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10)
망나니학 개론-110화(110/300)
#110
이사벨이 레이오스의 외모에 신경을 빼앗겼을 때, 다른 이들은 그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이내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국에 있는 마도사는 대부분 파악이 끝난 지 오래다. 저런 젊은 녀석은 명단에 없었을 턴데?”
“뭐, 세간에는 천재라며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녀석들도 있지 않나.”
그 말에 데카르트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재능의 벽을 넘지 못한 그에게 천재라는 단어는 역린과도 같은 것이었다.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쥔 데카르트는 이를 갈며 흉포한 기세를 피어 올렸다.
“벽을 넘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했다. 얼굴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햇병아리에게 밀릴 수야 없지.”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악마의 씨앗을 심는 제 임무는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요즘 저희 동태를 주시하느라 성국이 많이 예민하거든요.”
“그래, 들어오는 정보가 있으면 연락 바라지.”
아자젤에게 꾸벅 인사를 한 그는 이내 모습을 지웠다.
이제 자리에 남은 건 넷뿐이었다. 그중 아자젤과 이사벨, 그리고 데카르트는 라이프치히 백작이 확인한 두 명의 소드 마스터와 마도사였다.
마지막 한 명은 홀로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나서지 않아 백작 역시 몰랐던 존재.
아자젤은 그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조금 놀아볼까.”
* * *
골렘이 무력화되자 병사들의 사기는 끝을 모르고 치솟아 오른다. 하지만 몬스터 군단은 더 이상 우리를 기다리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웅-!
돌격 명령이 떨어졌는지 수천에 달하는 군세가 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쏴! 쏟아부어라! 내일 지원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몸집이 큰 트롤과 오우거는 직접 성벽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다른 몬스터의 디딤대 역할을 했다.
그렇게 성벽 위로 올라온 것은 몬스터 군단의 구성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오크와 고블린 무리였다.
녀석들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디딤대를 밟고 올라와 성벽에 몸을 날렸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 침입을 허용치 않았다.
그렇게 성벽 위에서 몬스터의 공격을 수월히 막아내는 듯싶었다.
쿵!
그러던 중, 몬스터의 포효를 뚫고 자욱한 먼지와 함께 커다란 광음이 들려온다.
성벽 밖을 내려다보니 아까처럼 마기로 뒤덮인 녀석은 아니지만, 수십 기에 달하는 골렘이 생겨나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몸을 부딪쳐 오는 것이 아니라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를 성벽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몇몇 녀석은 처참하게 찢겨나가 곤죽이 되었지만, 대부분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끈질기게 일어났다.
“기사들은 트롤과 오우거를 상대해라!”
성벽 안쪽으로 대형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리자 성벽 위는 다시 혼란으로 물들어간다. 그것에 망루에서 전황을 살피던 백작이 기사에게 물었다.
“주변 성체에서 이끌어온 병력은?”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의 체력이 떨어질 때쯤 교대할 예정입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초반부터 전력으로 싸웠다간 흐름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기사의 말처럼 병력을 나누어 싸우는 것이 정석이었다.
특히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같은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다.
체력은 보통 인간보다 몇 배는 더 좋았고, 배가 고프다 해도 근처에 널린 것이 주식이었다.
심지어 어지간한 상처도 금방금방 회복되니 그야말로 전쟁에 특화된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이렇게 다종족으로 묶여서 움직이는 것은 말이 되질 않지만.’
몬스터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이었지만, 인간형 개체인 만큼 최소한의 이성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맹목적인 모습으로 살기를 피워 올리며 달려드는 것을 보니 브리튼 때처럼 조종을 당하고 있는 듯했다.
“나도 참전하도록 하지.”
전장의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슬슬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몬스터의 공세는 저돌적이고 무차별적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었지만, 슬슬 밀리는 구역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황을 파악해 전쟁을 지휘해야 하는 백작과 그런 그를 지켜야 하는 기사들은 망루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굳이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것도 없이 존재감을 죽인 채 싸운다면, 그 누가 날 주목하겠는가.
마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은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겠지.
“저도 따라갈게요.”
망루를 내려가는 내 뒤로 페트라가 따라붙는다. 백작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우물거렸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
딸을 잘 부탁한다는 그 간절한 눈동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이곳에 있는 것보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할 터.
서걱.
망루에서 내려와 검을 휘두르자 성벽을 타고 올라온 오크의 몸이 가볍게 갈라져 내린다. 오크나 고블린은 병사들 선에서도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문제는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상위 몬스터들.
지치지 않는 골렘이 끊임없이 녀석들을 끊임없이 성내로 던져넣고 있으니 곳곳에서 난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쿵-!
마침, 내 앞쪽으로 오우거 한 마리가 떨어졌다. 그것에 성벽 끄트머리가 조금 깎여 나갔지만, 녀석은 아무런 상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얼굴을 보니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닌 듯 일그러진 얼굴로 흉포한 울음을 내뱉었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상위 몬스터가 발하는 피어가 주변을 휘어잡는다. 그것은 일반 병사라면 손발이 굳고 몸이 경직되는 치명적인 위기를 만들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
오우거는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자신의 주위에 있던 녀석들이 빌빌거리며 몸을 떨었을 터이지만, 지금은 여전히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
기세를 내뿜어 녀석의 피어를 상쇄시킨 나는 가벼운 조소를 흘리며 땅을 박찼다.
크어어엉!
그제야 내 존재를 눈치챈 오우거가 거목만 한 팔뚝을 휘둘러 왔지만, 난 그것째로 녀석의 몸을 베어 갈랐다.
쿵-!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녀석은 녹색 체액을 뿜어내며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더는 회복될 기미도, 일어날 기색도 보이지 않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머리가 두 개인 녀석도 잡았는데, 하나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경지에 오르고 나니 이제 오우거쯤이야 손쉬운 상대에 속했다.
아무리 소드 익스퍼트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순리를 거스르진 못한다. 마나로 육신을 강화했다고 해도 인간의 육신이 가지는 한계는 뚜렷했으니.
하지만 나는 소드 마스터에 이르면서 신체 구성이 뒤바뀌고 마나 역시 말도 안 되게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그 효율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전보다 적은 힘으로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의 장르가 무협지였더라면, 화경쯤 되었으려나.’
트롤을 다섯 마리째 베어 갈랐을 때, 문득 무협 세계관으로 빙의했어도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기연이나 보물이 잠들어 있는 곳은 알고 있을 테니 그것들을 독식한 다음 어디 심산유곡에서 수련을 했겠지.
그리고 무림에 출두할 것이고 아마 신룡이나 신검 등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가로 활동했을 때 첫 번째 작품의 장르가 무협이었기에 살짝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현실로 돌아가면 글이라도 써볼까.’
굳이 따지자면 두 번째 작품의 내용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비슷했다.
그땐 개연성이며 현실성이며 모조리 떨어진다고 욕을 먹었지만, 내가 이곳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수기처럼 정리해 작성한다면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현실성을 따질 거면 소설은 왜 보는지 아직도 모르겠네.”
언젠가 달렸던 악플을 내뱉으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 * *
전장은 고착 상태에 빠졌다. 성벽의 가장자리를 경계로 둔 채 밀고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상황.
“……?”
얼핏 보면 라이프치히의 병사들이 분전한 덕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아직 녀석들의 숫자는 수천에 달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의도적으로 소모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마치 완급을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영주님! 서쪽 성문에 나타난 오우거 무리에 성문이 위태롭습니다!”
그때, 전장의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다급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용인즉, 몬스터 군단이 이곳 남쪽 성문을 공략할 동안 별동대가 서쪽 성문을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전시 상황이니 남쪽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을 터였지만, 워낙 이곳에 나타난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이쪽으로 전부 끌고 온 상태다.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을 터.
“대기하고 있는 라젠발슈포르트 기사단을 서쪽으로 출병시키도록.”
서쪽 성문을 공격한 몬스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상위 몬스터라 일반 병사들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난항을 겪는 것이라 했다.
라젠발슈포르트 기사단이라면 충분히 그것들을 처리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난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백작, 나도 그곳으로 향하지.”
망루로 돌아간 나는 그에게 말했다. 페트라 역시 다시금 날 따라가려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마인이 나올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
이번엔 이곳에서 기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
페트라는 내가 선물해준 홍련을 꼭 쥔 채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겠지. 아직 내 옆에 서기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럼, 부탁드립니다.”
“염려 말고 이쪽 상황에 신경 쓰도록. 혹시라도 마인이 나타난다면 전령을 보내고.”
난 곧바로 밑으로 내려와 놀고 있던 말에 올라 먼저 서쪽을 향해 이동한 기사단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얼마 달려 나가지 못했을 때, 서늘한 살기가 목덜미를 훑어오는 것을 느꼈다.
타닷-!
나는 그것에 망설임 없이 안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뒤 바닥에 착지하자, 저 앞에서 머리가 잘려 나간 말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납셨나.”
고개를 돌리니 한 인영이 연녹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홍채에 샛노란 동공. 그것은 녀석이 마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더없이 확실한 증표였다.
‘백작이 말한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인가.’
연녹색 장발에 시원시원하게 생긴 외모. 혹시나 하고 기억을 더듬었지만, 아쉽게도 원작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녀석 같았다.
‘이거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는데.’
지금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원작의 흐름으로 따지자면 아직 1권 중후반부에도 이르지 못했다.
마인과 마주한 라젠발슈포르트 부기사단장은 녀석들을 보고 최소 소드 마스터급이라 했었다.
하지만 나는 끽해야 학술제 당시 데메드리오 왕국에서 나타났던 어중간한 녀석들이라 보았고, 부기사단장의 말 대로 소드 마스터급이라 해도 이제 막 그 경지에 발을 걸친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기세는 절대로 내 밑이 아니었다.
“이쁜이,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몸놀림도 좋네? 검술도 익혔나 봐?”
그녀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날 향해 걸어온다. 그 여유로운 몸짓 속엔 언제라도 날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풀풀 넘쳐났다.
“물론, 내가 상당히 다재다능한 사람이라.”
나는 왼손은 등 뒤로 한 채 오른손으로는 검을 다잡았다. 한순간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녀석을 단숨에 칠 수 있도록.
“이 누나는 이사벨이라고 하는데, 우리 이쁜이는 이름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