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10)
망나니학 개론-211화(211/300)
#211
학술제가 개최되기 어느 전날.
나는 그간 다른 아이들의 성과를 보고도 할 겸 크리스의 집무실에 방문했다.
논문이나 발표, 그리고 사수좌의 토너먼트가 흠잡을 것 없이 준비가 끝난 것을 본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날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했네. 이 정도면 작년보다 더 성적이 잘 나올 것 같은데.”
“아무렴, 발표 쪽은 신경 쓸 것도 없고 사수좌의 토너먼트는 최소 두 분야 이상 우승할 거니까.”
검술 부문엔 앨리스오 페트라가 있고, 마법 부문엔 나와 레이시스가 있다.
어렵지 않게 순위권을 장악할 수 있겠지.
“그럼 보고는 이걸로 됐고.”
그녀는 들고 있던 양피지를 펄럭이며 본론을 꺼내라는 시선을 보냈다.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순진했는데, 날로 눈치가 늘어가는군.”
그것에 감회가 색다르다는 표정으로 말하니 크리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태도로 답했다.
“누가 누구한테 그런 소릴 하는지…….”
나는 그녀가 내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학술제의 공문을 가리켰다.
“이번 학술제에도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거다. 마인 세력이 깊게 관여했고, 아마 마족까지 등장하겠지. 그것도 꽤나 고위의.”
이미 루시퍼의 전례가 있지 않은가.
높은 위치에 있는 녀석들이 대게 자존심이 강하듯 녀석 역시 제가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손을 써올 터.
“그래서 도와달라고?”
“아니, 어느 때처럼 보험을 들고 싶어서.”
될 수 있으면 이런 굵직굵직한 전개들은 다른 이들의 개입 없이 우리끼리 헤쳐 나가야 했다.
변수가 줄어들수록 개변이 적게 일어날 테고, 그래야 내가 알던 미래와 괴리감이 줄어들 터.
그렇기에 최대한 다른 변수의 개입은 줄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을 거거든.”
“흠?”
그것에 크리스는 흥미가 있다는 시선을 보냈다.
“마인이든 마족이든 상당한 수준의 녀석이 나오겠지.”
아마 루시퍼의 수하 중 한 명이 나올 듯싶다. 그렇게 된다면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터.
“내 목표는 앨리스의 각성이다. 녀석은 벽에 가로막혀 있어. 그걸 깨기 위해선 진짜 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것을 자초하겠다는 건가.”
“필요하다면.”
필요하다면 스스로 미끼가 돼서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다.
그런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
크리스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를 보아하니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차를 마시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떤 미래를 봤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네.”
“조급해한다라.”
그 말에는 나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꼬집어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에서 기인한 조급함이 내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이 레이오스의 본능에서 나오는 위기감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수라장을 거쳐온 내가 보낸 경각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충 사정을 알고 있는 나 정도야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녀들에게는 잔혹한 짓이 될 거야.”
크리스는 제 손가락을 쓰다듬으며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충고를 해왔다. 그것에 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잔혹하다 해도 어쩔 수 없네.”
진부한 말에 자신에게 애써 변명하는 것 같지만, 다 그녀들을 위해 하는 것이지 않나.
나중에 무력함에 후회하며 죽어갈 바에 지금 당장 고생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만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정말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
“뭐, 그건 당신이 알아서 잘 하겠지. 내가 신경 쓸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현재.
나는 크리스에게 내가 포기할 때까지 나서지 말아 달라고 했으나, 결국엔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것은…….]벨페고르는 제 몸을 속박하고 있는 사슬을 보곤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시커먼 마기가 녀석의 몸 위로 솟구쳐 사슬에 닿자 선명한 보랏빛을 내던 그것이 점점 부식돼 가며 끊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일말의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몸부림치는 벨페고르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 이번 원흉?”
“그래. 저번 합동 훈련 때 쓰러뜨린 루시퍼의 수하다.”
“마룡, 은 아니고 그 아류인가.”
“아마 유전자를 물려받았거나 비슷하게 흉내 내려던 거겠지.”
크리스가 두 손을 올리며 일그러진 미소를 짓자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위압감이 그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날선 눈초리에 나는 퍼뜩 그녀의 설정이 머리를 스쳤다.
엘프 일족을 멸망시킨 것이 바로 마룡이 아니던가.
벨페고르가 그러진 않았지만, 외형만 봐서는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그러니 그녀의 심기가 비틀리는 것이 당연했다.
“물러나 있어.”
이미 눈이 돌아가 버린 그녀는 조화의 종족인 엘프가 아니었다.
가볍게 한 번 손을 휘두른 것으로 나와 페트라의 몸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날려 버린 그녀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벨페고르의 앞까지 다가갔다.
쿠우우우우웅.
곧 무지막지한 파공성과 함께 대마도사와 악마 간의 사투가 펼쳐졌다.
그래도 이쪽엔 피해가 가지 않게 배려해 준 것인지 눈먼 공격들은 모두 그녀가 만들어낸 실드에 막혀 사라졌다.
타닥.
일행이 있는 쪽에 내려선 나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앨리스에게 신성력을 퍼붓고 있는 실비아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그들의 분위기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앨리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험난한 싸움을 거쳐왔는지 다들 상처투성이였다.
루인이나 데시아, 그리고 베르딘 같은 경우엔 앞에서 탱킹을 하기라도 했는지 다른 이들보다 더 참혹한 꼴로 바닥에 나가떨어진 이후였다.
그들은 분명 훌륭히 제 몫을 해냈다.
원래라면 진작에 나가떨어졌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합동 훈련의 성과를 톡톡히 발휘했고, 상처를 입었으나 모두 무사히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만신창이가 된 앨리스 때문일 것이다.
“언니가 깨어나질 않아요…….”
제 자신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렸음에도 앨리스의 몸에 신성력을 퍼붓고 있던 실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해왔다.
나는 대답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치료를 중단했고, 천천히 앨리스의 상태를 살폈다.
“…벨페고르와의 싸움에서 벽을 넘었어. 지금은 무의식 속에서 그것을 갈무리하는 중이야.”
더는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그 말에 그녀는 다리가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마음을 놓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직 유리아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옷자락의 끝을 잡고 내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미움받았나 보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 역시 내가 한 짓에 혐오감이 들 정도이니. 굳이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기에 애써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행인 점이라면 이 자리에서 굳이 분란을 일으키기 싫은 듯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페트라만이 그런 우리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눈치챈 듯 살짝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인간들은 복잡하네. 결과만 좋으면 다 되는 거 아니야?]‘…복잡하니까 인간이다. 특히 이런 종류의 일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저는 저 아이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오? 항상 마스터! 마스터! 하면서 이 남자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거 누구의 흉내인가요. 불쾌하니까 그만둬 주세요.] [불쾌하니까~ 그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때리지 좀 마! 나 아까 저 녀석한테 씹혀서 아직 아프단 말이야!]“후.”
시끄럽게 떠드는 녀석들을 무시한 채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서는 인지를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크리스와 벨페고르가 격돌할 때마다 지축이 울리며 이 공간 자체가 출렁거렸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이들은 어서 한 시라도 빨리 이 싸움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로선 영문도 모른 채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을 터.
실제로 눈앞에 있는 벨페고르의 존재는 천재지변과 같았다.
기어코 제 몸을 뒤덮고 있던 사슬을 끊어낸 녀석이 광분에 차 브레스를 토해냈다.
그것에 휘말린 온갖 것들은 잔해를 남기지도 못한 채 산산이 조각났고, 그 후폭풍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휩쓸었다.
‘나랑 싸웠을 때도 어느 정도 여력을 두고 있었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직 중간계와 마계를 잇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은 상황이라 원래 가진 전력의 절반 정도가 제한된 상태임에도 이런 강함을 보이다니.
나중에 게이트가 열리게 되면 마족뿐만 아니라 중간계 파워 인플레 역시 상향 평준화가 되기에 그리 걱정할 것은 없지만, 지금 당장이 문제였다.
‘혹시 벨페고르 말고도 다른 녀석들이 중간계에 현현한다면.’
투다다다다다다다다-!
크리스의 특기인 전 속성 마법의 폭격인 엘리멘탈 버스트가 마치 장대비처럼 떨어져 내려 녀석의 몸을 두들겼다.
그 장엄한 광경에 레이시스와 란돌프가 입을 떡 벌리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마 둘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경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 놀라고 있는 것일 터.
남매 아니랄까 봐 어떻게 놀라는 표정까지 똑같다. 그것에 나는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말했지. 끝내주는 마법사 한 명 소개해 주겠다고. 저 사람이야.”
“…또 예쁜 여자네요.”
내 옆에 있던 페트라가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의혹이 서린 눈초리는 풀리지 않았다.
크리스가 들으면 어이가 없다는 실소를 토해냈을 텐데.
“예쁜데다가 엄청 강해. 최소 대마도사, 아니, 내 수준으로는 감히 뭐라 할 수도 없을 정도야…….”
레이시스가 눈을 반짝이며 크리스를 가리켰다. 란돌프에 이르러선 아예 내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당연하지.”
등장부터 세계관 최강자 반열에 들어가는 존재인데.
이 정도로 감탄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섭섭할 지경이었다.
솨사사사-!
화마의 폭풍이 몰아치고 번쩍이는 섬광이 그 틈을 헤집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벨페고르는 궁지에 몰려갔다. 몸 곳곳에 눈에 띌 정도의 상처가 났으며, 크리스는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은 채 냉정한 표정으로 녀석을 몰아쳐 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궁지에 몰린 벨페고르는 또다시 브레스를 쏘아냈다.
이번엔 작심하고 공격한 것인지 크리스가 만들어낸 실드가 부서지며 시커먼 마기의 폭풍이 우리에게까지 쏟아져 내렸다.
“읏!”
곧 레이시스를 비롯해 대비를 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영창을 맺으며 허공에 수십 개의 실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종잇장이 찢겨 나가는 것처럼 너무나도 허무하게 부서져 나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웅웅-!
힘을 회복한 엑스칼리버가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그것은 곧 사람들을 감싸는 장막이 되었고, 벨페고르의 브레스를 막아내었다.
“후.”
단 한 번, 단 한 번 공격을 막은 것으로 그간 회복되었던 힘이 모조리 소진되었다. 리버 역시 힘이 빠지는 듯 브레스가 끝나자마자 역소환되며 이내 침묵에 빠졌다.
“…와.”
그러고 있자니 등 뒤에서 나지막한 감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미 이전에 벨페고르의 싸움으로 잔뜩 이목을 끌어 모으던 와중에 엑스칼리버까지 사용했으니 할 말은 다 했다.
‘이제 마인 행세는 글렀군.’
성검의 사용자.
최연소 소드마스터.
이젠 성국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 내가 용사라는 소문이 우후죽순으로 퍼져 나갈 듯싶었다.
‘아니, 차라리 잘됐다.’
앨리스가 제 힘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전까진 내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을 터.
쿵…….
그로부터 얼마 후.
치열했던 싸움은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벨페고르는 고위 악마라는 명성답게 크리스와 대등하게 싸우는 듯싶었지만, 승부의 추는 그녀의 쪽으로 기울었다.
마지막에 크리스가 만들어낸 거대한 불꽃의 손아귀에 온몸이 갈가리 찢겨 바닥에 흩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쓰러져도 악마라는 것인지 그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리버는 지쳤지만, 아직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피워 올릴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손을 들었고, 이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아.”
일전에 크리스와 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사용하진 못했지만, 그와 비슷한 수단이 있었다고 했다.
손가락을 튕기자 보랏빛 불꽃이 일렁이며 허공에 피어올랐다.
그것은 이내 꿈틀거리며 제 형태를 다시 복구하려고 하는 벨페고르의 몸을 뒤덮었고, 재조차 남기지 않은 채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파아앗-!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큰 불꽃이 번져 올랐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내리 앉았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어둠으로 가로막힌 하늘이 점점 걷히기 시작되었다.
벨페고르의 몸이 전부 타들어 갔을 때가 돼서야 밖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안쪽으로 들어왔고, 겨우 상황이 수습되었다.
벨페고르를 쓰러뜨린 크리스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
하늘에서 따뜻한 햇살의 포근함이 느껴지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학술제 이벤트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