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69)
〈 69화 〉 069. 뱀파이어 형사
069. 뱀파이어 형사
‘…죽이지 못 했다.’
문지혁이 이를 악물었다. 사실 리볼버로 도리스를 저격하려고 했다. 확실하게 뒷머리를 겨누어 죽이려다가 도리어 실수로 바닥의 낙엽을 밟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쳤어.’
도리스가 순간이동을 사용해 시야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멀리 이동하지 않아 바로 도리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문지혁은 리볼버를 나무 뒤에 있는 도리스에게 겨누었다.
“뱀파이어 헌터…? 아니, 그 반응속도는 뱀파이어에 가깝군.”
도리스는 단순히 문지혁의 반응속도만으로 인간인지 뱀파이어인지 판단한 것이다.
‘칸트라의 간부라더니… 보통이 아니군.’
문지혁은 몸을 긴장시키며 왼손에 나이프를 들었다. 이전에 테이커에게 받은 은도금을 한 나이프다.
“뱀파이어라면 왜 나를 방해하는 것이지? 나는 도리스 지글러. 칸트라의 14번째 진혈이다. 너는 누구냐?”
“네게 이름을 댈 이유는 없다. 생명의 구슬은 내가 가져가겠다.”
문지혁은 각을 봤다. 도리스는 여기서 죽이지 못하더라도 생명의 구슬은 가져가야 한다.
“주제 넘는 탐욕을 부리는 구나. 이름 모를 뱀파이어여.”
도리스가 순간이동을 사용해 문지혁의 뒤를 잡았다. 문지혁이 빠르게 반응해 뒤를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으나, 도리스는 가볍게 피하고는 문지혁의 양 팔목을 붙잡아 나무에 밀어붙였다.
“크윽.”
“이 힘…. 진조가 아니군. …생명의 구슬에 대해선 어떻게 알았지? 너의 뒤에 누가 있는….”
탕!
문지혁의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손목이 부서지도록 돌려 억지로 각을 만들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은탄이 도리스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카아아아…!”
도리스가 순간이동을 사용해 문지혁으로부터 물러났다. 도리스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은탄은 뱀파이어에게 너무 치명적이다. 그저 스친 것뿐인데도 은독(銀毒)이 육체를 좀먹는다. 이 정도면 최소 10분 정도는 왼쪽 어깨를 움직일 수 없다.
‘저 놈은 누구지? 정보가 어디서 새나간 것이지? 강욱성이 배신했나?’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아침에 자신을 미행한 것은 뱀파이어 헌터 쪽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뱀파이어 헌터 쪽이 아니다? 그럼 누구지?
‘고작 일개 뱀파이어가 생명의 구슬에 대한 정보를…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배신자든, 새로운 조직이든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조직. 칸트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도리스의 표정은 곧 일그러졌다. 놈이 생명의 꽃을 향해 무작정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아, 안 돼!”
도리스가 황급히 순간이동을 사용해 문지혁의 앞으로 나타났다. 문지혁의 복부를 발로 차 저 멀리 날려버린다.
문지혁이 뒤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며 바닥을 굴렸다. 도리스는 진조. 초능력은 둘째 치고 신체능력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너 또한 뱀파이어니 팔, 다리가 없더라도 죽지 않겠지. 생명의 꽃을 회수한 뒤에 천천히 정보를 캐내주마!”
“음. 그 젊은이의 배경이 궁금하긴 하군.”
“누구냐!”
도리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그는 낙엽을 밟으면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도포를 몸에 걸친 남자였다.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다.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
“……백상기?”
그를 본 도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를 알고 있나?”
“……보스에게 들었지. 한반도에는 괴물같은 뱀파이어 슬레이어가 존재한다고. 다만 보스는 세월에 못 이겨 자살했을 거라 말했었다. 그런데… 아직 살아 있었나.”
“곧 죽을 몸이지.”
백상기는 그에게 다가갔다. 도리스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백상기에 투척했다. 진조의 뛰어난 힘이 서린 나이프다.
백상기의 허리춤에서 칼이 뽑아져 나와 나이프를 가볍게 쳐냈다. 백상기가 달려드려 하자 도리스가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백상기는 도리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뒤쪽의 문지혁에게 말했다.
“괜찮나, 젊은이?”
문지혁은 나무에 기대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도리스의 발차기 한 방으로 온몸이 쑤셨다. 인간이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문지혁이 정중히 물었다. 아까 도리스가 뱀파이어 슬레이어라 칭했던 남자.
“백상기라고 하네. 묻고 싶은 게 많네만… 전부 묻어 두도록 하고 딱 하나만 묻지. 그대는 생명의 구슬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나?”
“……인간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만났구나. 그대의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
“문지혁이라 합니다.”
“좋은 이름이구나. 그대는 오늘 인간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보고 있거라.”
백상기가 움직였다. 느긋하게 걷던 그가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다. 도리스는 입술을 깨물고 생명의 꽃을 힐끗 쳐다봤다.
‘2개째는 아직 맺히지도 못했다.’
순간이동을 이용해 생명의 구슬을 가지고 도망칠 수 있다. 그의 능력은 도망치는 것에서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그러나 고작 1개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이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못해도 2개는 가져가야 한다.
안전과 탐욕.
도리스는 탐욕을 선택했다.
환도와 나이프의 칼날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반복적으로 쇳소리가 울리며 주황빛의 불똥이 튄다.
신체능력의 우위는 도리스에게 있다.
‘그런데 왜 내가 밀리고 있는 거냐?!’
전투 경험이 차원이 달랐다.
도리스가 힘과 속도로 밀어붙인다 싶으면 백상기의 칼이 절묘하게 움직여 힘을 흘려낸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칼이 도리스의 몸을 벤다. 서둘러 대처했기에 깊게 베이진 않았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도리스는 백상기의 칼이 은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저 칼이 은도금이라도 되어 있었다면 승산은 진즉에도 없었다.
“왼쪽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구나.”
“당신같은 괴물이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생명의 꽃이 탐났나?”
“생명의 구슬에는 관심 없다만, 너희 진혈귀에게 생명의 구슬이 넘어가는 건 인간으로서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뱀파이어보다 더 괴물같은 놈.”
“예전부터 들었던 말이라 별 감흥이 없구나.”
도리스가 나이프를 휘두른 뒤에 곧장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휘두른 상태로 뒤에 나타나기에 최적의 기습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도 칼이 막혔다.
“말도 안 되는, 어떻게….”
“진혈귀. 네 초능력은 아까 보아서 알고 있다. 알고 있다면 대비할 수 있고, 대비 할 수 있다면 막는 건 일도 아니지.”
개소리다. 이건 알아도 못 막는 일격이다. 백상기가 도리스의 공격을 막은 것은 그 몸에 축적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경험 때문이다.
그때. 문지혁이 움직였다. 생명의 꽃을 향해 조용히 접근하던 그가 느닷없이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이!”
도리스가 문지혁을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나를 두고 한 눈을 팔다니. 여유가 넘치는구나.”
백상기의 환도가 도리스의 왼팔을 갈랐다. 왼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도리스는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지금 왼팔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지혁의 위에 나타난 그가 오른팔로 문지혁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내려찍었다.
“죽어라! 제 주제도 모르는 것!”
도리스의 오른 주먹이 터트리기 위해 문지혁의 머리에 떨어지려는 찰나, 백상기가 뛰어와 칼을 휘둘렀다. 도리스는 황급히 바닥을 구르며 물러났다.
“백상기!”
“나를 무시해도 될 정도로, 내가 그리 우습게 보이더냐, 진혈귀.”
문지혁은 바닥에 손바닥을 짚고 머리를 일으켰다. 피부가 찢어지고 코가 함몰되어 엉망인 얼굴이었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상체를 일으켰다.
열 걸음.
고작 열 걸음 앞에 생명의 꽃이 있었다.
“그래, 젊은이. 그 의지다. 가서 생명의 구슬을 취하거라.”
“네놈! 멈춰라! 생명의 꽃은 최대 4개의 생명의 구슬이 맺힌다! 그걸 모르는 거냐?!”
도리스가 고함쳤다.
백상기는 혀를 찼다. 가서 그 입을 다물게 하고 싶으나, 문지혁의 근처에서 벗어나면 도리스가 순간이동으로 문지혁을 죽이려 들게 분명하다.
“……4개?”
문지혁이 멈칫했다.
생명의 구슬의 효과는 들어서 알고 있다.
4개면 자신이 2개를 먹어도 그 절반이 남는다.
“늙은이로서 충고하지. 탐욕은 화를 부를 뿐이다.”
백상기가 말했다.
“……저는 인간이 될 겁니다.”
문지혁이 탐욕을 뿌리치며 말했고, 백상기가 씨익 웃었다.
“이 어리석은 놈이…!”
도리스가 분통을 터트리며 하나 남은 오른손에 나이프를 쥐고 백상기의 눈치를 봤다.
문지혁은 비틀거리면서도 앞을 향해 걸었다. 점점 생명의 꽃에 가까워졌다. 열 걸음의 거리는 다섯 걸음의 거리가 되었고, 다섯 걸음은 곧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가 되었다.
“멈춰! 문 형사!”
익숙한 목소리. 테이커다.
문지혁은 약간의 반가움을 느끼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들렸다.
“……!”
거기엔 왼손으로 양정민의 입을 틀어막고, 붉은색의 칼날을 그녀의 목에 대고 있는 테이커, 성유진이 있었다.
“테이커…?!”
문지혁이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만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정보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왜 테이커가 양정민과 함께 있는 거지? 거기다가 들고 있는 저 붉은 칼은.
“……그 칼. 네놈이 적광이었느냐?”
성유진은 백상기를 쳐다봤다.
이윽고 성유진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가 적광이야.”
문지혁에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
나는 원작 드라마를 통해 도리스가 설악산 어디에 생명의 꽃을 심을지 알고 있었다.
사흘 전에 미리 답사까지 해서 그 위치를 확인해두었다. 그것도 모자라 근처 돌멩이 아래에 도청기까지 설치해두었다.
나는 내 옆의 양정민을 쳐다봤다. 양정민은 조퇴를 하고 온지라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등산을 하기엔 불편해 보이는 옷이다.
“양정민 씨. 이쪽입니다.”
왼쪽 귀에 낀 무선 이어폰으로 도청기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양정민과 함께 움직였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을 맞추는 거다.
문지혁이 도리스와 싸울 때 생명의 구슬을 슬쩍한다. 그러다 변수가 발생하면 양정민을 인질로 삼는다. 변수가 없으면? 예정대로 생명의 구슬을 얻은 뒤, 문지혁을 죽이고 양정민을 범하면 된다.
그런데 산을 올라가는 도중에 변수가 발생했다. 이건 진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뭐야. 저 새끼가 여긴 왜 있어.’
조용하면서 신속하게 산을 타고 올라가는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 얼굴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입고 있는 검은색 도포로 그 정체를 유추했다.
백상기.
원작 드라마에서 스쳐지나가듯이 나오는 남자. 영상 길이로 따지면 1분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300년 전에 생명의 구슬을 먹은 설정이었지.’
떠도는 소문으로는 원래는 백상기의 비중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상기 역을 맡은 남자 아이돌이 연기를 더럽게 못해서 비중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 연기를 못하긴 했지.’
한반도의 전설적인 뱀파이어 헌터라고 했던가. 솔직히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워낙 비중이 적었고, 감독이나 작가 인터뷰에도 백상기에 대한 내용은 없었으니까.
‘……시발 뭔가 꼬였나?’
“테이커 씨?”
“아, 양정민 씨.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네요. 빨리 가죠.”
도청기를 통해 전투 소리가 들렸다. 생각대로 문지혁과 도리스가 싸우고 있다. 나선다면 지금이 최적이다. 그러나 나는 나서지 못했다. 근처에 백상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테이커 씨. 갑자기 멈춰서 뭐해요?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어요. 지금 지혁 씨가… 읍읍?!”
왼손으로 입을 막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화련비도의 칼날을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댔다.
“죽기 싫으면 조용히 해.”
“……!”
양정민이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자신의 목에 대고 있는 붉은색 칼날을 보고 내가 적광임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도청기의 소리를 집중하면서 양정민의 입을 막고 조용히 전투 지역으로 다가간다.
“네놈! 멈춰라! 생명의 꽃은 최대 4개의 생명의 구슬이 맺힌다! 그걸 모르는 거냐?!”
도리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하….”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원작 드라마에선 생명의 구슬이 1개 맺혔을 때 문지혁이 손에 넣는다.
‘그런 설정이 존재했다고? 시발. 드라마 감독이나 작가는 왜 그걸 안 밝힌 거야?’
제작자가 밝히지 않은 설정. 그건 내가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틈이었다.
‘4개! 생명의 구슬이 4개!’
저 멀리서 문지혁이 아직 1개 밖에 맺히지 않은 생명의 구슬을 따려는 게 보인다.
‘저 멍청한 새끼가!’
내가 앞으로 나섰다. 나설 수밖에 없었다.
“멈춰! 문 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