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66)
〈 66화 〉 066. 뱀파이어 형사
066. 뱀파이어 형사
할로윈 여객선 사건 이후 한국 흑십자회의 영향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동안 한국 흑십자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배려와 지원을 받아왔다. 흑십자회는 인류를 위해 뱀파이어를 사냥한다는 대의명분으로 국제 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흑십자회는 적잖은 공적을 올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에 있는 뱀파이어를 꾸준히 사냥해오며 한국의 밤을 지켜왔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에 한국 흑십자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이문현 본부장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이전에는 대통령과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서 대통령에게 연락해야 한다. 단순히 이것만으로도 한국 흑십자회의 영향력이 떨어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적광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적광은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 기존 사회의 법과 질서를 혼란케 하는 적광은 매우 위험하니까.
문제는 적광을 어떻게 죽여야 하냐는 것이다. 뱀파이어 사냥의 전문이라 할 수 있는 흑십자회가 실패했다. 또한 경찰의 힘만으로 적광을 잡기에는 힘들다는 걸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그렇다고 적광 하나를 잡기 위해 군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군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적광 하나 때문에 군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굴욕이자 모욕이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고작해야 경찰을 움직이는 게 전부겠지.’
대한민국의 여론이 적광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광은 초능력을 가진 다크 히어로.
이게 요즘 국민들이 생각하는 적광의 이미지였다. 물론 적광을 비난하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경찰 특공대인 척했던 뱀파이어 헌터가 적광에게 당해 전멸한 것도 사실이니까. 허나 적광에 대한 젊은이들의 맹렬한 지지가 그들의 비난을 파묻어 버린다.
동시에 이번 할로윈 여객선 사건에서 경찰의 무능함이 부각되었다.
중국 인신매매단이 대놓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도 수사를 하기는커녕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점.
김춘석 성접대 등의 일로 경찰 고위직이 관계되어 있다는 점 등 차근차근 쌓아진 경찰에 대한 불신이 지금 한 번에 터져버린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흑십자회는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국 내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다.
‘……그들도 알고 있는 거지. 적광이 일반 뱀파이어 진조와 다르다는 것을.’
적광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어설프게 뱀파이어 헌터를 움직여봤자 적광에겐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은 남의 나라 일이라는 거지. 빌어먹을 놈들.’
적광은 한국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다른 나라로 가려는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외국의 흑십자회는 적광을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흑십자회 총본부에 연락해도 마찬가지다.’
돌아온 것은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말뿐이다.
‘적광이 언제까지나 계속 한국에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멍청한 것들.’
이문현은 산길을 걸어가면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지금 만나려는 사람은 그가 경외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 하더라도 그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산길의 끝에는 절이 있었다.
후단사(後端寺).
강원도 어느 산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절이다. 다만 이 절에는 스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10년 전에 타계했다. 현재 이 절에서 생활하고 있는 건 그 스님의 스승이자, 친우가 되는 남자다.
이문현은 한 차례 숨을 삼키며 후단사의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여긴 올 때 마다 꼭 다른 세계로 온 것 같군.’
후단사는 고요했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의 달빛만이 후단사의 내부를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아무도 없는 폐가 같다.
이문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집이 아닌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자가 있는 곳이다.
낡은 정자 위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검은색 도포를 입은 남자는 그저 조용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칼집에 들어 있는 환도가 놓여 있었다.
이문현은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사내가 앉아 있는 정자로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 어르신.”
백상기가 이문현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문현은 서둘러 고개를 숙여 그의 눈을 피했다.
이문현은 옛날부터 백상기의 눈을 볼 때마다 섬뜩함을 느끼곤 했다. 그의 눈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눈인 것 같았다.
“문현이구나. 오랜만이다. 얼굴이 늙었구나. 몇 년 만이지?”
“8년 만입니다. 백 어르신.”
“…음. 벌써 8년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도리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지경이구나.”
백상기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백상기.
300년을 살아온 인물.
생명의 구슬이라는 기물을 300년 전에 우연히 먹은 그는 늙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퇴마사 혹은 신선이라 불렸으며 조선에 있던 뱀파이어들을 보이는 대로 족족 사냥했었던 전설적인 뱀파이어 헌터다.
그러나 30년 전에 은퇴를 하고는 산골에 박혀서 살고 있다.
이문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전에 300년을 살아온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도움? 흡혈귀 사냥이라면 너희들이 잘해내고 있을 테니,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상관없지 않느냐.”
“……한국의 뱀파이어 헌터들은 전멸했습니다.”
“전멸? 그건 또 놀라운 소식이구나.”
백상기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정말로 놀라고 있는 건가. 이문현은 떠오르는 의문을 애써 지웠다.
“적광이라는 뱀파이어 진조입니다. 저희는 그놈 한 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니라 조정… 아니,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
“대한민국 정부와 흑십자회의 관계는 파토 났습니다. 외국의 흑십자회는 지원할 여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이제 어르신 밖에 없습니다.”
“……그 적광이란 진혈귀(眞血鬼) 놈이 보통이 아닌 건 확실한 모양이구나.”
“어르신께서 나서주시지 않는다면… 놈은 서울을… 아니, 한국의 밤을 지배할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놈을 사냥해야 합니다.”
“…….”
백상기가 밤하늘을 보며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적광은 어떤 놈이냐?”
“영상이 있습니다. 직접 봐주시고 판단 내려 주십시오.”
이문현이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틀어 그에게 건넸다. 적광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질리도록 본 영상들이다.
백상기는 어색한 손짓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백상기도 물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으나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마트폰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선물 받은 것일 뿐이고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다.
“호오.”
적광의 전투 영상을 본 백상기의 두 눈에 빛이 서렸다. 아까 전의 모든 것을 부질없게 쳐다보던 눈동자와는 달랐다. 사람 같은 눈이다.
“이놈, 이름이 적광이라고? 재밌는 놈이구나. 웃기지도 않는 광대 가면은 둘째 치고… 칼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가지고 있는 초능력도 기이합니다. 두 가지 이상의 초능력을 가진 최초의 진조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래?”
백상기가 대충 대답했다. 그는 적광의 전투 영상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른 영상은 없나?”
“있습니다.”
“보여 다오. 놈에게 흥미가 생겼다.”
이문현은 그가 원하는 대로 영상을 틀어주었다. 백상기가 흥미를 느끼는 건 이문현에겐 좋은 일이었다.
“지금 시대에 총이 아니라 칼을 쓴다라…. 한 번 칼을 나눠보고 싶구나.”
백상기는 이문현에게 부탁해 몇 번이나 적광의 전투 영상을 되돌려 봤다.
이윽고 백상기가 의문을 담아 이문현에게 물었다.
“이 놈, 진혈귀가 맞느냐?”
“네?”
“나는 지금껏 흡혈귀를 몇 천 마리나 베어왔다. 대부분이 흡혈귀의 뛰어난 신체 능력을 이용한 전투 방식을 선호하지. 그런데 이놈은 달라. 신체능력은 뛰어나지만 힘이 아니라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인간처럼 싸우는 구나.”
“그건… 놈의 취향이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 허나 말이다. 나는 적광이 쓰는 검술을 본적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비슷한 검술이라고 해야겠지.”
“놈이 쓰는 검술은 저희도 조사해봤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한국 흑십자회는 철저하게 적광을 조사했다. 적광의 광대 가면의 출처나, 옷의 출처, 그 검술의 출처까지 찾아내려고 애썼다.
어느 것 하나 성과가 없었다. 광대 가면은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그가 입은 옷의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검술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넘어 중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으나 아는 인물이 없었다.
“그렇겠지. 지금은 잊혀진 검술일지니. 문현아, 검계를 아느냐?”
“……조선시대의 무력집단이 아닙니까? 그 이면에는 흡혈귀 사냥꾼 집단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한국 흑십자회의 선배가 될 수 있겠군요.”
검계(劍契). 조선시대의 무력 집단이다. 기록을 보면 썩 좋은 집단은 아니었다.
“그래. 나도 한 때 검계에 속해 있었다. 그때 검계의 간부들 몇몇의 검술을 견식 할 기회가 있었지. 맥이 완전히 끊길 줄 알았거늘… 아직 남아 있었나.”
“…설마. 적광의 검술이 검계 쪽 입니까?”
백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같은 검술은 아니다. 아마도 발전을 계속해왔겠지.”
이어서 백상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검계의 살검이라…. 이거 참, 몇 십 년 만에 피가 끓는구나.”
“살검….”
“본래 우리의 검술은 전투와 호신, 이치와 심신의 단련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살검은 오로지 죽이기 위한 검술이다. 그 검술에 담긴 이치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함이지.”
“……어르신의 검술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내 성리검(性理劍)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검이다. 문현아. 서로 다른 검술은 부딪히기 전까지는 그 우열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싸운다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내 검술은… 내 노화가 멈춘 것처럼 어느 순간 멈춰버렸으니 말이다.”
이문현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흙바닥의 차가운 냉기가 무릎을 통해 느껴진다.
“도와주십시오. 어르신. 적광은 어르신이 아니면 막을 수 없습니다.”
“좋다.”
백상기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생각이상으로 깔끔한 답변에 이문현이 당황할 정도다.
“네가 이놈의 영상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거절하려고 했다. 허나, 놈의 검술을 보고 내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놈을 막을 수 없겠지. 후세를 위해… 아니, 솔직하게 말하마. 나의 마지막을 위해 놈을 죽일 것이다.”
“마지막, 이라니….”
“놈을 죽이고, 나 또한 죽을 것이다. 죽을 장소가 생겨서 기쁘구나.”
이문현과 백상기의 두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문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문현아. 불로는 축복이 아니더구나.”
•••
나는 그 동안 브로커인 강욱성을 조용히 감시했다. 코드: XTK 세계에서 구했던 몰래 카메라나 도청기까지 사용했다.
‘현대 기술로는 탐지하기 쉽지 않은 물건들이지.’
강욱성의 소속은 뱀파이어 조직인 칸트라다.
그리고 한국으로 생명의 꽃을 가져올 놈은 칸트라의 간부다.
연결점이 있으니 서로 연락이 오갈 것이다. 실제로 원작 드라마에서 칸트라의 간부는 강욱성과 만났다는 언급이 지나가듯 나온다.
나는 최근 강욱성과 꾸준히 만났다.
돈세탁과 전에 부탁했던 미술품 판매 대금을 받기 위해서, 라는 핑계를 대면서다. 진짜 목적은 강욱성을 감시하고, 그의 스마트폰을 해킹하기 위해서다.
‘하하. 빙고!’
노력 끝에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1월 21일.
칸트라의 간부인 도리스 지글러가 한국에 밀입국하는 날이다. 일본에서 배를 타고 부산 쪽으로 들어올 계획이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원작보다 빠르게 들어오는군.’
원작에선 12월이 지나서 한국에 들어왔다.
내가 원작의 내용을 믿지 않고 직접 강욱성을 감시한 것은 이미 내용이 원작과 뒤틀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뱀파이어 헌터…, 한국 흑십자회는 거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니까. 한국에 들어온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낄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