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68)
〈 68화 〉 068. 뱀파이어 형사
068. 뱀파이어 형사
서울의 어느 한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백상기는 의자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서울을 내려다봤다. 그는 거의 항상 세상 풍경을 본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세상 풍경을 보는 것이 그의 버릇이자 습관이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뒤에서 이문현이 물어왔다. 이문현은 스스로 나서서 백상기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배려 혹은 감시. 어느 쪽이든 백상기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음식도 뛰어나고, 잠자리도 따스했다. 불편할 리가 있겠느냐.”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래. 특히 이 풍경이 마음에 드는구나. 잠시 안 온 사이에 서울은 눈부시도록 발전했어. 내 기억에는 아직도 300년 전의 한양이 생생한데 말이다.”
백상기가 턱을 쓰다듬었다. 옛날을 떠올릴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다.
턱수염이 없다는 것에 익숙하면서도 아쉬움을 느꼈다.
노화는 멈추어도 털이나 손톱 같은 건 계속해서 자랐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턱수염을 길렀었다. 턱수염을 자른 것은 한국의 변화를 실감해서다. 이제는 이 한반도에서 수염을 기르는 인물은 보기 드물었다.
“적광은 찾았느냐?”
“……죄송합니다. 찾지 못했습니다.”
“탓하려는 의도는 없다. 놈은 투명해지기까지 하는 놈이 아니더냐.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지. 어차피 내겐 시간은 의미 없으니. 적광이 나타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마.”
“전력을 다해 놈을 찾겠습니다.”
백상기는 그저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이문현의 두 눈에는 증오와 분노로 타오르고 있다. 천천히 하라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공간은 적막함이 돌았다. 백상기는 여전히 차를 홀짝이며 창밖을 쳐다본다.
어색함을 느낀 것은 이문현이다. 그는 잠시 눈알을 굴렸다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오늘 아침에 부산에서 외국의 흡혈귀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부산이라.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예. 적광을 찾는 한편, 최소한의 감시체계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지. ……음? 외국의 흡혈귀라고 했느냐?”
“예. 그 신분은 조사 중입니다. 조사원이 현재 조용히 뒤를 밟고 있습니다. 전문가인 만큼 들킬 일은 없을 겁니다.”
백상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마 놈은 칸트라의 간부일 테지. 그렇구나. 벌써 300년인가. 그 시기로구나.”
“예?”
“생명의 구슬에 대해 들어봤느냐?”
그 질문에 이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그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선대 한국 흑십자회 본부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불로의 열매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생명의 구슬을 섭취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생명의 구슬을 먹고 흡혈귀에 필적하는 신체 능력을 얻었으며 늙지 않게 되었다. 너는 생명의 구슬에 대해 어디까지 아느냐?”
“사람이 먹으면 불로와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얻고, 흡혈귀가 먹으면 인간으로 돌아가고, 진조가 먹으면 초능력이 강해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다 알고 있구나. 그럼 생명의 구슬을 중복으로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이문현이 솔직하게 말했다. 생명의 구슬은 하나도 얻기 힘든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중복으로 먹는다고? 들어본 적도 없다.
“인간에겐 두 번째부터 효과가 없다. 경험자인 내 말이니 확실한 정보다. 흡혈귀는 인간이 되었을 테니 초인이 될 테지. 문제는 진혈귀 놈들이다. 진혈귀는 생명의 구슬을 먹을 때마다 능력이 강해진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 말은 생명의 구슬만 있다면 무한정으로 강해진다는….”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다만 세계에 남아 있는 생명의 씨앗이 별로 없을 테지.”
“생명의 씨앗은 무엇입니까?”
“옛날에 존재했던 어느 진혈귀가 초능력으로 만든 물건이다. 생명의 씨앗을 키우면 생명의 구슬을 맺는 생명의 꽃이 되지.”
이문현의 눈이 커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백상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300년 전에 진혈귀 셋이 찾아와 생명의 꽃으로 한반도의 정기를 흡수해 생명의 구슬을 맺었지. 그때 생명의 꽃 하나에 맺힌 생명의 구슬은 총 4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혈귀 놈들에게 생명의 구슬은 너무 위험하구나. 문현아. 설악산으로 가야겠다.”
“…네. 바로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
나는 문지혁이 생명의 구슬을 얻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내가 직접 나설 테니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원작을 생각하면 아예 무시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생명의 구슬은 1개다. 문지혁이 먼저 그걸 얻어 대뜸 먹는다면 일이 망쳐질 수도 있었다.
‘문지혁을 완벽히 제어할 필요가 있어. 그러기 위해선…….’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금의 문지혁에게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존재했다.
테이커 – 안녕하세요. 양정민 씨.
나는 조용히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평일이다 양정민은 일하고 있을 거다.
양정민 – 누구시죠?
테이커 – 테이커입니다. 문 형사의 동료라 할 수 있죠.
양정민 – 지혁 씨의 정보원이시군요.
양정민은 나를 알고 있었다. 좀 놀랐다. 문지혁이 말했나? 아니, 그런 놈이 아니다. 양정민의 성격을 생각하면 문지혁의 뒷조사를 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문지혁 이 새끼…. 폰 관리 똑바로 안하나?’
양정민 – 제게 연락을 주시고…. 무슨 일인가요?
테이커 – 문 형사가 위험합니다.
양정민 – 지금 지혁 씨랑 같이 있나요?!
테이커 – 문 형사는 아직 무사합니다. 그러니 일단 진정하시고요. 냉정함을 유지하고 제 메시지를 봐주십시오.
양정민 – …알았어요.
테이커 – 문 형사는 이번에 인간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나는 양정민에게 생명의 구슬과 도리스를 비롯한 뱀파이어에 대해서도 말했다.
양정민 – 지혁 씨가 그런 일을 하려고….
테이커 – 문 형사는 집착 수준으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양정민 씨가 그 이유겠죠.
양정민 – …제가 지혁 씨를 말려야 하나요?
양정민 – 역시 말리는 편이.
“아니. 그건 안 되지. 안 돼.”
놀란 내가 서둘러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테이커 – 문 형사는 양정민 씨가 말려도 결국은 설악산으로 향할 겁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양정민 – 네. 지혁 씨는 그런 사람이죠. 그럼 어떡해야하죠?
테이커 – 양정민 씨가 문 형사를 좀 도와주십시오. 저도 설악산으로 가서 문 형사를 도울 겁니다. 문형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저와 당신뿐입니다.
원작 드라마에선 문지혁을 돕는 건 같은 형사과의 동료들이다. 그러나 지금 형사과 동료들은 원작처럼 친밀하지도 않으며, 신뢰도 없는 상태다.
양정민 –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
양정민 – 지혁 씨에게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다행히 양정민은 아주 멍청한 여자가 아니었다. 양정민이 문지혁에게 연락했다면 내가 곤란해졌을 거다.
테이커 –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설악산에선 저랑 같이 움직이죠. 그 편이 안전합니다.
양정민 – 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지혁 씨에게 당신 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테이커 – 친구라 하긴 좀 그런 관계긴 한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문 형사에게 정들었나봅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친구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뭐, 가지고 노는 게 재밌긴 했어.’
•••
설악산 아래.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4명의 남자가 우루루 내렸다.
“미스터 지글러.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욱성이 도리스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괜찮네. 미스터 강. 보스가 내게 맡긴 이 일은 아주 중요한 임무라네.”
“혹시 그 일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부드럽던 도리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강욱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잘못 생각했었다. 그는 도리스의 신사적인 성격이라면 이 정도 물음은 괜찮을 줄 알았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었습니다.”
“아니. 괜찮네. 나도 좀 예민하게 반응했어. 미안하군.”
“아닙니다.”
“미스터 강. 이 임무는 반드시 비밀을 유지해야 하네. 자네들은 모두 오늘 있었던 일은 잊도록 하게. 자네들의 임무는 여기까지야. 원래 임무로 돌아가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헌데 오늘 낮에 미행이 있었습니다. 흑십자회가 당신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네. 그러나 지금 한국 흑십자회는 아무 힘도 못 쓸 거야. 운이 좋았지. 그 적광이라는 자를 영입하고 싶군. 그에 대한 정보는 없나?”
“없습니다. 적광은 철저하게 움직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아쉽군. 그럼 이만 가보겠네. 돌아갈 때는 혼자서 돌아가겠네.”
“예. 조심하십시오.”
“자네도 조심히 돌아가게나.”
도리스가 움직였다. 가볍게 땅을 박찼는데 2M 가까이 뛰어올라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뱀파이어 진조의 신체 능력을 전력을 다해 발휘했다.
도리스는 강욱성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게 간부의 실력…. 진조 중에서도 최상급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군.’
강욱성이 소리 없이 감탄했다. 간부랑 대화를 나누거나, 만난 적은 몇 번 있었다. 허나 그 능력의 편린을 엿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의 일은 끝났다. 돌아가자.”
강욱성이 다시 차에 타며 말했다.
•••
‘이쪽으로 가야겠군.’
설악산을 달리며 올라가고 있는 도리스는 가끔씩 품에서 준비한 지도를 꺼내 방향을 확인했다.
도리스의 임무는 생명의 꽃을 정해진 장소에 심어 한반도의 정기를 흡수해 생명의 꽃을 맺게 하는 것이다. 생명의 꽃에는 최대 4개의 열매가 맺히고, 지금 시기의 한반도 정기라면 4개 모두를 맺게 할 수 있다.
‘생명의 구슬. 아…. 정말 기대되는구나.’
도리스는 생명의 구슬 4개 모두를 섭취할 생각이다. 이미 보스의 허락은 떨어졌다. 보스는 자신의 순간이동 능력을 키울 작정인 것이다.
‘생명의 구슬을 먹으면 내 수명 또한 늘어나겠지. 아! 이 얼마나 기쁜 날인가!’
보스에게 들은 말로는 생명의 구슬 하나를 먹으면 진조의 수명 15년이 늘어난다고 한다. 4개를 전부 먹으면 무려 60년이나 늘어나는 것이다.
원래 도리스는 12월에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한국의 뱀파이어 헌터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천천히 한국 흑십자회의 눈치를 보며 느릿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뱀파이어에게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뱀파이어 헌터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행동이 대담해졌다.
‘여기다.’
도리스는 1시간을 넘게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에 나무가 없어 달이 잘 보이는 공터였다.
서류 가방을 열어 생명의 꽃을 꺼냈다. 겉으로 보기엔 20cm의 작은 해바라기 꽃처럼 생겼다. 도리스는 생명의 꽃을 공터 바닥에 조심히 심었다.
‘…후. 긴장되는구나.’
제대로 심은 생명의 꽃에서 은은한 빛이 흘려 나왔다. 정기를 흡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행이다. 제대로 심었다.’
그는 생명의 꽃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꽃은 해바라기를 닮았는데 역설적이게도 꽃에 서린 은은한 빛은 달빛과 흡사했다.
‘앞으로 2시간! 내 생에 가장 긴 2시간이 되겠어.’
생명의 꽃이 한반도의 정기를 제대로 흡수한다면 30분마다 생명의 구슬을 맺을 것이다. 생명의 구슬 4개가 맺히면 생명의 꽃은 시들어버린다. 그 이전에 한 번 심었던 생명의 꽃을 뽑아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혹은 짐승이 다가와 해치지 않을지 걱정하며 생명의 꽃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도리스가 멍하니 생명의 꽃을 쳐다봤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엄청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30분이 지났다.
생명의 꽃의 중심에 작은 생명의 구슬이 맺혔다.
생명의 구슬은 무지개 빛을 은은하게 흘리고 있었다. 열매라기보다는 보석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도리스는 무심코 오팔을 떠올렸다.
‘…이런 실수를. 오팔 따위보다 생명의 구슬이 몇 배나 아름답거늘….’
도리스가 꼴깍 침을 삼켰다. 당장 저 구슬을 입안에 넣고 싶었다. 보스의 말로는 입안에 넣는 순간 녹아내려 몸속에 흡수된다고 한다.
‘참아야 한다.’
지금 생명의 구슬을 떼어내면 생명의 꽃은 그대로 시들게 된다. 조금만 참으면 생명의 구슬 3개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더 큰 이득을 얻을 기회를 놓칠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부스럭!
인기척이 들렸다. 멍하니 생명의 꽃을 보고 있던 도리스가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누구냐!”
탕!
돌아온 대답은 은탄이었다. 깜짝 놀란 도리스가 무심코 순간이동을 사용해 근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도리스는 나무를 끼고 은탄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리볼버를 손에 쥔 남자가 있었다.
문지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