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29)
망나니학 개론-129화(129/300)
#129
“…아가레스?”
그 낯익은 이름에 나는 입을 벌렸다.
녀석은 지옥 대공 알로켄, 마계 공작 그레모리와 마찬가지로 마계에서 군주로 군림하고 있는 지고의 존재 중 한 명이었다.
지금 이곳은 성국의 중심은 성궁의 한복판. 그것도 성왕과 성녀, 대주교와 팔라딘들을 비롯해 수많은 성직자가 함께하고 있는 자리였다.
아직 마계와의 게이트가 연결되지 않은 이상, 어느 고위 마족이라 할지라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인 곳일 터.
하지만 아가레스는 주변에 있는 이들은 일체 신경 쓰지 않은 채 오직 나에게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피눈물로 범벅이 된 녀석의 눈동자가 이내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마치 뱀눈처럼 찢어진 샛노란 눈동자가 생겨나 진한 마기를 흩뿌리며 내 몸을 옭아맸다.
웅웅.
손에 들린 엑스칼리버가 신성력을 뿜어내며 아가레스의 억제력에 저항한다. 하지만 녀석은 앞서 만났던 두 고위 마족보다 더 강대한 힘으로 날 억눌러 왔다.
“대체……!”
나는 땅을 박차 뒤로 물러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가레스가 빙의한 몸은 분명 팔라딘의 것이었다.
그를 쓰러뜨릴 수 있었겠지만, 저만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던 몸에 빙의하는 것은 아무리 고위 마족이라도 힘든 일일 터. 하지만 녀석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마치 그 본체가 현현한 것 같은 위압감을 내뿜었다.
우우우웅-.
주위에 있던 이들이 나섰는지 연무장 주위에 수십 개의 십자가가 떠오른다. 새하얀 빛을 내는 그것들은 아가레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찍어 눌렀다.
“놈!”
그리고 그 가운데, 성왕을 비롯한 수많은 팔라딘이 연무장 위로 올라선다. 대주교와 추기경들을 비롯한 사제들은 그 뒤로 신성의 주문을 외우며 아가레스의 마기를 억누르는 데 박차를 가했고, 그렇게 전세가 기우는가 싶었다.
[귀찮은 날파리들이.]사방에서 들어오는 방해에 날 바라보고 있던 아가레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지?’
하지만 그는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상황은 이미 절대적으로 이쪽이 유리하다. 그의 본체가 이 자리에 현현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고작 빙의한 몸 가지고는 여기 있는 전부를 상대할 순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순간 그 몸째로 소멸시켜주마, 사악의 주구여.”
[당대의 성왕인가.]아가레스는 자신 앞에 나선 그들을 보며 크게 웃었다.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어린 성왕이여. 이 아가레스는 세상이 창조됨을 함께했다. 여신의 축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인간은 결국 하찮은 필멸자. 그런 존재들이 내 소멸을 논하는가.]“뚫린 입이라 잘도 지껄이는군.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을 사로잡아 성국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
성왕의 말에 호응하듯 팔라딘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선다. 아가레스는 그들을 보곤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라면 이 몸으로 뭘 할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만.]그는 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시커먼 뭉치같이 돼 있는 그 물체의 모습이 익숙한 것이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았다.
‘악마의, 씨앗이라고 했던가?’
라이프치히를 습격했던 마인 중 한 명, 이사벨이 자신의 가슴에 박아 넣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파바바박-!
난 지체하지 않고 땅을 박찼다.
이사벨 때 역시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그녀의 몸을 이등분했으나, 이미 악마의 씨앗은 그 가슴에 파고든 후였다.
그 뒤에 있던 성왕과 팔라딘들이 내 급발진에 두 눈을 크게 뜬다. 아가레스 역시 다른 손을 들며 시커먼 마기를 뿜어 내 접근을 막았지만, 나는 이때껏 아끼던 힘을 가득 담아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다.
“절(切)-.”
검성류 오의 절(切).
내 검에서 터져 나온 눈부신 일섬에 아가레스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자신의 앞에 검은 벽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절(切)은 대상을 공간째로 베어버리는 오의. 사용하기 어려운 검술이었지만, 그 위력만은 확실했다.
저저적-!
어지간한 오러 블레이드도 버틸 강도로 보이는 그것은 순식간에 파괴되어 산산이 조각난다. 난 그대로 몸을 던져 아가레스의 목을 베어냈다.
서걱.
원래는 성국의 팔라딘 중 한 명이었을 그의 목이 잘려 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미 신체는 마기에 잠식당한 지 오래라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목을 잃은 신체 역시 얼마 있지 않아 연무장 위로 쓰러져 내린다. 나는 그 바로 앞에서 엑스칼리버를 든 채 한동안 그것을 경계했다.
이사벨처럼 가슴에 악마의 씨앗을 박아 넣진 않았지만, 아가레스 정도 되는 고위 마족이면 어떤 수를 써올지 모른다.
“시신을 회수하라.”
하지만 얼마가 지나도 그것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그가 가지는 위명을 생각하자면 허무할 정도의 결말이었지만, 앞서 있었던 사건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러면 순례자의 길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팔라딘과 사제들이 아가레스의 시신을 경계하고 성기사들이 그것을 조심스레 회수한다. 난 그 뒤로 아직 연무장에 올라서 있는 성왕에게 물었다.
“…….”
그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의 일로 장내엔 술렁임이 가득했다.
애초에 순례자의 길도 갑작스럽게 진행된 행사였다. 거기에 갑작스럽게 거대한 마기를 가진 존재가 나타났으니. 성왕을 비롯해 성국의 고위 귀족들이 자리하지 않았더라면 패닉 상태에 빠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
“원칙상으론 중지해야 함이 옳다만, 상황이 특수하지 않나.”
“그러면.”
“성국은 남의 공을 폄하하지 않는다네. 자네는 마계의 군주 중 한 명인 아가레스를 쓰러뜨렸어. 비록 그것이 빙의체라 할지라도.”
하지만 그렇게 말해오는 성왕의 얼굴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레스가 빙의한 몸은 성국의 팔라딘, 그것도 손에 꼽히는 강자였으니.
“…다행히 자네는 지금 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네. 이 점을 적극적으로 선전한다면 마인이나 마족에 대한 경각심을 더 새길 수 있겠지.”
“여신의 눈물은 그러한 대가라는 건가.”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나. 우리도 최대한 자네를 돕겠네.”
그것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이 내 이름을 이용하건, 어찌 되었든 지금 중요한 것은 페트라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용사란 이름으로 주목을 받는 것쯤이야 백번 감수하고도 남을 일.
“일단 이 자리를 수습하는 것으로 끝내지. 보는 이목이 너무 많아. 큰 계획을 위해 양 국의 아카데미 학생들을 참관시켰다만,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된 것 같군.”
그 말엔 나 역시 동감이었기에 같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 어어?”
“뭐, 뭐야.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내 검에 목이 베인 팔라딘의 시신을 수습하던 성기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부터였다.
“……?”
나와 성왕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을 향한다. 그러자 시신을 수습 중이던 성기사 중 한 명이 눈과 코에서 새빨간 피를 흘려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성기사는 곧 회수했던 악마의 씨앗을 손에 든다. 그러곤 목이 베인 팔라딘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막아!”
아가레스든 그 휘하 마족이든 누군가가 그 성기사의 몸에 또다시 빙의한 것일 터. 내 외침에 주위에 있던 팔라딘들이 성기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캉-!
성기사 역시 검을 뽑아 그것을 막았지만, 애초에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런 그가 행한 것은 팔라딘의 시신을 향해 몸을 날린 것. 그 돌발 행동에 그 앞을 막아세운 팔라딘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빙의된 성기사의 목이 잘려 나가 연무장 위로 시뻘건 피를 흩뿌리며 굴러간다. 그것에 검을 휘두른 팔라딘은 소리 없는 신음을 내뱉었다.
하루 만에 성궁에서 두 명의 성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마족에게 빙의를 당해서.
체면도 체면이었지만, 무고한 목숨이 희생당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터.
“…씨앗, 씨앗은?”
난 그것보다 먼저 죽기 직전까지 성기사의 손에 쥐여 있었던 악마의 씨앗을 찾았다. 하지만 연무장 바닥을 샅샅이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쿵.
“…….”
그때, 알 수 없는 진동이 바닥을 울린다. 아가레스가 내 검에 쓰러진 이후 양국의 아카데미는 성기사들의 인도 아래 빠져나간 후, 남아 있는 것은 성국의 관계자들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바닥에서 느껴지는 그 진동에 자리에서 멈춰선 채 한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씨발.”
클리셰의 법칙이 발동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개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기사의 손에 들려 있던 악마의 씨앗은 어느새 목을 잃은 팔라딘의 시체의 가슴팍에 놓여 있었다.
파바바박-!
시커먼 촉수들이 악마의 씨앗에서 솟구친다. 그것들은 옷을 헤치고 가슴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그곳에 자리잡았다.
일순간의 정적.
장내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을 때, 누군가의 턱에서 식은 땀 한 방울이 연무장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파아아아아앗-!
“피, 피해!”
거센 마기의 폭풍이 목을 잃은 팔라딘의 중심으로부터 휘몰아친다.
근처에 있던 팔라딘들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겨우 그것에서 빠져나왔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성기사나 사제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아들어 썩고 부패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내렸다.
“젠장!”
그 광경을 본 성왕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온다. 그를 비롯해 사제들이 황급히 신성력을 활성화해 마기에 대항했지만, 이미 두 자릿수에 이르는 성기사가 그 폭풍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마기가 신성력을 밀어내다니.”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말을 잃었다. 아무리 아가레스의 힘이 강력하다곤 하나 이쪽은 마계의 대척점인 성왕을 비롯해 팔라딘과 고위 사제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해일처럼 밀고 들어오는 아가레스의 마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막아! 죽을 각오로 신성력을 짜내라!”
팔라딘이 제 검으로 마기를 베어 가르며 소리친다. 만약 이 자리에서 이들이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참사가 따로 없다. 그것에 나 역시 엑스칼리버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자네는 이대로 돌아가도록 하게. 곧 있으면 소란을 눈치채고 성기사단이 올 터.”
“아니, 건네준 자료에 있듯이 아가레스가 자신의 가슴에 심은 것은 악마의 씨앗이라 불리는 것이다. 라이프치히에서 그걸 제 가슴에 심은 마인은 순식간에 힘이 몇 배로…….”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기의 폭풍 속에서 새하얀 손이 불쑥 솟구친다. 그것은 제일 앞에 있는 팔라딘의 목을 붙잡았다.
“컥! 감히……!”
그는 제 검에 가득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 올리며 그것을 베어내려 했지만, 이내 그 강력한 힘에 마기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바마!”
다른 이들은 마기를 막느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그것에 나는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결계를 벗어나면 안 돼!”
성황이 다급한 음성으로 경고해 왔지만, 이 이상 팔라딘을 잃는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엑스칼리버와 더불어 반대편 손을 내밀며 영창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꽃]!”
시퍼런 성화가 내 몸을 휘감는다. 나는 그대로 마기 폭풍 속으로 몸을 던졌고, 그 안에서 아가레스에게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인 팔라딘 바마의 목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흡!”
나는 그대로 뒤쪽을 향해 그를 던졌다. 마기의 영역 너머로 빠져나간다면 그 뒤는 성기사들이 알아서 해줄 터.
[또 네 녀석인가.]잘려 나간 목 위로 시커먼 기운이 뭉쳐져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마 아가레스의 본래 모습일 터.
녀석은 날 향해 위협하듯 입을 쩍 벌린다. 수십, 수백 개의 이빨이 꿈틀거리며 금방이라도 나를 물어올 찰나, 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이 피어오른 엑스칼리버를 괴물처럼 찢어진 아가레스의 입에 찔러넣었다.
“이거나 처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