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20)
망나니학 개론-221화(221/300)
#221
“리버, 할 수 있어?”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슬쩍 아서왕에게 조언을 구했으나, 그는 작게 웃으며 스스로 겪어보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그런 상태에서 곧이곧대로 시련을 받다가는 첫 번째 관문도 통과하지 못하고 쓰러질 판국이었기에 나는 티르빙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네, 가능은 해요. 그런데…….]“그런데?”
[지금은 그리 추천해 드리지 않아요. 평상시라면 괜찮은데, 지금 마스터의 몸을 휘젓고 있는 건 저도 모르는 미지의 힘이라 서로 충돌해서 온몸이 갈가리 찢어질 수도 있거든요.]“…그 정도야?”
마스터에 이른 육신은 매우 튼튼했다.
일반 도검으로 아무리 베어봤자 생채기밖에 내지 못할 테고, 항마력 또한 높아 낮은 클래스의 마법은 맨몸에 맞아도 그리 큰 타격이 없었다.
[네, 저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라 마스터의 몸을 가지고 도박하는 건 피하고 싶어요.]하지만 신체 내부는 또 다른 이야기인지 리버는 우려가 섞인 태도로 머뭇거렸다.
[그럼 분담하면 되지. 예전에 몇 번 해봤잖아? 이 남자가 터져 버리지 않도록 내가 지켜볼 테니까 너는 그 기운을 진정시켜 봐.]그러자 티르빙이 갑자기 우리 사이를 치고 들어왔다.
[…당신을 믿으라고요?]리버는 당연히 의심이 섞인 목소리로 반문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미간을 좁히고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무슨 꿍꿍이인가 눈을 가늘게 뜨자니 티르빙은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불평해 왔다.
[도와준다고 해도 뭐라 하네. 나도 이 남자랑 링크되어 있잖아. 네가 감각을 공유하는 것처럼 나도 그게 느껴진다고. 난 학살자이지 당하는 쪽이 아니라 불쾌해. 그러니까 이런 건 빨리빨리 넘어가고 싶어.]독자들이 봤다면 시원시원하다면서 크게 환호할 태도였다. 그것에 리버 역시 대충 이해를 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했다간 갈가리 찢어버릴 테니까요.] [또또, 살벌한 소리를 하긴. 그래도 우리 조금은 친해졌잖아?]마찬가지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능글맞은 표정과 함께 팔꿈치로 리버의 옆구리를 찌르는 티르빙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녀석도 많이 바뀌었군.’
처음 만났을 땐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찬 고고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점차 내숭이 사라져 갔다.
아마 리버를 만난 것이 가장 큰 변화의 요소겠지.
둘이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두 손으로 뺨을 때렸다.
“그래도 기껏 얻은 기회인데 헛되게 날릴 순 없지. 그러면 그렇게 가보자.”
내친김에 왼손엔 티르빙을 오른손엔 엑스칼리버를 꺼내 들었다.
검을 들고 들어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이래도 상관없을 터.
웅웅웅.
그러자 새하얀 신성력과 짙은 마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음.”
서로 극렬하게 상반되는 기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세기말에 나오는 혼돈 뭐시기 하는 타이틀을 달고 나올 것 같은 보스 몬스터가 된 것 같다.
리버나 티르빙 역시 이상한 것을 깨달았는지 떨떠름한 기색으로 입을 닫았다.
“자, 그럼.”
각오를 다진 나는 곧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아까보단 참을 만하네.”
빈혈이라도 있는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해 왔지만, 그래도 전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내부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저기가 끝인가.”
얼마쯤 왔을까, 바닥에 다시금 기다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너머에 벽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문이 자리했다.
그 사이에 있는 공백은 쉴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놓은 것인가.
“큭.”
안쪽으로 들어오면 올수록 전처럼 피가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변하며 사물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들어질 지경이었다.
“후우…….”
드디어 끝을 눈앞에 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분 정도 이 안을 걸었지만,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것 같았다.
[거의 끝났어. 아, 정말로 토할 것 같네.] [마스터, 조금만 힘내세요!]희미해져 가는 내 정신을 일깨우려는 듯 그녀들은 날 응원해 왔다.
그렇게 있는 힘을 쥐어짜 발을 들어 경계를 밟기 직전.
[자, 잠깐만요! 멈춰요, 멈춰!]“…뭐?”
머릿속을 울리는 큰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인가.
리버나 티르빙이 경고한 것이리라 생각했으나, 곰곰이 떠올려 보니 그 목소리는 분명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어…….’
잠시 멈칫한 사이, 눈앞이 시커메졌다. 곧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감각과 함께 내 시야는 반전되었다.
결국, 의식을 잃고 만 것인가.
사흘째가 되는 날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데리러 오겠다고 아서왕이 말했지만, 상당히 꼴사나운 모습이 될 것 같았다.
“…아?”
하지만 곧바로 다시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내가 원래 있던 장소가 아니라, 푸른 초목으로 뒤덮인 밝은 초원이었다.
그 익숙한 풍경에 두 눈을 크게 뜨니 등 뒤에서 아까 들렸던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저, 저기…….”
“……?”
천천히 몸을 돌리자니 멀쑥하게 생긴 남자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나에게 말했다.
“이, 이분들께 잘 좀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의 양옆.
리버와 티르빙이 사나운 표정으로 그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여 봐. 이 신살의 마검이 네 전신을 잘게 다져줄 테니까.”
“무의식의 세계라고 얕봤다간 큰 코 다치실 거예요. 저 괴랄한 마검은 둘째치고, 저는 당신의 영혼까지 조각조각 내줄 수 있으니.”
남자의 몸에 서린 식은땀이 이해가 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애원하는 시선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옆쪽에 준비되어 있던 테이블에 천천히 앉았다.
준비된 차를 천천히 찻잔에 따라 마시자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흘러갔고, 그제야 조금 전까지의 여파가 가시며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네놈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지금 시점에서 굳이 화평한 스탠스를 취할 생각은 없었다.
상대는 어찌 되었든 시스템 어시스트를 넘어 내 정신의 안쪽까지 침투해 온 정체 모를 녀석이 아닌가.
‘설마 마족 계열인가?’
언제 내 몸에 심어둔 것일까.
“…….”
내 물음에 남자는 입을 우물거렸다.
그것에 티르빙이 검날을 살짝 치켜세우자 시커먼 마검이 녀석의 목을 파고들었고, 이내 그 위에 있던 검은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히, 히익! 저는 이곳을 관리하는 정령, 수비드라 합니다!”
“…정령이라고?”
뜬금없이 내 정신세계에 파고든 이가 정령?
이 세계는 여타 중세 판타지 설정을 차용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정령 마법의 계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예전에 작가님께 궁금해서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정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비슷한 예로 아인종, 특히 수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래도 엄밀하게 따지자면 리버나 티르빙 역시 검의 정령이라 할 수 있었다.
뭐, 대분류는 검의 에고 쪽으로 들어갈 테지만.
“너 혼자 관리하는가? 아니, 누가 시켜서?”
제일 중요한 질문을 먼저 던지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예. 이천 년 전쯤에 골드 드래곤 티아마트 님의 명령으로 그때부터 쭉 관리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천 년?”
상식을 뛰어넘는 규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곤 슬쩍 자세를 풀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보통 정령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수명이 없다.
살아온 세월 쌓일수록 힘이 축적되고 자연스럽게 위계가 올라가 상위 격으로 상승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알고 있었다.
이천 년이란 세월을 살아왔으면 어지간한 드래곤과 맞먹을 정도일 터.
“…….”
리버와 티르빙 역시 몸이 경직되었다.
그녀들의 역사는 아직 길어봤자 몇백 년이다. 정령이나 시간이 주는 힘은 알고 있는 것인지 검을 쥔 손 위로 땀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였던 저 순박한 모습은 절대자의 여유나 유희 같은 건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더니.
순간적으로 우리 세 명의 눈이 마주쳤다.
‘꿇을까?’
우리 입장에선 절대자에 가까운 존재.
대항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가 아니라 검성이나 크리스가 한 무더기로 와도 힘들 터.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비드, 아니, 수비드 님은 밝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 이천 년이라고 해도 저는 사념체니까요. 딱히 몸 같은 건 없고, 이렇다 할 힘도 없이 정신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서요.”
“…쫄았잖아!”
그것에 티르빙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나는 아직 긴장을 지우지 못한 채 녀석에게 시선을 지우지 못했지만, 수비드는 울상을 지으며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해명할 틈도 주지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지금 주고 있잖아요.”
옆에 있던 리버 역시 그가 무해하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엑스칼리버를 내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그건 그러네요.”
목이 탔기에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비드는 여전히 두 여성에게 갈궈지는 상태.
이 세계의 정령이란 놈은 조금 모자란 녀석 같았다.
* * *
“저는 설마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곧 상황이 정리되었고, 우리는 마치 다과회를 하듯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수비드는 이런 건 처음이라며 차와 과자를 실컷 먹었고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입을 열어 우리에게 말해왔다.
“아무리 마법이나 다른 수단으로 정신을 일깨우려고 해도 버티기 힘들어했거든요. 그나저나 두 분께서 설마 성검과 마검이시라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내 정신 방어는 어떻게 통과한 거지?”
“아, 저한텐 통하지 않을 거예요. 이건 피의 각인이라는 특성인데 특정 키워드에만 반응해서 발동하거든요. 아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네요.”
“그런가.”
즉, 몸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어시스트가 발동되지 않았다는 소리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시련을 끝내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어째서야?”
현실의 내 몸은 아직 그 차디찬 돌바닥 위에서 쓰러져 있을 터. 그것에 수비드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가호를 받지 못한 채 그곳으로 쭉 지나가게 되면 자격을 잃거든요. 그래서 황급히 제가 나섰죠.”
“…뭐?”
사실 가호를 얻기 위해서 거쳐야 할 시련 따위는 없었다.
합법한 자격을 가진 이가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온다면 피의 각인을 발동시켜 의식을 잃게 한 후, 수비드가 그에게 가호를 내리는 방식이라고 했다.
“되돌아가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넘으면 안 돼요. 그게 규칙이라서.”
“자격이 없는 자가 온다면?”
“그러면 그대로 지나쳐 버리겠죠. 그리고 끝 지점까지 가면 없던 자격도 박탈됩니다.”
“호오.”
올라가면 아서왕에게 불평 정도는 해야겠다.
이런 주의 사항쯤은 알려줘도 되지 않는가.
‘아니면 내가 가호를 얻는 것이 싫었던지.’
“위쪽에 소문이 어떻게 와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이곳에 오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