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04)
망나니학 개론-104화(104/300)
#104
앞서 말했듯 3학기는 외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두 달 가까이 진행되는 그것은 2학년으로 승급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원작의 주인공 파티는 제국 서남부 쪽의 어느 영지로 방향을 잡았다.
그 영지는 나중에 주인공의 세력이 자리 잡을 발판이 되는 곳으로, 연쇄살인이나 미리 자리 잡은 지하조직을 소탕하는 등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난 굳이 그곳을 선택할 생각이 없었다.
저번의 대련 이후 황제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라 했을 때 나는 다른 영지를 달라고 했다. 주인공이 선택했던 곳보다 더 풍족하고 안정적인 곳을.
이미 좋은 땅이 손에 들어온 상황에서 굳이 번거로운 일이 기다리는 곳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난 3학기의 시험은 크리스에게 부탁해 적당히 흐지부지 넘어가려 했었다. 성적이야 워낙 압도적이어서 뭘 하든 1등은 따놓은 당상이었으니.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성국에서 바이에른 아카데미 학생들과 교류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 마침 3학기의 일정도 있으니 대표로 몇 명 뽑아서 교류회를 여는 것이 어떻냐고 하네.”
“그 말은 즉.”
“1학년 수석인 당신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소리지.”
“끙…….”
그 말에 절로 신음이 나왔다. 재상을 통해 초대 건을 거절하자마자 이렇게 나올 줄이야. 아니, 설마 애초에 거절할 것을 알고 뿌려둔 포석인가?
끈질긴 녀석들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건으로 부탁하려 했는데.”
“성국에 가려 했어?”
“아니, 그 반대다. 어디든 상관없으니 가까운 곳에 배정해 달라고 하려 했는데.”
그 말에 크리스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쪽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대 마법서를 하나 넘겨주겠다네. 그 소리에 마법 학부 선생들이 미쳐 날뛰더라.”
“고대 마법서?”
“응, 성국은 옛날부터 이단 심문이 성행했었잖아. 그 도중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많이 손에 넣어 보관 중이라고 들었어. 고대 마법서는 일단 학술 가치부터 높은 것들이니 환장할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연구해 봤자 사용할 수도 없을 텐데 말이야.”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제 부하 직원들에게 애도의 말을 내뱉었다.
이미 성국의 제안을 수락했고, 거절하려고 해도 명분이 없다.
“…다리라도 하나 부러뜨려야 하나.”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날 초대하려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가기 싫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고자 중얼거리자니 크리스가 살짝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잊었어? 상대는 성국이야. 오히려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겠다면서 더 환영할걸?”
“…그것도 그렇네.”
그럴 듯한 이야기이기에 난 몸을 등받이에 기댄 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능한 변수는 만들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인기인의 삶인가.”
“…또 영문 모를 소리를.”
그녀는 이만 돌아가자며 손을 휙휙 저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학장의 집무실로 돌아갔고, 크리스는 중년 노인의 모습으로 덧씌워졌다.
“당신은 이제 사우스요크셔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래야지. 그런데 그런 모습으로 당신이란 소리를 들으니 살짝 소름끼치는데.”
“안아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 그나저나 사우스요크셔라.”
크리스는 내 말에 흥미를 표한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가 싶어 바라보자니 크리스는 옛 기억을 떠올리듯 아련한 표정으로 제 머리카락을 빙빙 꼬았다.
“3대 전의 백작 부인과 조금 친분이 있었어. 오랜만에 들러서 인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3대 전이라…….”
까마득한 이야기다. 그 당시 무슨 이야기가 있었나 궁금했지만, 그녀는 과거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기에 화제를 바꿨다.
“같이 갈래?”
“음…….”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니 생각 이외로 심심했던 것 같다.
“그러면 모습은?”
“이왕 가는 거 나도 즐겨야지. 이런 꼬질꼬질한 모습으론 호객하는 사람들도 도망갈 테니.”
확실히 바이에른 아카데미의 학장이란 위치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3황자와 함께 셰필드 가문의 영지로 향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서로 간에 모종의 유착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날 수도 있었다.
“어차피 갈 거 함께 텔레포트로 가지.”
“마치 자기가 사용할 수 있다는 말투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하던 일만 마저 끝내겠다며 식당에서 한 시간만 기다리라 말해왔다.
난 적당히 빈자리에 앉아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겼다. 식당은 학기 중의 번잡함도 없었기에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전세를 낸 기분과도 같았다.
창밖에 비치는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홍차를 마실 찰나,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사우스요크셔에 간다고 하시더니, 이런 곳에서 뵙네요.”
“페트라.”
그 익숙한 얼굴에 나는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방학 중에 있었지만, 학생회의 일과 더불어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바쁜 몸이었다.
일전에 사우스요크셔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권유했지만, 그 탓에 거절당해 아쉬움이 컸다.
“그땐 피곤해 보였는데, 오늘은 괜찮네.”
“바쁜 일은 거의 다 처리했어요. 성국의 일은 들으셨나요? 그것만 아니었으면 이틀은 더 빨리 끝냈을 텐데.”
“…아, 그거 나 때문이야. 괜히 고생시켰네.”
“네?”
나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엑스칼리버를 얻은 것 때문에 성국이 날 초대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것에 페트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분란을 몰고 다니네요, 당신이란 사람은.”
“인기인의 숙명이랄까.”
그 말에 그녀는 그게 또 뭐냐며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대충 정리됐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야? 1학기에는 바빠서 가지 않았잖아.”
“네, 슬슬 돌아가야죠. 그리고 영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고 했으니…….”
“심상치 않아?”
내 물음에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는데.”
무심코 나온 말인 듯 그녀는 제 입을 가린다. 그것에 나는 마시던 홍차를 내려놓고 가늘어진 두 눈으로 페트라를 바라보았다.
“내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한 것이 아니었나?”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부담을 줄 생각은 없었어요.”
아무래도 영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좋은 쪽이 아닌 듯싶었다. 그것에 난 잠시 머릿속을 뒤졌다.
라이프치히 영지에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레이오스와 엮인 것으로 2부를 넘어서 진행되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갑작스럽게 몬스터의 출현이 늘었다든가,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든가?”
“…이미 알고 계셨나요?”
단순 짐작이라고 대답하자 페트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몬스터의 개체 수가 많이 늘어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그래도 평소에 방비를 게을리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습격에 영지 일부가 피해를 봤다네요.”
“몬스터의 수가 늘어났다라…….”
브리튼산맥의 몬스터가 갑작스럽게 날뛴 것은 나로부터 기인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조종한 마족이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라이프치히 쪽은 무엇이 원인일까.
‘…설마.’
2부 중간쯤, 라이프치히에도 마인이 나타난다. 원작에서 페트라는 제 고향을 구원하기 위해 그 마인과 싸웠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몬스터가 늘어났고 영지가 공격받았다.
작금의 상황은 그때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아직은 추측에 불과했지만, 이미 전개가 뒤틀린 상황에서 뭔들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이거 한가롭게 놀 때가 아니었네.’
“그래도 별일 아닐 거예요. 이번엔 조금 시기가 일러서 그렇지 예년 있었던 일이니까요. 가서 조금 거들어주고 마을 몇 군데 돌아보다 보면 3학기가 시작하기 전엔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내 표정을 보았는지 그녀는 황급히 날 안심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이미 내 결심은 굳은 뒤였다.
“오랜만에 장인어른 얼굴 좀 보겠군.”
짤막한 다리에 통통한 몸을 가진 라이프치히 백작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에 페트라는 무어라 더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러니까 말하지 않으려 했어요. 걱정 끼치기 싫었는데.”
“뭐,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나. 아직 약혼밖에 안 한 사이지만, 이미 서로 간의 정을 통했으니 충분하겠지.”
내 말에 페트라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전처럼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겠네요. 당신을 좋아하셨으니.”
“정확히는 내 배경을 좋아하셨지. 난 그리 좋은 사위가 아니니까.”
“글쎄요, 지금 모습을 보면 모르겠네요.”
그 말에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웃음을 흘렸다.
* * *
잠시 뒤, 일을 끝낸 크리스가 나타나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녀는 학장의 모습이 아니라 원래의 얼굴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오스티아.”
낯선 여성이 거리낌 없이 날 부르며 이쪽으로 다가오자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페트라는 입을 닫으며 가늘어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녀 영지에 일이 생겨서 말이야. 아쉽게도 같이 못 갈 것 같네.”
페트라 쪽을 눈짓하자 크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해왔다.
“당신이 권유해 놓고 그러기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 약혼녀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서 놀리지도 못하겠네.”
끝부분에선 페트라가 듣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까이 하고 말해오는 것이 나름 배려해 준 것 같다.
‘페트라의 시선은 더 날카로워졌지만.’
“대신 부탁이 있는데.”
“당신 일행에게 이야기 전해달라는 거지? 그리 급하지 않으면 직접 이야기하고 향하지 그래.”
“그러고 싶은데, 당연히 따라오겠다고 하고도 남을 녀석들이라.”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내 일행의 면모를 알고 있는 크리스는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 채 웃음을 흘린다. 그러곤 알아서 잘 설명해 주겠다며 나에게 손을 저었다.
끝에선 페트라 쪽을 흘깃 바라보는 것이, 나중에 톡톡히 보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우리도 갈까.”
“…보지 못하던 여성분이네요.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니 이때껏 입을 닫고 있던 페트라가 툭 하니 말을 내뱉었다.
내용은 그것뿐이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저 여성과 어디서 만났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묻고 있었다.
페트라도 내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나에 대한 것을 어느 정도 이야기해 줘도 괜찮을 터.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일단 라이프치히 영지로 가자. 지금 바로 괜찮지?”
“…네. 원래 바로 가려고 했으니.”
그녀는 곧 방으로 돌아가 간소한 짐 꾸러미를 가져온다. 우리는 지체할 것 없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이동했지만, 그곳에 있던 마법사에게 생각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라이프치히는 오늘 새벽을 기점으로 영주님에 의해 전시 상황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국군 관련 인사를 제외하곤 이동이 불가능 합니다.”
“직계 혈통이라도 말인가요?”
“네, 백작 본인이나 혹은 그 전권 대리인이 아니라면…….”
페트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는 어렵다는 말만 반복할 뿐. 그렇기에 나는 품에서 새하얀 패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레이오스 폰 리베라다. 마침 내가 그쪽에 용무가 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