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
망나니학 개론-1화(1/300)
#001
“네, 네, 작가님.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시간에 걸친 통화가 겨우 끝을 맺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의 화면이 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메마른 입안에서 느껴지는 갈증과 함께 한숨을 토해냈다.
“또 그 작가야?”
삼십 평 남짓한 사무실 한구석에 있는 내 자리로 돌아오니 맞은편에 있던 직장 동료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말해왔다.
“어, 미치겠다. 멘탈도 약하신 양반이 왜 댓글을 본다고.”
나는 장르소설의 편집자다.
취직한 지 아직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출판사나 매니지 관련 직종은 어디가 그러하듯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기에 아직 반품 기한도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눈코 뜰 새 없이 구르는 중이었다.
편집자의 업무는 기본적으론 신인 작가의 발굴과 기존 계약 작가의 관리가 있다. 거기에 원고의 교정과 피드백은 당연하고, 플랫폼에 영업을 위해 외근을 나가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에 속했다.
조금 전의 전화 역시 업무의 일환이었다.
원래라면 아직 담당할 짬이 되지 않는 중견급의 작가였지만, 갑작스러운 선임의 퇴사로 엉겁결에 떠맡게 되었다.
착한 분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다른 선임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으나 치명적으로 약한 멘탈은 정말로 골칫거리였다.
“댓글 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누군 이렇게 욕하고 누군 이렇게 욕했다고 징징거리는 걸 한 시간 동안 받아주자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씁.”
명절 선물로 들어온 홍삼 스틱을 질겅거리며 메일을 뒤적거렸다. 오늘 원고를 보내주기로 한 작가는 세 명이었지만, 오후 두 시가 지나가는 지금까지 내 메일은 깨끗하기 그지없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담아 오 분 간격으로 새로 고침을 눌러보지만, 전부 의미 없는 짓이었다. 지끈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겨우 참았다.
‘……때려치울까.’
편집자고 나발이고 전부 집어던진 채 퇴사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하지만 통장 잔액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서글플 따름이다.
아직 원고를 주지 않는 작가들에게 재촉하는 메시지를 보낸 뒤, 식곤증에 젖어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올해 초만 해도 편집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이었으니까.
하긴,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작가가 되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의 내 전공은 컴퓨터공학 계열이다. 일 학년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처럼 군대에 입대했고 전역 후에는 다시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이어나갈 줄 알았다.
군 생활 중 선임이 읽고 있던 판타지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랬지 않았을까.
무료한 일과 속에서 그것은 한 줄기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단지 글자의 나열일 뿐인데도 무궁무진한 세상이 그 속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전역이 다가올 때쯤, 나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말년에 공부 연등까지 신청하면서 야심 차게 첫 작품을 준비했고 전역과 동시에 연재를 시작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써 내려간 첫 작품이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베스트 순위를 치고 올라가고, 금방이라도 떼돈을 벌 듯싶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관심조차 끌지 못한 채 묻혔더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내 작품은 왜인지 모르게 묘한 주목을 받았고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그들 하나같이 모두 싸늘한 혹평을 쏟아냈다.
단 한 명도.
단 한 명조차도.
재미있다는 댓글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쓴소리를 듣는 것은 각오했다. 어느 시대에든 원석의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니.
하지만 그것이 열이 되고 백이 되자 손끝이 떨려왔다.
내 피와 열정이 담긴 작품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커뮤니티에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조롱당했고 단순한 농담거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뚝심 있게 두 번째 작품의 집필을 들어갔던 것은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째 작품은 너희가 절대 비웃지 못할 대작을 써주마.
비장한 각오와 함께 실시간으로 달리는 악플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갔다.
지지부진한 스토리.
진행되지 않는 전개.
일차원적인 인물상.
부족한 필력까지.
날카로운 비수들에 가슴이 난도질당했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며 그것들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대망의 두 번째 작품.
대망(大望)의 망은 망할 망(亡)이었나 보다.
수없이 많은 리메이크와 수없이 많은 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말아먹었다.
갱생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시원하게.
비어버린 한글 창 앞에서 나는 그제야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의 연재를 중지한다는 공지를 올림과 동시에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평생토록 이렇게 무언가에 몰두해 본 적이 있던가.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글을 쓰는 재능은 없어도 글을 보는 눈은 조금이나마 있었다는 것이었다.
첫 작품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자신들과의 계약을 제안했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해보지 않겠냐며 제의가 왔다.
두 번째 작품을 쓰기 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작품들을 분석한 보고서를 본 담당자가 감탄을 터트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나보고 작가도 괜찮지만, 편집자의 재능도 있으신 것 같다고 지나가듯 이야기를 흘린 적이 있었다. 정말로 지나가는 말이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구렁텅이로 떨어진 내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어찌 되었든 먹고는 살아야 하므로 고심 끝에 그것을 수락했다. 그렇게 몇 달간의 교육을 끝마친 뒤, 지금은 한 명의 어엿한 편집자가 되었다는 것을 끝으로 내 일대기는 막을 내렸다.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지금의 생활은 만족스럽다. 퇴사니 때려치우니 해도 어찌 되었든 글과 밀접한 직업이니.
그리고 혹시 모른다. 이쪽 업계에 계속 있다 보면 나중에 작가로서 재기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우웅.
“젠장, 쉴 틈이 없네.”
노곤함에 취해 잠시 쉬고 있자니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스마트폰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진동을 울려댔다.
“이게 편집자인지 보모인지.”
메시지 목록을 쭉 훑어보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슬럼프가 온 것 같다며 원고가 막힌 양반을 우쭈쭈해가며 달래줘야 하지, 자기 작품의 성적이 왜 저조한 것이냐며 싸움을 걸어오기도 하지.
마음 같아선 다 네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얼굴에 대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진짜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속만 타들어 갈 따름이었다.
“어? 오늘날 작가님이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신세 한탄이 적힌 메시지가 아니었다.
아까 전,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하게 만든 중견 작가보단 조금 끗발이 딸렸지만 이제 막 세 번째 작품의 완결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내 담당 중 한 명이었다.
이 작가님 역시 선배 편집자의 퇴사로 떠맡게 되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님 자를 붙여 말하는 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작가님은 다른 작가들처럼 원고를 미루거나 힘들게 하는 일 없이 지정한 날짜에 딱딱 글을 넘겨주셨다. 성적도 준수해서 원래는 금방 다른 경력직 편집자에게 넘어가야 했지만, 내가 친절하다며 바꾸지 않기를 희망하셨다고 한다.
실력에 인품까지.
천사가 있다면 이분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그 작가님 작품이 다음 주에 완결이라며?”
앞자리에 있던 동료가 어느새 뽑아온 커피 한 잔을 건네주며 물어왔다.
“어, 오늘 완결 원고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그것 때문에 연락 온 거겠지.”
오늘날 작가님이 현재 완결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작품의 이름은 ‘SSS급 이세계 절대자’, 줄여서 스이절이라 불렀다.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상당히 괴상한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연재를 시작했을 당시엔 저런 제목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삼류 양판소 같은 이름과 달리 작가님 특유의 문체와 필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박까진 아니더라도 소위 말하는 중박은 쳤기에 얼떨결에 담당이 된 나까지 적지 않은 인센티브를 받았다.
사랑합니다, 작가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잘생기셨으리라 믿습니다. 키도 크고 거기도 큰, 크흠.
[오늘날: 안녕하세요, 편집자님. 완결 원고 보냈습니다. 피드백 부탁드려요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문자는 예상 그대로의 내용이었다. 곧장 알겠다는 답장과 함께 방치되어 있던 컴퓨터의 화면보호기를 해제한 후 작가님이 보낸 완결 원고를 읽어나갔다.
“후.”
흠잡을 것 없는 깔끔한 끝맺음이었다.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살짝 여운까지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었다.
[작가님, 확인했습니다.^^ 수정할 부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복선 회수도 깔끔하게 되었고 적당한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난 것 같습니다.]상투적인 편집자의 말투로 답장을 보내고 나니 너무 성의가 없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내 솔직한 감상이다.
오늘날 작가님도 쓸데없는 미사여구나 입에 발린 말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셨으니.
“아, 그래도…….”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개인적인 감상이었기에 적지 않으려 했지만, 독자로서의 내가 어느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도 하나 아쉬운 건 악역인 ‘그 황자’도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작가님께서 푸신 설정을 보면 그 친구도 주인공 못지않게 노력해 왔으니까 말이에요.] [오늘날: 그런가요.] [그래도 좋은 이미지로 죽으니 다행이네요. 이러면 위악이다, 필요악이다, 하면서 싸우던 사람들도 납득하겠죠.] [오늘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역시 편집자님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 같아요. 원하신다면 그런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도 될 것 같은데.] [하하하, 작가님 원고에 손댔다간 저 팀장님한테 맞아 죽습니다. 전 어디까지나 피드백과 수정만. 그 덕분에 작가님 소설의 설정을 줄줄 꿰고 있지요. 몇 화부터 몇 화까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 엑셀까지 만들어서 분석했다니까요.] [오늘날: ㅎㅎㅎ^^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 이후도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당연한 듯 야근을 했고 해가 전부 진 뒤에야 지친 몸을 이끌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지지고 난 뒤, 기진맥진한 채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직업병인지 중독인지 모르는 습관 때문에 손은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찾았고 자연스럽게 소설 플랫폼에 접속했다.
사실 편집자라는 게 그렇다. 항상 빼어난 신인 작가를 찾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야 했고 일과의 마지막은 새로 올라온 작품을 살펴보는 것으로 끝냈다.
“음, 이건 좀 괜찮은데.”
그럴듯한 글들은 선호작에 추가해 두고 다음 날 출근 후에 다시 살펴본 뒤, 괜찮으면 가벼운 피드백과 함께 컨택 쪽지를 보낸다. 간혹 살짝 아쉽다 하는 작품이 있다 싶으면 출판사 계정으로 로그인해 서재에 자취를 남겨놓고 나중을 기약했다.
두근거리겠지? 사실 두근거리라고 일부러 하는 짓이다. 나도 설렜으니까. 이러면 더 잘 쓰더라고.
“아, 내일도 바쁘겠네.”
말은 불평을 내뱉었지만,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
새로운 글을 읽고 새로운 작가와 만난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이라 생각했다.
스마트폰을 끄고 어둠에 잠긴 천장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물에 풀린 몸이 피로를 쏟아내며 내 의식은 깊은 어딘가로…….
“전하,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
어딘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