬레이트 치는 소리가 울렸다. 전투씬을 위해 준비된 10대가 넘는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아연이 스마트폰을 보며 대낮의 공원길을 걸어간다.
나와 오준혁은 미리 맞췄던 동선대로 움직여 나아연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는 조폭마냥 시커먼 정장을 입고 있었다. 주인공의 누나를 노리는 블랙 길드의 조직원 A, B가 우리 역할이다.
나아연이 우리를 보고 움찔거렸다. 오준혁은 강철 건틀릿을 끼고 있고, 나는 길다란 칼을 손에 쥐고 있다. 일반인이라면 우리를 보고 놀라는 게 당연했다.
그녀의 몸이 위축되고 눈동자가 불안감으로 떨린다.
‘와. 카메라만 없으면 진짜인 줄 알겠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10년 넘는 경력의 여배우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진짜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나아연이 주위를 둘러봤다. 도움을 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아연이 뒤로 돌아 달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짭아!”
풉!
오준혁의 말에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니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적당히 발음이 새는 거면 몰라도 ‘짭아’는 진지한 분위기를 파괴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컷! 다시! 다시 할게요”
감독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준혁이 새빨개진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스태프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도 우리가 전문 연기자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야. 야. 다시 하면 돼.”
내가 오준혁의 어깨를 두들겼다.
오준혁은 2줄의 대사가 있다. 하나는 방금의 ‘잡아’고 다른 하나는 꽤 긴 문장이다. 반면에 나는 대사가 아예 없었다. 그냥 손안도와 싸우는 역할이다.
나는 오준혁이 조금 걱정됐다.
‘이 자식. 스타 헌터가 될 거라더니 생각보다 더 못하잖아.’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어쩌면 오늘은 10번 이상 같은 장면을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다시 합시다.”
“NG!”
“……이거 안 되겠군.”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7번의 NG를 낸 오준혁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감독은 곰곰이 무언가 생각하더니 우리를 향해 말했다.
“오준혁 씨랑 성유진 씨. 역할을 바꿔서 해봅시다. 성유진 씨. 조직원 A 대사 알고 계시죠?”
결국 오준혁은 역할에서 짤렸다. 나는 오준혁의 눈치를 살폈다. 실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뻐하는 눈치다.
“예. 알고 있습니다.”
고작해야 대사 두 줄이다. 오준혁과 몇 번 연습을 한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한 번 해봅시다. 연습 시간 필요합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그러면서 감독의 옆에 있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헌터 협회에서 파견된 남자라고 한다.
‘그 만일의 사태란 헌터간의 전투씬이 지나칠 정도로 가열되는 걸 말하는 거겠지.’
저 남자의 일은 전투씬이 거칠어지면 우리를 말리는 일일 것이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레디 액션!”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나아연은 아까처럼 다시 연기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똑같은 연기를 함에도 짜증 한 번 부리지 않는 것에 프로의식을 느꼈다.
나는 좀 긴장했다. 나도 연기에 별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연이 뒤로 돌아 도망친다.
“잡아!”
내가 외쳤다. 그리고 오준혁과 나는 나아연을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E급 헌터다. 일반인이 나아연이 전력으로 뛰더라도 따라잡는 건 일도 아니다.
우리는 금세 나아연을 따라잡아 그녀의 몸을 잡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왼쪽을 잡았고 반대쪽은 오준혁이 잡았다.
“아아악! 이거 놔! 놓으라고!”
나아연이 실감나게 발버둥치기 시작했지만, 우리를 뿌리치진 못했다.
그때. 저 멀리서 손안도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우리를 뒤로 날렸다. 우리는 바닥을 몇 번 구른 뒤에 몸을 일으켰다. 나와 오준혁의 얼굴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연기였다.
“누나! 괜찮아?!”
“하, 하운아!”
손안도가 나아연을 살폈다. 나아연의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는 걸 확인하고 몸을 돌려 우리를 노려본다. 그가 손에 든 검 끝이 우리에게 향했다.
“설마. 김선아 그 여자가 보낸 거냐?!”
“아가씨는 모른다. 보스의 명령이다. 마침 잘 만났군.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퇴물.”
내가 말했다. 여기서 NG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 목소리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떨리지도 않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감독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문제없는 모양이다.
“누나. 물러서. 이 자식들은 여기서 처리해야 해.”
“하, 하운아. 도망가서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니?!”
“도망가 봤자 따라올 게 분명해. 누나가 떨어져서 경찰에 신고해. 어서!”
나아연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와 오준혁은 무기를 들고 손안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손안도는 이전에 우리에게 전력을 다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A등급 헌터인 손안도는 우리가 10명 있더라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아아아!”
오준혁이 기합을 내지른다. 그의 양팔과 어깨가 강철로 변했다. 오준혁은 자신의 몸무게를 전부 실어 손안도를 향해 돌진했다.
화르륵!
손안도의 검에서 새빨간 불꽃이 일어났다. 손안도의 능력인 화염조작을 이용한 것이다.
손안도의 검과 오준혁의 주먹이 부딪힌다.
콰앙!
화염 폭발이 일어났다. 겉보기만 엄청나게 위험해보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촬영전에 특수 방어구를 지급받았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상처를 받지 않는다.
화염 폭발이 걷히고 오준혁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나는 오준혁을 뒤로하고 손안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캉!
그의 화염을 머금은 검과 내 화련비도가 부딪힌다. 손안도는 일부러 내게 빈틈을 보이며 공격을 부추긴다.
이건 촬영이기 때문이다. 서로 빈틈을 찾는다고 탐색만 한다면 보는 이들은 지루할 뿐이다.
나는 그와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안전한 상황에서 A등급 헌터와 전력으로 싸울 일은 좀처럼 없지. 전력을 다하라고 했지? 원하는 대로 전력을 다해주마.’
파지직!
내 칼에 번개가 서린다.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의 스킬인 아스트라페를 따라한 것이다. 그 위력은 온전하지 못하더라도 뇌전 자체가 상대방을 감전 시킬 수 있으니 위력적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손안도는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 내가 2차 각성자로 뇌전을 각성했음을 알렸다. 2차 각성은 능력을 각성한 헌터가 다시 각성해 새로운 능력을 가지는 걸 말한다. 즉 2개의 능력을 가진 헌터라고 할 수 있다. 2차 각성 헌터는 무척 드물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감전이 아예 안 통하잖아.’
뇌전이 내 칼에서 그의 검으로 옮겨붙으려고 하면 바로 사라졌다. 나는 손안도가 다루는 마나 때문에 뇌전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럼 이건 어떠냐.’
영천류 뇌사(雷蛇).
나는 손안도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그를 향해 칼을 찔렀다.
내 칼이 번개줄기로 변해 뱀처럼 꼬불거리며 찔러 들어간다. 손안도는 검을 옆으로 세워 불꽃을 일으켜 간단히 뇌사를 막아냈다.
영천류 뇌광(雷光).
번개의 힘을 이용한 극한의 쾌검을 휘둘렀다. 허나 손안도는 너무도 간단히 검으로 막아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A등급에겐 내 전력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영천류 뇌음보(雷音步)
영천류의 은밀함을 버리고 오직 속도만을 추구하는 보법이다. 내가 뇌음보를 밟아 달릴 때마다 작은 천둥소리가 들린다.
카앙! 캉! 캉!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손안도는 그저 드라마를 위해 내 공격에 합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자.’
나는 손안도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슬쩍 오준혁을 살폈는데 오준혁은 저 멀리 떨어져 앉아 입을 벌리고 멍하니 나와 손안도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다.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겐 영천류 말고도 천마신공이 있어.’
문제는 그 천마신공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찌 저찌 그럴싸하게 모양만을 따라하더라도 제대로 된 위력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한 번 써보자. 통할지도 모르잖아.’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내가 사용하려는 천마신공의 기술 중 하나다.
천마군림보는 그 중에서도 오의라고 할 수 있는 보법이다.
자신의 주위 공간을 지배하기에 군림(君臨)이란 이름이 붙여진 보법.
당연히 지금 내가 사용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이 보법을 내 방식대로 따라 할 생각이다. 아마도 본래 천마군림보의 5%의 위력도 내지 못할 테지만.
“쓰읍, 하. 쓰읍… 하!”
전집중 천마의 호흡.
제 69형.
천마 스텝!
내 양 다리는 현란한 보법을 밟으며 손안도를 향해 다가갔다. 그대로 번개를 담은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화염 폭발이 일어났다.
“크어어어억!”
내 몸이 공중에서 몇 미터가 날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안도가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붉은 화염이 토네이도처럼 검에 맺힌다. 나는 끝을 직감하고 앉은 상태에서 왼손을 정면으로 뻗었다.
손안도가 검을 휘둘렀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용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그냥 질 수는 없지. 내 마지막 한 수다!’
왼손 앞에 만뢰(卍雷)가 나타난다. 나는 내가 가진 마나를 모조리 짜내 만뢰에 사용했다.
콰르르릉!
만뢰에서 번개가 쏘아진다. 번개는 화염의 용을 찢어발기며 사라진다.
“끝이다.”
어느새 다가온 손안도가 내게 검을 겨누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맺힌 검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젠장.”
나는 대본에는 없는 대사를 내뱉으며 손에 쥔 화련비도를 놓았다.
“컷! 오케이! 퍼펙트!”
감독의 컷사인이 떨어지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엄청났다.”
“이거 웬만한 CG를 쓴 것보다 더 대박인데요?”
“불이랑 번개라니… 진짜 쩐다.”
희귀한 장면은 맞을 것이다. 화염 능력자는 그래도 제법 있는 편인 것에 비해 번개 능력을 가진 헌터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소수이니까.
“대단하던데요? 도저히 E급 헌터로 안 보였습니다.”
손안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손안도 씨는 무척이나 강하시군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이래 보여도 A급이니까요. 유진 씨는 마나도 사용할 수 있으신 것 같으니 빠르게 강해지실 거에요. 저희 길드에 스카웃하고 싶다니까요.”
“아니. 제가 사정이 있어서 스카웃은 좀….”
“알아요. 영천류와 관련된 일이죠?”
“…어, 영천류를 아시네요?”
“진우성 씨와는 몇 번 같이 일한 적이 있어서요.”
좀 의외이긴 한데 놀랄 정도는 아니다. 손안도는 겉보기 보다 나이가 많고 진우성과 같은 A급 헌터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의 보법은 영천류가 아니던데… 혹시 독자적으로 개발하신 보법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내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에 마천의 왕은 없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닙니다만….”
“역시 그렇군요. 제대로 완성만 된다면 위력적인 보법이 될 거라 생각됩니다. 보법의 이름은 뭔가요? 나중에 유명해질 테니 미리 알아두고 싶네요.”
“천마 스텝입니다.”
“예?”
“천마 스텝이요.”
“하, 하하. 재밌는 분이시군요. 예. 천마 스텝. 기억했습니다.”
손안도가 산뜻하게 웃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겨우 이딴 보법에 천마군림보라고 말할 순 없지.’
나는 진정한 천마군림보의 위력 5%도 살리지 못했다.
이딴 보법을 천마군림보라 말하기에는 천마신공에 대한 모욕이다. 그렇기에 천마군림보를 완성할 때까지 천마 스텝이라 부르기로 했다. 천마군림보를 영영 완성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후에 또 다른 장면을 촬영했다.
별건 아니고 경찰과 헌터 협회원에게 잡혀가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대사는 한 단어도 없었다. 오준혁과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끌려가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찍을 촬영을 끝났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일당 30만원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30만원은 너무 적은 것 같지만… 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유진 씨. 잠깐 저랑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감독이었다. 이름은 노한수. 30대 후반의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다.
“예. 무슨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