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20)
〈 20화 〉 020. 뱀파이어 형사
020. 뱀파이어 형사
“이게 무슨 일이야!”
한국 흑십자회 본부장인 이문현이 회의실에 모인 간부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 온화한 옆집 아저씨 같던 이문현이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찌푸린 채 분노를 토해내자 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7명의 간부들은 고개를 숙이고 이문현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
“백 조사부장!”
“…예. 본부장님.”
백지욱 조사부장이 앞으로 나섰다.
한국 흑십자회는 총 3가지 부서로 나뉜다. 지원부, 조사부, 전투부. 백지욱은 조사부의 최고 관리자였다.
조사부는 뱀파이어에 대해 조사한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뱀파이어를 찾아내거나, 뱀파이어가 일으킨 사건으로 의심되는 것들은 일단 조사한다.
“자네가 말해봐!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백지욱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꾸욱 참았다. 본부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트집 잡힐 일은 해선 안 된다.
그는 2시간 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 11시 10분 경. 본부의 통근 버스가 급발진해 본부 입구에 충돌했습니다. 피해 상황은 박기수 헌터가 사망했고, 조주현 헌터는 중상을 입고 현재까지 혼수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버스의 급발진 원인은 아직 조사….”
“…백지욱 조사부장. 경고하지. 그딴 걸 보고라고 지껄일 거라면, 그냥 지금 밖으로 나가!”
“…죄송합니다. 확실한 건 없으나 이번 사건은 뱀파이어에 의한 테러로 확정하고 조사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고속 버스에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 뱀파이어 진조가 초능력을 이용해 버스 테러를 감행한 것 같습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말하는군. 그 뱀파이어 진조가 누구인지는 자네들, 조사부가 알아낼 일이고… 진조의 능력은 뭐지?”
“염동력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염동력? 웃기는 소리! 버스는 날아온 게 아니라 달려 왔어! 바퀴가 돌았지. 그런데 염동력? 나랑 장난하나?”
“염동력으로 버스의 운전을 정밀히 컨트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버스가 시속 300km로 쳐박았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버스가 KTX 속도로 달렸다고!”
“……철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어떻게?”
“전국에 있는 조사원들의 80%를 불러들여 서울에 숨어 있는 뱀파이어를 모조리 찾아내겠습니다.”
“부족해. 추가로 전국에 퍼져 있는 헌터들 절반을 불러들여. 그리고 근처 CCTV도 싹 뒤져서 놈을 찾아내.”
훅, 훅. 이문현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한차례 분노를 토해내서 그런지 그의 귀신같던 얼굴이 한 차례 풀렸다.
“……전투 부장.”
“예.”
“헌터들에게 조심히 다니라고 해. 본부가 대놓고 습격받았는데, 다른 곳에선 습격 안 하겠어? 당분간은 3인 1조로 행동해.”
“알겠습니다.”
“조주현이는 어떻지?”
“수술이 진행 중입니다. 의사 말로는 수술 성공률이 30% 이하라 합니다.”
“……신께 기도해야겠군. 조주현이 근처에 헌터들로 호위 붙여줘. 그리고 지원 부장.”
“네. 본부장님.”
“국정원과 접촉해서 도움 요청해. 이건 뱀파이어 새끼가 우리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이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뱀파이어에 의해 테러를 당한 것이니 적극적으로 나설 테지.”
이문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청와대로 간다.”
그는 모인 간부들을 매섭게 돌아보고는 말했다.
“…이번 습격은 한국 흑십자회 역사상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다. 긴급 상황인 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반드시 놈을 찾아내 죽여라. 우리가 뱀파이어 새끼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한국이 어떤 꼴이 될 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아리라 믿는다.”
이문현이 밖으로 나섰다.
본래 예정되어 있지 않은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해, 운명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문지혁은 자신의 앞에 있는 교통과의 여순경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양정민 순경. 쇄골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헤어 스타일의 그녀는 무척 선하게 생겼는데, 요새 들어 매일 만나고 있었다. 의도한 건 절대 아니다. 우연이었다. 문제는 그 우연이 제법 빈번하게 일어나서 운명이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문지혁 씨. 왜 자꾸 절 따라오세요? 혹시 스토커에요?”
“전 스토커를 잡는 쪽입니다. 따라온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온 거죠.”
“뭐 때문인데요?”
“오늘 있었던 대형 고속 버스 충돌 사고 말입니다.”
“그게 왜요? 혹시 그 사건 담당하셨어요?”
“아뇨. 저희 쪽 일은 아니고… 그냥. 뭔가 이상해서요. CCTV 영상을 봤는데 급발진 치곤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거기다 보니까 운전석에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인터넷에선 귀신들린 버스로 유명했다. 회사에 원한을 가진 귀신이 버스에 빙의해 들이 박은 것이다. …라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다.
이 미스테리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사건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존재하니 유령도 존재 할 가능성도 있지. 거기다 경찰서 내부 분위기가 이 사고에 쉬쉬하고 있다.’
그가 속한 경찰서의 관할 구역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경찰서는 평소와 같은 분위기였다.
“음. 그게… 교통과장님이 이 일에는 신경 끄라고 하셔서… 저희도 잘 몰라요.”
“그렇습니까….”
이상하다.
예전이라면 그도 어차피 다른 부서의 일이니 한 번 듣고 넘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정부는 뱀파이어에 대해 옛날부터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 일은 뱀파이어가 벌인 일이라면…?’
문지혁은 이번 사건을 시간을 내어 개인적으로 조심히 조사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이거 가면서 먹으세요. 맛있어요.”
양정민이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여자의 아찔한 살내음이 코를 찔러서 깜짝 놀랐다.
“헉!”
“…왜 그러세요? 청포도 사탕 싫어해요?”
“아, 아니요.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문지혁은 서둘러 양정민에게서 떨어졌다.
‘……미쳤군. 여자 목덜미를 보고 맛있겠다고 생각하다니… 진짜 뱀파이어가 된 게 실감나. 빨리 인간으로 돌아 가야해.’
그건 성욕과 식욕이 합쳐진 듯한 욕구였다.
문지혁은 갑작스런 욕구에 부끄러움을 느끼곤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가 섬뜩함을 느끼고 황급히 내렸다.
뱀파이어의 체온은 인간보다 낮았다.
‘끔찍하군.’
•••
나는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에 육성동에 들어왔다. 서울 외곽에 있는 이곳은 흔히 말하는 달동네다. 그리고 여긴 달동네 중에서도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곳이다.
유흥업소는 줄줄이 늘어서 있고, 남몰래 운영하는 불법 창관도 있다. 그리고 육성동은 조폭과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창관이라…. 한 번 찾아 가볼까.’
그러나 곧이어 그 생각을 접었다. 이곳에 있는 유흥업소는 딱 보기에도 질이 낮았다. 창관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을 것이다. 괜히 창녀를 찾아가봤자 오히려 실망만 하며 시간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 시간에 다른 델 가는 게 낫지.’
나는 골목길로 들어서며 허름한 전당포를 발견했다. 고물이 가득한 집이었는데 하늘색 대문이 엄청나게 녹슬어 있었다. 대문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전당포’라고 대충 적혀 있다.
나는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에는 온갖 잡동사니들과 컨테이너 박스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전당포 보다는 고물상 같았다.
나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판잣집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내부가 들어왔다. 그래도 겉보기에는 전당포에 충실한지 제법 괜찮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왔군. 여기다.”
나무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60대의 노인이 있었다. 키도 작고 얼굴에 주름도 가득하지만 두 눈만큼은 형형했다.
나는 강욱성의 양 옆에 서있는 두 명의 사내를 힐끗 봤다. 창백한 얼굴의 사내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무언으로 말한다.
테이블로 걸어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이상으로 젊은 놈이었군. 몇 살이지?”
“21살. 돈은?”
“테이블 밑에 있다.”
테이블 옆으로 고개를 내빼 아래를 쳐다봤다. 5만 원짜리 지폐다발이 들어있는 박스가 있었다.
“말했던 대로 4억이다. 명단은 어딨지?”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백팩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지퍼를 열어 그 내부를 와르르 쏟아냈다. 여러 개의 대포통장과 함께 USB하나가 튀어나왔다.
“통장에 있는 건 세탁하고, 명단은 USB에 있어. 확인해봐.”
강욱성이 옆에 있는 남자에게 손짓하자, 남자가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북에 USB를 꽂고 자료를 확인했다.
명단은 확실하다.
한국 흑십자회 소속 일원은 총 913명. 그 중 174명이 전문 뱀파이어 헌터다.
명단에는 그들의 이름과 거주지, 전화번호와 전투 이력 등의 개인 정보가 들어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거 3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 같은데.’
미련은 곧바로 털어냈다. 30억을 불렸다면 강욱성이 거래에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약 10분의 시간이 흐른 뒤, 뱀파이어가 강욱성에게 말했다.
“……명단이 맞습니다. 저희가 가진 정보와 일치하고 더 정확합니다.”
강욱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가져가라. 나머지 6억은 3일 뒤에 준비된다.”
“오. 고마워.”
나는 백팩에 돈다발을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제법 튼튼한 20만 원짜리의 백팩을 준비했다.
“이건 어떻게 얻은 거지?”
“해커가 뭐 하겠어. 해킹으로 얻었지.”
“…우리라고 해킹을 시도하지 않은 줄 아나? 흑십자회는 국가마다 자체 네크워크를 이용한다. 건물 내에 침입해 컴퓨터를 뒤지지 않는 이상 해킹은 불가능하다.”
“방법은 항상 존재해. 당신이 모를 뿐이지.”
“그 방법이 뭐지?”
“그건 내 밑천인데. 스스로 생각해봐. 가능성은 많아. 그 중 하나는… 흑십자회의 배신자가 나랑 손잡았다던가?”
돈은 정확히 4억이었다.
나는 백팩의 지퍼를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을 얻었으니 영혜정에 가야지. 이번에 제대로 놀아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영혜정 가즈아아아아!’
나는 서둘러 집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테이커. 하나 물어봐도 되나?”
“어. 뭔데?”
“그렇게 급하게 돈을 구해서 어디에 쓰려는 거지?”
나는 씨익 웃었다. 아마도 인생 중 최고로 멋진 웃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왕이 되려고.”
•••
“저 인간…. 보통이 아닙니다. 훗날을 생각해 미리 죽여 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강욱성은 자신의 옆에 조용히 서있던 뱀파이어의 제안에 조용히 고민했다.
위험하다.
그건 인정한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흑십자회의 명단을 가지고 왔다. 그게 진짜 해킹 실력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뱀파이어 조직 칸트라도 그에게 해킹 당할 위험이 있다.
‘다행인 건 흑십자회와 좋은 사이는 아니라는 거군.’
그 뜻은 아직 협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이면서 칸트라에 협력하는 인간은 많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득만 된다면 괴물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생물이었다.
“…아니. 테이커는 적이 아니다. 무엇보다 죽이기에는 능력이 탐나는군. 거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괜찮겠어.”
“뒤에 한 명 붙이겠습니다.”
“미행은 관둬. 우리를 대하는 테이커의 태도를 못 봤나? 평범한 놈이 아니야. 놈은 여기가 사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당히 들어왔다. 무언가 숨겨둔 게 있겠지. 그리고….”
강욱성은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기억을 되풀이했다.
성유진의 목소리, 말투, 표정, 눈빛. 그 모든 걸 조합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저건 미친놈이다. 우리를 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옛날에 비슷한 눈을 가진 놈을 몇몇 본적 있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런 눈을 가진 놈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미친 살인마거나, 우리 이상의 괴물이거나.”
강욱성은 뒷말을 삼켰다. 저 놈의 눈은 마치 보스와 비슷하다는 말을.
“명단에 있는 흑십자회 놈들 전부 파악하고, 멀리서 주시해라. 헌터는 괜히 건들지 않도록 아랫놈들에게 알려라.”
그 말에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헌터 놈들은 그냥 내버려둬야 합니까?”
“벌집을 치우려면 그 만큼의 안전 장비가 필요하지. 특히나 말벌이라면 더욱더. 한국 흑십자회의 뒤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있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오히려 우리가 위험해진다. 여긴 아프리카나 남미가 아니다. 섣부르게 움직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주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