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14)
망나니학 개론-114화(114/300)
#114
양옆으로 떨어진 빛줄기에 일순간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일정은 내가 뭘 준비할 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원작을 따라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전개 같은 것, 예를 들어 1학기 마지막 시험인 던전 탐사나 학술제의 테러 건은 미리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어느 정도 대비나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사우스요크셔에서 그레모리와 대적해 싸운 것이나 지금 이곳에서 일어난 상황은 원작과 엇나가는 전개였다.
대비라고 할 것도 없었고, 오로지 일신의 무력으로만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내 양옆으로 떨어진 두 개의 빛줄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
이사벨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따라가지 못한 듯 검을 들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직후, 빛줄기가 쏘아진 땅이 일렁거리며 무언가의 형태가 나타났다.
‘…텔레포트?’
짧은 순간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마법 지식이 머릿속을 스친다. 빛줄기는 좌표를 고정하는 마법. 그 공간 축의 좌표가 확보되면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현재 이 근방은 몬스터와의 전쟁 중이라 소란스럽다. 그렇다는 것은 상당한 거리에서 일어난 텔레포트라는 것인데, 그것을 이토록 깔끔하게 발동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크리스.”
하지만 빛줄기는 두 개다.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 내가 모종의 위기에 처했음을 깨달은 것일 터. 동행을 요청할 사람이라면 같은 수준의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신형이 빛줄기 속에서 일렁인다. 그 든든한 모습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스승님, 크리스.”
세계관 최강자로 꼽히는 두 명의 조력자가 날 돕기 위해 나타났다.
곧 빛줄기가 서서히 사라진다. 내 왼쪽에 있던 여성, 크리스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딘다. 그녀는 곧 고개를 숙이더니 땅을 향해 무언가를 쏟아냈다.
“…우웩.”
“…앨리스?”
화려한 금발이 아닌, 아티팩트로 염색한 옅은 금색의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찰랑거리며 제 존재를 알린다.
그 반대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성, 아니, 베르너가 일그러진 얼굴로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멀미할 거라곤 했는데, 이렇게 심할 줄은 읍…….”
그 역시 고개를 숙인 채 헛구역질을 내뱉는다. 그것을 본 나는 두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 이거 보기 싫어서 눈 감았다. 앨리스 베르너 수준 실화냐? 진짜 아카데미 최상위급의 지원이다. 그 찐따 같던 친구들이 맞나?
“우웩…….”
…맞는 것 같다.
* * *
잠시간 비틀거리던 둘은 다시 제 상태로 돌아와 내 옆으로 섰다.
앨리스의 입가엔 아직 여러 가지가 묻어 있었고 베르너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레이시스네에서 놀고 있는데, 자기를 당신 지인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찾아와서 말이야. 이름이 크리스라고 하던데.”
앨리스는 눈앞에 있는 이사벨을 노려보며 나에게 속삭였다. 그것에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갑자기 당신이 위험해 처했을 수도 있다고 말해와서 일단 나만 와보려 했어. 어지간한 함정이라도 혼자 헤쳐 나갈 수 있으니. 그런데 베르너가…….”
“아직 내 진가를 보여주지 못했잖아?”
“…라면서 굳이 같이 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둘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날 돕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 옆에 등장한 두 명이 검성과 크리스였다면 정말로 든든했겠지만, 지금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건 뭐지?”
그녀가 건네준 건 엄지손톱만 한 작은 구슬이었다.
“당신에게 필요할 거라 했는데.”
크리스가 준 것이니 예사로운 물건은 아닐 터. 혹시 몰라 상태 창을 클릭하니 그것에 대한 설명이 주르륵 떠올랐다.
[대마도사가 만든 마나 비즈]아작.
그 문장을 보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구슬을 입에 넣어 씹었다. 그러자 피로와 탈력감에 찌들어있던 전신에 마나가 퍼져 나가며 다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효과 죽이네.’
마나 비즈는 검성이 죽고 후반부쯤에 등장하기 시작한 간이 영약이다.
다른 소설에 나오는 대환단 같은 무슨 고급진 영약처럼 단숨에 내공을 늘려주고 힘을 증가시키는 그런 효능은 없었지만, 비어버린 마나를 채워주고 신체의 피로를 회복시키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자랑했다.
‘역시 대마도산가.’
다른 마법사들은 후반부에 가서야 겨우 만들어내는 것을 벌써 초반부에 가져오다니. 내가 인복 하나는 참 좋은 듯싶다.
“소꿉놀이는 끝났니, 이쁜이들?”
서서히 차오르던 마나를 느끼며 천천히 호흡을 내쉬고 있을 때, 우리를 경계하던 이사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거리 텔레포트는 고위 마법에 들어간다. 아자젤과 데카르트가 쓰러진 상황에서 내 쪽의 조력이 왔다면 그녀에게 불리해지는 상황이었기에 잠시간 지켜본 듯했지만, 이내 우리 전력을 파악한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왔다.
“쓰러지기 직전의 소드 마스터 한 명, 반쪽짜리 익스퍼트랑 쭉정이라. 좋은 후식거리네.”
소드 마스터란 소리에 베르너가 슬쩍 날 바라본다. 그것에 나는 이사벨 쪽을 향해 눈짓하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도 소드 마스터야. 뒤에 누워 있는 두 명은 어찌 저치 쓰러뜨렸는데, 아무래도 혼자라서 힘이 달렸거든.”
“흠…….”
상대 역시 소드 마스터란 소리에 둘의 몸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 막 익스퍼트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앨리스보다 훨씬 강자일뿐더러 이제 익스퍼트급에 들어선 베르너에겐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저 녀석도 제 상태는 아니지.”
엑스칼리버의 스킬을 직격으로 맞은 이상, 충격이 없을 리가 없다.
실제로 녀석의 검 위로 넘실거리던 오러 블레이드는 전부 타들어 가기 직전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제는 숫제 오러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었다.
나 역시 모든 힘을 쏟아냈기에 마찬가지였지만, 크리스가 앨리스를 통해 건네준 마나 비즈 덕분에 조금씩 힘을 회복하고 있는 상태. 즉, 상대의 지원이 더 오지 않는 이상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크리스가 직접 오지 않는 것이 의아한 점이지만.’
그녀가 직접 등장했다면 이사벨은 물론이고 라이프치히 성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몬스터 군단 따위야 순식간에 지워 버릴 수 있을 터.
하지만 눈에 띄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는 자신을 대신해 이 두 사람을 보냈다.
“온다!”
날카로운 앨리스의 고함이 전장을 가른다. 이사벨은 더 시간을 끌지 않으려는 듯 땅을 박차고 우리에게 쇄도해 왔다.
“후우…….”
짧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내가 녀석과 맞서 싸우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앨리스가 앞으로 솟구쳤다.
캉-!
황금빛 서기가 어린 그녀의 검이 마기로 이루어진 이사벨의 오러와 부딪친다.
원래 서로의 격차라면 이 한순간의 공방에 앨리스는 저 멀리로 나가 떨어져야 했지만, 확실히 힘이 깎인 것인지 몇 발자국 밀려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윽.”
그럼에도 충격이 큰 것인지 앨리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 검을 다시 쥔다.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사벨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직 소드 마스터에 이르지 못한 하수가 자신의 검을 막아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터.
“오스티아, 나는…….”
“베르너 너는 성벽 쪽으로 가서 병사들을 도와줘.”
그는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스터급을 상대하는 것에 마지노선은 앨리스다.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베르너는 그녀의 일 검조차 받아내지 못할 터.
나는 사람마다 적재적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사벨과 싸우는 것은 무리이지만,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라면 훌륭히 싸울 수 있을 터.
그 역시 그것을 알기에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려 성벽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럼에도 입술을 잘근 씹고 있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것일 터. 부디 그것을 원동력삼아 더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쿵-!
이사벨이 휘두른 검을 따라 긴 참격에 땅 위로 새겨진다. 앨리스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공중에서 제비를 돌아 그것을 피했고, 내 바로 앞으로 내려섰다.
“원래는 당신이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스터급은 힘드네.”
앨리스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한데 질끈 모아 묶으며 지친 얼굴로 말해왔다.
공방이 일어난 지는 이제 30초 남짓이지만, 앞서 말했듯 서로 간의 수준차가 있었기에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수백 번 공방을 나눈 것보다 더 힘이 들어갔을 터다.
물론 이사벨이 무리를 한다면 앨리스 정도야 손쉽게 죽일 수 있을 터지만, 그 옆에서 내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
“그러면 배역을 바꿔보지.”
내가 정면에서 그녀와 맞서 싸우고 앨리스가 틈을 노린다면, 싸움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을 터.
나는 회복된 마나의 편린을 끌어모아 검 위로 시퍼런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 올린 후, 앞뒤 가리지 않고 이사벨에게 달려들었다.
“좋아, 이쁜이. 싸움의 종착을 찍어보자!”
그녀 역시 빨리 이 싸움을 끝내고 싶은 듯 나와 같이 저돌적인 기세로 치고 나왔다.
캉-!
눈 깜짝할 사이에 십수 번의 공방이 이루어진다. 이사벨은 내 쪽을 견제하며 앨리스와 싸웠을 때보다 더 격렬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파바밧-!
서로의 검이 서로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핏줄기가 터지는 나와 달리 그녀는 마인이기에 흐르는 피가 없어 과다 출혈로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성검의 효과 덕분에 그 안으로 타격이 들어가겠지만, 지금 당장 유리한 것은 상대 쪽이었다.
“잡았다.”
그리고 잦은 출혈로 몸의 움직임이 느려진 내 쪽에서부터 호흡이 끊어진다. 이사벨은 환희에 찬 얼굴로 내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왔지만, 나는 그 앞에 씩 웃음을 지었다.
“뭐 잊은 것 없어?”
“……!”
옆구리에서부터 짓쳐 들어오는 찬란한 황금빛 기운이 어린 날카로운 검 끝에 그녀의 얼굴이 뒤틀린다.
그 상황에서 황급히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해낸 것은 칭찬해 주고 싶었지만, 애초에 노림수는 앨리스의 기습이 아니었다.
탁.
나는 먼저 내 가슴을 찔러온 그녀의 검을 손등으로 쳐냈다. 그 탓에 피부가 터져 나가며 손이 너덜거렸지만, 가슴이 꿰뚫린 것보단 나았다.
그리고 그 직후 힘껏 엑스칼리버를 휘둘러 녀석의 가슴을 베어냈다.
서걱.
다만, 자세가 불안정했던 탓인지 그 궤도가 살짝 비틀린다. 그렇게 내 검은 이사벨의 얼굴 일부를 비롯해 어깨를 베는 데 그쳤다.
“…아쉽네.”
걸레 짝이 되어버린 왼손을 보며 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한숨을 흘렸다.
“…네놈!!!”
이사벨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어깨를 베인 것보다 자신의 얼굴에 흠집이 간 것이 더 경악스러운 일인 듯 피가 흘러나오는 콧잔등을 부여잡으며 핏줄이 툭툭 튀어나온 시커먼 눈동자로 날 죽일 듯 노려보았다.
“왜, 자기가 당하니까 짜증 나?”
엑스칼리버에 직격당한 녀석의 상처 위로 하얀 성화가 살을 태우며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얼핏 보면 전세가 기운 것 같지만, 지금이 제일 위험한 상태다. 상처 입은 야수는 흉포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나 역시 제 상태가 아니었으니.
하지만 싸움의 결판이 나는 것보다 먼저 성벽 쪽에서 터져 나온 큰 광음이 전장의 이목을 빼앗았다.
크어어어-!
이질적인 모습으로 신체가 합쳐진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성벽을 무자비하게 난타하고 있다.
그 탓에 병사와 기사 몇 명이 휘말려 피곤죽이 되었고, 남은 이들 역시 비틀거리며 그것을 겨우 막아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오스티아.”
앨리스의 부름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있던 이사벨을 비롯해 땅 위에 누워있던 마인들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앨리스는 뒤를 쫓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냥 보내준 거야.”
만약 여기서 더 싸움을 이어가다 악에 받친 이사벨이 동귀어진의 수를 써서 앨리스나 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라도 한다면 상황은 더 골치 아파졌다.
이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의 임팩트를 생각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었지만, 나는 엑스칼리버의 소환을 해제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방학 끝날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
이 정도로 고생했다면 조금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