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197)
망나니학 개론-198화(198/300)
#198
앨리스가 제 후배들을 괴롭히러 가니 자연적으로 한가해졌다.
그렇기에 연무장 구석에 탁자를 가져다 놓고 과제를 하고 있자니 어느새 페트라와 엘리시아가 대련을 시작했다.
반짝이는 붉은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린다. 그들은 나와 앨리스가 싸웠던 것처럼 진지하게 실전처럼 살벌한 기세로 검을 놀리고 있었다.
쿵-!
페트라의 홍련이 섬뜩한 빛을 뿜어낼 때마다 엘리시아의 기운이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엘리시아의 검은 팬드래건 가문의 비전 검술인 강검의 계열이다. 힘으로는 어지간해서 지지 않지만, 요령이 부족하다면 테크니션이 뛰어난 검사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투지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런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캉-!
백 합이 넘어가자 결국 엘리시아의 검이 크게 휘청거린다. 페트라의 홍련은 레이피어에 가까운 얇기를 가졌으나, 제 몸보다 훨씬 더 큰 엘리시아의 대검을 어렵지 않게 튕겨내었다.
“…졌습니다, 아쉽네요.”
“그래도 전보다 훨씬 늘었는걸. 가끔은 나도 섬뜩해질 정도야.”
나랑 대련할 때와 달리 그녀들 사이에선 훈훈한 분위기가 퍼졌다. 슬쩍 보고 있노라면 로맨스 소설에서 영애들끼리 어울리는 장면을 눈앞에 둔 것 같다.
다행히 그와 반대인 쪽도 있었다.
“어쭈? 제대로 안 하지?”
“악! 제, 제대로 하고 있, 악!”
“야, 똑바로 막아! 그러면 나도… 컥!”
“이런 씹……!”
무려 1 대 3의 대련.
내가 예전에 그녀들과 한 것을 따라 하려는 것인지 페트라네의 반대편에서 격렬한 대련이 펼쳐지고 있었다.
솔직히 대련은 명목이고 나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거의 구타 수준으로 패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굴려댄 탓인지 녀석들의 심지는 오우거 피부처럼 질겨져 있었다.
앨리스에게 처맞고 날아가 연무장 바닥에 처박히거나, 코피가 바닥에 고일 정도로 줄줄 흘러내리거나 어디 상처가 나도 다시 벌떡 일어나 앨리스 앞에 서서 검을 들었다.
“…너네, 오뚜기냐?”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그녀조차 혀를 내두르며 지친 표정을 지을 정도였으니.
솔직히 그 정도로 근성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조금 감탄이 나왔다.
‘그런데 보통 저렇게까지 차이가 나나?’
루인 녀석은 익스퍼트 중상급에 데시아와 베르딘은 중하급의 경지에 있었다.
아무리 앨리스의 실력이 뛰어나다 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합은 맞아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모양새를 보니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저번 합동 훈련 이후 앨리스도 독기가 올랐어요.”
대련을 끝내고 다가온 엘리시아가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독기?”
“네, 또 당신이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오자 그것도 모른 채 가만히 있었다며 화내더라고요. 훈련이 끝나기 직전까지 날뛰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라며 그녀는 씁쓸히 중얼거렸다.
“…….”
분발하라고 이야기는 하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저 모습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조금 불편해졌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차라리 내가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앨리스의 성장을 촉진한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다. 차라리 죽는 연기라도 해볼까?
“…대학 다닐 때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끄적이고 있던 과제가 눈에 들어왔다.
시스템 어시스트 덕분에 내용 대부분을 이해할 필요 없이 쓱쓱 써 내려가면 됐지만, 요즘엔 그것도 얼추 이해가 되었다.
글에 정신을 팔리지 않고 그대로 대학을 졸업했으면 괜찮은 곳에 취직할 수 있었을까.
“벌써 다 끝내셨어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자, 대련이 끝난 엘리시아가 다가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나 수석인 거 잊었어?”
“…이번엔 꼭 뺏을 거니까 각오하세요.”
“그 전에 레이시스 먼저 이겨야 할 것 같은데.”
“끙.”
쉽사리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인지 그녀는 신음을 흘렸다.
입학 테스트부터 2학년 직전까지 나는 전 시험 만점으로 확고부동한 1위를 유지했다.
물론 바이에른 아카데미 자체에선 그리 특별한 기록은 아니었다.
대륙 각국의 천재들이 모이는 만큼 1, 2학년 내내 만점을 받아 수석을 따내는 천재는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4년 내내 졸업하기 직전까지 그랬다는 녀석은 없었으니 살짝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원작의 전개를 생각하자면 하등 필요 없는 요소긴 했지만, 내가 어디 가서 공부로 1등을 해보겠는가.
이왕 이런 곳에 들어와 먼치킨 생활을 보내는 것에 겸사겸사 소소한 자기만족이었다.
“그럼, 나는 연공실 쪽에 가볼게.”
대련이 끝난 이후에도 페트라는 계속해서 혼자 검술 훈련을 이어 나갔다.
엘리시아는 조금 쉬려는 것 같지만, 페트라 쪽에는 훈련 도중 말을 거는 것도 조금 그렇다 싶어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이익.
연무장의 반대편, 마법사들을 위한 연공실이 위치했다. 슬쩍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창 모의전 중이었는지 마나의 잔향이 나에게로 닥쳐왔다.
“오, 오라버니!”
그 사이로 에스메랄다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에게 달려왔다. 내 옷에 얼굴을 비비려 하기에 살짝 잡아서 떼어놓으니 그녀는 사뭇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옛날에는 잘도 안아주시더니.”
“그때만큼 귀여우면 그랬을 텐데.”
이젠 속에 능구렁이 백 마리는 키우고 있지 않으냐. 그것에 그녀는 눈물 어린 얼굴로 씩 웃으며 내 가슴을 툭 쳤다.
“뭐, 이해는 해드릴게요. 오라버니도 한창때인 남자이니 제가 너무 자극적이겠죠.”
“…하하.”
조그만 녀석이 못 하는 말도 없다. 손가락을 들어 이마를 툭 치니 그녀는 맞은 부위를 감싸 쥐고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왜 그런 얼굴이야. 재들이 괴롭히냐?”
“…괴롭힌다니. 지금껏 열심히 알려주고 있던 사람한테.”
내 말에 안쪽에 있던 레이시스는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불평을 내뱉었다. 그것에 에스메랄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으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 잘했다고 칭찬해 주려 했지.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걸 보니까 조금 더 강도를 올려도 될 것 같은데.”
“…너무해요.”
그것에 에스메랄다가 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슬쩍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잡으려 했지만, 스승님에게 한 수 배운 것인지 기묘한 움직임으로 내 손을 피해 매미가 나무에 매달리는 것처럼 내 몸에 찰싹 붙었다.
“선배들 뭐예요, 진짜. 할아버님이 붙여주신 마법사들도 저렇게 비상식적이진 않으셨어요!”
“비상식적이라고? 뭐가?”
“유리아 선배는 이레이저니 뭐니 하시면서 모의전 동안 제가 캐스팅한 마법을 모조리 지워 버리시고, 레이시스 선배는 제가 마법 하나를 발동하면 순식간에 세 개를 만들어내시고…….”
쌓인 것이 많은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댄다. 하긴 같은 마법사의 시선으로 보자면 판을 뒤집는 실력자들이긴 했다.
피식 웃음을 내뱉은 나는 에스메랄다의 머리를 붙잡고 돌려서 다른 구석에 눈을 빛내며 얌전히 앉아 있는 란돌프의 방향을 보게 했다.
“란돌프면 괜찮겠지. 저 녀석은 너와 같은 조건일 텐데.”
“…하하.”
그 말에 유리아가 나지막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모의전으로 붙었다가 무참히 깨어진 듯했다.
“혹시나 물어보는데, 전적은?”
“…….”
에스메랄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여기에 너 말고 세 사람이나 더 있었다. 고개를 들어 레이시스를 바라보니 그녀는 살짝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15전 전패에요.”
“…전패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심하지 않냐는 식으로 슬쩍 에스메랄다를 향하니 그녀는 내 멱살을 잡았던 손을 툭 놓고 잔뜩 볼을 부풀린다. 그러곤 죽은 눈으로 어깨를 축 떨구더니 터덜터덜 레이시스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갑작스럽게 처진 분위기에 유리아는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너무 심했다는 표정이지만, 나는 천천히 에스메랄다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작게 쥐어박았다.
“이제 안 통해.”
“…칫.”
전부 연기였다는 것이 들통나자 그녀는 빠르게 표정을 바꾸곤 혀를 찼다.
그 역변에 레이시스와 유리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희들도 명심해. 한 번 귀엽다 귀엽다 봐주면 밑도 끝도 없이 잡아먹으려고 하니 가르칠 때는 확실하게 해야 해.”
“…알겠어요.”
그것에 레이시스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그래도 레이시스 선배랑 란돌프 군은 셰필드 가문의 마도 혈통이고, 유리아 선배는 특수한 능력을 지녔잖아요. 생각해 보니 제가 밀리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그러자니 이젠 고개를 끄덕이며 제 패배를 정당화하고 있기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성께서 네 마법 선생의 초빙을 위해 얼마나 쓰신 줄 알아? 적어도 기사단을 한 달 정도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을 지불하셨을 거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어쨌든, 약속한 대로 두 사람에게 군말 없이 가르침을 받도록. 이 주 뒤까지 기준을 넘지 못하면 학술제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정도의 성장 추세면 충분할 것 같으니까요.”
그 말에 레이시스가 대답했다.
확실히 전보다 느껴지는 마력의 질이 조금 순도가 높아진 것 같다. 다만, 에스메랄다는 레이시스가 자신을 도와준 것에 기뻤는지 금세 그녀의 옆으로 달려가 친한 척을 했다.
“그나저나 앨리스랑 대련한다고 들었는데, 벌써 끝나셨나요?”
“꽤 격렬하게 했는데, 소리 못 들었어?”
“아까 뭔가 한 번 크게 나긴 했는데, 이쪽도 모의전 중이었거든요.”
“진작에 끝내고 과제까지 하고 왔지. 앨리스는 제 후배들과 대련하고 있다만.”
“…아.”
그 모습에 상황이 그려지는지 유리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천직인 것 같아요. 2학년이 되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조금 말썽이 늘었는데 앨리스가 풍기 위원장이 되자마자 전부 뒤집어놓으니 아무 소리도 못 하더라고요. 하긴, 불만 있으면 덤비라고 하는데 여기서 누가 그녈 이기겠어요.”
“참 나, 막무가내로 하는군.”
앨리스의 성적은 중위권이지만, 검술로만 따지자면 내 뒤를 이어 최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다.
다른 녀석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니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엎드려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오랜만에 마법 수련도 하시게요?”
“그래. 학술제도 몇 주 안 남았는데 슬슬 해야지.”
“……?”
그 말에 에스메랄다가 의문을 표했다.
“왜 오라버니가 마법 수련을 해요?”
“말하지 않았나? 난 전년도 검술 부문 우승자라 그쪽으론 출전하지 못해. 그래서 마법 쪽으로 한번 해보려고.”
“그럼 저희는 경쟁자라는 거네요?”
“그렇게 되지.”
순간 에스메랄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표정을 보니 생각하는 것에 눈에 훤하게 보인다. 마법사 간의 결투는 순수하게 마법으로만 이루어지게 돼 있다.
즉, 소드 마스터인 내 힘이 봉인된 채 평범한 마법사가 된다는 소리였으니.
“…그러면 저랑 모의전 하지 않으실래요?”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제 딴에는 제법 승산이 있나 보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