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86)
망나니학 개론-187화(187/300)
#187
밤이 깊어짐에 따라 산맥은 완연한 어둠으로 뒤덮였지만, 우리가 있는 주둔지는 주위를 밝히는 불꽃 덕분에 대낮같이 밝았다.
우리와 같이 산맥 공략 작전을 나왔던 병사들은 휴식을 취하며 내일 일정을 준비했다.
각 아카데미의 인원 역시 이미 결산을 끝내고 자신의 막사로 돌아간 상태. 나는 그중 우리 아카데미의 여성들이 묶고 있는 막사로 향했다.
“오스티아, 무슨 일이에요?”
혹시 옷을 갈아입고 있을 수도 있어 밖에서 인기척을 내자니 유리아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해왔다.
“잠깐 안에 들어가도 돼?”
“네, 괜찮아요.”
잠시 슬쩍 안을 본 그녀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막사의 입구를 열었다.
그녀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는지 침상을 돌려 머리맡을 모아 놓은 상태였다.
내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시끄럽던 막사의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한창 신나 있을 때 방해해서 미안하네.”
이쪽에 쏠린 시선에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머리를 숙이자 그녀들은 작게 웃음을 토해내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에요, 이 밤중에?”
이불 속에서 얼굴만 이쪽으로 향한 페트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것에 나는 앨리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밖을 가리켰다.
“잠깐 괜찮을까?”
“…나?”
내 물음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침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더 있는 것도 뭣해 막사 밖으로 나가니 곧 앨리스가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왜?”
“그냥. 오늘 별일 없었지?”
“그렇지 뭐. 애들하고 신나게 산맥만 누볐고…….”
서로 가벼운 잡담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고 있자니 그녀는 슬쩍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페트라 언니 보러 온 건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 생각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근래에는 항상 그녀랑만 붙어 다녔으니 그런 착각할 법도 하지. 나는 손을 들어 앨리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가끔 파트너 기도 살려줘야지.”
“…그래?”
잠시간 그녀의 얼굴에 오묘한 감정이 떠올랐지만, 이내 작게 웃으며 발끝으로 땅을 비볐다.
“그래서, 기 살려주는 건 둘째치고 정말로 무슨 일이야.”
“오늘 설렁설렁했지?”
“응. 여기서 딱히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실비아나 조금 챙기면서 다른 애들 위주로 싸우게 했어.”
전에도 말했듯 그녀는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아직 산맥 초입에 나오는 녀석들은 심심풀이로도 부족할 터.
“아쉬우면 잠깐 데이트나 하자고 하려 했는데.”
“…데이트?”
앨리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 뜨여졌다.
“산맥 안쪽에 조금 볼일이 있거든. 겸사겸사.”
“아.”
내 말을 깨달은 그녀는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할 거야?”
“산맥 안쪽엔 상급 마수들이 많아.”
아직은 낮에 있는 훈련만으로도 충분할 거다.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을 터.
“그러면 잠든 후에 회의장 앞에서 만나.”
“알았어.”
* * *
거칠게 코를 고는 소리가 막사 안에 울려 퍼진다. 낮에 고생시켰던 것을 복수라도 하려는 것인지 녀석들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제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꽉.
옷매무새를 정돈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파랗고 붉은 한 쌍의 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걸어가자니 새삼 내가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난 준비 끝났어.”
약속한 장소에 가니 앨리스가 팔다리를 돌리며 몸을 풀고 있다.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움직이기 편한 차림새였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기척을 숨기며 주둔지의 경계를 넘어 산맥으로 향했다.
스륵.
밤의 산맥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낮보다 시야가 나빠 몬스터의 모습이나 기척을 발견하는 것이 늦어지고, 독충이나 상정하지 못할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잠재해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래서, 상급 마수를 잡는 게 목표야?”
산맥 위로 오를 때, 앨리스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것에 고개를 저은 나는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이곳의 몬스터 역시 마인 쪽과 관련 있을 거야. 그렇다면 산맥 안쪽에 몬스터를 움직일 수 있는 핵이 있겠지.”
“그러면 그걸 부수려고?”
“아니, 더 활성화할 거야.”
“…뭐?”
앨리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것에 나는 가볍게 웃음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수련 좀 하고 가야지.”
주어진 상황은 잘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것에 앨리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오스칼 제국에서도 그게 더 나을걸. 나중이 되면 저번처럼 한 무더기로 몰려올 텐데 미리 싸우는 것이 낫겠지. 더군다나 우리도 옆에서 거들어 줄 건데.”
“그건 그렇긴 한데, 그냥 형편 좋은 사정을 갖다 붙이는 거잖아.”
“잘 아네.”
시원하게 대답하자니 그녀는 실소를 내뱉었다.
어차피 뒷감당은 오스칼 제국이 하지 않는가. 여차하는 경우가 오더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내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곧 산맥 초입을 지났다.
간간이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긴 했지만, 대놓고 기세를 흘리며 나아가자니 감히 덤벼오는 녀석은 없었다.
아무리 본능대로 움직이는 놈들이라지만, 죽기는 싫었겠지.
우리도 괜히 피 보기 싫었고, 내일 다른 이들이 잡을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그랬기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모든 몬스터가 우릴 피한 것은 아니었다.
“…오우거네?”
어지간한 기사도 꺼린다는 상위 마수인 오우거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대놓고 기세를 흩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우리를 먹잇감이라고 생각하는지 바닥에 쇠몽둥이의 끝을 질질 끌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크르르.
흉포할 정도의 질량과 힘이 담긴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것에 나 역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쩔까.”
“내가 할래.”
앨리스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께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곧 새하얀 검신이 달빛을 받으며 반짝인다. 그것은 내가 이전에 선물해 준 백련이었다.
“어이, 덩치. 덤벼.”
쐐애애액!
앨리스의 도발에 오우거는 망설이지 않고 쇠몽둥이를 내리쳤다.
곧 산새가 울릴 정도로 큰 진동이 퍼져 나간다. 어지간한 녀석이라면 지금의 일격으로 피떡이 되어 나뒹굴었겠지만, 앨리스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 가볍게 그것을 피해내었다.
“이번엔 내 차례지?”
앨리스는 씩 웃으며 힘껏 땅을 박찼다.
잘 관리된 새하얀 칼날 위로 시퍼런 오러가 피어오르며 어둠을 베어 갈랐다.
파바바바밧-!
유려한 궤적이 허공에 새겨진다. 그것은 쇠몽둥이를 들고 있던 오우거의 팔을 난도질했다.
“생각보다 질기네?”
전력을 낸 것은 아니지만, 팔을 벨 생각으로 휘두른 것인지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오스칼 제국 쪽의 몬스터는 질기기로 소문났다. 더욱이 이런 깊은 곳의 녀석들은 마기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니 네가 알던 것보다 더 강할 거야.”
“그렇구나.”
“그 대신 용사의 힘을 쓰면 더 쉬울걸?”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앨리스는 검을 휘둘러 그 위에 묻은 오우거의 체액을 털어냈다.
그러곤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듯싶더니 푸른 오러가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오.”
그 찬란한 빛깔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일전에 날 노렸던 저 황금빛 불꽃은 여신에게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스러운 빛. 그것은 곧 어둠을 몰아내며 오우거에게 떨어져 내렸다.
서걱.
백련은 우스울 정도로 손쉽게 녀석의 몸을 반으로 베어냈다. 오히려 앨리스 쪽이 더 놀란 것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실전에서 쓴 적은 없었지?”
“응, 당신이 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녀의 말대로 나는 앨리스에게 절대 용사의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성국에서 있을 당시 표면적으로 내가 용사로 선택받았다는 말을 흘렸다.
그 이후 마력 계약서를 통해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입을 막았다지만, 그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퍼져 나갈 터.
나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은 오히려 바라는 바다.
하지만 앨리스의 경우는 달랐다.
아직 제대로 된 각성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족과 마인의 표적이 되면 순식간에 궁지에 몰릴 터.
그녀가 제 본연의 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조금 더 나중 일이 될 것이다.
“가자.”
우리는 반으로 갈라져 죽은 오우거의 시체를 넘어 더 안쪽으로 향했다.
“…레이오스.”
“응, 나도 느꼈다.
얼마간 앞으로 걸어가자니 기분 나쁜 기운이 우리의 감각을 자극했다.
길을 잘 찾아온 것인지 그 기운을 더듬어 앞으로 더 나아갔고, 이내 근원지로 보이는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디텍팅].”
근처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다. 혹시나 안쪽에 누군가 있을까 싶어 마법을 발동하니 한 개의 기운이 포착되었다.
“안쪽엔 한 명이다. 아마 마인이겠지. 내 쪽에서 속전속결로 끝내겠다. 넌 혹시 모를 상황에 백업해 줘.”
“응, 맡겨둬.”
계획은 단순했다.
증원을 부르기 전에 마인을 소멸시키고 핵을 활성화할 것이다.
우리는 기척을 지운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의 끝이 나오고, 짧은 머리의 마인 한 명이 벽에 기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 강한 녀석은 아닌가.’
설마 험준한 산맥을 넘어 여기까지 올 사람이 있다곤 생각하지 못했겠지.
이 녀석도 몬스터가 접근할까 봐 배치해 둔 것일 터.
“뭐, 신경 쓸 건 없겠군.”
“…웬 놈이냐!”
기척을 드러내자 녀석은 벌떡 일어서며 마기를 피워올렸다.
훌륭한 반응이라고 칭찬해 주고 싶었으나, 이미 내 손에 쥐인 엑스칼리버가 순식간에 그 목을 베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파스스.
더 무엇을 할 새도 없이 마인의 머리와 몸이 재가 되어 소멸했다.
“이게 핵이야?”
동굴 가운데 있는 시커먼 결정을 보며 앨리스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전에 가베인의 연구실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만지지 마.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거야. 실수로 만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오염될걸?”
“윽.”
내 말에 앨리스는 기겁하는 태도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티르빙.’
[응?]내 부름에 티르빙이 대답한다. 나는 눈앞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고 있지? 이 마기 결정을 폭주시키고 싶은데.’
[흐음.]‘가능해?’
[가능하긴 한데, 조금 아깝네.]‘아까워? 뭐가?’
[결정 안에 있는 마기 말이야. 이렇게 순도 높은 마기는 어디 가서 구하질 못하거든. 찾을 수 있더라도 보통 주인이 있는 것들이니. 낙인이 찍힌 것은 내가 흡수하기 힘드니까.]‘이걸 흡수할 수 있다고?’
[응. 그러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걸?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지. 백 년 전쯤에 크게 힘을 소모한 적이 있다고.]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작중에서도 티르빙이 마기를 흡수했던 장면은 극히 일부뿐. 나도 몇 번 도움받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것을 흡수해 힘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어차피 폭주를 시킨다고 해도 여기 담겨 있는 전부는 필요 없어. 최소한만 빼고 남는 부분은 흡수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