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57)
망나니학 개론-158화(158/300)
#158
황실에서 전령이 왔다는 소리에 나는 대련을 중지했다.
어차피 앨리스를 제외하고 제대로 서 있는 이도 없었고, 그녀 본인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기에 전령이 왔다는 소리를 반기는 눈치였다.
“그러면 여기까지 할까.”
“응, 난 더 할 수 있는데 황실에서 전령이 왔다면 어쩔 수 없지 뭐.”
검을 거두자 그녀는 씩 웃으며 나를 배려해 주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그것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니 앨리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쓰러진 레이시스의 신형을 들쳐 메고는 다른 이들과 함께 짧은 걸음으로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참나.”
실소를 지으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페트라가 슬쩍 손을 흔들어준다. 그것에 고개를 끄덕이곤 나 역시 검을 집어넣은 채 실소를 흘렸다.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 같네.’
어쩌면 그녀에겐 검보다 말로 따라잡히는 일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보다 더 처참하군요.”
연무장 안으로 발을 내디딘 베르온은 혀를 내두르며 주위를 살핀다. 앞뒤 가리지 않고 신나게 날뛰었으니 내부의 모습은 당연히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원상 복구할 수 있겠나? 이왕이면 조금 더 튼튼한 소재로 하면 하는데.”
“사흘 정도만 주시면 말끔하게 고쳐놓겠습니다. 다만, 어지간한 소재를 사용해도 영주님의 힘을 버티지 못할 터니 튼튼하게는…….”
“그것도 그런가.”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검성의 저택에 있는 전용 연무장 정도가 되는 시설이 아니라면 소드 마스터의 힘을 견뎌내긴 힘들 터니.
어차피 연무장인 이곳 말고도 여러 곳이 있었으니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다른 곳을 사용하면 그만. 남는 것이 돈이니 이런 곳에 펑펑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그러면 가볼까. 아버지께서 보내신 전령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
“영주님의 집무실에서 기다리실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내 쪽은 딱히 타격을 입은 것이 없기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나 복장을 정리하곤 베르온을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앉아 있던 인영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훤칠한 외모의 붉은 머리카락의 남성은 언젠가 봤던 익숙한 얼굴이었기에 무심코 그 이름을 입에 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인사를 했다.
“데미안?”
“로얄 나이츠 소속 데미안이 3황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홍염의 데미안.
레이오스의 몸에 빙의했을 초반, 카리우스의 명에 따라 나를 데리러 왔던 기사였다.
분명 중반쯤에는 각성해서 소드 마스터에 이른 후 마족과의 싸움에서 활약하긴 하지만, 그전까진 카리우스의 수족으로 움직였을 터.
“로열 나이츠 소속이라고?”
하지만 데미안은 자신을 로열 나이츠의 소속이라 했다. 그곳은 황실 직속 기사단으로 황족의 수호를 임무로 맡는 제국의 최중요 기사단이지 않나.
“본래 카리우스 전하를 보필하는 것도 폐하께서 명하신 일입니다. 얼마 전, 다시 폐하의 명에 따라 제자리를 찾아갔을 뿐입니다.”
그는 담담히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답했다.
본래라면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뒤 황족에 대한 예를 표해야 했지만, 황제의 전언을 가지고 온 입장이니 최소한의 예의만 보이는 것일 터.
“흠.”
데미안은 일전에 카리우스의 편에 서서 그가 나를 핍박하는 것에 동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남은 앙금은 없었다. 그래도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꼰 채 그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데미안은 여전히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 채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냈다.
“폐하께서 남기신 전언입니다.”
“굳이 이런 식으로 하시다니.”
서찰을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주위에 알리려는 장치일 터. 그 뻔히 드러나 보이는 행태에 쓴웃음이 나왔다.
“혹시 이곳으로 오는 동안 불순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가?”
서찰 자체는 황족이 아닌 이상 읽어볼 수 없도록 마법으로 특수 처리가 되어 있었다. 다만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녀석들이 그것을 갈취해 해독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데미안은 고개를 저었다.
“황궁에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이동했고, 이 저택으로 오는 도중에 만난 사람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그것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황궁은 둘째치고 아직 이곳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일 터. 베르온에게 말해 수상한 녀석들이 영지로 들어오는 것을 신경써 달라고 해야겠다.
웅웅웅.
서찰을 펼쳐 들자 곧 비어 있는 그 위로 글자들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저번에 가베인에게 듣기로는 내가 만약 황족이 아니라면 서찰을 펼쳐 든 시점에서 폭발한다고 했었다.
안면이 터져 나갈 정도의 규모라 하니 실로 끔찍한 소리가 아닐 수 없지만, 레이오스의 몸엔 확실히 황제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흠…….”
서찰에 적힌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쉬이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검성의 영지에서 이루어진 회합으로 마족과 마인들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제국을 비롯한 각 왕국은 물밑에서부터 숨어든 마계 세력의 색출에 들어갔다, 라.’
끝에선 의심되는 이들이 적힌 명단도 있었다. 나름 쟁쟁한 가문의 귀족들까지 자리하고 있으니, 그 손길이 어디까지 뻗쳐진 것인지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이건.”
그리고 명단의 마지막 부분,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황궁 서고 사서장 오즈
출신 내력이나 신분은 평범한 귀족 가문이었지만, 마탑주의 견해로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다고까지 부연 설명에 들어가 있었다.
“헛다리를 짚었군.”
그것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오즈는 카리우스나 검성 같이 절대선을 걷는 인물로 원작에선 주인공의 중요한 조력자로 등장했다.
마법 실력으론 황궁 마탑주를 아득히 뛰어넘을 것이며, 아마 크리스의 발 근처까진 비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네.’
데미안이나 오즈 같은 황궁 내의 인물들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잘만 이끌어 나간다면 내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많을 터.
특히 재상 같은 경우는 황제의 심복으로 2부에 들어서 조각난 제국을 어떻게든 기워 맞추고 피를 토하는 고생을 하기도 했었다.
황제가 쓰러지고 카리우스 쪽에 붙긴 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나중에 포섭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군.’
지금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긁어모으고 있으니 재상과 비슷한 몇몇 포지션의 이들에게 떡밥을 뿌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터다.
“폐하께서는 회합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될 수 있는 한 가까운 시일 내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런가, 그러면 돌아가지.”
“예, 전하께서 전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저는 이대로 궁으로…….”
“아니, 나도 궁으로 가겠다는 말이다.”
“…….”
그 말에 데미안의 표정이 멍해진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는지 잠시간 정신을 놓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시급히 준비를 하라 전하겠습니다.”
“잡다한 과정은 모두 생략한다. 아버지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니 이해해 주시겠지.”
나는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력이 좋고 혈통이 좋다는 이유가 다 무엇인가. 귀찮은 관례는 모두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었다.
“베르온.”
“…부르셨습니까.”
문 밖을 향해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베르온이 모습을 드러낸다. 난 그에게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이대로 궁에 복귀한다. 일행에겐 그리 일러두고, 아마 저녁 늦게 올 것 같으니 그들의 식사를 부탁하지. 내 것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분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가지.”
지체할 것 없이 나는 저택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날 오랜만에 본 데미안은 그런 내 모습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과감한 판단과 신속한 행동이야말로 위에 선 자의 능력이 아닌가.
“왜, 예전과는 달라서 적응하기 힘든가?”
“…솔직히 그렇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슬쩍 묻자니 그는 솔직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 온다. 그것에 의외라는 시선을 보내니 데미안은 날 향해 처음으로 작게나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 폐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나중에 네가 모셔야 할 수도 있는 남자다. 선택은 맡길 터니 판단은 스스로 하도록.’이라고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그것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은 확실히 우수하다. 나이도 젊고, 미래도 유망한 실력자. 카리우스에게 그를 보내준 것도 같이 성장해 나가며 보필하라는 것이었겠지.
작금 카리우스에서 데미안을 거둬들이고 나에게 그런 말까지 했다는 것은 황제의 마음이 완전히 내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뜻했다.
‘이건 카리우스한테 조금 미안해지는걸.’
일황자의 자리 때문에 항상 위아래에서 압박을 받아오며 자란 카리우스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일단 그 역시도 선을 걷는 자이긴 했지만, 다리우스나 아우구스처럼 엇나갈 수 있기에 한번 상태를 봐둘 필요가 생겼다.
“…그나저나 다리우스 형님은 요즘 근황이 어떻게 되시지?”
이왕 생각난 김에 나는 슬쩍 다리우스의 근황을 물었다.
날 죽이기 위해 아이작과 결탁한 다리우스.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면 마인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잘못하다간 아우구스의 꼴을 뛰어넘는 참사를 초래할 수 있기에 신경은 쓰고 있다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다리우스 전하라면 궁으로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수련에 한창 열중 중이 시라고만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가.”
정말로 수련에만 열중하고 있을 리 없다.
황궁의 일정을 끝내고 크리스를 볼 겸 아카데미에 들러 녀석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웅웅웅.
곧 우리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과해 황궁에 도착한다.
이미 내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황궁 마탑의 마법사들이 늘어선 채 내게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그 앞에선 마탑주가 정중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 눈을 가늘게 뜨니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전하를 모셔오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바로 가시지요.”
“그런가.”
나는 그대로 마탑주와 데미안의 인도를 받으며 황제의 알현실로 향했다.
길을 걸어가는 도중, 마주치는 이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나에게 예의를 표한다.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그 태도에 나는 살짝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회합에서 했던 고생이 영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네.’
“폐하, 레이오스 삼황자 전하를 모시고 왔습니다.”
알현실 앞에 선 마탑주가 안을 향해 말하자 문이 절로 열린다. 보통 나를 부를 때는 집무실로 호출을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이곳으로 불렀다고 생각했을 때.
“…….”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곧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높은 권좌에 앉은 황제를 중심으로 그의 심복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마치 죄인처럼 홀로 서 있는 남자가 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레이오스 삼황자.”
“아이작.”
제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자.
아이작 검호 대장군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