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89)
망나니학 개론-190화(190/300)
#190
“꿇려라.”
애써 반항해 보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한마디에 루인은 양옆에 선 마인의 손에 강제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황제도 아닌 다른 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에 루인의 얼굴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 그럼 일단 채혈부터…….”
호베른 자작은 일그러진 웃음과 함께 다가와 검 끝으로 그의 팔뚝을 베었다. 그러곤 곧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핏줄기를 병에 담기 시작했다.
“…대체 뭐 하는 짓이냐, 호베른 자작.”
“난들 알까. 단지 우리를 보내신 분께서 네놈의 피를 원하셨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귀한 몸을 이끌고 직접 온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다른 형님들도…….”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제국의 황자라는 놈이 피아를 구분하지도 못하는 것이냐.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것이지.”
그 말이 암시하는 내용에 루인은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적들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자신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마인 세력은 은밀하게 숨어들어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것은 자신과 연줄이 있는 다른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
“…으으.”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친구들만이 겨우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간간이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씨팔.”
루인은 고개를 숙인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호베른 자작은 그가 결국, 체념한 모습을 보이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이제 좀 나타나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벌떡 고개를 들고 소리치는 모습에 그는 움찔하고 말았다.
“대체 무슨…….”
파각.
“엇?!”
피를 담고 있던 병이 깨어져 나갔다.
시뻘건 피가 손아귀로 흘러내려 땅을 적셨을 때, 호베른 자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웬 놈이냐!”
스슥.
그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한 인영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게 네놈들 목적이었구나. 고맙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군.”
“쳐라-!”
호베른 자작의 외침에 열 명이 넘는 마인이 일시에 몸을 날렸다. 한 명을 잡기 위해 과한 전력인 듯싶었지만, 레이오스가 검을 뽑음과 동시에 그 절반의 목이 잘려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지금껏 그들에게 핍박당하던 루인은 그것을 보고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호베른 자작은 그것을 보곤 이죽거리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어림없다.”
목을 잃은 이들의 잘려 나간 단면에서 시커먼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더니 그들은 좀비처럼 제 잘린 머리를 붙잡더니 다시 원상태로 되돌렸다.
“뭐야…….”
그 기괴한 모습에 루인은 기겁하는 표정을 몸을 움찔 떨었다.
“네 친구들을 챙겨라.”
“…예, 조심하세요.”
레이오스의 말에 자신이 지금 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깨달은 루인은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제 친구들의 몸을 질질 끌며 그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스스스슥.
원래 모습을 회복한 마인 무리는 이제 신중한 표정으로 레이오스를 둘러썼다. 본격적으로 싸워보려는 듯 그들의 몸과 검에서 시커먼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 그때까지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세 명의 마인 중 두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물러나라, 너희 상대가 아니다.”
* * *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앞으로 나온 두 명에 나는 속으로 실속을 머금었다.
루인 녀석들이 트윈 헤드 오우거를 쓰러뜨리기 직전, 나는 기척을 숨긴 채 삼림의 녹영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마인과 별개로 사역마나 다른 무언가를 통해 이곳을 지켜볼 시선을 차단하기 위함이었고, 혹여나 무언가 특별한 변수가 있지 않을까 파악하고 싶었다.
조금 전의 전투 때문인지 루인 녀석들은 머지않아 무력화되었다.
호되게 당한 듯 보였지만, 치명상을 입은 녀석은 없다.
아마 리베라 제국과의 교섭에 사용하려 했던 것이겠지.
“……?”
슬슬 나서려고 했을 때, 나는 루인이 호베른 자작이라 말한 이가 그의 피를 담는 것을 보였다.
자작의 말대로 오스칼 황실의 혈통은 리베라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고위 마족의 소환의 매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일까.
검성의 영지에서 있었던 마스터의 회합 당시 그곳을 습격한 마인 무리는 궁지에 몰리자 제 목숨을 제물로 바쳐 바포메트란 고대 악마를 소환했다.
지금 녀석들이 루인의 피를 받아내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일 터.
아무렴 수십의 소드 마스터가 제물로 바쳐진 것보단 규모가 작을 것이다.
그때처럼 고대 악마나 그와 동격인 마계 군주가 소환되지는 않겠지만, 상위 마족 한 마리라도 본체로 현신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겠지.
아무리 오스칼 제국이라 할지라도 큰 피해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쯧, 안 좋은 기억을.’
바포메트의 이름에 회합 당시 지옥의 겁화에 휩싸여 온몸이 타들어 갔던 고통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걸 다시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마침 기분이 더러워진 차.
적당히 분풀이라도 해볼까 싶어 검을 들자 날 아래로 두고 있는 것이 명백한 두 마인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스터인가.’
마인의 진영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실력자들인지 풍기는 기세가 사뭇 예사롭지 않았다.
“레이오스 폰 리베라. 리베라의 셋째인가. 설마 이런 경지까지 도달했을 줄은.”
둘 중 한 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해왔다.
다른 멍청한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같은 마스터의 경지이기에 내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난 거기에 덧붙여 어깨를 으쓱였다.
“소식이 늦네. 그 뒤에도 수식어가 많은데.”
“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나는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코앞에 도달한 내 신형에 마인은 헛바람을 내며 검을 뽑았다. 그 옆에 있는 녀석도 설마 내가 선공을 해올지 몰랐는지 눈동자를 떨며 몸을 돌렸다.
서걱.
허공에 실선이 이어진다. 그것은 비단 내 앞에 있는 녀석뿐만 아니라 옆의 마인의 몸까지 베어 갈랐다.
“어림없다!”
하지만 그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한 녀석들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두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마스터급의 회복력은 이 정도인가.’
이전에 말했듯 마인은 일반적인 공격으로 쓰러뜨릴 수 없다.
비유하자면 리치같이 생명의 근원이 제 주인에게 저당 잡혀 있는 상태. 당연하게도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은 녀석들의 수준을 대충이나마 알아두기 위해서였다.
이제부턴 내가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마인과 잦은 전투가 있을 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공략법이 필요했다.
일반 마인은 신체가 손상되면 회복하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스터급은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순식간에 제 상처를 회복했다.
파바바밧-!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내 독주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시커먼 마기를 내뿜어 주위에 둘렀다.
[마스터?] [뭐 해, 당신. 우린 엿 바꿔 먹으려고?]리버와 티르빙이 어째서 자신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물어온다. 그것에 내가 괜찮다며 답하자 티르빙이 삐죽거리며 답했다.
[뭐, 괜찮다니까 가만히 있을게. 당신이 이상한 짓 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이었어?]뼈가 들어 있는 말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엑스칼리버의 신성력이나, 티르빙의 마기나, 심지어 프로메테우스의 성화까지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본연의 함만으로 시퍼런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그들에게 저항했다.
“선배님…….”
“됐어, 물러나.”
점차 궁지에 몰리는 내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루인이 굳은 얼굴로 다가오려 했지만, 나는 손을 저었다.
힘을 숨긴 채 현재 세계관에서 중간 보스 정도 되는 이들과 싸우고 있자니 예전에 했던 고인물 플레이가 떠올랐다.
초보자가 기본적으로 받는 1레벨 몽둥이를 가지고 레이드를 뛰거나, 아무런 방어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노 대미지로 던전을 공략하는.
하지만 이것 역시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쐐애애액-!
엑스칼리버나 티르빙,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성화를 빼면 나는 리베라 혈통을 이었다는 것 말고는 평범한 소드 마스터였다.
물론 소드 마스터 앞에 평범이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곧 그런 세계가 정말로 찾아올 것이다.
마계와의 게이트가 열리며 파워 밸런스의 수준이 확 올라가고, 곳곳에서 마스터와 마스터 급의 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날 터.
뭐,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원작에서는 심심하게 갈려 나가는 전투력 측정기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마인에 대한 체계적인 공략법을 세운다면.
파바밧.
마기의 폭풍이 마치 칼날처럼 내 몸을 베어 가른다. 여기저기 핏줄기가 비치며 옷을 적셨고, 녀석들은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내 주위를 맴돌았다.
“…….”
그럼에도 녀석들은 섣불리 들어오지 못했다.
그들은 두 명이었으나, 애초에 검술 실력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십수 번은 몸이 갈라져 죽었다는 것을 자신들 역시 알고 있겠지.
‘덕분에 단련까지 하는군.’
요새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 검술이 지금 싸움에서 조금씩 탄력이 붙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어느 경지에 오르니 일정 수준 밑의 상대와 아무리 싸워봤자 감흥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빨리 앨리스와 페트라, 그리고 엘리시아가 마스터급에 도달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수월하게 단련할 수 있을 텐데.
“끝이다-!”
대치 상황을 끝내기 위한 회심의 일격인지 마인의 검 끝에서 응축된 마기가 날카롭게 쏘아진다.
나름대로 허점을 찔렀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몸을 가볍게 비튼 것으로 그것을 피해냈고, 순식간에 검을 내질렀다.
검성류 오의 별무리(constellations)
솨사사사삭.
시퍼런 오러 블레이드의 끝이 마기를 찢어발기며 녀석들의 몸을 사정없이 베어 갈랐다.
마인의 육신은 순식간에 조각났지만, 오러 블레이드까지도 견뎌내는 것인지 이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다만,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완전히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닌 듯싶었다.
“뭐, 이 정도인가.”
만약 가벼운 신성의 가호만 받고 있었더라도 녀석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터.
대충 실험을 마친 나는 검 끝을 높게 들었다.
“[사악을 멸하고, 죄악을 태우는 불꽃이여, 그 찬란한 빛을 흩뿌려, 지금 이곳에 피어올라라.]”
프로메테우스의 성화(聖火).
그 찬란한 불꽃이 피어올라 주위를 뒤덮은 마기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무, 뭣!”
“피해!”
그것은 비단 눈앞의 두 녀석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녀석들까지 모조리 집어삼켰다.
급이 낮은 마인은 순식간에 불타 재가 되어 사라진다. 호베른 자작을 비롯한 이들 역시 반항할 새도 없이 불에 타 스러졌다.
“씨팔-!”
이름 모를 마스터 급의 마인은 순순히 죽진 않겠다는 듯 농밀한 마기를 피워 올리며 불꽃을 찢어발긴다. 하지만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쥐약 먹은 것처럼 도망 다니는 모습이 꼴 보기 좋군.”
“이 새끼가-!”
녀석은 제법 자존심이 강한 듯 보였다. 그렇기에 그것을 살살 긁으며 자극하자 성스러운 불꽃에 타들어 가면서도 날 죽이기 위해 앞으로 돌진해 왔다.
“잠깐 놀아줬다고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지 마.”
휘릭.
들고 있던 검을 가볍게 돌리자 그 위로 시퍼런 성화가 깃든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때껏 숨기던 여력을 여지없이 해방했다.
서걱.
농밀한 마기 위로 푸른 궤적이 날카롭게 서린다. 그러자 두 마인의 목이 몸과 분리됐고, 이때까지의 싸움이 허무하게도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마스터란 녀석들이 상대의 수준도 제대로 가늠하질 못하니.”
성검이나 마검,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사용하지 않은 것과 동시에 검술도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있었다.
적어도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으면 후자 쪽은 눈치채도 무방할 터인데.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들자 장내는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떠들던 녀석들이 전부 죽었으니 당연한 일.
루인을 비롯해 어느새 깨어난 다른 녀석들이 턱이 빠져라 입을 열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랑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나 봐?”
나는 홀로 남은 마인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뭐가 그리도 여유로운지 처음 때처럼 미동 없이 나무에 기대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휘릭.
가볍게 검을 휘둘러 검풍으로 로브를 벗겨내자 다른 녀석들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마인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
그는 가볍게 코웃음 치며 팔짱을 풀고는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가증스러운 불꽃의 사용자를 보리라 생각하진 못했는데.”
“허?”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
그럼에도 한껏 여유가 느껴지는 그 태도에 나는 살짝 의아해졌다.
‘별다른 기세는 느껴지지 않는데.’
풍기는 기세는 앞서 두 녀석과 다르지 않다.
뭔가 특별한 것을 감추고 있나?
“한번 부딪혀 보고 싶었다. 감히 마기를 태우는 불꽃이라 명명된 그것을.”
쉬이이이이익.
녀석의 몸 위로 마기가 피어올랐다.
다만, 그것은 이전까지 상대했던 녀석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
인간의 육신이 허물어져 내린다. 창백한 피부, 황금빛 눈동자, 시커먼 머리카락이 등 뒤로 길게 흘러내리며 바람에 흩날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내가 우두커니 멈춰 있을 찰나, 그는 날 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쪽의 소개부터 해야겠지.”
그것과 시선을 마주한 내 등 뒤로 싸한 위기감이 흘러내렸다.
“본인의 이름은 [ ]. 아, 인간의 언어로는 구현이 되지 않는가. 대충 번역하면……. 그래.”
새하얀 손톱이 손 위로 길쭉하게 솟아난다. 그는 그것으로 턱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본인의 이름은 루시퍼라 한다.”
마계를 다스리는 마왕의 후계 중 한 명.
마계 군주에는 미치지 못하나 상위 악마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