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66)
망나니학 개론-167화(167/300)
#167
‘밤에 봐.’
아까 전, 티르빙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 그녀가 나에게 입 모양으로 했던 말이었다.
아무래도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누기엔 장소가 좋지 않다고 느낀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그편이 좋았다. 그때의 나는 티르빙이 만들어낸 어둠에 먹힐 뻔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어둠 속에 나타난 그 모습은 익숙한 것이었다.
새하얀 피부 위로 짙은 검은 색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이전보다 더 자란 듯한 그것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 그녀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후.”
가벼운 입김이 귓가에 닿는다. 그것에 살짝 몸을 떠니 티르빙은 날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날 앞에 두고 뭘 그리 생각해.”
오랜만에 만난 것이 기쁜 것인지 그녀의 두 눈에 요사스러운 붉은 기운이 반짝인다. 그것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이 모습이었다가 그렇게 커지니 적응을 못 하겠네.”
잘 지냈냐는 내 말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는 미소를 지었다.
“링크는 끊어져 있었지만, 눈은 공유되고 있었어. 완전하진 않지만, 당신이 걸어온 길을 볼 수 있었지.”
티르빙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곤 눈을 감곤 내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고생 많았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어.”
“하하…….”
레이오스의 몸에 빙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고생해 왔던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듣자 뭔가 감회가 색달랐다.
“아직 피오레 그 남자보단 부족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맛있어 보이는…….”
그녀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지어졌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마검이라는 건가.
티르빙은 마치 나를 맛있는 먹잇감으로 보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척.
그 사이로 새하얀 검날이 솟구쳐 티르빙의 목에 겨눠진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그녀의 손이 멈췄고, 나 역시 살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떨어지세요, 더러운 마검이여.”
“…리버?”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타난 리버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티르빙은 가볍게 웃음을 토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곤 리버를 향해 슬쩍 몸을 돌렸다.
“어머, 이게 누구야.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침입한 강도 씨가 아니세요?”
“…누구보고 강도라는 건가요.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마스터께서 먼저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척.
티르빙의 목에 겨눠진 성검이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성검과 마검은 서로의 극에 있는 존재. 물론 격으로만 보자면 리버 쪽이 더 높겠지만, 티르빙 역시 살아온 세월이 있다.
레이오스가 주인공과 격돌할 때를 생각해 보면 그 차이는 매우 근소한 것일 터.
“나는 이왕 한솥밥 먹게 된 처지니 서로 잘 지내보자고 하고 싶은데…….”
티르빙은 슬쩍 내 쪽에 시선을 주더니 가늘어진 눈으로 리버를 바라본다. 그러곤 제 손가락을 들어 엑스칼리버의 끝을 잡고 천천히 밀어냈다.
“이쪽도 명색이 최강의 마검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고작 성검 따위에 밀리면 안 되겠지?”
쿵.
티르빙의 손에 시커먼 마기가 솟구친다. 그것은 곧 그녀의 본체를 소환해 냈고,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리버의 목에 그 끝을 가져갔다.
“…….”
리버 역시 제 목에 검 끝이 겨눠졌음에도 불구하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더더욱 싸늘한 표정으로 제 검을 더 들이밀 뿐.
성검과 마검이 충돌하기 직전인 일촉즉발의 상황.
“…무슨 일이에요?”
그때, 불청객이 문을 빼꼼 열고 등장했다.
옆방에 있던 실비아가 자는 사이 소란을 느꼈는지 등장한 것. 그녀는 곧 안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여성을 보곤 상황을 깨달았는지 살짝 헛웃음을 토해냈다.
“…하던 일, 마저 하세요. 제가 귀 막고 잘게요.”
그러곤 다시 슬쩍 고개를 내빼며 제 방으로 사라졌다.
이왕 온 김에 도와주었으면 했지만, 귀찮은 일엔 끼기 싫은 듯 알아서 해결하라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직 티격태격하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두 손을 들어 올려 그대로 녀석들의 머리 위에 내리꽂았다.
“앗?!”
“읏?!”
두 녀석 다 제 머리를 감싸 쥔 채 놀랐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것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나자마자 티격태격하니 앞날이 어둡다.”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하자니 두 여성은 살짝 울컥한 태도로 나에게 말해왔다.
“마스터, 그렇지만 이 마검의 태도를 보셨잖아요.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금세 마스터의 몸을 차지할 거라고요!”
“별로 성스럽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성검이라 칭하는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너희는 항상 고결한 척하면서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당신, 나중에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죽고 싶어?”
서로 반대되는 대척점에 서 있어서 그런지 말 한마디 한마디 지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면서 조금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착각인 것일까.
다만, 내 쪽은 골치가 아플 뿐이었다.
앞으로의 전개를 헤쳐 나가려면 두 녀석의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첫날부터 서로 검을 겨누며 살벌하게 싸우고 있으니.
“잠깐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봐.”
내 말에 리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을 거두고 조용히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티르빙 역시 혀를 차며 검을 거두고 내 옆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눈에 불이 붙은 리버가 그녀의 손을 잡아 강제로 바닥에 앉게 했다.
“내가 왜…….”
의연한 태도로 등을 꼿꼿이 펴고 무릎을 꿇고 있는 리버와는 다르게 티르빙은 내가 왜 네 녀석이랑 같이 바닥에 앉아야 하냐는 불평스러운 태도로 툴툴거렸다.
어차피 의자도 몇 개 있으니 그것을 가져다 앉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또 시끄러워질 것 같아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는 것은 두 사람다 잘 알고 있겠지.”
내 말에 그녀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티르빙은 처음부터 내 이질감을 알고 있었을 테고, 리버는 링크된 이후로 계속 같이 경험해왔으니 무언가를 눈치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일 터.
일전, 티르빙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던 이야기를 나는 리버에게도 털어놓았다.
미래를 알고 있으며, 그때에 일어날 참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을.
그 이야기가 끝나자 리버는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왔다.
“역시, 마스터세요. 대의를 위해 그렇게 움직이시다니.”
“이것 봐, 이런 녀석들의 고결함은 꼭 이런 비틀린 형태라니까. 남들을 위해 죽지 못해 안달 난 놈들. 뭐, 그것을 보고 순교라고 하지? 죽으면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티르빙이 이죽거린다. 그것에 리버는 빛살같이 손을 내질렀고, 그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너.”
실체화를 하면 육신의 타격을 입는 것인지 티르빙이 살짝 눈물을 보이며 제 몸을 부여잡는다.
싸움의 2차전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링크가 끊어졌지만, 시야는 일부 공유가 되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내가 어떤 녀석들과 싸웠는지는 너도 봤겠군.”
“…그래. 알로켄, 그레모리, 아가레스, 그리고 고대 악마라는 바포메트까지. 나조차도 하나 같이 혀가 내둘러지는 이름들이네.”
그녀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용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중간계와 마계를 잇는 게이트가 열린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파편이나 빙의체가 아닌 본체를 맞아 싸우게 될 거야.”
단적으로 바포메트 전만 떼놓고 보아도 마계 군주들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나 그 휘하에 수많은 고위 마족들은 또 어찌할 텐가.
대륙 곳곳에서 영웅들이 나타나 연합군이 결성된다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검성이나 크리스급의 강자가 또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지.”
주인공조차 원작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대신 그나 레이오스가 마왕과 마룡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상성의 관계에서 온 우위성 덕분이었으니.
다만, 지금은 여러모로 이야기가 달라졌다.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덕분에 이미 죽었어야할 이들이 버젓히 살아 있고, 마족이나 마인의 존재를 널리 알려 각 나라에 일어날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원작의 상황보다는 몇 배 더 나을 터.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나의 존재가 있지 않나.
제국의 최연소 마스터.
황제의 신임을 받는 황자이자, 검성의 후계자.
마계의 존재에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는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사용하는 마법사이자, 성검 엑스칼리버와 마검 티르빙의 주인.
그리고 여신이 내린 용사.
원래는 저주받은 황자이니 무능한 망나니이니 하는 것들만 자리했지만, 어느새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처럼 휘황찬란한 타이틀이 내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물론 후자 쪽은 앨리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허위 사실이었지만, 누가 알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신성 왕국의 성녀가 공인했다는 점이다.
마계 군주와 이름 있는 마인을 몇 명이나 격퇴했으니 녀석들도 이제 나를 두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을 터.
힘이 약했던 예전이라면 언제 습격이 올지 몰라 전전긍긍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날 습격해 오는 녀석을 잡아먹으면서 천천히 경험치를 쌓으면 되는 일이지.”
마계 군주급이 직접 현신하지 않는 이상 중간계에서 날 쓰러뜨릴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기껏해야 마스터급이나 마도사급의 마인일 텐데, 이쪽은 각성까지 한 몸. 평범한 녀석 한둘 정도야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야.”
나는 내 앞에 있는 두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검 티르빙은 애초에 레이오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녀가 있어야만 나는 각성할 수 있으니.
성검 엑스칼리버는 원래 앨리스의 것이 될, 상정 외의 요소이긴 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손으로 들어왔다.
더군다나 그것으로 인해 소드 마스터에 올라 각성하는 기염을 토해내기까지 했으니.
이 몸으로도 엑스칼리버의 각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굳이 앨리스와 그것을 나눠 가져 전력을 분산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냥 내 몸에 성검과 마검의 각성을 전부 받아들여서 더 강해지면 되는 일.
‘그렇게 되면 어떤 괴물이 될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네.’
같은 마스터급이라 할지라도 각성의 여부는 큰 차이를 가른다.
물론 원작에 나오지 않은 방향이니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의 클리셰를 따르는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지 않을까 감히 예상했다.
“좋아요, 다 좋아요. 저는 마스터의 말씀에 따르겠어요.”
“뭐, 나도 딱히 널 거부할 생각은…….”
리버는 힘 있게 대답하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티르빙 역시 살짝 부루퉁한 표정이었지만,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리버 쪽에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다만, 우선 순위는 확실하게 정해두어야 겠죠.”
“…뭐?”
“최강의 마검이라고?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리버는 다시 엑스칼리버를 집어 들며 두 눈에 불꽃을 피워 올렸다.
“심상의 세계로 따라와. 누가 위인지 확실하게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