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19)
망나니학 개론-119화(119/300)
#119
바이올렛 쉐도우는 요즘 제국 수도의 음지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흥 어쌔신 길드였다.
원래는 그저 그런 규모에 불과했지만, 몇 달 전 중견 어쌔신 길드 하나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보통 그러한 일은 선을 넘어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권력자의 눈엣가시가 되었든가, 아니면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강자의 심기를 거슬렀든가.
다른 길드는 괜히 호기심에 벌집을 쑤셨다가 불똥을 맞을 필요가 없으니 쉬쉬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물론 바이올렛 쉐도우 역시 그 흐름에 거스르지 않았다.
다만,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어쌔신 길드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움직여 비어버린 자리를 차지했고, 그것은 그들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길드가 성장함에 따라 값비싼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곧 돈의 냄새를 맡은 어쌔신이 모여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규모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임무가 또다시 반등할 기회다.’
바이올렛 쉐도우의 마스터인 다마레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빛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보낸 의뢰. 그 표적은 아카데미의 시험을 위해 수도를 벗어나는 3황자 레이오스였다.
단숨에 숨통을 끊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시험의 여정은 대략 한 달하고도 보름 가까이 이루어진다. 의뢰인은 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표적을 괴롭혀 주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끝에선 처참하게 죽여달라고 했지만.
‘황족과 관련된 의뢰는 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처음 그 의뢰서를 받아든 다마레는 그것이 전의 길드를 멸망시킨 원흉임을 깨달았다.
의뢰서 말미엔 3황자가 죽는다고 해도 그 책임을 묻지 않으며, 오히려 큰 포상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계약금만 하더라도 그들이 1년 동안 활동해야 모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다마레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위정자들이 말을 바꾸는 것은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일인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 그의 결정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어쌔신 길드의 전언이었다.
바이올렛 쉐도우보다 더 규모가 큰 대형 어쌔신 길드에서도 같은 의뢰를 받았다. 그렇기에 서로 협조해서 의뢰를 진행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다마레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 했다. 자신은 이미 한 번의 역사를 성공시켰고, 두 번째 역시 불가능하리라 보지 않았다.
설사 다른 길드가 근래 급성장한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작전의 첫 습격을 자처해서 맡았고, 길드의 최정예 어쌔신을 몽땅 데리고 나왔다.
수도를 벗어난 레이오스 황자 일행은 이동 경로에 있던 여행자들의 쉼터에 묵었다.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짝이 없지만, 대부분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귀족가의 자제들. 주의할 것은 레이오스 황자 본인밖에 없었다.
‘최소 소드 익스퍼트 중급으로 추정된다지.’
무려 검성의 제자지 않는가. 숨기고 있는 실력이 있겠지만, 이번 습격에서 굳이 정면 대결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어쌔신이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만 각인시켜 준 뒤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아직 시간은 많았으니까.
그러던 차, 표적들이 여관 주점에서 술을 마신다는 소리를 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이번 임무를 받아들인 것은 정답이었군.’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온 레이오스에게 진득한 살기를 피워 올린 것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마레 본인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달하는 실력자. 서로 간의 상성이 있기에 정면 대결은 힘들겠지만, 암살에 나선다면 8할 이상은 죽일 자신이 있었다.
“……?”
자신들의 살기를 받은 레이오스는 검을 빼 들었다. 습격에 굴하지 않겠다며 객기를 부리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레이오스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 흔적. 다마레는 두 눈에 힘을 주고 부릅떴으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근래 조금 무리했나.’
습격의 동선이나 계획을 짜기 위해 이틀 이상을 자지 않고 철야를 했다. 이미 수도 없이 해온 일이기 때문에 익숙했지만, 아무래도 표적이 표적인지라 변수를 없애려고 너무 많은 심력을 쏟은 듯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느낀 그는 입술을 얇게 모으며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듣지 못할 특수한 신호음을 냈다.
그러곤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전신을 휩쓸었다.
‘답신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와 함께 작전에 나선 이들은 열 명 정예 어쌔신으로 모두 소드 익스퍼트에 달하는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호음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에 발걸음을 멈춘 찰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상해?”
“…….”
다마레의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러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피를 뚝뚝 흘리는 검을 들고 서 있는 레이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 물음에 레이오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대놓고 살기를 풀풀 피워 올려서 제법 한가락 하는 놈들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하더군.”
“이 자식…….”
다마레는 날카롭게 살기를 피워 올렸다. 마치 제 수하들의 죽음에 분노한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전부 연기였다. 자신의 허점을 드러내 상대의 방심을 찌르는,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계책.
‘이대로 죽인다고 하여도 문제는 없겠지.’
다소 계획은 틀어지겠으나, 이 정도 전력을 잃은 마당에 레이오스의 목을 베어 돌아가지 못한다면 길드의 타격이 컸다.
츳.
달빛을 가리기 위해 검은 칠을 한 무광의 검이 그의 등 뒤로 모습을 감춘다.
다마레는 천천히 심박수를 낮추며 자신의 몸을 어둠 속에 숨겼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레이오스는 씩 웃었다.
“어쌔신의 싸움인가. 좋아, 그것도 나쁘지 않지.”
츠즈즈즈-.
그 몸이 전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을 때,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레이오스뿐.
어쌔신의 싸움은 곧 일격으로 결정된다. 그렇기에 다마레는 제 검 끝에 모든 것을 걸었다.
쐐애애애액-!
곧 옆구리에 솟구치는 살기에 레이오스는 피식 웃으며 몸을 비틀었다.
“뻔해.”
하지만 그것은 살기가 만들어낸 환영, 진짜는 그의 발밑에서 찔러오는 독이 묻은 검이었다.
‘이거라면……!’
상대는 자신의 블러프에 완전히 넘어간 상황. 다마레의 눈에 확신의 빛이 차오른다. 하지만 레이오스는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니까 뻔하다고.”
서걱.
“…어떻게.”
다마레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절대 피하지 못할 공격이었던 자신의 일격을 무마한 그는 역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감히 대적할 수 없던 그 일격에 검을 든 제팔이 잘려 나갔고, 피 분수를 흩뿌리며 바닥을 굴렀다.
“큭…….”
이렇게 된 이상 도주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도주로에 트랩을 잔뜩 깔아둔 상황. 그것이라면 잠시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레이오스는 그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서걱.
그의 칼질 한 번에 남은 팔 한쪽과 두 다리가 잘려 나간다. 이제 다마레의 몸은 피 웅덩이 위에서 의미 없이 버둥거릴 뿐.
이 순간이 삶의 마지막임을 자각한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안에 숨겨둔 독단을 깨물려 했지만, 그것마저도 거칠게 입안을 파고든 돌멩이에 의해 무마되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으려고.”
그 담담한 목소리에 다마레는 핏발 선 눈으로 레이오스를 노려보았다. 아마 자신에게 정보를 캐내려는 것이리라.
그는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뜻으로 두 눈을 부릅떴지만, 레이오스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뭐, 고문해서 정보라도 캐낼까 싶어서? 내가 왜?”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속삭임에 다마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전부 알고 있었거든. 우리 형님께서 날 표적으로 의뢰한 거랑 네놈들이 이곳을 습격할 거란 걸.”
“……!”
자신들이 버림 패로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다마레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것은 곧 억울함과 분노로 물들었고, 꺽꺽거리며 비통함을 토해내었다.
그 광경을 전부 지켜본 레이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었다. 그러곤 오열하는 그에게 흘깃 시선을 보냈다.
“살려는 줄게. 가서 네 동료들에게 전해라. 귀찮은 짓거리는 하지 말라고.”
그러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린다. 얼마쯤 걸어왔을까, 죽어가는 어쌔신의 통곡이 들리지 않을 때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알고 있었다는 건 뻥이지만.”
* * *
칙칙.
우릴 노리던 어쌔신의 정리를 마친 나는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몸에 향수를 뿌렸다. 그럼에도 아직 피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찝찝했다.
돌아가서 다시 목욕이라도 해야겠다며 한숨을 내쉴 찰나, 여관 문에 기대서 있던 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수고했어.”
언제 나와 있었는지 모를 앨리스가 물이 담긴 잔을 내민다. 마치 목이 탔기에 그것을 시원하게 들이킨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아까 말했다시피 일행의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혼자 나선 것이었지만, 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노력이 부질없지는 않았어. 나 빼곤 전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테니까. 하지만…….”
감히 자신까지 속이려 했냐며 그녀는 가볍게 주먹을 내밀어 내 가슴을 툭 쳤다. 그 장난기 어린 행동에 나 역시 그녀의 이마에 살짝 딱밤을 놓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되었든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으니까.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무슨 생각?”
앨리스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러더니 살짝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만난 이후로 이 세계에서의 생활도 꽤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 현실의 기억도 조금씩 무뎌지고 있고…….”
이젠 그냥 여기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조금씩 들고 있다며 복잡한 속내를 토로했다.
“…….”
그것에 나는 입을 닫았다. 앨리스가 말한 이야기는 그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사이가 좋아질 때마다 현실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더군다나 현실에서의 나는 그저 말단 편집자일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무려 제국의 황자이며 더없이 중요한 존재였으니까.
“뭐, 그건 천천히 고민해 보자.”
어차피 지금 당장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천천히 고민하고 잔뜩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그 끝에 다다라 그것을 마주했을 때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다.
그렇게 늦은 밤, 우리는 같은 달을 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