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2)
망나니학 개론-12화(12/300)
#012
활짝 피어난 꽃은 아름다웠지만,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꽃은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와 아우구스의 신형은 교차해 있었다. 순식간에 이뤄진 공방. 내 몸을 살폈지만 어디 하나 상처 난 곳은 없었다.
그에 반해.
“…말도 안 돼.”
아우구스는 떨리는 눈으로 겨우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쏟아낸 검의 비는 그저 꽃잎의 조금을 적시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한줄기 빗방울도 나에게 도달하지 못했고, 오히려 만개한 꽃잎에 취해 버린 것은 아우구스였다.
푸쉭-!
“…큭.”
그의 어깨가 갈라지며 피가 솟구친다. 비틀거리는 발밑으로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저, 전하!”
멍하니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서둘러 사제와 마법사를 호출했고, 아우구스는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실려 나갔다.
“후우…….”
아우구스는 무대 위에서 기사들의 손에 의해 무대를 내려가기 전까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패배한 것이 그리도 믿기지 않는 것인지 멍한 얼굴로 어깨에 난 상처와 멀쩡한 나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승자, 삼 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
심판을 보고 있던 로열 나이츠의 기사가 대련의 승리를 선언한다. 나 혼자 이뤄낸 온전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승리를 선언하는 호명에도 불구하고 장내의 그 누구도 내 승리에 환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경악과 불신의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
조금 전의 대련에는 어떤 속임수도 암수도 없었다. 힘과 힘, 검술과 검술의 실력으로 승부를 나눴고 내가 승리했다.
적어도 그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아, 이젠 한계야.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무리했어. 진짜 그 반지 좀 빼면 안 돼? 그러면 좀 더 자유롭게 힘을 사용할 수 있는데.]티르빙이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해왔다.
‘…그럴까?’
아직 두 번의 대련이 더 남아 있었다. 카리우스와 다리우스는 아우구스보다 더 힘든 상대가 되겠지.
오로지 신체에 의존해 검을 휘두르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장막의 저주를 해제한 내 온전한 힘과 티르빙의 도움이 더해진다면…….
“…전하?”
“어?”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멍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니 파르시가 걱정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그렇게 격렬하게 싸우셨는데.”
“…아.”
그에 나는 행동을 멈춘 채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빼내려 했는지 약지에 끼워져 있던 장막의 저주가 반쯤 빠져 있었다.
‘너 이 새끼…….’
그것을 보니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검은 마검이다.
사이가 가까워진 틈을 노려 주인을 홀리려 하다니.
[아쉽네.]티르빙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아쉬움을 토했다.
아마 내가 반지를 뺐더라면 그녀에게 정신을 침식당해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렸을 테지.
이곳에는 황제가 있다. 아무리 황자라고 하더라도 검을 빼 들고 달려들면 역모의 죄로 그 자리에서 목이 뎅강 잘려도 할 말이 없었다.
‘날 죽이는 것이 목적인가?’
[죽여? 누가? 나를 쥘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야. 몇십, 아니, 백 년에 한 명 찾을까 말까 한데 왜 죽여? 단지 나는 그를 검사로 만들어줄 뿐이야. 오직 언제까지고 나를, 나만을 휘두르는 사랑스러운 검사로.]“…….”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광기 어린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그렇다. 이런 마검이기에 레이오스조차 그녀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한 번 ‘죽이기’까지 했으니.
‘잘못하다간 주인공도 보지 못하고 죽겠네.’
아무래도, 앞으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 * *
“…….”
황제, 길가메시 폰 리베라는 레이오스와 아우구스의 대련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언가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폐하.”
로열 나이츠의 단장, 네페가 그런 황제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길가메시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떼고는 그에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의 대련은 어떻게 보았나.”
“두 전하 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성취를 이루신 것 같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자신의 핏줄을 이었으면 이 정도는 당연하게 해야 하지 않냐는 그의 표정의 네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둘에겐 단순한 평가였지만, 주위에 듣는 귀가 많았다. 그렇기에 네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삼 황자 전하의 지혜가 돋보이던 대련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사 황자 전하의 폭풍 같은 검술도 뛰어났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공수를 전환 후 상대를 당황케 한 다음 허점을 찌르는 심계는 가히 무시무시할 정도였습니다. 만약 제가 삼 황자 전하와 같은 조건으로 저 자리에 서 있더라 할지라도 낭패를 면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드는군요.”
네페의 말은 호평 일색이었다. 그 주위에서 대련을 보고 있던 기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설마 대놓고 칭찬할지는 몰랐기에 놀란 마음이 컸다.
삼 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는 그야말로 황실의 배척을 받는 존재였다. 비록 황위 계승권을 가진 그의 권위를 무시하진 못하다곤 하지만, 현 황후를 비롯해 다른 황자와는 완전히 척을 진 상태.
네페의 말은 단순한 평가였지만, 황실을 섬기는 로열 나이츠의 기사단장이 그러한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네페는 그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레이오스가 몰래 검을 수련해 왔다는 것도, 그 재능이 다른 황자에 못지않다는 것도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아마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
온 제국을 아우르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그저 그가 받는 핍박을 내버려 두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잠잠히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레이오스는 오늘 단 한 번의 대련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비록 십 몇 년간 뿌리가 깊어진 인식과 이미지를 단숨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벽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네페는 생각했다.
“그런가.”
하지만 황제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이가 창녀의 아이라 불리던, 무능하다 손가락질 받던 모두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는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강해지는 데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하등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는 오늘 레이오스가 펼친 검술에 흥미를 느꼈다.
‘리베라가(家)의 검술은 리히테나워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숨겨진 검술이 하나 더 있지. 몇 대전, 검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던 한 사내가 창시해 냈다던 피오레류.’
리히테나워류가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m)이라 불렸다면, 피오레류는 전투의 꽃(Fiore di Battaglia)이라 불렸다.
리히테나워류를 독자적으로 개량해 다른 검술과 섞어 기존 체재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검술.
황제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전언에 따르면 그 검술은 너무나도 수준이 높은 것이기에 창시자 이후로 익힌 사람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분명 황궁 서고에도 그 복사본이 있었지.’
황제 본인도 황태자 시절 피오레류를 익히려 시도해 본 적이 있었지만, 너무나도 난해한 이론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절대적인 강함을 추구하던 그가 처음으로 벽을 느낀 것도 바로 그때였다.
자신이 익히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매달렸기에 그 형태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레이오스가 방금 펼친 검술은 분명 피오레류의 찌르기 기술인 르-펜테(Le Punte)와 흡사했다.’
그토록 갈망하고 원하던 것을 자신의 자식이 먼저 이뤘다는 것에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 오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 * *
챙-!
검과 검이 충돌하면서 퍼진 소음이 장내를 울린다. 조금 전까지 나와 아우구스가 격렬히 검을 나눴던 무대 위에서 일 황자 카리우스와 이 황자 다리우스가 격렬하게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둘의 싸움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밀하기 짝이 없는 검술을 구사하는 카리우스.
그리고 아우구스의 것은 어린애 장난이라는 듯 정말로 폭풍과도 같은 기세로 카리우스의 견고한 방어를 무너뜨리려 하는 다리우스.
마나를 잔뜩 머금은 검이 부딪힐 때마다 연회장은 그 소음이 묻힐 정도로 커다란 함성에 휩싸였다.
나와 아우구스가 대련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더 화려하고, 더 생동감이 있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파벌을 이끄는 황자를 응원했다.
일 검, 일 검에 일희일비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저건 못 이기겠다.’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우구스야 티르빙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승리를 따낼 수 있었지만,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선 두 사람의 몸놀림은 확연히 달랐다.
눈으로 좇는 것도 간신히 할 정도. 만약 그들과 마주한다면 몇 번이나 검을 받아낼 수 있을까.
거기에 두 사람의 얼굴은 전혀 전력을 다하고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반지를 뺀다면 저 둘과 동시에 싸워도 쉽게 이길 수 있다.]‘대신 너한테 잡아먹히겠지.’
귓가에 들려오는 티르빙의 말을 받아치며 나는 계속해서 대련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마지막의 그 검술…….’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우구스와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티르빙에 몸을 맡기니 배꼽 밑에 뭉쳐 있던 마나가 순식간에 빠져나감과 동시에 허공을 수놓던 화려한 검술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SYSTEM: 검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전투의 꽃(Fiore di Battaglia)]대련이 끝나니 검술을 습득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그에 상태창을 켜보니 피오레류라는 검술이 내 상태창 한쪽에 우두커니 자리했다.
[피오레류는 네 선대인 피오레 폰 리베라가 창시한 검술이다. 리베라가의 검술은 분명 리히테나워류였지? 그걸 피오레가 독자적으로 개량해 만들었다. 단점은 빼고 장점은 더하고. 완벽한 검술이 있다면 피오레류는 그 극한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지.]제가 한 일이 아닐진대 티르빙은 자랑스럽게 말해왔다. 이건 원작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레이오스도 분명 리히테나워류를 독자적으로 개량해 스스로에 맞게 썼는데.
‘소설 밖과 안은 다르구나.’
소설에 서술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쪽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는다.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사건들.
완결까지 읽은 소설에서 몰랐던 요소를 찾았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큭!”
그때, 무대 위에서 돌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카리우스의 집요한 공격에 다리우스의 기세는 점점 밀려갔고, 결국 일 검을 허용하고 말았다. 옅은 자상이 남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그가 뒤로 몸을 뺄 찰나, 심판의 역을 맡은 기사가 승패를 선언했다.
“대련 종료! 승자, 카리우스 폰 리베라!”
“…….”
다리우스는 더 싸울 수 있어 보였지만, 그 판정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대련은 목숨을 두고 싸우는 생사결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무위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표정이었다.
흘깃.
돌연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가늘어진 눈으로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조금 전과 같이 싸우는 건 무리지?’
[네가 스스로 마나를 끌어 올릴 수 있다면 모를까, 저주에 능력이 봉인된 지금은 무리다.]내 물음에 티르빙은 담담히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반지를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그녀에게 잡아먹히고 말 테니.
그럼 스스로 어떻게든 해야 하는 건가.
물론 비장의 수단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