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06)
망나니학 개론-207화(207/300)
#207
[…과연 명불허전이군. 가증스러운 여신의 힘답구나.]앨리스가 용사의 힘을 해방한 후, 전투 양상은 전과 다르게 흘러갔다.
무력 면에선 벨페고르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용사의 힘은 그에게 철저한 상극을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짙은 마기조차 뭉텅이로 잘려 나갔으며 그가 가진 회복 능력조차 더뎌져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신체 능력까지 더욱 향상된 것인지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으로 압박해 오는 그녀의 모습에 벨페고르는 점차 궁지에 몰려갔다.
[인정하마, 용사의 힘을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것을. 하나.]웅웅.
그는 허공에 나타난 짙은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한 자루의 검을 뽑아냈다. 그러곤 샛노란 눈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곤 이를 드러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 벨페고르 역시 이제부턴 다를 것이다.]콰득.
그가 한 발자국을 내딛자 바닥이 움푹 들어가며 파였다. 그것에 앨리스의 두 눈이 가늘어질 찰나, 그 신형이 빛살처럼 솟구쳐 그녀에게 쇄도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앨리스는 두 손으로 백련을 받쳐 그것을 막아내었지만, 이내 맞닿은 검에서 느껴지는 무지막지한 충격에 악다문 입 사이로 비틀린 신음을 내뱉었다.
[기운이 상극이라면 무투로 승부를 보면 될 일.]툭.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발을 밀어 균형을 무너뜨린 벨페고르는 검을 역수로 쥐며 가슴을 찔렀다.
앨리스는 넘어지는 와중에도 허리를 비틀어 다시 무게중심을 되찾았고, 자신을 찔러오는 대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호오?]그 능숙한 대응에 벨페고르는 감탄을 흘렸다.
지금 공격을 예상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녀 본인의 반사 신경일 터.
“…….”
앨리스는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위험했다.’
상대는 우직한 전투뿐만 아니라 잡기를 섞은 난전에도 강했다. 예전부터 레이오스를 통해 그것들의 대응법을 몸에 익히지 않았더라면 방금 한 수에 큰 낭패를 보았을 터.
‘…내가 꼭 구해줄 테니까.’
나약해진 마음을 다시 한번 채찍질한 그녀는 겨우 호흡을 진정시키고 신중하게 검을 다잡았다.
흐름은 이제 절정에 이르렀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단 한 번의 비틀림.
용사의 힘이라는 비장의 패를 오픈한 이상, 살을 깎아서라도 그 균열을 만들어내야 했다.
츠츠츠츠.
시작은 검성류 오의였다. 눈부신 황금빛 서기가 마치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흠.]벨페고르는 그것에 감히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바닥을 박차고 훌쩍 물러났다.
단순히 검술이라면 맞서 싸우면 됐지만, 용사의 힘은 닿는 것만으로 그의 격을 훼손시켰으니까.
“놓칠 줄 알고!”
하지만 앨리스는 집요하게 그를 뒤쫓았다. 눈부신 검광과 함께 벨페고르의 퇴로를 막아섰고, 이내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아압-!”
백련에 서린 황금빛 서기가 조금 전보다 한층 더 진한 빛을 발했다.
벨페고르는 물러날 수 없는 외통수에 직면해있다. 다시는 이런 기회를 얻긴 어려울 터.
하지만 그 위기 역시 자초한 노림수였는지 벨페고르의 전신에 서린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갈가리 찢겨 나갈 것 같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앨리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물러나지 않고 강하게 나오는 것을 반기며 그대로 제 검을 그어 내렸다.
그그극.
황금빛 서기가 벨페고르의 농밀한 마기를 좀먹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순식간에 틈을 파고들었고, 그의 몸을 사선으로 베어 갈랐다.
[말도 안…….]“말 돼.”
이등분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신형을 보며 앨리스는 지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마기를 베어낸 만큼 그 반동으로 대부분의 힘이 소진되었다.
지금까지의 싸움 중 가장 격렬했고, 험난한 사투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곧 벨페고르의 움직임이 멎었고, 앨리스는 검을 바닥에 꽂아 넣은 채 그것을 지팡이 삼아 기대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레이오스를 구속하고 있던 감옥 역시 벨페고르가 쓰러짐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한 앨리스는 조금 전까지 온몸을 가득 채우던 긴장이 탁 풀린 느낌이었다.
“유리아, 괜찮아?”
“…응,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벨페고르에 의해 저 멀리 날아간 유리아가 절뚝거리며 오는 것을 확인한 앨리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오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슬슬 나갈 준비 하자. 녀석이 쓰러졌으니 미궁도 사라지겠지.”
“응, 그런데 넌 괜찮아?”
유리아가 보기에 앨리스 역시 성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리하게 용사의 힘을 끌어다 쓴 탓에 손끝이 덜덜 떨려왔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그것을 티 내지 않고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긴 했는데, 뭐 내 앞에선 그 정도지.”
그 말에 둘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서둘러 레이오스의 신형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했을 때.
“…왜 미궁이 사라지지 않지?”
사방을 뒤덮은 미궁의 어둠은 여전했고,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법의 중심이 되는 벨페고르는 이미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 환경은 변하지 않는가.
‘…잠깐.’
그녀의 시선이 벨페고르의 시선으로 향했다.
레이오스는 신성력이나 용사의 힘에 당한 악마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녀석의 시신은 왜 그대로 남아 있는가.
짝짝짝짝.
돌연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 둘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쪽 벽 위에서 손뼉을 치고 있는 벨페고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앨리스의 시선이 황급히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놓여 있었던 것은 반 토막 난 기다란 뿔 한쪽일 뿐. 벨페고르는 바닥으로 훌쩍 뛰어내려 어두커니 서 있는 둘에게 미소를 지었다.
[용사와 기묘한 힘을 가진 인간이라. 그렇다고 해서 설마 내 분신까지 쓰러뜨릴 줄은 몰랐군.]“…분신이었다고?”
그 말에 앨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허탈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저 숨만 턱 하니 막혀 왔을 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아라. 아무리 용사라 할지라도 햇병아리 주제에 이 벨페고르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으냐.]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날아와 앨리스의 가슴에 박혔다.
“…유리아.”
그녀는 천천히 제 친구를 불렀다.
“난 이제부터 죽을 각오로 싸울 거야. 너는 레이오스를 부탁해.”
“…응.”
그것이 최선이었다.
유리아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붉어진 눈시울로 레이오스의 몸을 제 어깨에 걸쳤다.
[흐음, 그래 도망가 보거라. 그것도 좋은 유흥이 되겠지.]그 말에 유리아는 망설일 것 없이 자신의 몸에 강화 마법을 건 다음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
앨리스는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으며 이를 악물었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돌아가진 못할 것 같아요.’
살아남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점점 이곳에서의 삶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레이오스의 존재까지.
처음엔 언젠가 이곳을 떠날 몸이라며 애써 자신의 마음을 부정했지만, 그것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금에 와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있지 않나.
웅웅웅.
유리아가 사라져 이레이저의 구속에서 해방된 벨페고르는 가볍게 손을 까딱이는 것만으로 마기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곧 그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것들은 마치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쏘아져 그녀에게 쇄도했다.
타다닷-!
앨리스는 무거운 몸을 이끌며 땅을 박찼다.
자신에게 쏘아진 마기를 피해 벽을 타고 달리며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기운을 모조리 검에 담아 벨페고르의 목을 베어 갈랐다.
턱.
제 살이 찢기는 고통까지 감수한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허무하게도 막히고 말았다.
그것도 단 두 손가락에 잡혀.
[이 정도인가.]찬란했던 황금빛 서기는 이내 벨페고르의 마기에 잡아먹혀 그 빛을 잃었다.
그는 그 반대 손을 내밀어 순식간에 앨리스의 목을 붙잡았고,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무 상심하지 말도록 하여라. 네가 이 벨페고르의 분신을 상대하는 동안 밖의 녀석들도 마물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니. 지금쯤 붙잡혔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였겠구나.]그 말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앨리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이 이곳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게 다른 일행이 시선을 끌어주지 않았나.
그런 그들까지 위험에 빠졌다는 소리에 앨리스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러면 사냥을 시작해 볼까. 모조리 사로잡아놓고 누굴 먼저 죽일지 서로 결정하라고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인간은 죽음 앞에서 밑도 끝도 없이 추악해지는 존재니까.]벨페고르는 생각만 해도 재미있겠다는 듯 가벼운 조소를 흘렸다.
[아, 물론 레이오스 그 녀석은 제일 나중에 죽일 것이다. 저와 친한 이들이 자신을 저주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절망스러워할까. 아,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팔다리 정도는 잘라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이봐, 네놈은 어떻게 생각하지?]“…거야.”
[뭐라고 하는 것이냐.]작은 중얼거림에 벨페고르가 그녀에게 귀를 가져가며 되물었을 때, 푹 숙여 있었던 앨리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죽여 버릴 거야!”
눈이 뒤집힌 그녀가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그 모습에 벨페고르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 능력껏 해보려무나. 햇병아리 주제에 백날 덤벼보았자 감히 이 벨페고르에게 대적할 수 있을 줄……?!]그는 말하는 도중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황급히 앨리스의 목을 놓아버렸다.
[…….]그러곤 제 손을 내려다보니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제 손이 불에 덴 듯 시커멓게 타들어 가 있었다.
[이건…….]앨리스는 그대로 땅에 내려섰다.
이성은 이미 잃은 지 오래. 하지만 조금씩 그 전신에서부터 황금빛 서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허허, 용사는 썩어도 용사라는 것인가.]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든 그녀에게서 풍기는 기세에 벨페고르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자신의 분신과 싸움으로 전부 소진되었을 터인 힘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며 심상치 않은 파동을 뿜어냈다.
[…설마.]그 모습에 벨페고르는 언젠가 군주 회의에서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용사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용사란 것들은 괴이한 종족이지. 과거에도 몇 번 만나봤지만, 제 위기가 아니라 동료나 다른 이들에게 위기가 닥치면 눈이 뒤집혀서 각성하더라고. 그러니까 사로잡는 것을 실패하면 그대로 죽여 버리는 것이 좋아. 혹시라도 각성하면 귀찮아지니까.
스스슥.
그것을 복기해 내기도 전에 앨리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어둠에 몸을 숨긴 것.
하지만 벨페고르는 그녀의 기척을 읽어낼 수 없어 당혹감에 잠겼다.
[재밌구나. 하지만 설사 각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벨페고르에게 미치진 못한다!]그는 마기 폭풍을 일으켜 제 주위를 휩쓸었다. 아무리 몸을 숨기는 재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숨길 공간이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터.
[…거긴가!]시커먼 그의 검이 허공을 꿰뚫었다.
그러자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잘렸지만, 앨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푹.
[……!]그와 동시에 벨페고르는 자신의 가슴을 뚫고 솟아오른 한 자루의 검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