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22)
망나니학 개론-122화(122/300)
#122
장내의 모든 이목은 나에게 집중되었다.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카리우스, 불쾌감 어린 시선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다리우스.
그리고 그 뒤로 이름 모를 엑스트라들의 놀람이 담긴 웅성거림과 함께 내 일행 쪽에서도 적지 않은 동요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이 사달을 만들어낸 성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어울리지 않는 보랏빛 눈동자. 누군가 그것을 보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난 부아만 치밀어 오를 뿐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요란하게 벌일 생각이 없었는데.’
하지만 앨리스를 노출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입단속을 잘한다고 하여도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구멍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치명적인 틈이 될 터.
‘젠장, 계획을 다 수정해야겠군.’
이곳으로 오면서 최악의 최악까지 가정했지만, 이런 전개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토록 저 성녀라는 존재가 이 모든 것을 그르쳐 버렸다.
성왕 쪽으로 시선을 보내니 그도 처음 듣는 말인 듯 적잖은 충격을 받은 눈치다. 더군다나 내가 용사라는 것에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보였다.
‘앨리스가 용사란 것은 이미 알고 있나.’
하지만 성녀가 용사에 대한 걸 대놓고 말하리라는 것과 내가 용사라고 자칭하여 나서리라는 것은 아무리 그라도 예상치 못한 것이겠지.
“…잠시 소란스러워졌군. 궁 별채에 방을 내줄 터니 자네들은 그곳에서 여독을 풀며 교류회를 준비하도록 하지.”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성왕이 수습에 나선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작이긴 했지만 카리우스는 그 말에 정신을 차렸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그러곤 일행에게 손짓하며 돌아가자는 뜻을 전했다.
바이에른 아카데미 대표 일행이 알현실을 나섬에도 모두가 이쪽을 흘깃거리는 것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스티아.”
“…알겠습니다.”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던 카리우스가 작은 소리로 나를 불러온다.
그렇지 않아도 이목이 쏠리는 와중에는 그만해 주었으면 했지만, 이제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와도 몇 가지 터놓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생겼다.
곧 성왕이 배정해 준 별채에 도착했다. 수도에서 우리가 묶던 여관도 고급에 축하는 곳이었지만, 당연히 성궁 쪽이 훨씬 더 고급스러웠다.
보통 종교를 표방하는 곳은 최소한의 재화를 제외하곤 민생의 구제를 위해 사용했지만, 성궁은 성국과 더 나아가 이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권위를 나타낸 곳. 이 정도면 내 궁과 비교해 보아도 부족하지 않을 화려함이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아카데미 대표팀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눈앞의 풍경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했다.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카리우스가 박수를 쳐 그들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자, 성왕께서 하셨던 말씀대로 이후부터 있을 교류회를 위해 각자 쉬면서 준비하도록 한다. 무슨 일이 있을 시엔 각자 대표들에게 문의하도록 해.”
간단명료하게 말을 끝낸 그는 더 무슨 말이 나오기 전에 무리를 해산한다. 나 역시 말없이 몸을 돌려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갔다.
똑똑-.
얼마 있지 않아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카리우스인가 싶어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오스티아, 들어가도 돼?”
앨리스를 비롯한 내 일행들이 날 올려다보고 있다. 문을 여니 그들은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 잡는다. 그러곤 모두 먹이를 기다리는 어미 새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앞서 있었던 알현에서 내가 용사라는 발언 때문일 터. 그것에 한숨을 쉰 나는 적당히 의자를 끌어다 그들 앞에 앉았다.
“내가 엑스칼리버를 얻은 건 다들 알고 있을 테지.”
“응.”
“그것과 별개로 이 세계엔 여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 몸에 그 증표를 가지고 있지.”
“너도 선택받았고?”
“…….”
베르너의 물음에 나는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설득하려 했던 거짓말이 이렇게 되돌아온다. 하지만 앨리스 역시 자신이 용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바. 나는 이제 그것을 바로잡고자 했다.
“아니,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 선택받은 것은 앨리스 쪽이군.”
“……!”
모두의 시선이 앨리스 쪽으로 쏠린다. 그것에 그녀는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통 선택받은 것만으로는 용사라 칭하지 않지.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여신에게 선택받았다. 다들 어릴 적에 신화나 영웅담 정도는 들어보았겠지. 앨리스는 바로 그러한 존재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면 왜…….”
왜 나 자신이 용사라고 칭했느냐.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망설임이 섞여 있는 그 목소리를 듣자니 그 짧은 사이에 온갖 상상을 한 것 같다. 내가 용사의 영광을 부러워해 그것을 가로채려는 것부터 무언가로 이용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고.
그간의 행적이 있었기에 부정하진 못했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앨리스가 용사라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애써 숨기려고 한 것 같지만. 물론 그걸 부러워하거나 빼앗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
“당신도 나와 같이 선택받은 자라고 했으니 쌤쌤이야. 그리고 나도 보험 하나쯤은 들어놓아야 했어. …그 뒤로는 말할 타이밍을 놓쳤지만.”
“그걸 탓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난 알고 있었고 너도 네 나름대로 방패가 필요했을 테니. 하지만…….”
은발에 가까운 백발을 가진 보랏빛 눈의 성녀. 그녀 한 명 때문에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엉켜 버렸다.
“지금 앨리스가 용사라는 것이 밝혀지면 안 돼. 브리튼에서, 데메드리오에서, 사우스요크셔에서, 라이프치히에서 만나봤잖아. 마인과 마족은 강해. 이때까지 운이 좋았고, 이쪽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었지만, 앨리스가 용사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들의 이목은 그녀에게 집중될 테지. 까딱하면 나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 괴물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건…….”
그 이야기에 모두 할 말을 잊었다.
아까 말했듯 모두 어릴 적에 옛 전승이나 신화 같은 건 많이 들어보았겠지. 그러니 용사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터.
“하지만 그 빌어먹을 성녀가 모든 걸 그르쳤지. 할 수만 있다면 그 웃는 낯짝을…….”
마음 같아선 그녀의 얼굴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성녀 역시 앞서 있을 마계와의 싸움에서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인물.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없다.’
“…그러면 왜 성녀가 그런 말을 꺼낸 걸까요? 아까 보니 다른 이들도 몰랐던 것 같던데. 아직 어려서 실언을 한 걸까요?
레이이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성녀는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더 영악할 것이다.
‘나이도 우리와 한 살밖에 어리지 않고 말이야.’
앨리스가 용사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면 세간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관심도가 올라가면 위험해질 것은 당연해졌고, 성국이 그녀가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겠다는 입장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쉽게 말해 내 퇴로를 끊어버리려 한 것이었다.
“이미 이쪽에 대한 조사를 다 끝냈나 보군. 그리고 성국에서 성녀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모양이야.”
성왕의 손녀딸이라는 위치에다 성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성국에선 그야말로 성왕 다음가는 위세를 가질 터.
아까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성왕과 고위 주교들이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파한 것을 모아 오냐오냐 키워온 듯했다.
똑똑-.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이번에야말로 카리우스인가 싶어 문을 여니 백색 갑주를 입은 기사 한 명이 문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팔라딘 아이온입니다. 성녀께서 점심 만찬에 초대하셨습니다. 모쪼록 시간이 되시면 참여해 주시길.”
아이온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지만, 그 눈동자엔 거부를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난 그 태도보다 그의 말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팔라딘씩이나 되는 인물을 고작 전령 따위에 쓰다니.’
팔라딘은 쉽게 말해 성국의 소드 마스터라고 보면 되었다. 신앙심이 투철할 뿐만 아니라 지닌 무위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괴물.
반드시 날 데리고 오라고 했는지 그의 전신에선 은은한 기세가 퍼져 날 압박한다. 그것에 난 코웃음을 치며 내 기세를 흩뿌렸다.
웅.
문을 사이에 두고 인간을 초월한 두 명의 기세가 맞부딪힌다.
아이온은 설마 내가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올랐는지 생각지도 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기세에서 밀려 한 발자국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
소드 마스터에도 격이 있다.
즉, 이미 한 번의 각성을 이룬 나에겐 일반 팔라딘이나 평범한 소드 마스터는 적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밀려난 것을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그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다시금 제 기세를 힘껏 피어 올린다.
난 그것을 마주하지 않고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성국의 팔라딘은 예의가 없군.”
“…….”
주인의 명령보다 제 호승심이 먼저냐는 그 비아냥거림에 아이온은 작금 상황을 깨달았는지 순식간에 기세를 지우며 다시금 얼굴을 붉힌다. 그러곤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다만, 성녀께서 정말로 만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팔라딘씩이나 되는 인물이 매달리며 간곡히 부탁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썩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난 안쪽에 있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난 잠시 갔다 오도록 하지. 대략적인 것은 앨리스에게 일러놓았으니 그녀가 설명해 줄 거다.”
앨리스는 이곳에 오는 동안 마차에서 양피지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그러니 자세한 것을 전달하는 것은 그녀에게 맡기고 나는 아이온의 뒤를 따랐다.
“…….”
성궁의 복도를 걷는 동안 아이온은 내 쪽을 향해 슬쩍슬쩍 시선을 보낸다. 제 딴엔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 같지만, 뻔한 모습이었다.
“팔라딘이니 내 신분은 알고 있겠지.”
“…예, 레이오스 전하.”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소드 마스터에 이르렀으리라 생각은 하지 못했을 터.
아이온은 성국의 최연소 팔라딘이었다.
성녀를 흠모하며 그녀의 곁에서 수발을 드는 강자. 하지만 그보다 족히 열 살은 더 어린 내가 자신에 비견될 만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그는 두 번의 실수는 없다는 듯 제 임무에 책임을 다했다.
똑똑.
“성녀님, 팔라딘 아이온이 레이오스 전하를 모시고 돌이왔습니다.”
별관에서 중앙으로 이동한 우리는 커다란 문 앞에 섰다. 그 뒤로 아이온이 노크하자 천천히 열리며 안이 드러났다.
새하얀 벽으로 십자가나 성국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황금빛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커다란 탁자 위로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아.”
손수 차린 것인지, 아니면 그러는 척을 하려는 것인지 접시를 세팅하고 있던 성녀는 우리의 등장에 고개를 들고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레이오스 전하,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성국에 오셔서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그러곤 제국 귀족의 인사법으로 치마 양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온다. 만약 페트라나 앨리스가 그런 식으로 했다면 귀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이중적인 성격을 알고 있는 그녀가 그리하자 살짝 가증스러움까지 느껴졌다.
“불편한 점이라…….”
난 그 말을 곱씹으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녀는 그것을 악수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지만, 난 그대로 엑스칼리버를 소환해 그녀의 목을 베었다.
캉-!
날카로운 고성이 장내에 울려 퍼진다. 엑스칼리버는 아쉽게도 제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그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우릴 지켜보던 아이온이 어느샌가 검을 뽑아 내 공격을 막아낸 것.
하지만 찰나 간 일어난 일이라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한 것인지 엑스칼리버 끝에 닿은 그녀의 목에 새빨간 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이 무슨……!”
아이온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성국의 성녀여.”
그것은 성녀 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부닥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것에 나는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죽고 싶은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