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87)
망나니학 개론-188화(188/300)
#188
‘그럼 그렇게 해.’
그녀가 힘을 회복하는 것은 나로서도 나쁜 일이 아니다. 호시탐탐 내 정신을 노려오긴 하지만, 리버가 있는 이상 몸을 빼앗길 확률은 거의 없었으니.
스스슥.
내 허락이 떨어지자 왼손 위로 티르빙의 본체가 나타난다. 곱게 뻗은 칠흑의 검신을 들어 그 끝을 결정에 가져갔다.
웅웅웅.
마기 결정에서 시커먼 기운이 솟아올라 티르빙을 휘감기 시작한다.
잘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들뜬 한숨을 듣고 있자니 맛있게 그 마기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으, 조금 꺼림칙하네.”
“나도 그렇긴 해.”
용사의 힘을 품고 있는 앨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물론 마기가 익숙지 않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생명체에 반하는 힘이니까.
이윽고 마기의 흡수를 마친 티르빙이 만족스럽다는 듯 숨을 토해내는 것이 들려왔다.
[오랜만에 포식했네. 그러면 이제 당신 말대로 결정을 폭주시킬게.]‘그래.’
파지직.
작업에 들어갔는지 결정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머지않아 결정의 영향을 받은 몬스터 무리가 미쳐 날뛰기 시작할 터.
주둔지와의 거리를 생각해보자면 날이 밝아올 때쯤 산맥 초입에 도달해 우르르 쏟아져 내릴 것이다.
“그럼 돌아가자.”
“응.”
마인 녀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차릴 도리가 없을 터.
날이 밝았을 때, 허둥지둥할 그들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 * *
앨리스와 산맥 안쪽을 탐험하고 온 뒤 막사로 돌아오니 녀석들은 여전히 귀가 찢어져라 코를 골고 있었다.
이대론 도저히 잠자리에 들지 못할 것 같아 사일러스 마법으로 침묵시키곤 침대에 누운 것이 벌써 몇 시간도 전.
날이 밝을 때쯤 사방을 울리는 경종 소리에 밖으로 나오니 산맥 초입에서부터 몬스터 무리가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건 너무 많은데요.”
한 가지 내 예상이 틀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허둥지둥하는 것이 마인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 뒤를 따라 입가에 침이 줄줄 새는 채 밖으로 따라 나온 루인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데시아와 베르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막 잠에서 깬 란돌프만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나는 녀석들의 뒤통수를 때리며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서 자리나 정리하고 나와라. 루인, 너는 입가의 침 좀 닦고.”
“…윽.”
녀석들은 머리를 감싸 쥐곤 헐레벌떡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으로 가볍게 매무새를 단장한 나는 천천히 주둔지를 가로질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몬스터 무리에 병영엔 전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아직 하위 몬스터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일 터.
“어? 일찍 왔네. 방금 사람을 보냈는데.”
회의실로 들어가니 델르케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 상황에 대해 긴급회의를 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방금 사람을 보냈다는 말은 정말인 듯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선생들이 전부였다.
“가베인 선생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지휘 막사 쪽으로 가셨다. 그쪽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방향을 정할 수 있으니 말이야. 곧 오실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도록.”
“지휘 막사입니까.”
원래는 연차가 높은 델르케가 가야 할 터이지만, 짬으로 밀어붙인 것인지 가베인에게 떠맡긴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저 성격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저쪽에선… 아.”
양반은 되지 못하는지 가베인은 막 막사의 휘장을 젖히며 안으로 들어오다 나와 눈치 마주쳤다.
“수고하십니다.”
서로 군신의 관계이지만, 대외적으로 그는 아카데미 선생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하자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오스티아 군도 고생이 많네.”
“…꼴값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델르케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가베인은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쪽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저쪽에선 새벽에 정찰대를 보내 산맥 안쪽을 살폈다고 합니다. 동이 틀 무렵부터 산맥 안쪽에서부터 몬스터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방향은 어떻게 된답니까?”
“원래대로 차질 없이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마냥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흘 뒤까지 이 상황이 계속되거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면 다시 성으로 후퇴하는 거죠.”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사흘, 사흘이라.
뭐, 당장 지금이라도 이변을 알아차린 마인 녀석들이 결정에 손을 썼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안쪽에서부터 밀려 나온 몬스터 무리가 있으니 그것만 처리하면 사흘 후엔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
곧 각 아카데미의 조장들까지 모인다. 현재 사정을 설명한 뒤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획에 따라 일정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 걱정되는군요. 저희야 괜찮다지만, 바이에른 측에는 피해자가 나올 수 있으니.”
에레이라는 걱정하는 척 이쪽을 얕잡아보는 발언을 했다.
델르케나 가베인은 시큰둥한 태도로 별 반응을 하지 않았으나, 페트라는 눈을 가늘게 좁혔고 에릭센은 작게 혀를 찼다.
“위기 없는 성장은 없는 법이라 했지.”
나 역시 그 유치찬란한 말싸움을 들어주고 싶지 않아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에레이라를 비롯한 그쪽 학생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왔다.
대충 그 표정을 보니 내가 꼬리 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나 본데, 너희 어제 몬스터를 쓰러뜨린 숫자로 우리한테 처참히 발리지 않았냐?
“…자, 그럼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고 우리도 움직이도록 하지. 준비를 마치는 대로 산맥으로 출발한다.”
델르케는 더 말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회의를 끝냈다.
시니어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은 곧 삼삼오오 모여 조금 떠들더니 이내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이들은 전부 바이에른 쪽의 관계자. 에릭센은 한숨을 내쉬며 탁자 위로 엎어졌다.
“솔직히 거기서 네가 다 뒤집을 줄 알았어. 두 아카데미 간의 관계가 어찌 되나 싶었는데, 사실 조금 기대했거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은근한 멸시가 있었다며 그는 투덜거렸다.
“어제 그렇게 망신을 당해놓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정말 한심스럽네요.”
그것은 페트라도 마찬가지인 듯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간 그들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어제 당신이 오기 조금 전에 같이 술을 마시자고 치근덕거리기까지 했어요. 다들 가벼운 옷차림이었는데, 아주 정신없이 훑어보더라고요.”
“정말?”
“네, 곧바로 일말의 여지없이 쫓아냈는데 오늘도 여전하네요.”
그 말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귀찮아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지 이런 것까지 참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곳에서 뭔 짓을 한다고 해도 양국 간의 관계에 크게 영향이 있지는 않을 터.
“다른 쪽은 어떱니까.”
선생 쪽도 서로 견제가 심한 것인지 묻자 델르케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직급이 직급인 만큼 대놓고 뭐라 하진 않아. 그냥 서로 고생 많다며 다독거리기만 하지.”
“하긴, 귀족 자제만큼 거만한 녀석들이 없으니까요.”
내 말에 페트라와 에릭센이 쓰게 웃었다.
“그러면 일단 저희도 슬슬 준비하도록 하죠.”
내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의장을 나서니 밖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니어 아카데미 측은 아닌 척하면서도 내 쪽으로 시선을 보냈고, 나는 그때마다 코웃음 치며 내 막사로 향했다.
“준비는 끝났겠지?”
“네, 말씀하신 대로 다 끝내놨습니다.”
루인을 비롯한 내 조원들은 빈틈없이 출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제의 경험도 있기 때문인지 전날보다 더 꼼꼼히 무장했고, 그 표정엔 사뭇 비장한 각오가 나타나 있었다.
“그렇게 얼굴에 힘 안 줘도 돼. 오늘은 어제처럼 마구잡이로 싸우는 게 아니니까.”
“네? 그러면…….”
그들의 얼굴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
너무 그렇게 기대하면 살짝 미안해지는데.
“오크나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는 오스칼 군 쪽에 맡기고 우린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예?”
내가 그런 약한 녀석들이랑 싸우려고 결정을 폭주시키기까지 했겠는가?
“몸풀기는 끝났으니 이제 메인 디시를 먹어야지.”
* * *
“으아아아아악-!”
산맥 안쪽으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아쉽게도 구하러 온 이는 없었다. 우리는 다른 이들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으니.
흙투성이가 된 루인은 자신에게로 떨어져 내리는 쇠몽둥이를 피해 필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곳곳에 자리한 나무의 가지나 뿌리, 그리고 바위들에 몸이 긁혀 피가 철철 흘러내렸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조져!”
“흐아아압-!”
엉망진창인 것은 다른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시아는 수차례 얻어맞은 듯 얼굴이 성한 곳이 없다. 베르딘은 그나마 멀쩡해 보였으나,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이 발을 다친 듯했다.
크어어어어어-!
그들의 상대인 트윈 헤드 오우거가 큰 포효를 내질렀다. 산맥이 떠나가라 울리는 그 광음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설마 여기서 이런 녀석을 만날 줄이야.”
잠시간의 대치 상황에서 겨우 여유를 얻은 루인이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두 눈에 살기를 가득 피워 올렸다.
‘정신머리는 대충 고쳐졌나.’
막 이곳으로 왔을 당시 성벽 쪽에서 보였던 그 유약한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실전을 통해서 강해진다. 나 역시 몬스터는커녕 검을 들고 싸워본 적조차 없던 상황에서 검성식 스파르타 실전 교육으로 단숨에 약육강식의 개념을 체득하지 않았나.
“…정말로 안 도와주실 겁니까?”
다시금 검을 다잡은 루인이 슬쩍 시선을 돌려 나에게 물어왔다.
“당연히.”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내 단호한 대답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내가 주목을 끈다. 너희는 양옆에서 급소를 치고, 란돌프는 우리가 빠지는 타이밍을 노려줘.”
나름대로 날카로운 오더에 녀석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나 그들의 전투를 관망했다.
산맥을 내려온 하급 몬스터는 오스칼 제국군에게 떠맡긴 뒤 우리는 좀 더 싸워볼 만한 상대를 찾아 산맥 안을 누볐다.
루인을 비롯한 녀석들은 차라리 만만한 다수보단 강한 소수가 나은지 쌍수를 들며 환영했다.
다만, 그 태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크의 상위 종인 하이 오크나 트롤 같은 녀석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해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트윈 헤드 오우거는 그들에게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이들 정도면 평범한 오우거 한두 마리만 와도 좋은 상대가 될 터다. 하지만 트윈 헤드 오우거는 일반 오우거 몇 마리를 가져다 놓아도 상대가 되지 않는 흉포한 괴물.
“씨팔, 일단 물러나!”
가볍게 손을 휘두를 때마다 집채만 한 거목들이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애써 전투를 이어 나가는 듯싶었으나, 머지않아 한계가 찾아올 터.
애초에 트윈 헤드 오우거를 쓰러뜨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강한 녀석도 있을 거라고 깨닫게 해주고 싶었을 뿐.
스릉.
가볍게 검을 뽑아선 나는 고통받는 그들을 구제하고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몇 개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몬스터의 것이 아닌 명백한 사람의 기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아카데미의 일원이나 오스칼 제국의 기사 같지도 않아 보였다.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나.’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에르메스가 말한 불순분자들일 터.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군.”
스멀스멀 느껴지기 시작하는 선명한 적의에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