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61)
〈 61화 〉 061. 코드: XTK
061. 코드: XTK
190층에 들어선 나는 몸을 긴장시켰다.
‘없다.’
특수 요원이 없었다. 아니,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 특수 요원의 임무는 메인 시스템 룸을 지키는 것.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 요원이 제 임무를 내팽개치고 멋대로 임무 장소에서 이탈할 리가 없었다.
‘……젠장.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가셔.’
나는 재차 일루시터에 대해 떠올렸다.
일루시터는 모습만 숨긴다. 질량이나, 소리, 체온은 숨기지 못한다. 열화상 카메라가 있으면 꼼짝없이 들키는 것이다. 또한 일루시터는 거칠게 움직이면 공간이 흐느적거리는 게 보인다.
‘인벤토리에 혹시 몰라서 열화상 안경을 준비하긴 했어.’
근데 나는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현실에서 진세영에게 보이지 않는 적을 어떻게 상대할거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볼 수 없더라도 느낄 수 있다면 상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러 안대를 쓰고 나와 대련했지.’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분명 안대를 확실하게 쓰고 있었는데 진세영은 나를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열 감지 안경을 꺼낼까? ……아니. 할 수 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괜히 눈을 감지는 않았다.
‘총을 쏘면 소리가 나니까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와서 나이프를 휘두르겠지.’
머릿속에 놈을 그린다. 내 뒤쪽에는 비상계단이 있으니 놈은 앞에서 소리죽여 다가올 것이다.
‘질량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전신 사이보그 일 가능성이 적을 테니 숨도 내쉬겠지.’
집중하고 집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무언가 느껴졌다. 나를 중심으로 시야 오른쪽에 있다. 그것은 점점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존재감이다.
나에게 다가올수록 존재감의 형태가 점점 뚜렷해진다.
‘오른손에 나이프를 역수로 들고 있군.’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비로소 뒤늦게 깨달았다. 이게 바로 진세영이 말하던 기감이란 걸.
‘난 기감이 마나를 박쥐의 초음파처럼 이용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이런 개념이었나.’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느끼는 수밖에.
‘내가 느낄 수 있는 범위는… 대충 1M 정도인가? 좀 아쉽네.’
내가 놈보다 먼저 움직였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영천류 실전기 서광(曙光).
가속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실전기를 사용했다.
내 칼이 빛살이 되어 놈의 몸을 가른다.
놈이 반응했으나, 내가 칼날이 놈의 움직임보다 더 빨랐다. 오른쪽 어깨에서 옆구리까지. 확실하게 가슴 속의 심장까지 갈랐다. 설령 몸이 기계라 하더라도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막을 정도의 강도는 갖는 건 불가능하다.
놈의 몸이 철푸덕 무너졌다. 하체는 보이는데 상체는 보이지 않았다. 시체가 되어서도 일루시터는 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놈이군. 죽어가면서도 유언을 남기기는커녕 비명조차 흘리지 않았어.’
일루시터는 인정받은 특수 요원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특수 요원은 정예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차라리 나랑 정면에서 싸웠으면 또 몰랐겠군.’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보이지 않는 특수 요원의 상체를 더듬거리며 왼팔에 감겨 있는 일루시터를 떼어낸다. 그러자 특수 요원의 시체가 드러났다. 두 눈을 뜨고 입을 꽉 다문 채로 죽어 있었다.
‘얻었다. 일루시터!’
일루시터의 생김새는 평범한 검은색 끈처럼 생겼다. 일루시터의 표면에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은폐 중. 남은 은폐 시간: 47분 52초.
일루시터의 양쪽을 잡고 당기자 마치 고무줄처럼 쭈욱 늘어났다.
‘설장상 최대 70cm까지 늘어난다지.’
한쪽 손을 떼자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일루시터를 특수요원이 그랬던 것처럼 왼팔에 휘감았다. 내 몸이 순식간에 투명해졌다.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던 칼을 쥐자, 칼 또한 투명해진다.
‘나도 내 몸이 안 보이네.’
미리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리고 일루시터의 효과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일루시터의 발동 시간을 잘 계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좋아. 일루시터 2개만 더 얻고 바로 현실로 돌아가자!’
바로 비상계단으로 향하려던 나는 멈칫하고 메인 시스템 룸을 쳐다봤다. 이 안에 들어가서 기술자들을 다 죽여 놓으면 혼란은 조금 더 길어지지 않을까.
나는 메인 시스템 룸의 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캉!
칼이 튕겨나갔다. 문에 흠집이 났으나 잘라 낼 수는 없었다. 과연 시청의 메인 시스템 룸. 플라즈마 블레이드로도 벨 수 없는 재질의 문으로 보호하고 있다.
‘…못 하겠군.’
벽도 똑같은 재질일게 뻔하다. 나는 미련을 털어내고 비상계단을 향해 달렸다.
흐느적흐느적. 거칠게 움직이니 공간이 일렁이는 게 눈에 보였다.
‘이건 좀 안 좋네.’
움직임 속도를 조금 낮추자 흐느적거리는 게 줄어들었다.
‘…기은보를 쓰면 어떠려나.’
그러자 놀랍게도 흐느적거리는 게 대부분 사라졌다. 거의 달리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루시터. 이거 영천류와 상성이 너무 좋잖아.’
히죽, 히죽.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애써 감정을 누르며 계단을 내려갔다. 도중에 특경대와 마주쳤으나, 특경대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쳤다. 굳이 힘을 빼가며 그들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151층. 파티장을 앞두고 열화상 안경을 썼다. 역시 편하게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150층.
나는 바로 파티장에 들어가지 않고 몰래 문틈으로 내부를 살펴봤다.
파티장은 엉망이었다. 테이블이나 음식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서 스마트 워치를 이용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특수 요원이 3명이군. 이거 안 되겠어.’
모습을 드러낸 특수 요원 3명이 서울 시장 원천수의 호위를 서고 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열 감지 의안을 박았겠지. 내가 몰래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총을 갈길 테지.’
나는 몸을 돌렸다. 파티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손정후가 없는 걸로 보아 손정후는 이미 목적을 달성한 듯싶었다.
‘일루시터 3개는 포기다.’
그럴 여건이 안 된다. 혼자서 저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36층에 귀금속 가게가 있다던데. 잠시 들릴까?’
순간 혹했으나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내 목표는 일루시터다. 예비용으로 1개는 더 챙겨야 했다.
60층 계단을 내려가는 와중이었다. 유한수가 바닥에 엎어져 기절해 있는 게 보였다.
‘원작 웹툰 내용대로 손정후랑 싸운 모양이네.’
이 이후로도 유한수랑 손정후는 몇 번씩이나 대립한다.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내 목표는 1층이었다.
거기에 특수 요원 박신한이 있다.
메인 시스템을 해킹하며 알았다. 특경대는 가짜 신분이었다. 박신한의 진짜 신분은 특수 요원이다.
1층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특경대들이 죄다 죽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자 정면 입구 쪽에 태연히 서있는 2명이 보였다. 현지와 유근태다. 그들의 발아래에 박신한의 시체가 있었다.
나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조용히 일루시터를 해제하고 열화상 감지 안경과 함께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태연함을 가장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뭐해. 퇴로는 확보한 것 같은데, 안 도망쳐?”
자연스럽게 말을 걸자 유근태가 나를 돌려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리고 손에든 일루시터를 보란 듯이 내민다.
“테이커! 봐봐! 이거 일루시터야! 이 놈, 그냥 평범한 특경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특수 요원이었어! 오늘 완전 횡재했다고!”
“아저씨. 일루시터는 내꺼야!”
“아니. 현지야! 우리 같이 협력해서 잡았잖아? 이건 그냥 암시장에 내다 팔자고! 몇 천억에 팔릴 거야! 일루시터에도 제약이 있는 거 알잖아!”
“…음. 하긴. 요즘은 개나 소나 열화상 안구를 장착하니까. 그냥 돈으로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들은 떠들썩했다.
아래를 보니 박신한의 시체는 토막 나 있었다.
“진짜 일루시터야? 한 번 보자!”
내가 그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자. 자. 딱 보기만 해. 귀하신 물건이니… 어?”
칼을 휘둘렀다. 단숨에 현지의 목을 베어낸다. 현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 몸이 허물어진다.
“테, 테이커?! 이 미친!”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유근태가 내게서 멀어지며 양손을 내민다. 그러나 내가 먼저 그의 기계 양팔을 베어내고 품안으로 파고들어 심장을 찔렸다.
“커흡! 배, 배신이냐!”
“내 원래 목적이 일루시터였거든. 잘 가, 아저씨.”
칼을 아래로 그었다. 피와 내장이 흘러나왔다. 나는 두 번째 일루시터를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일이 내 생각대로 술술 풀렸다.
“좋아! 목적 달성이다! 하하하하하!”
기분이 아주 끝내줬다. 나는 양팔을 벌리며 입구 밖으로 뛰쳐나갔다.
“크하하하하하!”
미친놈처럼 크게 웃었다.
이제 난 투명인간이 되어서 이런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괴물 같은 헌터가 즐비해 있는 현실에서는 사용하기 좀 겁나지만… ‘뱀파이어 형사’를 비롯한 다른 유희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여탕이다! 여탕의 비밀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타앙!
뒤에서 날아온 총알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몸이 아래로 쓰러진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말문이 막혔다.
죽는다. 그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냐. 누가 날 쏜 거냐.
필사적으로 머리를 뒤쪽으로 돌린다.
범인은 울라였다. 그녀는 30층 창문에서 소총으로 나를 저격한 것이다. 유려한 얼굴의 스나이퍼는 냉혹한 표정으로 창문에서 멀어졌다.
‘시발! 개빡치네! 완전회복!’
관통당한 심장과 가슴이 순식간에 회복된다. 가슴에서 느껴지던 고통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울라의 실수는 머리를 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뇌를 파괴했더라면 완전 회복도 사용하지 못하고 즉사했을 것이다.
‘개씨발년. 내가 사이보그가 아닌 노말인 걸 아니까 심장을 노린 거겠지. 그래야 배신을 후회하며 죽어갈 수 있으니까.’
울라는 원작에서도 잔혹한 년이었다. 헤드샷을 할 수 있음에도 상대가 노말이면 일부러 심장을 노린다. 멋들어진 말로 죽음의 유예니 뭐니 중얼거리는데, 내가 봤을 땐 그냥 중2병 걸린 또라이년이었다.
‘죽여주마! 시발년! 내 뒤통수를 노려?!’
나는 내로남불의 이기적인 놈이었다. 내가 뒤통수를 치는 건 괜찮으나, 뒤통수를 맞는 건 전혀 괜찮지 않았다.
칼을 손에 쥔 나는 다시 서울 시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화가 끝까지 났다.
‘잠깐! 생각해보니, 씨발! 손정후 이 새끼가 울라한테 날 감시하라고 했겠지!’
저녁 식사 때 울라를 데려가라고 한 걸 보면 확실하다.
그리고 내가 울라에게 저격당해 죽은 이유는 내가 배신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울라는 30층에 있었다. 즉, 1층에서의 내 배신 행위를 보지 못했을 거란 이야기다.
울라는 나를 죽이고 싶어서 죽인 거다.
빠드득.
잇몸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문 나는 위로 올라가다가 방향을 바꿔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22층.
거기 화장실에 은밀히 숨겨져 있는 지하 통로를 통해 설계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하 23층으로 향한다.
본래 이곳은 원작의 최후반부에 나온다.
원작의 라스트 보스는 손정후가 아니라 서울 시장인 원천수다. 그는 한국을 완전히 자신의 지배하에 둔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나를 거대한 문이 막아섰다. 메인 시스템에 있는 문과 똑같은 재질이다.
‘이 문은 해킹에 대비해서 수동으로 열게 되어 있어.’
원작을 알고 있는 나는 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철문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철컹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왼쪽에서 3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숨겨진 버튼을 누른다.
이런 식으로 숨겨져 있는 버튼을 순서대로 4개를 누른 뒤에 문을 있는 힘껏 밀었다.
문이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나는 통로를 뛰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존나 크네!”
내 앞에 10M가 넘는 하얀 구체가 있었다. 구체는 붉은 빛을 내뿜고 있다.
‘에클러스 핵융합기. 프로젝트 한국의 심장의 시작점.’
원천수 시장은 에클러스 핵융합기로 한국의 에너지를 지배할 야망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에너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에클러스 핵융합기는 한국 전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도 남을 정도인 말도 안 되는 물건이다.
지금 시점에서 ‘프로젝트: 한국의 심장’은 원천수 시장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원작에서 나오지! 아직 완성되지 않을 상태라 충격에 몹시 약하다고!’
여기에 충격을 주면 어떻게 될까.
답은 원작에서도 나왔다.
에클러스 핵융합기는 폭발한다. 그냥 폭발하는 게 아니라 서울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절반을 먼지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핵융합기 앞으로 다가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다 같이 뒤지자! 이 개씹새끼들아!!!”
나는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손정후, 울라. 그 두 연놈을 동시에 죽이려면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아니, 눈이 돌아간 내겐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유희 종료오오!”
내가 외치면서 칼을 휘둘렀다. 이걸로 나는 무사히 현실로….
…어?
어마어마한 열량을 품은 빛이 나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