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80)
망나니학 개론-181화(181/300)
#181
“후.”
델르케는 빈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제일 앞에 있던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으로서는 좀 어떨까 하는 모습이었으나,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피곤함을 보니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요즘 힘드신가 보네요.”
“개강 초기는 다 그렇지. 특히 이번에는 해외에서 쟁쟁한 학생들이 많이 입학했잖아.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 같다.”
델르케 정도의 남자가 푸념하며 고개를 떨굴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리라.
“나중에 보약이나 좀 보내드릴게요.”
“말이라도 고맙군.”
소소한 인사는 끝났기에 나는 용건을 말하라는 시선을 보냈다.
그 본인도 바쁘고 이런 아침부터 날 찾아온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터.
“다리우스 2황자의 유학 건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시니어 아카데미로 결정 났다. 빠르면 이번 주 안으로 떠날 것 같더군.”
“시니어 아카데미라.”
익숙한 이름이었다.
바이에른처럼 오스칼 제국을 대표하는 곳으로 원작에서 나름대로 비중 있는 등장인물 몇몇도 극소에 재적 중일 터.
‘학술제 때 만난 베르트랑도 그곳 소속이었지.’
그들 대다수는 아마 올해 있을 학술제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뭐, 그건 시시콜콜한 이야기고 제대로 된 안건은 모두 세 가지다.”
델르케는 품에서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앞에서부터 학생회장 선출 건, 학술제, 그리고 시니어 아카데미와의 합동훈련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의 이건 뭡니까?”
학생회장 선출과 학술제는 대충 이해가 갔다.
매년 있는 일이니 올해도 이미 예상하던 이야기였지만, 합동훈련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다리우스 2황자의 유학 건으로 대화 중에 오간 제안이다.”
뒷장으로 넘겨보라는 눈짓에 미간을 좁히며 그 내용에 집중했다.
바이에른&시니어 아카데미 연합 합동훈련.
연합과 합동을 연달아 강조했다.
얼마나 합치고 싶은 생각인지 모르겠네.
“대충 눈치 보니까 윗선에서 나온 이야기 같다. 아카데미 차원이 아니라 좀 더 위쪽의…….”
“가령 막시무스라거나?”
“…너무 올라간 것 아니냐?”
델르케는 비약이 심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마 관계가 없진 않을 거다.
‘에르메스 쪽에서 관여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와는 마기로 맹약까지 맺은 관계.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쪽에 손해 보는 일은 아닐 터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막시무스 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가 궁금했다.
나에게 뚜드려 맞고 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니 갑자기 나와 손을 잡았다는 것에 놀랄 터. 그 녀석에게는 그야말로 당황스러운 이야기였겠지.
‘다리우스 쪽까지 제대로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모르겠군.’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마인과 손을 잡았는데, 그쪽에서 내가 또 마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니 말이야.
머리가 있다면 나중에 황궁으로 돌아와 내가 마인 세력의 끄나풀이라고 지목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합동훈련이라는 건 뭘 말하는 겁니까?”
“뭐, 말 그대로의 의미다. 바이에른이나 시니어나 다 온실 속의 화초니 뭐니 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서로 으쌰으쌰 하며 쇄신하자는 그런 취지라는데…….”
“아니겠죠.”
“그렇지.”
허울 좋은 이유 따위야 얼마든지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이 이 세계의 편리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면 상대 역시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됐다.
“슬쩍 듣자 하니 당연히 복잡한 사정이 껴 있는 모양이더군. 더군다나 이쪽엔 그 학생까지 있지 않나.”
루인 폰 오스칼.
오스칼 제국의 황자로 예전의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다른 점은 이쪽은 제 형제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탓에 시기와 배척을 받았을 뿐.
아니, 레이오스 역시 제힘을 숨겼으니 같은 건가?
하여튼 평범한 일은 아니다.
또 여러모로 뒤숭숭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제안했다는 것은 명백히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겠지.
이것은 당연히 원작에 없던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변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전부 내가 자초한 일이었으니.
죽기 싫었기에 죽을 각오로 강해졌다.
그 결과로 이미 죽었어야 할 이가 살아 있고, 살아 있어야 할 이가 여럿 죽었다.
실비아같이 아예 진로를 바꿔 버린 예도 있으며, 다리우스처럼 나락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뭐, 어때.’
나는 이제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언제까지 머리만 싸매고 있다간, 될 일도 안 되기 마련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나 버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맞서 싸우지 못한다면 한걸음 살짝 물러서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올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 인지였으니까.
‘어차피 굵직굵직한 흐름은 정해져 이미 정해져 있다.’
그전까지 탈락만 하지 않는다면 원작의 전개대로 무난하게 흘러갈 터.
물론 결말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때 가서 알게 될 터.
“학장님께선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너에게 훈련에 관해 설명해 주고 의사를 물으라고 하셨다. 참여를 원한다면 네 임의로 인원을 꾸리고, 아니면 이쪽에서 적당한 명단을 제출하라고. 오스칼 아카데미와 합동훈련을 할 기회는 흔치 않은 것이니 공지한다면 하고 싶은 녀석들이 꽤 있겠지.”
“흠…….”
제안서의 뒷장을 넘긴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 내용에 몰두했다.
훈련 장소는 크라크푸.
오스칼 제국의 국경이자 몬스터의 대군락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장소였다.
사시사철 녀석들이 밀고 내려와 항시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었으며, 이쪽으로 따지자면 대략 라이프치히와 비슷한 분위기일 터.
제안서에 따르면 우리는 이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실전처럼 훈련을 받는다. 관련 경력자를 지휘관으로 두고 실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체감시켜 주려는 것일 터.
‘제법 신경 쓴 티가 나긴 하는데.’
지휘관이나 참여 기사들의 이름이 제법 굵직굵직한 것을 보니 허울뿐인 훈련은 아닌 듯싶다.
취지 역시 딱히 의심스럽다고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제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에 포함되는 것이었으니.
실전 경험도 쌓고, 인맥도 만들고.
특히 실전 쪽은 언제나 환영이다.
내 일행 역시 방학 동안 수련만 해서 제 능력을 뽐내는 것엔 살짝 고파 있을 것일 테니.
“…그래서 날짜는 언제입니까?”
“수락하면 다음 주에 바로.”
“다음 주?”
다만, 날짜가 조금 일렀다.
이쪽은 학기가 개강한 지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시니어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뭐가 그리 급한지…….”
“그러게 말이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델르케 역시 공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이라면 까불지 말라고 일축했겠지만, 시니어 아카데미는 오스칼 제국의 대표 격이니 말이야.”
물론 바이에른 아카데미보단 끗발이 조금 달리지만, 그래도 2순위로 쳐주는 곳이 아니냐며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크리스는 내게 결정을 맡긴다고 했다.
그녀 역시 판단이 서질 않으니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
‘황궁 쪽으로 사람이라도 보내봐야 하나?’
“학술제는 어떻게 됐습니까?”“1학기 말쯤에 개최하기로 연락이 왔다.”
이건 원작과 변함없는 일정이었다.
“어차피 너는 전년도 우승자니…….”
“아, 저는 이번엔 검이 아니라 마법으로 나갈 겁니다.”
“…뭐?”
학술제의 앞부분, 시시콜콜한 경연 대회나 발표 같은 것은 둘째치고 서로의 무예를 겨루는 사수좌의 토너먼트는 전년도 우승자가 똑같은 종목에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바꾼다면?
“그때 일어난 테러 때문에 다리우스와 공동 우승자가 됐지만, 그건 검술 분야지 않습니까. 검술이 아니라 마법으로 나간다고 한다면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죠.”
“…….”
그는 반박할 말이 없는 듯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자면 그것은 형평성에 어긋나 불가능하다느니, 다른 사람의 기회가 없어진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왔겠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원칙대로 따지자면 분명 그렇게 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시도하려는 녀석이 없었으니 관련 규정이 없었지. 아마 네가 그렇게 한다면 내년부턴 새로이 규정이 추가되겠군.”
“즉,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소리군요.”
내년의 사정은 알 바가 아니다.
3학년이 돼서는 외부 활동을 하느라 많이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학술제에 참가할 여유는 없을 터.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합동훈련도 이쪽에서 인원을 결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런가, 그건 다행이군.”
제 할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델르케는 밝은 표정을 지어온다. 고작 이런 것으로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정말로 일이 많았던 것일 터.
‘진짜 보약이나 한 첩 지어 보내줘야겠네.’
아직 아카데미 생활이 남은 시점에서 든든한 아군을 챙기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점심 식사 후, 나는 일행을 모두 회의실로 불러모았다.
3학년에선 페트라와 에릭센을.
2학년에선 앨리스, 엘리시아. 레이시스, 유리아를.
1학년은 실비아, 루인, 란돌프, 베르딘 그리고 데시아를.
참고로 디아크와 마리아에게는 학술제의 준비를 맡겼다.
한 달 동안이나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니 필연적으로는 누군가 남아 있어야 했다.
디아크에게 그것을 말하니 맡겨만 달라며 희희낙락한 태도로 제 가슴을 두드렸다.
마리아와 뭘 할 생각에 신난 것 같지만, 그래도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아는 놈이니 제대로 준비해 놓겠지.
“…여긴가?”
곧 회의실로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 부탁으로 에릭센을 데리고 온 페트라가 냉큼 옆으로 달려와 앉았다.
에릭센 역시 적당한 자리에 앉았고, 그 직후 앨리스를 시작으로 모두가 도착했다.
“이것이 그 소문이 자자한 로열 파티인가.”
선배들에게 밀려남에도 나름대로 눈에 띄는 차지한 루인이 흥미 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로열 파티라, 외부에선 그렇게 불리고 있는 건가.
1학년들은 자신들이 이곳에 불렸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쓸개라도 내어줄 것처럼 눈을 빛내왔다.
2학년들은 또 무슨 일을 가져왔나 싶어 얼굴에 의문을 띠었고, 3학년의 두 사람은 그래도 제일 선배라는 것인지 제일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너희를 이렇게 불러모은 것은 세 가지 안건 때문이다.”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델르케에 받은 제안서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학생회장 선출, 학술제, 그리고 …합동훈련?”
“그래, 지금부터 간략하게 설명할 테니 집중해서 잘 들어라.”
오랜만에 하는 프레젠테이션에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현실에 있었을 때도 회사에서 몇 번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날 서린 시선에 몇 번 말실수도 하곤 그랬다.
신입 버프가 있어서 잘 넘어가긴 했는데, 살짝 트라우마가 생길 뻔했을 정도니.
다만, 지금은 내가 갑인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는 마음 편히 정리한 안건을 말해 나갔다.
“학생회장이야 후보야 내가 나가면 다른 이가 있더라도 사퇴할 테니 신임 투표로 가겠지. 그것도 당연히 뽑힐 테고 간부 구성은 부회장은 레이시스, 회계는 엘리시아로. 나머지는 굵직굵직한 자리 중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꿰차면 된다.”
상당히 간략하게 말한 것 같지만, 내 나름대로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레이시스와 엘리시아라면 어렵지 않게 그 역할을 완수해 낼 터.
그리고 다른 이들 역시 어디를 가져다 놓아도 1인분은 넘게 할 테니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저 질문 있어요.”
“뭐지?”
옆에 있던 페트라가 손을 들고 물어왔다.
“저도 학생회에 참가해도 되나요?”
“보통은 2학년이 회장이 되면 3학년은 빠지는 게 관례지만, 뭐 딱히 상관없겠지. 서기가 적당하려나?”
어차피 다 아는 사이기도 하고, 이제부턴 함께 움직이는 일이 많을 터.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되진 않을 것이다.
‘…이러니까 이제야 아카데미물 냄새가 나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은 각자 서류를 붙잡고 내가 말한 안건들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때까지 다른 방향의 일로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는가.
이제부턴 정말로 아카데미에 관련해서 치중된 스토리가 전개될 터.
특히나 이쪽 파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조금 정도는 즐겨도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