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17)
망나니학 개론-218화(218/300)
#218
텔레포트 게이트를 지난 우리는 브리튼 외곽에 내려섰다.
“에, 엘리시아 공녀님?”
갑작스러운 공녀의 귀환에 게이트를 지키던 기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경례를 올렸다.
경례 도중 우릴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이 묘해진 것은 착각일까.
아무래도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 듯했지만, 엘리시아는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바로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오랜만에 도시를 돌아보며 가고 싶어요. …괜찮죠?”
“상관없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에게 브리튼 행은 공적인 용무가 있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그것은 반만 사실이었다.
검성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무래도 타격이 컸다.
예전에도 말했듯 브리튼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 않은가.
그러니 적당히 쉬면서 마모된 정신을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대로 가도를 지나 브리튼의 도심으로 접어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전경은 한 폭의 풍경화와 같았다. 이 경치는 꽤 마음에 드는 것이기에 엘리시아의 발걸음에 맞춰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며 주변을 구경했다.
“엘리시아 공녀님?”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곧 엘리시아를 알아본 공민들에 의해 무산되었다.
선명한 적색 머리카락과 팬드래건의 문양은 브리튼 공민으로서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을 터.
인파가 몰려들 것을 예상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공민들은 그녀를 배려한 듯 그 자리에서 가볍게 묵례를 하는 것으로 팬드래건 가문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
“대단하군.”
제국 수도에 황제가 나와도 이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것에 절로 감탄을 내뱉으니 엘리시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팬드래건 가문은 대대로 브리튼을 수호해 왔으니 말이죠. 저희도 그 위명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라고 어릴 적부터 교육받아 왔어요.”
“그럼 이것도 그 위명에 걸맞은 행동인가?”
맞잡은 손을 슬쩍 들어 올리자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흘겨보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알면서 놀리지 마요.”
익숙지 않은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실컷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거리를 노닐며 걷다가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다 적당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티타임을 즐겼다.
더 나아가선 엘리시아가 추천하는 관광 명소들을 돌아다녔고, 해가 뉘엿뉘엿 지며 노을로 변했을 때가 돼서야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덕분에 프리패스로 다니네.”
좋았던 점이라면 어느 곳을 가든 크게 환영받았다는 것이다. 계속 공짜로 먹는 것도 그러니 값을 치르려 했지만, 다들 격렬하게 사양했다.
그만큼 팬드래건 가문의 영향력이 컸고, 좋은 여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터.
“그나저나 엘라인은 잘 지내? 내년에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지?”
“네, 지금은 아버님 밑에서 영지 운영에 관한 후계자 수업을 듣고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때 보니까 똑부러진 성격 같은데, 너랑 판박이네.”
“편지를 보면 하루라도 빨리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더라고요. 자기 정도의 능력이면 1년 정도는 일찍 입학해도 괜찮지 않냐면서.”
그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엘리시아 역시 동생의 그런 치기 어린 행동이 귀여웠던 것인지 쿡쿡 웃음을 흘렸다.
“사실 간간이 아버님께 편지가 오면 당신을 데려오라는 이야기가 꼭 적혀 있었어요. 이제 더는 그런 재촉을 받지 않겠네요.”
아서 왕이 날 보고 싶어 했나.
그것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말로는 그렇게 했어도 내가 자주 찾아갔다면 부담됐을 거야. 나나 그쪽이나.”
브리튼 공국이 제국에서 파생되었다곤 하나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타국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제국의 정세에 민감한 위치에 있지 않나.
대외적으로 황위 계승 싸움이 치열하게 보이는 가운데 내가 브리튼 공왕과 지속적인 접촉을 보인다면 여러모로 말이 나올 터.
그렇게 된다면 아서 왕에게도 정치적으로 타격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가요.”
엘리시아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진 못했는지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 아버님께서 슬슬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 같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팬드래건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를 필두로 몇 명의 기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트리스탄 경!”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트리스탄.
그의 등장에 엘리시아는 반가운 듯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가씨. 전하께도 인사 올립니다. 브리튼 공국,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트리스탄이라 합니다.”
트리스탄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미남이었다.
그는 먼저 엘리시아에게 가볍게 경례를 올린 후 나에게 역시 인사를 해왔다.
“반갑군, 제국의 3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는 재차 만나서 영광이라는 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이내 입가에 가는 선을 띠며 우릴 바라보았다.
“작년의 소문을 들어 반신반의했지만, 사이가 좋아 보이시는군요. 아가씨께서 좋은 부군을 찾으셔서 이 트리스탄 기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넉살 좋은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오는 그의 태도에 엘리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직 그런 관계는……!”
“그래, 아직 그런 관계는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하자 엘리시아는 살짝 실망한 눈치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입을 닫은 채 트리스탄에게 원망하는 시선을 향했다.
“…이런 공왕 전하의 전언을 잊어버렸군요. 저녁은 저택의 만찬에 초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트리스탄은 그런 그녀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과장되게 허리를 숙였다. 그것에 나는 피식 웃었고 엘리시아의 손을 잡아 이끌어 마차에 탔다.
“…….”
마차가 카멜롯 궁성으로 향할 때까지 엘리시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때때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을 흘깃 바라볼 뿐.
나는 그녀가 무엇을 고민하며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의 밤, 이미 그것에 대해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구태여 입에 담지 않고 창밖으로 바뀌어가는 브리튼 전경의 모습을 즐겼다.
척!
카멜롯 궁성의 입구에서부터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중무장한 기사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절도 있는 모양새로 검을 쥔 채 경례를 올렸고, 마차는 천천히 그 사이를 통과해 궁성의 최심부로 들어섰다.
“오랜만이군.”
마차에서 내리자 오랜만에 보는 아서 왕이 손수 우릴 맞아주며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무탈하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릴. 그보다 안으로 들어가지. 식사를 준비해 놓았네.”
아서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난 그 기세에 밀려 쓴웃음을 지으며 뒤따랐고, 엘리시아 역시 내 옆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마스터에 올랐나.’
만찬장으로 가는 와중 아서 왕의 등 뒤로 숨길 수 없는 강자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것도 이제 갓 벽을 허물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애송이가 아닌, 한창 완숙에 이른 경지.
분명 1년 전까지만 해도 익스퍼트 최상급에 머물었을 터였지만, 그 위명에 걸맞게 순식간에 경지를 뛰어넘어 이미 완숙에 이른 듯했다.
‘가늠이 되질 않는군.’
더군다나 팬드래건의 혈통에는 특별한 힘이 잠들어 있었다.
내가 엑스칼리버의 힘을 이용해 각성했듯, 그들은 용자의 전승을 물려받아 그 가호로부터 각성을 이룰 터.
아서 왕 역시 이미 가호를 깨친 듯 그 기운은 단순한 마스터라고 하기엔 한 차원 위의 것이었다.
“그리 열렬하게 시선을 보내지 않아도 만찬 후에 천천히 시간을 가질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리세.”
그 역시 내 기세를 느낀 듯 이를 드러내며 안면에 완연한 미소를 띠어왔다.
강함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호적수와의 만남.
그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어째 오랜만에 본 딸보다 레이오스를 더 반기는 것 같네요.”
“크흠.”
다만, 그 감정을 너무 드러내었는지 엘리시아의 핀잔을 피할 순 없었다.
* * *
카멜롯 궁성에서의 만찬은 훌륭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답게 음식 또한 화려했고, 시각뿐만 아니라 미각까지 단번에 사로잡아 오랜만에 사치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후.”
식후에 나온 홍차를 마시니 오장육부에 스며드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두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니 상석에 앉아 있던 아서 왕이 물었다.
“어때, 만찬은 마음에 들었는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힘들었는데 덕분에 호강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그렇지 않아도 딸내미를 맡겨둔 보답을 하고 싶어서 말이야.”
엘리시아는 아직 살짝 서운한 것이 남아 있는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태도는 바로 직후 아서 왕의 입에서 나온 말에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혼인은 언제 치를 예정인가?”
“…아버님!”
엘리시아는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동요한 것은 그녀뿐.
나는 다시금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는 정세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것이 정리되어야 하겠죠.”
“…레이오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인지 엘리시아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3년에서 4년을 보고 있습니다.”
“너무 머네. 차라리 먼저 식을 올리고 하지 그러나.”
“만에 하나라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제 여인들을 과부로 만들기 싫습니다.”
“거참, 당당히도 말하는구먼.”
아서 왕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여인들’이란 핀 포인트일 것이다.
“저를 믿고 온갖 오명과 불명예를 감수하고 따라와 준 아이들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부 제가 책임질 겁니다.”
나는 아직 멍하니 서 있던 엘리시아를 향해 시선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약혼녀한테는 이미 허락을 구했습니다. 남은 것은 그녀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겠네요.”
매몰차게 거절당할 수도, 어림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며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아서 왕은 웃음을 터트렸다.
“뭐, 괜찮지 않나. 자고로 영웅은 호색하다고 했네. 자신이 전부 감당하겠노라 그리 당당하게 선언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
아서 왕은 그 말을 끝으로 가볍게 손을 저어 오늘은 피곤할 터이니 이만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그것에 내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그 뒤에서 엘리시아가 머뭇거리며 따라 나왔다.
“레이오스, 방금 그 말은…….”
“후…….”
그녀의 말을 끊고 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이렇게 밝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서 왕과의 말씨름에서 지기 싫다는 마음에 되는 대로 내뱉었고,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네 마음을, 너희들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병신이거나 머저리 둘 중 하나겠지. 아쉽게도 난 정상적인 범주 안에 드는 사고를 지닌 인간이라서 말이야.”
“…정상적인 범주 안에 드는 사고를 지닌 인간이 그런 식으로 말하던가요.”
“욕해도 상관없어. 오만하다고, 욕심이 많다고, 잘난 체하지 말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거야.”
그렇지만, 그녀들을 모두 책임지고 싶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단이었다.
“…누가 당신한테 간대요?”
…다만, 그것은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