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73)
망나니학 개론-174화(174/300)
#174
로브를 뒤집어쓴 나는 곧바로 다리우스의 뒤를 쫓아 골목으로 돌아갔다.
앨리스에게 배운 어쌔신의 발자취는 이미 마스터한 지 오래. 최소 마스터급이거나 특별한 아티팩트가 있지 않은 이상 내 추격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이 로브도 있고 말이지.’
내가 두르고 있는 로브의 외견은 얼핏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었으나, 내외부의 마나를 차단하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수준은 제법 괜찮은 것이어서 기척을 살피는 능력이 뛰어난 앨리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흠.”
다리우스는 끝없이 이어진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주의를 기울이니 일정한 패턴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슬슬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리우스는 마침내 길 끝에 있는 허름한 판자 집 앞에서 멈춰 섰다.
‘숨겨둔 은거지인가.’
내부에서 몇 명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파악된 이들만 해도 전부 익스퍼트급의 실력자로 예사롭지 않은 장소인 것은 분명했다.
끼이익.
곧 문이 열리고 다리우스가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인비져블].”
잠시 고민하던 나 역시 인비져블 마법을 발동한 후, 그대로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마력 차단 로브와 어쌔신의 몸놀림 그리고 인비져블 마법 덕분에 그들은 내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냄새 한번 고약하군.’
내부는 외관으로 보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벽은 군데군데 썩어가며 코를 찌르는 악취를 뿜어냈고, 안쪽엔 제대로 된 가구 하나조차 없이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그극.
그들은 곧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그곳이 본진인 듯 나 역시 따라 내려갔고, 이내 삭막한 공동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듯 남자 한 명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다리우스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연스럽게 그 가운데로 걸어갔다.
‘…무엇이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 듯했고,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이내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웅웅웅.
다리우스가 공동 한가운데 서자 바닥이 진동하며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 선명한 마력의 잔향에 어떤 마법이 발동되는 것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텔레포트라니.’
“그럼 전송하겠습니다.”
그 찰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쫓아야 하나?
아니면 잠시 물러나 사태를 관망해?
만약 뒤를 쫓았다가 장기간 발이 묶이게 되면.
일주일 뒤에 아카데미 신학기가 시작된다. 수업 몇 번 빼먹는 건 별일이 아니지만, 메인 스토리에 불참하게 되는 것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은…….’
크리스와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수정구가 있다. 그녀를 통해 일행에게 말을 전달하면 걱정은 하지 않겠지.
이런 때를 대비해 다른 이들에게도 긴급 시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실 시기상 조금 늦긴 했다.
마족과 마인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상, 내 주위에 있는 이들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어찌 되었든.’
결정을 내린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뎌 마법진 안쪽까지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 텔레포트는 발동되었다.
* * *
“……?”
눈부신 빛이 가라앉았을 때, 다리우스는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강제로 텔레포트에 끼어들어서 그런 것인지 전이 후 살짝 기척이 새어 나왔다.
다시금 기운을 갈무리하자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이내 앞으로 나아갔다.
“…여긴.”
다리우스의 모습이 멀어졌을 때, 나는 로브의 후드를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 덮인 산속.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이 얼어붙은 땅 위로 꼿꼿이 서 있다.
공기마저 낯선 공간에 눈을 가늘게 뜬 나는 천천히 다리우스의 뒤를 쫓아갔다.
어딘가 깊은 산맥으로 텔레포트 한 건가 싶었으나 조금 앞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서부터 큰 성이 한 채 보였다.
다만, 그 풍경은 이때껏 봐왔던 성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모양이네.”
리베라 제국에서 볼 수 있었던 성들은 대부분 둥그스름한 형태다. 간혹 첨탑이 있긴 했으나, 저렇게 높이 솟아올라 있지는 않았다.
성의 방향으로 얼마를 걸어갔을까. 앞서가던 다리우스의 뒤를 거의 다 따라잡았을 때, 낯선 이들이 앞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그를 마중 나온 것인 듯 앞에 선 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에스코트한다. 메마른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나는 다시금 마력을 차단하는 로브를 뒤집어썼고, 천천히 그들 곁에 붙었다.
‘…전부 익스퍼트급, 제국의 기사들과 비교해봐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필시 범상치 않은 세력일 터. 나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예의 깊게 주시하며 기척을 숨겼다.
곧 그들은 저 멀리서 더 많은 인원과 합류한다. 그쪽이 본대인 듯 시뻘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근육질의 남성이 앞으로 나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오래간만이군.”
“…경 역시 건재해 보이니 마음이 기쁩니다.”
“다시금 제국에 온 것을 환영하네.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겠지.”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서 붙는 눈들이 많아져서 슬슬 운신의 폭이 제한되기에…….”
다리우스는 웬일로 공손한 태도로 상대에게 인사했다.
몸을 숨긴 나무의 각도 때문에 상대가 잘 보이진 않았으나 그 목소리에서 풍겨 나오는 마나의 잔향에 최소 마스터급의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난 그들의 정체보다 방금의 대화가 더 거슬렸다.
원래 제국에 있었으면서 또 무엇을 환영한다는 것인가.
“그나저나 꼬리를 달고 왔고만.”
“…예?”
그 이야기에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곤 나무 안쪽으로 더더욱 몸을 숨겼다.
‘은신은 완벽했을 텐데.’
그렇다는 것은 상대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단 소리였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오러 한줄기가 허공을 가르고 나에게로 쇄도했다. 굳이 맞서 상대할 것을 느끼지 못한 나는 땅을 박차 뛰어올랐고,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해냈다.
“…웬 놈이냐.”
다리우스는 미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수치스러운 듯 이를 갈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건가.”
나무 밖으로 나와 그들과 마주한 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고, 덤덤한 태도로 로브를 벗었다.
“네놈…….”
내 얼굴이 드러나자 다리우스의 눈에 핏발이 선다. 옆에 선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자 그는 이를 갈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3황자 레이오스입니다.”
“…3황자? 그 검성의 제자?”
남자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시뻘건 머리카락이 갑주 위에서 흔들거릴 때, 나는 그제야 그 남자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막시무스 보르도.”
“호오.”
자신을 아느냐는 듯한 그 추임새에 나는 당연히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칼 제국의 막시무스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있을까.”
“하하, 그것참 듣기 좋은 소리군.”
막시무스는 오스칼 제국의 황족으로 무력 면에선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오스칼 제국인가.’
상식적으로 그가 남몰래 리베라 제국에 들어왔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렇다는 것은 다리우스가 모종의 루트를 통해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가 개연성이 있을 터.
설마 그 허름한 지하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이 대륙 간의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장거리용 마법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카리우스는 다리우스의 행적을 모른다고 했으니 정식적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는 왜 오스칼 제국으로 와서 막시무스를 만나려 했던 걸까.’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은 과부화가 걸릴 정도로 맹렬하게 돌아갔다.
이윽고 내린 결론이.
“다리우스, 네놈의 행태에 관해선 폐하께서도 주시하고 계셨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뒤를 밟게 하셨지.”
“…같잖은 소리로 날 떠보려 하지 마라.”
곧바로 둘러댔지만, 그 잠시간의 공백은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음을 뜻했다. 더욱이 다리우스의 얼굴은 살짝 초조한 빛을 띠며 막시무스의 눈치를 보지 않나.
“흠,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막시무스는 침음을 흘리며 다리우스에게 시선을 보냈다. 의혹이 섞인 눈초리를 받은 그는 입술을 깨물며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허튼소리입니다. 황궁 내의 일은 이쪽에서도 전부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 이야기가 들어갔다면 어떤 식으로든 말이 전해져 왔을 테니 제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막시무스의 시선이 다시금 이쪽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시선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방금 둘의 대화. 그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분명…….
“다리우스, 정녕 정신이 나간 것이냐? 외세의 힘을 빌려 반역이라도 도모해 보려고?”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떠보았다.
그것에 다리우스가 다시 한번 부정하려는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막시무스가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뭐, 여기까지 쫓아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 냄새를 맡았다는 것이겠지.”
“…위쪽으로는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님께서는 반역에 예민하신 분이라 만약 정보가 새어나갔더라면 제가 멀쩡히 이곳으로 올 수 없었겠죠.”
“혹은 일망타진할 기회를 보고 있거나.”
막시무스의 잿빛 눈동자가 다리우스를 쏘아본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씹으면서도 애써 부정할 말을 찾았다.
“뭐, 농담일세. 길가메시 황제의 동태는 이쪽에서도 파악 중이야. 아직 별다른 낌새를 보이지 않으니 이 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레이오스 황자 혹은 끽해야 그 휘하 세력뿐이겠지.”
내 쪽을 바라보는 막시무스의 시선에 서늘함이 스친다. 그것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날 건드리면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 텐데.”
“이곳이 어딘지 아는가? 자네가 이곳으로 들어온 시점부터 이미 문제의 시작이라네.”
“그쪽은?”
턱 끝으로 다리우스를 가리키자 막시무스는 씩 웃으며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으로 그를 가렸다.
“그쪽? 누구를 말하는 건가?”
“하하…….”
눈 가리고 아웅 하겠다는 건가.
확실히, 땅의 주인 쪽에서 나 혼자 들어왔다는데 누가 따지겠나.
곧 다리우스는 오스칼 제국의 기사들과 함께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를 따라가고자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으나, 막시무스가 앞을 막아섰다.
“이 땅의 주인 된 자로서 불청객은 단죄하는 것이 도리겠지.”
그의 두 눈에 불타는 호승심이 서린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나. 그 역시 내 수준을 알아본 것. 나는 허리께에 있는 검을 붙잡았다.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지만.”
“이해한다.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도 해도 내 앞에선…….”
“봐줄 자신이 말이지.”
쐐애애애액-!
시퍼런 검광의 검 위에 피어오른다.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막시무스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