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9)
망나니학 개론-19화(19/300)
#019
꿀꺽, 꿀꺽.
알싸한 청량감이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부족한 기운을 회복시켜 주는 비약이라는 소리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것들을 전부 들이켰다.
몸은 정상이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탄력이 넘쳤다. 어젯밤의 일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들어선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며칠 전보다 더 튼튼해진 기분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검성이 가져온 비약을 모두 비워낸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황제가 아닌 내가 다른 이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예우. 황족, 특히나 직계혈통은 남에게 함부로 존대하거나 고개를 숙이면 안 됐다. 그것은 자신들의 권위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하여튼 여기 귀족들도 참으로 귀찮게 산다. 어찌 보면 나에겐 좋은 상황이긴 하다. 적어도 무례하다면서 목을 잘릴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검성은 다르다. 그는 무력만으로는 제국의 꼭대기에 있다. 그 강한 황제조차 검성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으니.
“몸을 회복한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검성은 스스럼없는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도대체 이 노인네가 왜 이런 모습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개판을 쳐놨다곤 하지만, 초반부엔 지나가던 개보다 비중이 작던 인간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들이댄다니.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너를 지켜봐 왔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원작에서 레이오스가 검성과 관계되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황가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때였다.
검성은 분명 레이오스와 적대 관계에 있었다. 서로 목을 노렸으면 노렸지 절대로 이런 살가운 표정을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올 위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안에 있던 캐릭터 성의 붕괴가 엄청났다. 그렇기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지금까지처럼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망나니 황자로?
아니, 그렇다기엔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보였다. 마침내 결론을 내린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게 무엇이오.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을 찾아내 약점을 잡았으니 목줄을 부여잡고 협박이라도 하실 셈이오? 아쉽게도 난 이미 황자로서 팔다리가 전부 잘려나간 지 오래요. 그 알량한 권력을 부풀리고 싶다면 다른 곳을 찾아가시오.”
힘숨찐.
즉, 자신의 능력과 야망을 들킨 황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연기했다.
검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짧은 시간 동안 어림짐작해 도출해 낸 결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레이오스는 무능한 망나니라 소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검성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가 재능과 야망을 숨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필시 홀로 고된 수련을 거쳐왔다고 생각할 터.
앞서 말했듯 검성은 위선자였다. 그건 즉, 약자의 편이라는 것. 그는 나에게 측은지심을 느꼈고 도움을 주고자 다가온 것일 터.
“······.”
과연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검성은 역시, 라는 표정을 지은 채 입가를 꿈틀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듯 이내 헛기침을 하며 모양새를 정돈하곤 진중한 얼굴로 말해왔다.
“그간 네가 당해온 고충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네 말대로 자신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면서까지 그것을 버텨내었다. 이제 그것을 도와줄 이가 한 명 정도는 나타나도 되지 않겠느냐?”
“······.”
만약 내가 아닌 레이오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쭙잖은 가식 따위는 때려치우라고 윽박질렀겠지.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검성이 왜 스스로 위선의 길을 걷는지.
레이오스가 왜 섣불리 사람을 믿지 못하는지.
각자가 각자의 사연이 있고 상처가 있다. 검성과 레이오스는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달랐다.
그렇기에 검성의 뜻을 알았고, 레이오스의 소망을 확인했다.
“내 제자가 되어라. 그리한다면 지금까지 네가 받았던 차별은 모두 눈 녹듯이 사라지리라.”
검성의 두 눈은 진지했다. 그는 내 힘이 되어주겠다며 맹세했고 나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에 나 역시 입을 열어 고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었다.
* * *
“후욱.”
찬 공기가 폐부를 훑는다. 겨울이 슬슬 물러가고 봄이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황궁이 있는 제국의 수도는 다른 지역보다 봄이 늦게 찾아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연무장을 뛰어다니다 보니 그 차가움도 익숙해졌다. 장막의 저주 때문에 능력이 제한되어 있지만,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신체는 어지간한 추위에도 동상에 걸리지 않았으며 생생한 활력을 내뿜었다.
아카데미의 입학까지 한 달가량이 남은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해 기량을 끌어 올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탓인지 감각은 더없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전처럼 신체를 다루는 데 어설펐던 모습들이 사라졌고, 원래 내 몸이었던 것처럼 한 치의 이질감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마나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것이다. 용을 써도 영 시원찮게 움직이던 마나를 이제는 온전히 내 의지에 따라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틱.
나는 표면에 실금이 생겨난 장막의 저주를 벗겨냈다. 어차피 검성에 의해 이야기가 퍼져 나갈 것,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SYSTEM: 장막의 저주가 해제됩니다.] [SYSTEM: 신체 기능이 온전해집니다.] [SYSTEM: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상태창]이름- 레이오스 폰 리베라
종족- 인간
종교- 무(無)
칭호
-리베라 제국 삼 황자
-저주받은 사생아
-창녀의 아이
무예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전투의 꽃(Fiore di Battaglia)
-4 클래스 (마스터)
스킬
-진실의 눈 (A)
-초회복 (A)
꽈아악.
주먹을 쥐자 주체하지 못할 힘이 느껴졌다.
장막의 저주가 해제되기 전과 후는 정말로 천지 차이였다.
분명 해제되기 전의 신체 능력도 뛰어났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소드 유저에 이른 아우구스를 꺾었으며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다리우스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냈다.
하지만 장막의 저주를 해제하니 이제 그들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셋이 합심해서 나에게 달려든다고 할지라도 일 분 안쪽으로 모조리 때려눕혀 줄 자신이 있었다.
스릉.
연무장 한가운데 선 나는 티르빙을 대신해 사용하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렸고 그것은 곧 오러라 불리는 검사 본연의 에너지로 치환되었다.
웅웅-
시퍼런 오러의 빛이 내 검에서 솟구쳤다.
무협지로 따지자면 검기의 단계.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감개무량한 마음이 들었다.
판타지나 무협을 좋아하는 만큼 동경하기도 했었다. 가끔 작업하던 도중, 홀로 집에 있을 때면 취미로 사둔 목검을 휘두르면서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을 따라 하기도 해봤으니.
당연히 검기나 오러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상상력으로 보완해 소설 속에 풀어놓았고 대리만족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내 손에 의해 피어난 이 휘황찬란한 빛을 보라. 분명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지만, 내 정신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후우.”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올랐다곤 하나 장시간 오러 소드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부턴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레이오스가 궁내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은 수많은 황자라는 제약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다른 이들이 그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그 황자라는 이유에 있었다.
하지만 황궁을 나간다면?
나는 다른 세 명의 황자와는 달리 황제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독살 때의 건을 보아라. 만약 그것이 내가 아니라 카리우스, 아니, 하다못해 다리우스나 아우구스가 당했더라면 황궁은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즉, 묶여 있던 족쇄가 풀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일신의 무력을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소드 마스터였다.
물론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도 아주 높은 경지였다. 재능이 있는 기사라 할지라도 삼십 대의 전성기에 겨우 들어설 수 있는 경지였지만, 내 핏줄이 워낙 고귀해야 말이지.
검성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미 한번 소드 마스터의 문턱까지 다다른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두 번도 어렵지 않을 터.
실상 소드 마스터가 되면 아카데미 편까지는 편안하게 무쌍을 찍으면서 보낼 수 있었다.
그 먼치킨인 주인공조차 그전까지 제 능력을 각성하지 못해 굴러다니기만 할 뿐이니.
거기에 이제 대륙 곳곳에 숨겨진 히든피스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은 힘들 테니 사람을 고용하거나 세력을 구축해 탐사하게 한다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었다.
물론 사람 일이란 것이 그렇게 술술 풀리지는 않을 테니 B안이고 C안이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두어야겠지만.
“검에 잡념이 많다.”
수련과 동시에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던 내 집중은 불청객의 지적에 깨어져 나갔다.
검을 내린 채 옆을 돌아보자 어느새 와 있었는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연무장 벽에 기대 있던 검성을 볼 수 있었다.
“출입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만.”
“불허한다면 막을 수나 있느냐?”
“······.”
뻔뻔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내 이마에서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한 달 전, 제자가 되지 않겠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 뒤로 검성은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거절했으면 되었지 무슨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인지.
검성의 제자가 돼라? 참으로 좋은 소리였다.
그는 세계관의 최강자 중 한 명. 그 밑에서 가르침을 사사 받으면 필시 나 역시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검성의 강함은 짧은 시간에 이룩된 것이 아니었다. 충분한 재능을 가진 기사가 인생을 검에 바치고 평생을 뼈를 깎는 수련 끝에 도달한 경지.
차라리 그 시간에 히든피스 하나라도 얻어서 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혔다.
하지만 검성은 내 거절에 충격을 받았는지 몇 번이고 되물어 왔다.
“정말로?”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냐? 나 검성이다, 검성 요하넬이야.”
“내 제자가 된다면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비기를 모두 물려받을 수 있다. 다른 놈들은 천만금을 바쳐도 그 끝자락 하나 받을까 말까 한데 너는 그저 내 제자가 되겠다는 말 한마디면 모두 네 수중에 들어온다는 것이란 말이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까지 쳐오며 말해오는 것이 상당히 웃겼다. 하지만 그것이 하루를 지나 일주일이 되고,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르니 영 귀찮기 짝이 없었다.
“난 한 달 뒤에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그전까지 소드 마스터에 올라야 해서 바쁘단 말입니다.”
“그깟 소드 마스터!”
내 말에 검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흉흉한 안광으로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나에게 사흘만 주면 되게 해주마.”
그 모습이 너무나도 박력이 넘쳤기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 것은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