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07)
망나니학 개론-208화(208/300)
#208
파아앗-!
가슴을 꿰뚫은 검 끝에서 영롱한 금빛 서기가 솟구쳤다.
벨페고르는 일그러진 얼굴로 황급히 뒤를 향해 손을 휘둘렀지만, 앨리스는 이미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난 이후였다.
[이 무슨……!]가슴에 구멍이 뚫린 그의 신형이 무너져 내리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한순간이었으나 가슴을 헤집은 그 기운은 막대한 피해를 주기엔 충분했다.
[컥.]검붉은 피가 바닥에 토해져 나왔다.
순식간에 초췌해진 얼굴로 고개를 든 벨페고르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거친 숨을 뱉어냈다.
[군주들이 그렇게 경계할 만하군.]척.
앨리스는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그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눈에 일렁이고 있는 황금빛 서기의 잔향이 심상치 않았다.
아마 죽음의 위기에서 내재한 힘이 밖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벨페고르는 짐작했다.
꽈드득.
그는 손을 들어 타들어 가고 있는 자신의 가슴을 파헤쳤다.
용사의 힘에 당한 살점들을 찢어버리고 마기를 내뿜어 그 형태를 되돌렸다.
어지간한 손해를 감수하고도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 가증스러운 기운이 자신의 내부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보단 백배 나았다.
[좋다.]인간의 것을 표방하는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마기가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제 유흥은 끝이다.]파아아앗-!
벨페고르의 손에 들린 검이 공간을 갈랐다.
그것에 앨리스는 흠칫하며 황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지만, 그 어깻죽지에 기다란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용사? 각성? 정말로 편리한 이름이로구나. 하지만 그 모든 건 압도적인 힘 앞에서 한낱 기예에 불과하다!]“…….”
공간을 뛰어넘고 휘둘러진 참격에 그녀의 눈에 짙은 경계심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투지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웅웅.
벨페고르의 마기를 밀어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앨리스의 검에 서린 빛이 짙어졌다. 하지만 그는 차가운 눈으로 조소를 흘리며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말했다.
[같잖군.]벨페고르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앨리스 역시 훌쩍 몸을 날려 전처럼 어둠 속에 녹아들려 했지만, 상대는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
퍽!
거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앨리스의 몸이 다시 한번 바닥을 나뒹굴며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곧바로 일어나긴 했지만, 충격이 작지 않은지 피를 토해내며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서 있을 뿐.
전신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그녀는 겨우 이성을 회복했다.
“이건…….”
제일 먼저 파악한 것은 지금 자신이 닥친 상황. 몸에 깃든 용사의 힘은 어찌 된 것인지 전보다 더 큰 요동을 치며 이 순간에도 조금씩 그 크기를 부풀렸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잠깐 사이 그녀는 무의식중에서 제삼자의 시점으로 싸움을 지켜봐 왔다.
용사의 힘으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곤 하지만, 이미 벨페고르에게 당한 상처들이 커서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웠다.
‘레이오스가 말했었지. 언젠가 이런 때가 올 거라고.’
자신의 위기든 누군가의 위기든 극한 상황을 맞이할 때가 온다. 그렇게 된다면 몸에 깃든 여신의 힘이 그 역경을 타파하기 위해 한 꺼풀 허물을 벗을 테고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웅웅.
황금빛 서기 위로 신성력과 비슷한 성질의 빛이 점점 섞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순수하고 근원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녀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니 벨페고르의 얼굴이 꿈틀거리며 선명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가증스러운.]그의 의지를 따라 허공에 뭉친 마기가 기다란 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물경 수십 개. 허공을 뒤덮은 날카로운 살기의 파도에 앨리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검을 다잡았다.
‘넘어서지 못하면 죽는다.’
여신의 가호인 용사의 힘은 충분히 발돋움했다.
나머지는 그것을 받아들일 그릇을 넓히는 것. 즉, 소드마스터의 경계를 허물어야 했다.
앨리스는 이제는 왜 자신에게 이런 운명과 시련과 역경이 닥쳐왔는지 불만과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몸을 낮췄고, 그것들을 베어 가를 준비를 마쳤다.
곧 벨페고르의 손짓에 따라 수십 줄기의 선명한 궤적이 허공에 그어지며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자신 앞에 세워진 벽에 저항했다.
쾅-!
창 한 자루 한 자루가 자신이 지금 낼 수 있는 전력을 웃돌았다.
분명 상성에서 상극일 터지만, 그것을 막아낼 때마다 검에 서린 빛이 뭉텅이로 깎여 나가며 그 몸도 조금씩 뒤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흡!”
무릎이 꺾이고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럴수록 앨리스는 필사적으로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을 가슴속에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의지만은 높게 사지. 아쉽구나, 네놈이 그 가증스러운 여신의 가호만 지니고 있지 않았으면 나의 종자로 삼았을 것을.]곧 오십여 발에 달하는 마창이 모조리 그녀의 검에 튕겨 나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벨페고르는 가벼운 조소와 함께 손을 휘둘렀고, 그것들은 곧 다시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고작 그 정도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황금빛 서기가 일렁이는 두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 이질적인 모습에 벨페고르는 조용히 검을 들며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인정하지. 그 성장만은 괴이할 정도구나.]앨리스의 그릇은 이제 넘치기 직전이었다.
누군가 조금 툭 건드리면 그 가장자리가 터져나가 결국엔 형태를 바꿔 버리는 작용을 일으킬 터.
웅웅웅.
거세게 피어올랐던 마기가 더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일격에 앨리스를 끝장낼 생각인 듯 그것은 모조리 검 위로 덧씌워져 형언치 못할 파장을 내뿜었다.
[쯧.]하지만 벨페고르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슬쩍 인상을 썼다.
[아직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 전력의 4할도 사용할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구나.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터.]서걱.
어둠이 어둠을 베어 갈랐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 마치 전력을 다한 레이오스나 저 멀찍이서 본 검성을 보았을 때나 느껴질 법한 감각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앨리스가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느낀 죽음의 위기에 검을 끌어당겼던 것이 목숨을 구했다.
“으윽……!”
하지만 그것은 고작 한순간의 요행이었을 뿐.
용사의 힘으로 보호되던 살갗이 갈라지고 핏줄기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단순히 저항하는 것으로 부족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있을 힘까지 모조리 끌어와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펼쳐내었다.
어쌔신으로서의 검, 레이오스에게서 배운 검성류 오의와 피오레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녹여낸 자신만의 검까지.
벽을 넘어서려면, 먼저 그 벽의 존재를 인식해야 했다.
그리고 앨리스는 백련을 들고 있는 손이 곤죽이 되었을 때가 돼서야 겨우 자신 앞에 서 있는 벽의 존재를 직시하고, 마주할 수 있었다.
[허.]그리고 벨페고르는 그 벽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희귀한 광경이군. 그리고 그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 없애다니.]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토록 염원한 경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앨리스의 움직임은 거기까지였다.
절그럭.
부러지기 직전의 백련의 끝이 바닥에 닿았다. 더는 검을 들고 있을 근육이 남아 있지 않아 겨우 손에만 쥐고 있었을 뿐.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은 아티팩트의 효과가 사라져 시커멓게 변해 산발이 되어 흩날렸다. 더러는 피투성이인 머리와 목에 달라붙어 기괴한 모습을 뿜어내었다.
오직 멀쩡한 것은 황금빛 서기가 어린 두 눈동자일 뿐이었다.
[선 채로 의식을 잃었나.]그 의지만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결코 검을 놓지 않는다니.
벨페고르는 작게 감탄을 흘리며 그녀의 수급을 취하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막 검을 들어 올린 순간.
툭.
돌연 작은 돌멩이가 뒤쪽에서 그를 향하고 날아왔다.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닌 덕에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지만,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벨페고르는 고개를 돌리자 제 뒤에 서 있는 한 인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하, 깨어나서 다시 돌아온 것이냐. 그러지 않아도 되었거늘.]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레이오스의 모습에 그는 재밌다는 웃음을 토해냈다.
둘이 여간 깊은 관계가 아닌 듯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걸레짝이 된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분노할 것이냐, 절망할 것이냐.’
하지만 레이오스가 보인 표정은 그의 예상을 모두 빗나간 것이었다.
살짝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그는 선 채로 멈춰 있는 앨리스를 보더니 이내 벨페고르에게 말했다.
“일단 고맙다.”
* * *
[…뭐라?]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벨페고르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상위 악마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우습고 가능하면 사진까지 찍어서 남겨두고 싶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중하며 녀석을 지나쳐 앨리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탁.
그 작은 손에 꼭 쥐어진 검을 빼앗아 검집에 넣어 내 허리에 달았다. 그러곤 저 뒤쪽을 향해 손짓하니 눈물을 글썽이던 유리아가 쪼르르 달려와 앨리스의 신형을 안아 들었다.
“어떡해, 어떡해…….”
연신 어떻게 하느냐를 남발하며 참혹한 꼴이 된 앨리스의 뺨을 쓰다듬고는 기어코 눈물을 터트렸다.
“이 앞에서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요.”
유리아는 이를 악물며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앨리스를 안아 들고 내 말에 따라 이곳을 빠져나갔다.
[눈물 없이 보지 못할 신파극이구나.]“…그런 거 좋아하나 봐. 기껏 기다려 준 것을 보니.”
벨페고르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다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터.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앞서 했던 고맙다는 말은 진심이다. 네 덕분에 앨리스가 각성할 수 있었으니까.”
[…의도한 것이었다?]“그래, 나로는 그녀를 각성시키는 게 불가능해. 아무리 강하게 몰아붙여도 마음 깊은 곳에선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 전개를, 이 상황을, 벨페고르를 이용했다.
원작에서는 마스터급에 이른 마인이 이곳에 자리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앨리스를 죽을 위기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중, 나를 찾아온 에레이라가 사실은 악마에게 먹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짜뒀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녀석의 노림수는 나.
그러니 먼저 사로잡혀 앨리스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그녀를 몰아넣었다.
그렇기에 날 구하러 온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아가 날 업고 미궁의 최심부를 빠져나가다 다른 마수와 마주친 다음에야 눈을 떴고, 다시 이곳으로 도달했다.
그녀는 내 멱살을 붙잡으면서까지 제발 앨리스를 구해달라 애원했지만, 나는 나서지 않았다.
지켜보던 유리아마저 몇 번이고 울음을 터트린 처절한 싸움. 난 그녀가 나서는 것도 내가 나서는 것도 모두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 앨리스는 각성에 성공했다.
비록 전신이 박살 나고 너덜너덜해졌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용서받지 못할 일임을 알고 있다.
유리아에게, 앨리스에게 큰 상처를 남겨주었으며 다른 이들에게 역시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 끝에서 스스로 중얼거려 보았지만,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차오르는 것을 속일 수는 없었다.
[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유흥은 이제 끝났다. 이제 네 수급을 들고 너와 연관이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사냥하러 갈 것이다.]등 뒤로 시커먼 날개를 펄럭인 벨페고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에 난 가볍게 손을 뻗었다.
유려한 자태를 가진 검은 검신이 허공에 불쑥 솟아올랐다.
서걱.
드디어 날뛸 시간이 왔음을 깨달은 티르빙이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그것은 곧 벨페고르의 목을 갈랐고, 녀석은 힘을 잃고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물론, 녀석은 고작 그것으로 죽지 않았다.
쓰러진 것은 녀석의 분신. 그런 것 정도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사냥이고 나발이고.”
이 공간에 새겨진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흩뿌려진 피, 잘려 나간 머리카락, 곳곳에 뭉쳐 소용돌이치고 있는 마나의 용오름까지.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시커먼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그것에 나는 등 뒤에 있던 벨페고르에게 검 끝을 겨누며 말했다.
“먼저 화풀이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