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55)
망나니학 개론-155화(155/300)
#155
날이 밝자마자 내 방으로 한 무리 인영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처음엔 앨리스를 비롯한 그 일행인 줄 알았지만,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검성과 크리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얼굴을 빼꼼 내미는 실비아의 얼굴에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아침부터 남의 방에…….”
밤사이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하며 뒤척였기에 머리는 사정없이 헝클어져 있었고, 세수조차 하지 않아 얼굴은 지저분할 터다. 하지만 검성은 내 말에 코웃음 치며 답했다.
“여기가 왜 네 방이냐. 내 저택이지.”
“그건 그렇지만 말이죠…….”
왜 대낮부터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모인 것인지 의아한 시선을 보내자 크리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연한 녹색의 기운이 내 몸을 훑으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일단 괜찮은지 검사야. 엘릭서로 회복했다지만, 바포메트급의 마족에게 당했으니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곧 검사가 끝났는지 가벼운 한숨을 내쉰다. 그러곤 실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적으로는 문제 될 건 없어.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며칠 이내로 회복될 거야. 마스터의 신체가 끈질긴 건지, 엘릭서의 효능이 뛰어난 건지 하루 만에 거의 멀쩡해졌네.”
“그럼 이번엔 제가 실례할게요.”
실비아가 은은한 빛이 어린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아온다. 그러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프신가요?”
“바늘로 찌르는 정도는.”
“접촉면만 그러시나요, 아니면 그 주위도 그러시나요?”
“손만 아니라 전신을 쿡쿡 찔러대는 것 같은데.”
“음…….”
실비아는 잠시간 침음성을 흘린다. 그러곤 제 가방을 뒤적거리며 포션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성수예요. 쭉 들이켜세요.”
“성수를?”
몸이 따끔거리긴 하지만, 크리스의 검사에도 별 이상이 없지 않았나. 하지만 실비아는 반론은 받지 않겠다는 엄한 얼굴로 내 손에 포션을 강제로 쥐여주었고,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이켰다.
“…….”
성수는 달콤한 딸기 맛이었다.
겉보기에 살짝 푸른색이라 예전에 황궁에서 마셨던 요정의 눈물처럼 소다 맛 계열일 걸로 예상했는데, 한 입 마시자마자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
실비아는 굳은 표정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하면서도 끝내 포션을 전부 비워냈고, 입가를 닦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딱히 뭐가 치유되는 감각은…….”
딸기 맛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무언가 이질적인 감각이 솟구친다. 그와 동시에 나는 속에서부터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무언가를 토하듯 뱉어냈다.
“…우웨에엑-!”
시뻘건 피가 이불 위로 뚝뚝 흘러내린다. 그것은 밑에 있던 양탄자까지 붉게 물들였고, 이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손끝이 덜덜 떨린다. 고개를 들자 검성과 크리스 역시 놀란 표정이기는 마찬가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실비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피투성이가 된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역시나군요. 바포메트라고 했나요? 그 정도 악마에게 직격당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었으니 정상일 리 없죠. 설사 육체는 멀쩡해 보일지라도 그 영혼은 마기에 감염된 상태에요. 이건 마법으로도 판별할 수 없으니 저분께서 감지해 내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죠.”
“영혼이 마기에 감염되었다고?”
나는 조심스레 가슴을 쓰다듬었다. 앞섬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몸엔 엑스칼리버가 자리하고 있지 않았나.
그것은 소유한 것만으로 온갖 항마의 능력을 지니며 주인의 몸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내가 그것을 떠올리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실비아는 살짝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리버, 라고 했나요, 그녀의 이름이.”
“그래.”
“바포메트와의 싸움 이후로부터 말이 없었죠. 당신이 깨어났으면 한 번쯤은 이야기를 걸어올 만한데.”
“…그건 그렇긴 한데.”
속으로 리버를 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실비아가 조심스레 말해왔다.
“아마 당신의 영혼을 잠식한 마기를 막아내느라 그러는 걸 거예요.”
“…육체는 회복됐지만, 안쪽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죠. 몸이 회복되시면 평상시처럼 움직이시는 건 상관없겠지만, 그 상태에서 또 마기의 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실비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해 온다. 그것에 나는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큰 고비를 하나 넘겨 이제 조금 쉬어볼까 하는 때에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히다니. 그녀가 말하는 어투를 보니 이것을 치료하는 데는 또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어중간한 신성력으로는 택도 없어요. 아마 방학 내내 제가 붙어서 치료해야 할 것 같네요.”
“방학 내내?”
“네. 반론은 받지 않을게요. 지금 당신은 표면적으로 본국과 밀접한 위치에요. 비록 거짓으로 용사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다곤 하나, 당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저희 위신에 금이 가니.”
“말은 참.”
조금 친절하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냐는 뜻으로 한숨을 내쉬자니 그녀는 어림도 없다는 뜻으로 콧방귀를 낀다. 대충 상황이 정리된 듯했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우두커니 서 있는 두 인영을 바라보았다.
“대충 제 상태가 이렇답니다.”
“…뭐, 그정도면 훈장으로 적당하겠지.”
검성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악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조금 연구가 필요할 것 같네.”
크리스 쪽은 잠시 침음성을 흘리더니 나중에 다시 오겠다며 몸을 획 돌려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이 보면 조금 매몰찬 태도였지만, 애초에 인간과는 다른 종족으로 사고 자체가 다르다. 기다리고 있으면 기막힌 타이밍에 다시 나타날 테지.
“그래서, 이제 어떡할 것이냐.”
검성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회합은 이틀째로 파국에 이른 상황. 여기서 더 무엇을 할 수 없기에 검성은 올해 회합을 종료하고 나중을 기약했다고 말했다.
“여차하면 연말쯤 회합이 아니라 파티 형식으로 초대를 보내면 되겠지. 뭐, 어차피 본 회합 역시 별로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고는 내 어깨를 팡팡 쳐왔다. 그것에 난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내 어깨를 매만졌다.
“저는 제 영지로 돌아갈 겁니다. 이번 일로 깨달은 것도 있고, 다른 이들의 수련을 봐주기로 했으니까요.”
“수련이라면 이곳에서도 봐줄 수 있을 터만?”
“조금 특별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호오?”
그것에 검성은 호기심을 보였지만, 나는 씩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기업 비밀을 순순히 알려줄까 보냐.
“…일단 다른 사람들이 보면 걱정할 것 같으니 이거나 빨리 정리해야겠네요.”
그러면서 피투성이가 된 이불을 가리킨다. 비릿한 냄새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 그냥 버리는 것이 나을 듯싶다. 다른 이들이 보면 또 뭐라고 귀찮게 굴 테니 빨리 처리하는 것이 낫겠지.
* * *
점심쯤 나는 일행과 함께 내 영지로 향했다.
다들 별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지만, 은연중에 느껴지는 분위기가 별로 좋지 못했다.
‘베르너 때문인가.’
그들에게 나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고, 앨리스와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니.
그것에 그쳤다면 나중에 화해하면 그만이었지만, 떠나기까지 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일 터.
일단 그 문제는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조차 어떻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찜찜한 기분을 안은 채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페트라를 제외하곤 내 영지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전부 나지막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브리튼처럼 고풍스럽지 않았고, 사우스요크셔보다 세련되지 못했고, 라이프치히같이 힘 있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특색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 이 땅의 전부가 당신 거라는 소리야?”
앨리스 쪽은 두 눈을 반짝이며 도시 구경을 하기 바빴다.
저택에 다다르니 베르온이 앞으로 나선다. 돈까지 적당히 쥐여준 탓인지 전보다 더 정갈해진 모습에 나는 절로 흡족한 미소가 나왔다.
“참, 아들이 자네 일을 물려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아도 아카데미에서 퇴직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원래 대리 역할은 제 대에서 끝날 예정이었던지라 다른 아카데미 쪽에서 행정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아마 며칠 내로 자리를 정리하고 이곳으로 올 것 같습니다.”
“말했던 대로, 관리는 맡기지.”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채 베르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곧 일행과 가볍게 식사를 한 뒤, 나는 모두를 연무장에 불러모았다.
페트라, 앨리스, 레이시스, 엘리시아, 유리아, 그리고 손님으로 온 실비아까지.
자리에 없는 마리아와 디아크에게는 서신을 보내놓았다. 조금 멀리 간 것 같던데 보름 내로만 오면 된다고 연락을 남겨놓았으니 늦지는 않겠지.
“다들 알겠지만, 베르너는 떠났다.”
나는 일단 그 소식을 먼저 전했다.
이미 대부분 짐작하고 있었던 듯 동요는 적었다. 다만 침중한 표정을 지었을 뿐. 앨리스에 이르러선 살짝 심기가 불편한 듯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찼다.
“아카데미에서 말했듯 난 너희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능력을 입증해야겠지.”
그 말엔 유리아가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들은 착실하게 성장해나가는 반면, 그녀 혼자만이 아직 제자리걸음에 불과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번 방학에 각성시켜 주마.’
원래는 조금 더 두고 볼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마족과 마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고 본격적으로 나선 이상 유리아의 능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회합 때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이번 방학을 너희들의 성장에 쓸 예정이다. 베르너의 경우는, 아쉽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곤 그들 앞에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 놓았다.
끼이익.
거친 소음과 함께 그것이 열린다. 그러자 수북이 쌓인 영약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의 입이 모두 벌려졌다.
신체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부터 마나의 절대량을 늘려주는 희귀한 것까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만한 영약을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난 돈만 많은 것이 아니었고, 권력이나 연줄 쪽으로도 최상급에 있었다.
거기에 오래전부터 내 궁에 잠들어 있던 것들까지 싹 쓸어 왔으니, 그 양과 질은 의심할 것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이것들을 사용할 생각을 했으면 더 쉽게 성장했겠지.’
살짝 아쉬움이 들었지만, 소드 마스터에 이른 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이들의 성장에 투자하는 편이 더 좋게 먹히겠지.
“저, 정말 이런 걸 받아도 될까요?”
레이시스와 엘리시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온다. 그것에 난 씩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나중에 갚아.”
공짜로 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것이 투자라는 것을 말해주자 그녀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결심을 하는 듯 보였다.
“뭐, 나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도움이 됐으니까.”
앨리스에 이르러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것들을 입에 욱여넣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한창 강해지고 싶다는 의욕이 충만한 그녀다. 이런 기회를 놓치진 않겠지.
“…….”
다른 이들이 모두 영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 유리아만이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인다. 그것에 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리아, 넌 보류다.”
“…네.”
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난 그런 뜻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 이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영약들은 네가 각성한 이후에 먹는다.”
“…각성요?”
“그래, 각성.”
모든 마족과 마인과 마법사들의 카운터.
침묵의 마도사.
그 첫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게 도와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