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83)
〈 83화 〉 08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08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나는 플룬 기사단 훈련장 정면 입구에 섰다.
입구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던 젊은 스콰이어 한 명이 나를 보더니 후다닥 달려왔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보았던 버릇없던 스콰이어다.
“유진 공자님! 오셨습니까!”
스콰이어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우렁차게 인사했다. 이전의 건방진 태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엠비스 경을 만나러 왔다. 안내해라.”
그때와 똑같은 대사를 해줬다.
스콰이어의 허리는 더더욱 숙여졌다.
“알겠습니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렉시의 강간미수 사건으로부터 2주가 지났다. 나는 그동안 플룬 기사단을 꾸준히 찾아왔다. 기사단장인 헨트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지지 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거의 넘어 왔어. 설마 이렇게 빠르게 효과를 보일 줄은 몰랐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이 세계에는 오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TV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고 문학 쪽도 협소하다.
평민들은 먹고 살기 바쁘니 문학이란 것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다. 설령 관심을 가지더라도 금방 질리고 만다. 이 세계의 책들이란 대부분 지식을 위한 것들이지 재미를 위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대표적인 유희거리라고 하면 연극이나 서커스 정도다.
‘이참에 소설책이나 팔아먹을까…. 아니, 그건 너무 귀찮아.’
책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비싼 종이 값을 내고 책을 구매할 평민들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무엇보다 글자를 이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손이 너무 가는 것에 비해 얻을 이익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평민들 중에서 글을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다.
“저기… 유진 공자님.”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던 스콰이어가 말을 걸어왔다.
“응?”
“혹시 지금 담배를 살 수 있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플룬 기사단 전체가 담배를 피다보니 스콰이어도 그 담배 맛을 알아버렸나 보다.
“당연하지. 가격은 알고 있겠지?”
자기가 사겠다는데 판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헤헤. 물론이지요.”
스콰이어는 주머니에서 흑은화 1개를 꺼냈다. 10만 네르짜리다.
“두 갑을 한 번에 산다고?”
“안 됩니까?”
“아니. 안 되기는. 라이터는 필요 없나?”
“괘, 괜찮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불을 구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자. 여기 있다.”
“감사합니다!”
“근데 네 한 달 급료가 얼마지?”
“100만 네르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평민들에 비하면 확실히 수익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스콰이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적은 것도 아니다. 스콰이어는 기사단의 종자로서 훈련장 숙소에서 활동하니 굳이 생활비를 쓸 필요가 없다.
‘스콰이어에서 정식 기사가 되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담배를 품에 넣고 좋아하는 스콰이어를 쳐다봤다. 이놈도 미래에는 내 주요 고객이 될 것이다.
•••
“유진 공자님! 오셨습니까!”
헨트가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의 왼쪽 손목에 걸린 금속 시계가 번쩍이고 있다. 내가 선물해준 물건이다.
나는 그동안 헨트를 꾸준히 찾으며 선물이란 이름의 뇌물을 건넸다. 헨트에게 들어간 돈만해도 거의 300만 원은 될 것이다.
“오늘도 왔다네. 민폐인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닙니다. 공자님. 자, 자, 앉으시지요.”
헨트가 용병 출신이라 다행이었다. 그놈의 망할 기사도 정신이 없고, 속물적인지라 선물의 효과가 뛰어났다.
“엠비스 경. 점심은 먹었나?”
“먹지 않았습니다. 오늘 식단이 영 별로더군요.”
아마도 내가 오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점심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제도 이 시간에 찾아왔으니까.
“그럼 같이 먹지 않겠나? 나도 점심을 먹지 못했네.”
“유진 공자님이 제안해주시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합니까.”
헨트가 꿀꺽. 하고 군침을 삼켰다.
내가 가져오는 것들은 대부분 현대의 음식들이다. 맛은 자극적이면서도 끝내준다. 대부분 맛이 밋밋한 이 시대의 음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늘은 치킨이네. 저번에 보니까 아주 잘 먹더군. 물론 맥주도 가져왔어. 독일 맥주지.”
“치킨 맥주! 치맥이군요!”
헨트의 두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린다. 이해한다. 이 조합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니까.
“크윽. 이 황금빛의 바삭바삭한 튀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헨트는 프라이드 치킨을 뜯어먹으면서 물었다.
“이름 그대로 기름에 튀긴 닭이네만?”
“사실. 저번에 먹었을 때 도저히 이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집의 요리사를 치킨을 만들어달라고 닦달했습니다.”
“호오. 성공했나?”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물었다. 성인식은 이미 치렀기에 맥주를 마시더라도 누가 간섭하지 않는다.
“실패했습니다. 너무 느끼해지더군요. 비싼 기름과 닭만 버린 꼴이었습니다. 제게만 비법을 가르쳐주시면 안 됩니까?”
“음. 코리아 시크릿 치킨 레시피는 아직 풀 생각이 없네. 미안하네만 경이 좀 참아주게.”
“후우.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그 코리아 시크릿 치킨 레시피가 공개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이 양념 치킨의 맛은 어떤가?”
“끝내줍니다. 맛이 필요 없습니다. 말이. 살짝 매콤하면서도 달달하니…. 저번에 집에 가져가서 먹으려다가 렉시에게 전부 뺏길 뻔했습니다.”
“간장 치킨은?”
“짭짤한 맛이 일품이지요. 양념 치킨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취향은 프라이드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니…. 아주 제 입맛에 최적입니다. 무엇보다 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만약에 내가 도시 내에 치킨 가게를 차리면 어떨 것 같나?”
“정말 입니까?!”
헨트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냥 한 번 물어보는 것뿐이야. 지금으로선 계획도 뭣도 없네.”
“…이거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전 물론 환영합니다. 이 정도 수준의 치킨을 판매하는 가게 생긴다면, 아마 매일 찾아갈지도 모르겠군요.”
“그런가.”
확실히 치킨은 패배할 수 없는 사업 아이템이다. 현실에서야 워낙 경쟁업체가 많아서 그렇지. 이 세계엔 경쟁업체고 뭐고 없다. 헨트의 반응을 보자면 치킨의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사먹을 것이다.
‘나도 사업을 해야 하지. 언제까지나 내가 현실에서 가져올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
이 세계에도 닭은 흔한 가축이다. 다만 우리가 먹는 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맛이 더 없다고 해야 하나.
‘닭 문제는 쉬워. 유정란을 가져와서 부화시키면 돼.’
희대의 난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이 세계에선 알이 먼저다.
‘치킨 레시피야 뭐, 대충 인터넷에 널려있고…. 음. 사람만 제대로 교육시키면 될 것 같은데?’
가능하다고 해서 당장 할 생각은 없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담배보다 더 큰 이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식사가 끝났다. 대부분 헨트가 다 먹었다. 몸을 굴리는 기사라서 그런지 닭 3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엠비스 경.”
내가 진중한 어조로 그를 불렸다.
“예. 유진 공자님. 말씀하십시오.”
“내게 플룬 기사단의 검술을 알려줄 수 있겠나?”
“아. 유진 공자님도 검술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지금의 가녀린 내 몸을 보면 검술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래보여도 프루커스 백작가의 일원이네.”
“어이쿠. 제가 실언을 내뱉었습니다.”
“괜찮네.”
나는 진우성의 말을 떠올렸다.
잠시 영천류를 내려놓고 다른 검술을 익혀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그 말.
‘그리고 이 세계의 검술에 대해 흥미가 있고. 알아두면 나쁘지 않겠지.’
다다익선.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검술도 여러 가지 익혀두면 언젠간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공자님의 심장병도 최근에 호전되었다고 하니…, 잠깐이면 괜찮겠지요.”
“음. 요즘 정말 건강하다네. 가끔 발작하긴 하는데… 뭐, 그 주기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지.”
구라였다. 발작은 그냥 가끔씩 하는 연기다. 그렇게 주위에 알려줘야 내 병약함을 이용할 수 있다.
“……이거. 눈을 뗄 수가 없겠군요. 제가 직접 알려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게. 요즘 정말로 몸 상태가 괜찮으니까.”
“공자님. 마나 호흡법은 익히셨습니까?”
마나 호흡법. 이름 그대로 마나를 몸속에 끌어당기는 호흡법이다. 이걸 계속 반복한다면 마나를 느끼고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일반 평민은 손에 넣을 수 없는 최상급의 비법이다.
나야 대영주의 아들이니 마나 호흡법에 관해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시도는 해봤지만 영 효과가 없는 것 같더군.”
내가 우울함을 담아 말했다. 제대로 마나 호흡법을 했다. 집사장 하센트까지 불려서 확인을 받았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마나 호흡법을 하는 거랑 그냥 숨쉬는 거랑 차이가 없었다.
“마나 호흡법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당장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가.”
힘없이 대꾸했다. 마나 호흡법만 생각하면 기분이 내려앉는다. 나는 아마도 마나 불감증일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봐도 마나 각성 포션이 절실하다.
“마나 호흡법을 꾸준히 하다보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헨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 쪽으로 향했다. 벽에는 그의 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총 13개.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헨트는 얼마 전에 내가 선물해줬던 검을 들었다.
“그 검. 내가 경에게 선물했던 검이군.”
“예. 요즘 이 검을 볼 때마다 흐뭇해집니다. 명검은 아니지만 아주 뛰어난 검입니다. 이런 검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대충 200만 원짜리 검이다.
헌터샵에서 판매하는 양산품이다. 현대의 기술로 만들어졌기에 이 세계의 웬만한 검들 보다 뛰어나다. 특히나 외견이 심플하면서도 멋있었다.
“나도 우연히 구한거네. 경에게 잘 어울리는군.”
“하하. 요즘 이 검을 관리하는 게 제 일상입니다. 아주 멋진 검입니다.”
기사들이 다 그렇듯이 헨트 또한 검이라면 환장을 했다.
“그럼 유진 공자님. 훈련장으로 가시죠.”
“그러지.”
나는 헨트를 따라 걸었다.
‘…여기저기서 담배냄새가 나는군.’
이게 꽤 심할 정도다. 플룬 기사단 전체가 담배를 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2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골초가 될지 몰랐다.
나는 힐끗 창문 밖을 쳐다봤다. 기사 6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 더 돌리자 창가에 몸을 기대며 담배를 피는 기사가 보였다.
‘내가 그렸던 장면이긴 한데… 뭔 시발. 기사란 것들이 저렇게 절제력이 없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담배의 인기가 너무 좋았다.
“엠비스 경. 담배의 인기는 어느 정도요?”
“없어서 못 필 정도입니다. 요즘은 휴식 시간이면 죄다 담배를 피더군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미관상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군. 따로 흡연실을 만드는 게 어떻겠나?”
“저도 그 부분이 걱정되긴 했습니다. 적당한 곳에 흡연실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
나는 헨트에게서 거의 1시간 정도 프루커스 기초 검술을 배웠다. 내 손에 든 것은 목검이다.
프루커스 소속의 기사나 병사라면 누구나가 할 줄 아는 기초 검술이라고 한다.
“자세는 좋습니다만, 매끄럽지 못합니다.”
단순히 숙련도 문제였다.
프루커스 기초 검술은 육체 단련에 가까웠다. 영천류처럼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꽤 힘들군.”
“기초 훈련의 목적은 검을 휘두르는 데 필요한 근육을 기르는 것에 있습니다. 유진 공자님께서 검술을 계속하시겠다면 매일 3시간 이상은 꾸준히 기초 검술을 수련하셔야 합니다.”
“매일 3시간…. 내 병약한 몸으로는 힘들 것 같군.”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시니 어쩔 수 없지요.”
나는 프루커스 가문의 검술에는 본격적인 흥미는 없었다. 내겐 영천류가 있었으니까.
“젠트 형님과 카일 형님은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던데. 내 재능은 어떤가?”
프루커스가의 장남과 차남은 검의 천재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장남인 젠트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지만, 후에 카일이 실력을 드러내면 평가가 바뀐다.
헨트는 내 질문에 어색하게 웃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유진 공자님의 미래가 달린 일이 될 수도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원하는 바네.”
그 뒷말이 예상되었다.
“유진 공자님에겐 재능이 없으십니다. 마나 호흡법을 계속 익히신다면… 기사는 될 수 있겠지만…. 검술의 재능은 일반 병사 수준입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정예병.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꽤 신랄한 말이었다.
“그런가.”
“……화나시지 않으십니까?”
“내게 없는 걸 가지고 화내고 싶은 마음은 없네. 이 세상은 검이 전부가 아니지. 그렇지 않나?”
“공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검으로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있습니다. 현명하시군요.”
대충 지껄인 말이었다.
애초에 큰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 화도 안났다. 내 재능이야 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내겐 유희 생활 어플과 영천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