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63)
망나니학 개론-164화(164/300)
#164
“…드워프 말입니까.”
일순간 셰필드 백작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는 잠시 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한층 더 진지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우스요크셔를 정비하는 데 드워프의 손을 빌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암암리에 퍼져 나갔겠죠. 전하께서도 그것을 들으시고 저에게 말씀하신 것이겠고요.”
“그렇다.”
“사실 이때껏 전하처럼 저에게 그들과의 알선을 부탁하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각층의 귀족부터 여러 부호나 이름난 기사들까지. 그만큼 드워프가 만든 무구는 뛰어난 것이고, 높은 값어치를 가졌으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전 그런 요구를 칼같이 잘라냈습니다. 단지 연결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돈을 준다고 했으니 말이죠, 왜인지 아십니까? 그것이 신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의 방패로…….”
“백작.”
“…예.”
“혀 끝이 길군.”
“허어…….”
셰필드 백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꽃 건도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가슴 아픈데 이런 거라도 생색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작 정도의 인물이 나에게 생색낼 필요가 있는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그는 못 당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드워프의 소개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쪽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귀족이라는 것이 대부분 강압적인 녀석들이니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해서 제 선에서 잘라낸 것이지만, 전하께서 가신다고 하셔도 태도를 바꿀지 모르겠군요.”
그러면서 슬쩍 눈치를 봐오는 것이 내 쪽은 어떻냐는 것이었다.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되겠지. 그리고 난 뭔가를 사려는 것이 아니라 검을 고치고 싶어서 그들을 만나자고 하려는 것이다.”
“호오, 검이라면 엑스칼리버 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엑스칼리버는 아무리 드워프라도 손대지 못해. 다른 쪽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동하시죠.”
“연락을 넣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그들은 그런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오고, 끝내면 돌아가고. 그것이 전부이니까요.”
“그런가.”
“같이 오신 일행분은…….”
“저녁 식사 후에 잔다고 들어갔다. 그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
실비아 쪽은 내 치료를 위해 동행했을 뿐이다.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자 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준비하겠습니다.”
곧 셰필드 백작은 텔레포트 마법을 발동했다.
잠시간 감각에 공백이 찾아왔고, 이내 그것을 메우려는 듯 세찬 열기와 소음이 주변을 뒤덮어왔다.
거친 고함과 함께 무언가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땅을 울린다. 화롯불에서 솟구친 열기는 일순간 몸을 움찔하게 할 정도였고, 흘러내린 땀방울은 여지없이 땅을 적셨다.
“이게 드워프인가.”
보통의 판타지 세계에선 엘프와 드워프 같은 아인종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세계관에선 그들은 모습을 감춘 채 제 군락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특히 엘프는 크리스를 제외하고 멸종한 것이 공식적인 설정. 그렇기에 나 역시 아인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 마족도 넓게 보자면 아인의 범주에 속하려나?’
“그럼 가겠습니다.”
셰필드 백작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그 군락의 초입으로 보이는 장소였지만, 대장장이의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벌써부터 대장간이 즐비했다.
짤막한 몸, 통나무같이 굵은 팔다리는 문자 그대로 보통 사람의 몸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들은 전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저마다 손에 무언가를 잡고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신기하십니까?”
“처음 보는 것이니 만큼.”
외지인, 그것도 다른 종족이 자신들 군락 한복판에 나타났으면 시선을 보낼 만도 하건만 그들은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내 표정에서 마음을 읽었는지 셰필드 백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듯, 이들은 어지간해선 남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습니다. 저조차도 마법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면 안면조차 트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건 문제없다.”
지금 해도 되냐는 뜻으로 그를 바라보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에 나는 손을 뻗어 엑스칼리버를 소환했다.
파아앗-!
아무리 그래도 눈부신 빛엔 시선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지 가까이 있는 몇몇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곤 곧 헛바람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땀내가 가득한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은 신성한 자태, 순백의 검신을 가진 엑스칼리버가 곱게 뻗은 자태를 허공 위로 드러낸다. 그것에 드워프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으, 눈빛이 이상해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이런 시선에 노출된 건 처음이에요.]엑스칼리버라면 그들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끌 수 있을 터. 하지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지 리버가 질색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미안. 조금만 참아줘.’
마음속으로 사죄했을 때, 이쪽을 바라보던 드워프 중 유달리 수염이 긴 몇몇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셰필드 백작은 그들이 바로 이 마을을 이끄는 드워프 중에서도 손꼽히는 장인인 마이스터라고 작게 알려주었다.
“자네는 누구신가?”
“레이오스다. 보다시피 성검의 소유자고. 그 이외의 소개는 딱히 필요 없겠지.”
드워프는 담백한 것을 좋아한다는 성격이라기에 조금 무례할 정도로 내 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하하, 호탕한 친구로군. 그렇지, 그 이외의 것은 딱히 필요 없겠지. 백작이 데리고 온 녀석이라면 뭐, 정신머리는 제대로 박혀 있을 테니.”
그는 상처투성이 손을 내밀며 씩 웃었다.
“내 이름은 노이마르다. 이쪽 말로 천둥을 두드리는 자를 의미하지. 환영하네, 젊은 소드 마스터여.”
“엑스 마스터에게 환대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 손을 맞잡자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거력이 느껴진다. 그것은 노이마르의 경지가 내 밑이 아니라는 증거. 실제로 그는 날 바라보며 제법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요즘 인간 세상에 둔했었나? 아직 스물도 채 된 것 같지 않은데, 이런 남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어서 말이야.”
노이마르의 시선이 내 뒤쪽에 있던 셰필드 백작에게로 향한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내 소개를 했다.
“제국의 3황자 전하이십니다. 검성의 후계로, 제국 역사상 최연소 소드 마스터에 오르셨죠.”
“제국? 그 검성의?”
노이마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곤 놀란 표정으로 몇 가지 더 물어오려 했지만, 그 옆에 있던 이들이 툭툭 치며 재촉했다.
“마이스터.”
“아, 참. 그렇지.”
정신을 차린 노이마르는 잠시 헛기침을 내뱉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쩐 용무로 찾아온 것인가. 신이 내린 성물은 손상되지 않을 터인데.”
“목적은 이것이지.”
엑스칼리버의 소환을 해제하자 그들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내 아공간에서 꺼내 든 다른 쪽에 흥미를 보였다.
나는 티르빙의 본체를 노이마르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천천히 그 검신을 훑었고, 이내 고개를 들었다.
“…이건, 우리 일족이 만들어낸 마검이로군.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역시 드워프. 한눈에 알아보는 건가.
“그 소리를 들으면 그녀가 화낼걸? 마검 중에는 자기가 최강이라고 누누이 말했으니 말이야.”
“…설마.”
“그래, 티르빙이다.”
“맙소사, 내 생전에 이것을 볼 수 있게 되다니.”
티르빙의 이름이 유명한 것인지 노이마르는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러곤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 같은 짤막한 중얼거림을 읊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걸 어디서…….”
“황궁 서고에 책의 형태로 의태해 있더군. 계약은 무사히 끝냈지만, 모종의 일로 그녀가 상처 입어서 말이야. 지금 그 의식은 잠들어 있다. 자신을 수복하려면 드워프를 찾아가라 했다.”
“…전승에는 책으로 의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 나중에 얻은 능력이겠지.”“그걸 만든 대장장이는 이미 수백 년도 전에 죽고 없겠지. 다만 그 이름만은 전승된다고 들었다. ‘디렌’이란 이름을 받은 드워프는 어디 있지?”
“…다.”
“…뭐?”
순간 나는 없다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노이마르는 자신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나다, 내가 그 이름을 물려받았다.”
…이런 우연이 또 있었나.
원작에서 티르빙이 부러졌을 땐 그 이름을 물려받은 이가 없어 다른 이가 대신 수리를 했다. 다만, 그 탓에 여러 페널티가 생겼고 그것을 상쇄하고자 꽤 고생했었다.
다만, 이쪽의 드워프 군락은 원작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요소. 설마 했지만, 이곳에 그 이름을 물려받은 드워프가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다.
“드워프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지만, 디렌이란 것은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한 유파의 전수자를 뜻하는 것이지. 자네도 참 운이 좋군.”
노이마르는 두 손으로 티르빙을 쥔 채 복잡해진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이 검을 만든 디렌께서는 항상 후회하셨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위험할 물건을 만들어냈노라며.”
“그건 지나친 자만이로군. 그 디렌이란 녀석은 단지 검을 만들었을 뿐, 티르빙의 운명은 소유주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딱히 그는 처음부터 이런 마검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야.”
그것엔 나 역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노이마르는 의외로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공감이다. 우리는 단지 검을 만들 뿐,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관여하지 않아. 다만, 자신이 만든 검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빼앗긴 것에 대한 죄책감은 지울 수 없던 것이겠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분께서 남긴 전승에 따르자면, 원래는 이 검을 보는 즉시 파기해야 한다.”
나는 그 즉시 엑스칼리버를 소환해 내 날카롭게 기운을 벼렸다. 작열하는 빛이 그 검신 끝에서 피어올랐고, 이 주변은 내가 지배하는 권역으로 뒤바뀌었다.
“…크윽.”
드워프의 반응 역시 재빨랐다. 그들은 들고 있던 망치를 버리곤 제 무기인 듯한 무구를 들어 나를 향한다. 하지만 내 전신에서 뿜어져 나가는 기세에 다들 주춤하며 더러는 신음까지 내뱉었다.
“엑스 마스터인 네놈을 쓰러뜨리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 하지만 네 군락의 드워프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슬쩍 셰필드 백작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지만, 이내 두 손 가득히 마나를 피워 올리며 싸움의 준비를 했다.
“…….”
그것은 노이마르 곁에 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뛰어난 기운을 가진 전사들로, 그 중 7명 정도가 노이마르와 같은 엑스 마스터인 듯했다.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설마 자기들이 만든 검을 파기할 거라는 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싸움은 불가피할 터. 일격에 전력을 실어 노이마르에게 때려 박고 다시 티르빙을 탈취한 뒤 도망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셰필드 백작 쪽도 그 정도 되는 인물이면 알아서 제 몸을 잘 챙길 터.
척.
검을 비틀어 올리자 그들의 몸이 움찔한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노이마르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되었네. 기세를 거두게나. 자네가 이 검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는 잘 알겠네.”
“…….”
갑작스럽게 바뀐 그 태도에 나는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그것에 노이마르는 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 디렌의 이름을 이어받은 마이스터이자 엑스 마스터인 노이마르가 제 존재를 걸고 맹세하오니, 티르빙은 원 상태로 복구될 것이다.”
“마이스터.”
그의 말에 주변 공기가 바뀐다. 경지에 이른 자의 맹세. 그것은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며 만약 그 맹세를 깨뜨릴 시, 그 영혼은 조각이 나게 되었다.
드워프들은 그 행태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놀람을 표했지만, 노이마르는 고개를 저었다.
“디렌께서는 이 검을 파기하라고 하셨다.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은 말이지. 하나 저 사내는 성검의 소유자. 그렇다면 마검과 균형을 이루기엔 딱 좋지 않나.”
파아앗.
손을 거두자 엑스칼리버가 사라진다. 그것에 드워프들 역시 전의를 거두었지만, 숭숭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다들 뭐 하나. 하던 작업은 끝났는가.”
노이마르가 주변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들은 이내 각자 제가 하던 작업으로 돌아간다. 오직 그 주변에 있던 엑스 마스터들만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군. 설마 그토록 이것을 아낄 줄은 몰랐네. 그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않고 깨끗하게 이 검을 고쳐주도록 하겠네. 딱, 사흘만 주게.”
그는 이전과는 달리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여온다. 관계가 역전된 우스운 모습이었지만, 나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