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11)
망나니학 개론-111화(111/300)
#111
자신을 이사벨이라 소개한 마인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날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곤 제 가느다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가늘어진 눈으로 말했다.
“아까 마병을 태워 버린 시퍼런 불꽃은 우리 이쁜이가 피워 올린 거지? 그것 때문에 누나 친구가 몹시 화가 나 있어요. 자기 작품을 망가뜨렸다고. 사지는 찢어발겨서 오우거 먹이로 던져주고, 몸은 트롤과 합성한다나 뭐라나.”
그녀는 본격적으로 기세를 내뿜어 나를 압박해왔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격과 함께 시커먼 마기가 전신에 넘실거리며 주변에 균열을 일으킨다. 마치 폭풍을 마주한 것 같은 기세였지만, 나는 그것에 거스르지 않은 채 천천히 몸을 낮추곤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성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밖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통로이기 때문에 잘 닦인 가도만 펼쳐져 있다. 그나마 있는 것도 나무 몇 그루나 바위뿐.
‘그렇다면 마음 놓고 싸워도 된다는 이야기지.’
“어디서 이런 남자가 솟아난 건지, 참.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 데카르트의 손에 찢겨 죽을 바에 이 이사벨 누나의 장난감이 되어보지 않으련?”
기분 좋게 해주겠다고 속삭이는 그녀의 눈동자엔 심상치 않은 기류가 어린다. 그것에 난 검을 쥔 채 천천히 몸을 움직여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마인, 이사벨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재능이 있다는 건 정말이로구나. 마법사의 육신으로 내 기세에 대항할 수 있다니. 아니, 단단한 것은 그 마음인가?”
그녀는 숫제 황홀경에 빠져 날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지척에 이르렀을 때, 나는 땅을 박차고 나아가 녀석에게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애액-!
넘실거리는 오러에 휩싸인 검이 세찬 파공성과 함께 허공을 가른다. 하지만 이사벨은 웃는 얼굴과 함께 마기에 뒤덮인 손을 내밀어 너무나도 손쉽게 그것을 잡아냈다.
“우리 이쁜이, 깜찍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런 거로는 이 누나를 어찌하지 못한단다.”
완전히 아이를 취급하는 것같이 얕잡아보는 태도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그건 막으라고 휘두른 거니까.”
“…뭐?”
파아아아앗-!
등 뒤로 두었던 왼손 안으로 묵직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것을 힘차게 휘두르자니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와 사방을 휩쓴다.
이사벨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헛숨을 내뱉으며 황급히 나에게서 멀어졌지만, 헛된 발버둥일 뿐이었다.
서걱-!
선명한 파열음이 귓가에 들려온다.
이사벨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엑스칼리버의 칼끝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끝에 뿜어져 나오던 빛 무리가 그녀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꺄아아아아악-!”
귀청을 찢는 비명이 사방으로 울린다. 마인은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단순히 검에 베인 것이라면 저렇게까지 아파하지 않았을 테지만, 엑스칼리버에 서린 빛은 신성한 것이라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너, 너!”
고통이 심한 듯 이사벨의 시커먼 눈동자 위로 핏줄이 툭툭 튀어 오른다.
베인 가슴에선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만 상처 부위에서부터 불이 붙은 것처럼 타들어가고 있을 뿐.
“…정말로 혼자 왔나.”
툭.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꽂고 양손으로 엑스칼리버를 쥐었다.
구태여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취한 건 혹시라도 다른 마인이 숨어 있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오러 블레이드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엑스칼리버의 능력에 의존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지만 성검의 빛이 녀석의 몸을 태워가는 상황에서도 주변엔 저 멀리 성벽 쪽에서 싸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가슴 조금 베인 정도로 우는소리 하는 건 아니지?”
나는 억눌러 두었던 격을 풀어헤쳤다. 그것들은 사나운 짐승처럼 사방으로 달려 나갔고, 이내 이사벨의 전신을 짓눌렀다.
“…허.”
그것에 타들어 가던 가슴을 붙잡고 있던 이사벨의 두 눈이 커진다. 이전까지 보이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경직된 얼굴로 날 향했다.
“삐약거리는 병아리인 줄 알았더니, 발톱을 숨긴 맹수였나.”
“눈이 어두워 상대를 알아보지 못해 그 지경이 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아직도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마인이란 녀석들은 하나같이 이런 식이다. 자신은 인간을 벗어났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어둠 속에 숨어 흑막이 되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에 그들은 현실에 좌절해 인생을 포기한 패배자들에 불과했다.
“나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다 좋아했다. 심지어 악당까지도 말이야. 그들 역시 각자 신념을 가지고 살아갔으니까. 하지만 네놈들은 한 조각의 신념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의 부스러기조차 없다. 그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해충들이지.”
나는 싸늘한 눈으로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마인이라 이름 붙은 녀석들은 한 놈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 방금 말했다시피 이 녀석들은 해충에 불과했으니까.
웅.
내 마음에 화답하듯 엑스칼리버의 위로 작열하는 빛이 타오른다. 그녀 역시 나에게 대항하기 위해 넘실거리는 마기를 뿜어냈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크게 기울었다.
“좋아, 빌어먹을 이쁜이. 얼굴값 한다는 건 인정하지.”
이사벨은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찬다.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나 싶었지만, 녀석의 눈에는 포기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활로는 없을 텐데.’
서로 간의 전력 차는 명백한 상황. 주위에 또다른 마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으니 그녀의 자력으로 나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 아자젤은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나.”
그녀는 품속에서 자신의 주먹만 한 크기를 가진 시커먼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에 난 검을 들며 긴장감을 높였다.
마인이 사용하는 마법이나 기술, 그리고 아티팩트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것들이다. 나조차 그것들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푹.
“……?”
이사벨은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정확히는 심장이 있는 부근에.
“끅.”
그녀가 비틀거리며 신음을 내뱉자 이변이 시작되었다. 가슴에 박힌 시커먼 무언가를 중심으로부터 청록색 핏줄이 불끈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까맣게 물들었고, 곧 전신을 향해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이 깨진 유리로 뒤덮인 것 같은 모양새다. 물론 나는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타다다다닷-!
힘껏 땅을 박차 도약한 뒤 망설임 없는 참격을 날린다. 엑스칼리버는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몸을 상하로 이등분했다.
힘이 과했던 탓인지 그 뒤의 땅까지 여파가 가해져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균열이 생겨났다.
스르륵, 탁.
갈라진 그녀의 몸이 제각기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나타났던 포스에 비하면 허무하리만큼의 결과였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당연한 일에 가까웠다.
이사벨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두 눈만 부릅뜬 채 하염없이 하늘만 올려다볼 뿐.
나는 바닥에 꽂아둔 검을 들어 검집에 넣고 몸을 돌렸다.
“데카르트와 아자젤이라.”
대화 도중 이사벨이 말한 이름을 입안에 되새겼다. 그것은 백작이 마주쳤다던 다른 두 마인의 이름일 터.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성벽에 내려와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마인을 만났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녀석들도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서쪽 성문에 나타났다는 오우거 무리도 마음에 걸렸다.
“…에이 씨,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면 되겠지.”
잠깐 그 자리에서 서성이던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빠르게 서쪽 성문에 나타난 오우거를 정리하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다.
만약 지금 성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면 분명 기류가 달라졌을 것이지만, 바닥을 울려오는 진동은 아까와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에 이내 발걸음을 멈춰섰다.
“……?”
뒤를 돌아보자 이사벨의 시신은 그대로 있었다. 기분 탓인가 싶어 다시 발을 내디뎠지만, 이내 싸늘한 무언가가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싸움의 여파로 균열이 일어난 땅, 뽑혀 나간 나무와 바위들.
그리고 그 위로 누인 마인의 시체까지.
“…시체?”
성검에 죽은 마인은 시체조차 남가지 않고 소멸한다. 하지만 녀석의 몸은 어째서인지 쓰러진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츠즈즈즈즈즈즈-.
곧 그 위로 시커먼 촉수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해 봤지만, 그 광경은 원작에서 본 기억이 없는 것들이었다.
상하로 갈라진 이사벨의 몸이 다시 결합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새하얗던 그녀의 피부는 마치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옅은 검은 색으로 변해 있다. 뒤로 꺾인 그녀의 목이 다시 제자리를 되찾았고, 빛이 꺼진 눈동자에는 다시 샛노란 광망이 깃들었다.
“…하아.”
고통에 일그러졌던 이사벨의 얼굴 위로 잔잔한 희열이 떠오른다. 그녀는 곧 나를 바라보고는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 중 최고로 좋은 기분이야.”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엑스칼리버의 기운을 실은 참격은 분명 녀석의 몸을 베어 갈랐다. 그것은 어지간한 고위 마족이라 할지라도 치명적인 일격이 되었을 터.
하물며 마인 정도야 손쉽게 소멸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을 터다.
하지만 이사벨은 제 양손을 꽉 움켜쥐며 날 향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쁜이,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은데.”
“…뭐?”
파아앙-!
그녀가 서 있던 자리의 공기가 터져 나간다. 그것은 나조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녀석의 신형을 찾았지만, 내 뺨에 닿는 서늘한 감촉과 귓가에서 들리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그 전에, 주인님의 말에 복종하는 법부터 조금 배우도록 할까?”
* * *
“합!”
페트라는 성벽 위를 올라오는 몬스터를 맞아 쉴새없이 싸우는 중이었다.
도래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그것에 뒤지지 않는 피나는 노력까지 한 그녀는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올라선 지 오래. 그렇기에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나갔다.
“…….”
두 자릿수를 베어낸 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몇 호흡 지나지 않아 다시 달려드는 몬스터를 맞아 싸워갔지만, 페트라의 신경은 온통 서쪽으로 쏠려 있었다.
“후우.”
그녀의 검은 분명 호쾌했다. 검광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몬스터 한 마리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망루에서 자신이 뒤따르겠다고 했을 때 오스티아가 거절하지 않아서 기뻤다. 하지만 정말로 위험한 곳에는 대동하지 않았다.
이유야 명확하다. 자신은 그의 옆에 설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했으니까.
‘적어도 그 아이 정도는 되어야…….’
페트라의 눈앞에 앨리스의 얼굴이 아른거리듯 떠올랐다.
둘의 관계는 분명 심상치 않아 보였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가끔은 질투가 날 정도로 친한 모습을 보였다.
“후…….”
그녀는 곧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라이프치히 가문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할 때. 그렇기에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검을 들었지만, 근처에서 들려온 큰 소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쿠구구구구궁!
“피, 피해!”
거대한 포탄에 직격당하기라도 한 듯 성벽의 일부가 터져 나간다. 그 광경을 목도한 페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쪽에서부터 날아온 것 같았는데.”
성안으로부터 무언가가 날아와 성벽을 부수고 몬스터 군단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황급히 가장자리로 달려간 그녀는 난간을 붙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몬스터 군단 사이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른 곳이 보인다. 곧 그것이 바람에 휩쓸려 지나갔을 때, 잔혹산 참상이 드러났다.
짓이겨진 몬스터의 시체와 피 웅덩이. 수많은 몬스터가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얼굴을 확인한 페트라의 눈이 다시금 휘둥그레졌다.
“…오스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