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08)
망나니학 개론-108화(108/300)
#108
“아버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페트라와 기사들이 달려온다. 누군가가 황급히 치료사를 불렀지만,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분명 엘릭서는 백작의 상처를 전부 치료했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그는 왜 또다시 죽음 앞에 놓인 것인가.
[마스터.]‘리버?’
그때,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그것에 고개를 번쩍 드니 그녀가 나에게 말해왔다.
[이 남자의 몸에 마기가 깃들어 있어요. 아주 은밀하게 깃들어 있어서 저도 방금 겨우 눈치챘을 정도예요.]‘마기?’
[네. 물질화를 하면 치료가 가능할 것 같은데, 해도 될까요?]허락을 묻는 말에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내 앞으로 눈 부신 빛이 어리며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소녀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리버가 나타나자 주위에 있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경계한다. 내가 괜찮다며 손을 휘젓자 검을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녀를 응시했다.
“음…….”
리버는 바닥에 피를 토하고 쓰러진 백작의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며 헐떡거리는 상태. 곧 치료사들이 헐레벌떡 도착했지만, 나는 손을 뻗어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근원은 여긴가.”
백작의 몸을 유심히 탐색하던 리버는 곧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그의 심장 부근을 움켜쥔다. 곧 백작의 몸은 또 한 번 경직되었고, 그 등 뒤로 시커먼 무언가가 빠져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리버는 잘했냐는 듯 나를 향해 반짝이는 시선을 보낸다. 그것에 씩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는 그것이 부끄러운 듯 작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새하얀 빛 무리로 변해 허공으로 스러졌다.
[성력이 부족해서 이 모습을 유지하는 건 역시 힘드네요. 조금만 쉴게요…….]그러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말이 끊긴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문가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치료사에게 손짓했다.
“백작에게 포션을 먹이도록.”
백작은 치료사가 건넨 포션을 들이켜고 나서야 겨우 안색을 회복한다. 그러곤 떨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았다.
“제, 제 몸에 대체…….”
“마기가 심장에 잠식하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뽑아냈으니 안심하도록.”
“…전하께선 신비한 능력을 많이 지니고 계시는군요.”
입가를 닦은 백작이 오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것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몇 번인지 모를 대답을 내뱉었다.
“알다시피 내 인생이 워낙 험해서 말이야. 보험은 많을수록 좋잖지 않나?”
* * *
“자넬 습격한 건 아마 마족이나 마인 무리일 듯싶군. 일전에 브리튼과 사우스요크셔에 갔을 때도 비슷한 놈들을 만났지.”
“마족, 말입니까.”
백작은 내 말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한다. 아직 세간에 마족은 낯선 이름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서서히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할 터.
“…그런가. 그들이 사용하던 그 요사스러운 기운, 그것은 마기였군요.”
백작 역시 녀석들과 싸웠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납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상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녀석들의 외형부터 싸우는 방식, 그리고 말투나 억양같이 출신을 유추할 수 있는 것들까지.
인간 사이에 섞여 있었다면 그들은 필시 마족이 아니라 마인 일터다.
마족은 사람 사이에 섞이거나 사람 행세를 하진 않는다. 그레모리 같은 경우엔 자신의 자아를 담을 그릇이 필요했기에 그랬다.
그녀에게 있어서 중간계에 나오는 것은 한낱 유희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마인은 다르다. 그들은 명확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
이곳에 나타난 마인이 원작에서 나왔던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대응책을 짤 수 있다. 하지만 백작이 말해준 묘사는 아쉽게도 내가 알지 못한 이들의 것이었다.
“일단 확실한 것은 소드 마스터급 두 명에 마도사급이 한 명인가.”
기사단이 순식간에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력이다. 아니, 오히려 그 와중에 백작을 빼내 도주시킨 그들의 노력에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걸리는 건 마도사인가.’
소드 마스터급이 두 명일지라도 마인인 이상 내 선에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마도사는 나를 피해 달아나면서 영지에 대단위 공격 마법을 가해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컸다.
“일단 황궁에 지원을 요청하지. 소드 마스터야 내가 처리할 순 있다곤 하나, 마도사급이라면 우리에게도 그와 동급의 마도사가 필요하다.”
내 말에 백작의 두 눈이 커진다. 그러곤 조심스레 날 향해 물어왔다.
“…전하께서 검성의 후계가 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괜한 자존심으로 객기를 부리지 말라는 건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청년이 소드 마스터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나는 탁자 위에 있던 펜을 쥐었다. 백작과 기사들은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의아해하는 얼굴이었지만, 곧 그 위로 피어난 작열하는 빛 무리에 서서히 입을 벌렸다.
검을 익히는 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파동. 그것에 주위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어지간한 마인 몇 명 정도야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지가 불바다에 잠기는 것은 또 다른 소리지.”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는 내 말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명확한 증거도 보여줬으니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또 믿지 못한다고 의심해 온다면 그땐 정말로 베어서 확인시켜 주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 텔레포트 게이트는 가동할 수 있지? 일전에 브리튼에선 마인들이 일을 벌이기 전에 텔레포트 게이트부터 공략했었다.”
“…역시 그들의 짓이었습니까.”
내 말에 백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라이프치히 영지에는 총 3개의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 2개가 화재와 지반 침식으로 인해 가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이곳에 있는 마지막 하나는 온전히 남아 있다기에 나는 품에서 황족을 증명하는 패를 건네주며 황궁에 지원을 요청하는 데 내 이름을 사용하라 했다.
“그러면 우리는…….”
최우선의 목표는 마인의 목적과 동향을 파악하고 단숨에 제거하는 것.
아직 저들은 내 존재를 모른다. 그렇다면 그 허를 찔러 속전속결로 나아간다면 큰 피해 없이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황은 그리 낙관적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여, 영주님!”
소식을 전하는 파발인 듯 가벼운 복장의 병사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응접실의 문을 열고 뛰쳐 들어온다. 그러곤 바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남쪽으로 다수의 몬스터 군단이 출현. 몇 시간 뒤에 이곳으로 도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뭐라?”
백작이 싸웠던 것은 마인을 비롯한 소수의 고위 몬스터라고 했다.
그 수는 많이 쳐줘야 고작 스물 안팎이었다지만, 병사는 지금 나타난 몬스터의 수가 최소 천 이상의 규모로 관측되었다고 전했다.
“주변 성채에 있는 병력을 모조리 불러들여라. 즉시 프라이부르크에 연락을 취해 지원을 요청하고.”
“마법사! 전하의 말대로 마법사를 우선적으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불러와야 합니다.”
장내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마침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이 영지의 요직에 앉은 자들. 그들은 재빨리 전쟁의 준비를 했고 빠르게 상황이 수습되나 싶었다.
하지만 열린 문을 통해 누군가 또다시 복도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에 전쟁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던 이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영주님! 도심 내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에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마법사의 말로는 최소 사흘간은 사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젠장.”
기사 중 누군가가 혹은 백작 본인인지 모를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내뱉은 욕지거리.
언제나 나쁜 일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함께 한꺼번에 들이닥치기 마련이었다.
* * *
“…족히 3천은 될 것 같군.”
라이프치히 중앙 영지의 남쪽 성문.
페트라를 제외한 우리는 망루에 올라 평야를 가득 채우고 전진해오는 몬스터 군단을 바라보았다.
브리튼 때처럼 오우거나 트롤, 오크 같은 다양한 괴수들이 서로 싸우는 일 없이 이쪽을 향해 살기를 피워올리며 다가왔다.
아무리 예년 몬스터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것이 라이프치히의 병사들이라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침입은 매번 있는 것이 아닌지 성벽 위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기사들은 각자 마나까지 실어 큰 소리로 병사들을 다독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 모습에 우리는 하나같이 침음을 흘렸다.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문제는 가주께서 말씀하신 마인이겠군요.”
소드 마스터와 마도사.
아무리 철벽처럼 몬스터를 막아낸다고 해도 그들이 나선다면 전황이 뒤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백작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하 이런 말씀드리기엔 외람되오나…….”
상황은 분명 좋지 않았다.
수천의 몬스터 군단.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마인들.
지금 당장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던 유일한 통로인 텔레포트 게이트마저 파괴되어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시급히 프라이부크르 쪽으로 파발을 띄웠지만, 왕복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하루가 걸리는 거리. 백작이 저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알고 있다. 소드 마스터 둘은 내가 맡지. 하지만 최우선 목표는 마도사다. 녀석을 빨리 처치하지 못하면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니.”
나는 확실히 맡았다는 뜻으로 허리에 찬 검을 툭 쳤다. 하지만 그는 그 뜻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성벽이 무너질 것 같다면 제 딸아이와 함께 프라이부르크로 향해주십시오. 그쪽은 인접한 곳에 여러 영지가 많으니 쉬이 무너지지는 않겠죠.”
“백작.”
이제 떠보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그를 불렀으나, 백작의 표정은 더없이 진심이었다. 그는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 옆에 있던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장.”
“예.”
“만일 성벽이 무너질 기미가 보이거든 한 분대 단위의 기사단을 꾸려 전하와 페트라를 모시도록.”
“…영민한 이들로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죽어도 자신이 따라가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것에 백작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피식 웃었고, 기사단장 역시 잔잔한 미소로 제 주인의 웃음에 화답했다.
“누구더러 도망가라고 하는 거죠? 저는 이 영지를 위해 제 삶을 걸었어요. 여기까지 와서 그런 소리는 절대 용납하지 못합니다, 아버님.”
“…딸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밑에 있어야 할 페트라가 어느새 망루로 오르는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철제 투구 밑으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그녀의 결연한 태도에 백작을 비롯한 기사들이 눈시울을 글썽였다.
‘어지간히도 딸 바보들이군.’
캉-!
그것에 난 검을 뽑아 내 앞에 박아 넣었다. 그러곤 그 위로 두 손을 얹으며 억눌러 놓았던 기세를 해방했다.
쿵.
몬스터 대군을 눈앞에 두었던 탓인지 조금 전까지 부산스러웠던 분위기가 단숨에 무거워진다.
그것에 병사는 물론이고 기사들의 시선까지 나에게로 한 번에 집중되었다.
“동요하지 마라. 오늘, 그 어떤 몬스터도 이 성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도, 보상을 주겠다는 달콤한 속삭임도 없다.
심지어 병사들과 기사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를 터.
하지만 사람은 압도적인 격을 가지고 있는 강자가 자신들의 편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하기 마련이다.
챙-!
검을 뽑아 들어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 위로 작열하는 빛이 터져 나와 암울해진 전장을 밝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에 전장의 사기가 단숨에 치솟아 오른다. 검을 한 번 휘둘러 오러 블레이드를 털어버린 나는 몸을 돌려 등 뒤에 서 있던 백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도망가라는 소리는 하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