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51)
망나니학 개론-151화(151/300)
#151
바포메트.
이단의 악마.
성실한 자의 발목을 붙잡고,
신실한 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마계 72군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혼자의 힘만으로 그들과 대적할 수 있는 강함을 가진 고대의 존재.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친다. 녀석의 기원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 그리고 어째서 그런 녀석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언제까지고 생각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바로 눈앞에 시퍼런 화마가 나를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으니까.
‘씨팔.’
온몸에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두르고 엑스칼리버의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척에 이른 화마의 기운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고대 악마가 사용하는 불꽃이니 필시 평범한 것이 아닐 터. 잘못하다간 대응할 새도 없이 한 줌의 재가 될 수도 있었다.
판단을 내려야 했다.
지금이라도 공격을 무르고 뒤로 물러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피해를 감수하고 이대로 공격할 것인지.
스무 명에 달하는 소드 마스터의 목숨을 대가로 소환된 바포메트.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인지 현세로 강림한 것은 아직 팔 한쪽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검성의 공격을 막아내고 나를 압도하는 기세를 내뿜는다. 만약 그 몸이 더 나오기라도 했다간 검성을 제외하고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게 될 터.
‘한 번 죽자.’
나는 끝끝내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이쪽엔 불가시의 가호가 있다. 신성 왕국에서 원래 상태로 되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파아아앗-!
엑스칼리버 위로 눈부신 빛이 타오른다. 그것은 마기의 운무를 넘어 그 안쪽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려던 바포메트의 몸에 직격했고, 그 거체가 들썩이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
내 혼신을 담은 일격은 고작 녀석이 한 걸음 물러나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직후,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열하는 화마는 내 전신을 집어삼켰다.
웅웅-.
그와 동시에 항시 목에 착용하고 있었던 아킬레스의 목걸이가 빛을 발한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뒤에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에 잊고 있었던 그것은 제 주인의 위기를 느꼈는지 스스로 발동하며 내 몸 위로 시퍼런 황금빛 갑주를 덧씌웠다.
치이이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킬레스의 갑주는 마치 종잇장에 불을 붙인 것처럼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귓가에 삑삑 울리는 경고음과 함께 상태 창에 여러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곧 발동했을 때처럼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고, 내 몸 위로 지옥의 불꽃이 옮겨붙었다.
“…끄아아아아아아-!”
곧 프로메테우스의 불꽃과 엑스칼리버의 신성력이 뚫리고 내 살 위로 끔찍한 고통이 내리 앉는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중 그러는 탓에 나는 제대로 착지하지 못한 채 온몸에 불꽃이 붙은 채로 바닥을 굴렀다.
눈물이 절로 나온다. 살은 순식간에 불타 녹아내리고 뼈가 허물어진다. 혀를 깨물었지만,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너무 큰 탓에 머릿속엔 그것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오스-!”
근처에 있던 페트라가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며 다가온다.
불꽃이든 뭐든 신경 쓰지 않고 붙잡아 올 것 같은 그 모습에 나는 마지막 이성을 쥐어짜 비명을 멈추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오, 지마-!”
그 말에 그녀의 뒤를 따르던 실비아 역시 멈추어 선다. 엑스칼리버의 신성력은 성녀의 것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위로 피어올라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은 앞서 싸웠던 마계 공작들을 몇 번이나 몰아세웠던 성화(聖火)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바포메트가 뿜어낸 지옥의 불꽃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이 불꽃을 꺼뜨릴 방법은 없다는 소리였다.
“씨-팔-!”
나는 엎드린 채 절규하며 차라리 빨리 죽기를 소망했다.
[마스터…….]내 생각을 읽은 리버는 처절한 울음을 터뜨리며 날 보호하던 신성력을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의 신체는 생명의 위기를 느끼곤 저항력을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린다. 그것에 느껴지는 고통은 배가되었다.
나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바닥을 더듬으며 검을 찾아 헤맸다.
툭.
그러던 차, 질퍽한 무언가가 떨어진다. 동시에 시야 오른편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눈동자가 녹아내려 결국 흘러내린 듯싶었다.
콰아아아아앙-!
다만, 그 반대편으로 보이는 광경에 나는 살짝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벌어준 한순간의 틈에 검성은 본격적인 공세로 들어갔다.
마기의 연무는 더욱 커진 채 안쪽과 이어진 구멍은 더 넓어졌지만, 검성의 맹렬한 공세에 한 발자국도 그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툭.
다만, 그사이 내 몸은 거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해졌다. 하나 남은 눈은 이제 뜨이지도 않았고, 팔다리 끝에서 느껴지던 참혹한 고통은 이제 무감각해졌다.
나는 불가시의 발동을 기다리며 죽음을 기다렸다.
촤르륵.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차가운 무언가가 내 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
시각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래다. 남은 것은 희미하게 들리는 청각과 고통이 혼재된 통각뿐.
그 차가운 무언가는 내 몸을 불태우던 불꽃을 식혀준다. 그 직후 들려온 희미한 목소리에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붙잡았다.
“참혹한 꼴이네. 원래는 마지막 날 참여해서 얼굴만 슬쩍 보고 가려 했는데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나는 입을 열어 그녀의 이름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타버린 혀는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제 원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그것에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엘릭서 가지고 있지? 이쪽은 마지막 한 방울인데, 나중에 그걸로 받을 테니까.”
곧 등 뒤로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무언가가 한 방울 똑 떨어진다. 그것은 크리스가 가지고 있을 터인 엘릭서일 터.
다행히 지금 나는 아공간 주머니를 가져오지 않았다.
연회를 위해 저택에 있는 금고에 그것들을 보관해 두었던 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다.
만약 나와 같이 지옥의 불꽃에 당했더라면 엘릭서는 허무하게 증발하고 말았을 터다.
조금씩 손발의 감각과 함께 시야가 돌아온다. 그것에 유리병 같은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깨어져 나간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녀는 몸을 돌려 검성과 바포메트가 싸우는 곳으로 걸어갔다.
[마스터, 지금부터 저도 마스터를 회복시키는 데 집중할게요.]리버는 울음기 어린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해온다. 곧 내 몸 위로 은은한 신성력이 서리며 엘릭서의 서늘한 기운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레이오스, 레이오스! 정신 차려요!”
누군가가 나를 품에 안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에 나는 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아직 그쪽은 회복되지 않았는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윽고 눈이 조금이나마 회복된 것인지 흐릿한 시야라도 돌아오자 얼마나 눈물을 흘린 것인지 얼굴의 화장 전체가 얼룩져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있는 페트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이 엉망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것도 예쁘네.”
회복되어 가는 성대가 가래가 들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어낸다. 그 기괴한 소리에 슬쩍 얼굴을 찌푸리자니, 페트라가 우는 듯 웃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웅웅웅.
그 옆에 자리한 실비아는 아무 말 없이 내게 두 손을 댄 체 치료를 시작한다. 다만, 그녀도 걱정해 준 것인지 페트라만큼은 아니어도 두 눈가가 벌겋다.
쾅-! 콰아아앙-!
몸이 절로 들썩이는 충격에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눈을 움직이니 저 앞쪽에서 검성과 크리스가 함께 바포메트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아무리 고대 악마의 현신이라 하더라도 인간계 세계관 최강자급 두 명이라면 상대하기 힘들 터.
‘다행이다.’
나는 한 번 죽은 뒤, 다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한 다음 다시 싸우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를 보니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판단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 조금만 잘게.”
긴장이 풀리자 한계를 넘어 소모된 심력 때문에 수마가 쏟아진다. 그런 내 말에 페트라는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쐐애애액-!
검성의 검이 빛을 발한다. 고작 일 격만으로 두 자릿수의 소드 마스터를 도륙 낸 검이었지만, 그것은 바포메트의 시퍼런 팔에 고작 생채기 하나 남기는 것에 고쳤다.
“쯧.”
천천히 땅에 내려선 검성은 혀를 찼다.
전력을 다해 퍼붓고 싶었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도 걸릴뿐더러 바포메트의 몸이 연무 안쪽에 있는 탓에 결정타를 먹일 수 없었다.
제대로 싸우려면 그의 몸이 이곳에 현신해야 할 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이가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골라선 안 되는 선택지였다.
‘제일 좋은 것은 저 통로를 없애는 것이지만.’
바포메트는 검성이 그것을 베어낼 찰나면 격렬하게 방해를 해왔다. 그렇기에 의미 없는 공격을 서로 주고받으며 소모전만 계속되고 있을 뿐.
“…….”
잠시간 소강상태가 벌어진 틈을 타 검성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레이오스에게 향했다.
그의 온 힘을 다한 일격 덕분에 바포메트가 이곳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꽈아악.
전신이 타들어 가며 절규를 내뱉던 제자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저것은 필시 지금 치료하기에 버거운 상처가 될 터.
보통 저러한 종류는 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면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검성은 제 검을 다시 꽉 부여잡으며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눈앞의 바포메트를 빨리 쓰러뜨리고자 마음먹었다.
“……!”
그때, 지금껏 없었던 강대한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진다. 동시에 제자의 입에서 새어 나왔던 절규가 멎었고, 그 몸을 태우던 불꽃이 잦아들었다.
“…꼴사납네, 이 정도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줄이야.”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검성은 나지막한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뭐라 할 말이 없군.”
정말로 면목이 없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계획한 작전이었지만, 두 번이나 실책이 나왔다.
“…바포메트인가. 옛 문헌에서 그 기록을 읽은 적은 있지만, 설마 정말로 실존하는 악마일 줄은 몰랐네.”
마기의 연무 안에서 보이는 존재의 모습을 확인한 크리스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그것에 검성은 희망을 담아 물었다.
“저걸 쓰러뜨릴 방법은 있는가?”
“없어.”
하지만 그 즉시 나온 대답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신과 내가 전력을 다한다면 쓰러뜨릴 순 있겠지. 하지만 둘 다 큰 상처를 입겠지.”
검성은 그 말에 그녀가 왜 없다고 한 지를 깨달았다.
크리스는 자신들의 종족을 말살시킨 마룡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비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그 비원에 지장이 가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하지만.”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서포트해 달라.
검성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 크리스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쓰러뜨리진 못해도 쫓아낼 방법은 있지.”
“…그럼.”
“그래, 그러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바포메트 쪽을 가리킨다. 그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몸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