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22)
망나니학 개론-223화(223/300)
#223
드래곤의 가호를 손에 넣었다.
원작에는 없었던 각성.
수비드의 말에 따르면 지금 당장 뭔가가 크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패는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저 끝에 있던 문은 무기들이 잔뜩 보관된 창고였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지만, 상태 창에 나온 설명을 보니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아서왕 역시 시련이 끝난 뒤엔 하나를 가져간 듯 빈 자국이 남아 있었으나, 나는 손을 거두었다.
애초에 이곳은 팬드래건의 계보를 잇는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아서왕이 편의를 봐줘서 드래곤의 가호를 얻은 망정에 더 욕심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밖에 나가면 저녁쯤 됐으려나.”
점심쯤에 들어왔으니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일 터.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위를 향했다.
엘리시아 역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겠지. 오랜만에 술이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
하지만 그런 나를 맞이한 것은 거친 칼부림 소리와 진득하게 풍기는 피, 그리고 화약 냄새였다.
그것에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밑으로 향하는 통로 앞에는 기사가 지키고 있을 터였지만, 밖에 일어난 소란에 휘말린 듯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자니 도처에 깔린 마기가 내 신경을 자극했다.
“이 새끼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길가메시 황제가 쓰러진 후부턴 거리낄 것이 없는지 과감히 브리튼까지 습격을 가해오다니.
다행인 것은 전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지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마침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드래곤의 가호를 얻은 이 몸이 얼마나 더 강해졌을 것인가.
가볍게 손을 뻗자 내 부름에 응답한 엑스칼리버가 찬란한 광채를 내뿜으며 소환되었다.
“어?”
그러자 팬드래건 저택의 정원에서 혈투를 벌이던 이들의 이목이 전부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레이오스 전하!”
기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사이에 있던 퍼시벌은 특히나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불러왔다.
‘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나는 대답 대신에 슬쩍 그들을 살폈다.
원탁의 기사인 퍼시벌을 제외하고 대부분 익스퍼트 중, 하급의 기사들로 아서왕이나 엘리시아, 그리고 다른 주력 기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것들부터 정리하고!”
파바바밧-!
가볍게 엑스칼리버를 휘두르자 눈부신 빛 무리가 그들에게 쇄도했다.
그것은 팬드래건 가문의 기사들은 아무런 상처 없이 지나쳤고, 그 옆에 있던 마인들을 일시에 휩쓸었다.
엑스칼리버에 당한 녀석들은 전부 가루가 되어 소멸해 버렸다. 그것에 기사들은 하나둘씩 내 앞으로 모여 지친 한숨을 내뱉었다.
“상황은?”
“전하께서 잠시 떠나신 직후에 산맥 쪽에서부터 몬스터의 움직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찰을 보냈는데 거의 군단급에 달하는 규모가 확인되어서…….”
“그렇다면 주력은 전부 성벽 쪽으로 나갔다는 소리군.”
그리고 비어 있는 저택을 습격한 건가.
몬스터를 움직여 시선을 끌어낸 것에서부터 너무 똑같은 패턴이지 않은가.
“텔레포트 게이트는?”
“전부 방비에 들어갔습니다.”
퍼시벌 역시 내가 염려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시감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닐 터. 그렇기에 아서왕은 고립되지 않도록 텔레포트 게이트 쪽의 인원을 보강한 채 전투에 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저택을 습격한 것은 정말 예상외의 일이었다.
‘이곳에 뭔가가 더 있던가?’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시체를 한쪽에 모은다. 서둘러 움직이도록!”
그의 지휘에 따라 저택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밖으로 기운을 돌려 보아도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습격자들은 이것이 전부일 터.
“저희는 이대로 저택을 방비해야 합니다만, 전하께서는 어쩌시겠습니까.”
“…난 성벽 쪽으로 가겠다.”
어찌 되었든 그곳을 정리해야 상황이 수습될 터.
더군다나 검 한 번 휘두른 것으로 가호의 성능 테스트를 끝낼 수는 없었다.
“기사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됐어, 말 한 필이면 충분해.”
길은 대충 알고 있었다.
헷갈린다고 하더라도 제일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되는 문제가 아닌가.
퍼시벌이 준비해 준 말을 탄 나는 곧바로 저택을 빠져나와 성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몬스터의 규모가 어지간한 것인지 바닥을 울리는 진동의 세기가 심상치 않았다.
‘클리셰대로라면 이 정도에서 습격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브리튼에 숨어든 마인은 저걸로 전부가 아닐 터. 용도를 보면 버리는 패라는 냄새가 진했다.
파바바밧-!
그것을 증명하듯 몇 줄기의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와 꽂혔다. 피할 이유도 없었기에 가볍게 손을 휘젓자 그것들은 나에게 닿지 못한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우리 이쁜이, 많이 여유로워졌네?”
달려가던 말의 고삐를 잡아 천천히 멈춰 세우자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의 마인이 걸어 나왔다.
“이사벨, 이었던가.”
“오, 이 누님의 이름까지 기억해 주는 거야? 감동인걸.”
라이프치히에서 내 앞을 막아섰던 마인 중 한 명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그 외형이 이전과 상당히 바뀌어 있었다.
전부 타들어 갔을 터인 머리카락은 마치 피로 물들인 것처럼 새빨갛게 흘러내렸고, 악마의 씨앗에 의해 검붉은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있던 피부는 분을 칠한 듯 새하얗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외모였다.
“싹 갈아엎었군. 요즘은 마인들도 솜씨가 좋나 봐. 성괴치고는 자연스러워.”
하지만 그 두 눈만은 마인임을 확실하게 알리듯이 시커먼 눈동자 안에 샛노란 동공이 번뜩이며 나를 노려봐 왔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부터 험악하네. 이쁜이, 천천히 해. 이 누나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린 줄 알아?”
스릉.
이사벨의 검집에서 날 선 검이 뽑혀 나왔다.
이전에 싸웠을 때도 박빙을 이뤘을 정도로 강했지만, 그간 더 실력을 갈고닦은 듯 풍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에 온 녀석은 너 혼자인가?”
말에서 내린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성벽 쪽이 시끌시끌한 것에 반해 이사벨의 등 뒤는 조용하기 짝이 없다.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내가 우리 예쁜이를 무시했을까 봐? 다들 곧 합류할 거야.”
“그런가.”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뉘앙스에 나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휘둘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녀석들의 목적을 하나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보이는 족족 쓰러뜨린다.’
이제 어느 정도 스토리가 전개되었으니 고작 마인의 출현으로 끝나지 않을 터. 분명 어느 정도 높은 마족까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웅웅웅.
손을 뻗자 엑스칼리버가 그 안에 소환되었다. 그것에 이사벨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싫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네. 오늘 예쁜이를 사로잡으면 저 검은 당장 찢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욕망에 제 본질을 판 벌레 주제에 잘도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건가요. 마스터, 본때를 보여주죠.]날 선 두 명의 태도에 티르빙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보는 눈이 없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시끄러워요.]아무리 그래도 엑스칼리버를 찢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에 가볍게 검을 들어 올리니 이사벨의 미소가 진해졌다.
팟.
일순간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질풍처럼 허공을 쇄도하는 그 파공성에 나 역시 천천히 발을 내디뎠고, 이내 힘껏 검을 휘둘렀다.
캉-!
땅거미가 진 어둠 사이로 샛노란 불통이 피어올랐다. 검붉은 마기로 뒤덮인 검의 뒤로 이사벨은 입가를 비틀며 말해왔다.
“우리 이쁜이도 놀고먹기만 한 게 아닌가 보네?”
가볍게 손대중한 것으로 대충 내 실력을 파악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것에 나 역시 고개를 꺾으며 답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을까.”
“오, 예전보다 터프해진 것……!”
쿵-!
강하게 발을 내디뎌 검째로 녀석에게 압박을 가했다. 잘못하다간 제 검에 자신의 몸이 베일 판국이기에 이사벨은 황급히 몸을 허공에 띄웠고, 그 힘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제법인데.”
그러자 그녀는 내 수준을 잘못 가늠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엔 제대로 가줄게.”
검을 뒤덮은 마기의 농도가 더욱 진해졌다.
제대로 가겠다는 말은 허언이 아닌 듯 방금 보인 기세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이 사방을 내리눌렀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의 눈빛과도 같은 날카로움.
하지만 그 대상은 먹이가 아니라, 더 상위의 포식자임을 모르는 것일까.
꽈아악.
검을 쥔 손에서 분명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힘이 꿈틀거렸다.
수비드는 분명 드래곤의 가호를 넘겨주며 당장 그렇게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도 맞았다.
다른 것은 서로의 기준이었을 뿐.
‘드래곤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유의미한 변화가 없겠지.’
하지만 나는 드래곤이 아니지 않은가.
하다못해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던 아서왕도 그렇게 강해졌는데, 온전한 가호를 물려받은 나에게 변화가 없을 리가 있을까.
타닷-!
이번엔 내가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사나운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이사벨은 옳다구나 하면서 앞으로 솟구쳤지만, 곧 그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녀석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먼저 내 일격이 허공을 갈랐다. 그 상황에서 급히 검을 반전해 내 공격에 따라오는 것일 보니 꽤 성장한 듯싶었지만, 이쪽은 각성을 두 번이나 이룬 몸. 그것으론 한참이나 부족했다.
“…컥!”
결국, 녀석은 몸을 얻어맞고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몇 번 구르다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켜 검을 움켜쥔 것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
“뭘 그런 표정을 지어?”
“엇?!”
순식간에 그녀의 앞으로 이동한 나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파아아앗-!
시커먼 마기가 치솟으며 날카로운 칼날을 만들어냈지만, 애꿎은 바닥만 때릴 뿐 단 하나도 나에게 닿는 것은 없었다.
“흡!”
그것에 난 허리를 비틀어 주먹을 내질렀다.
이사벨은 검을 움직일 여유도 없는 것인지 두 팔을 교차하며 그것을 막아냈지만, 이번 역시 막아내지 못해 땅을 구르며 저 뒤로 날아갔다.
이번엔 나 역시 그것을 쫓았다.
바닥을 구르는 이사벨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자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인지 한 발로 땅을 박차 몸을 뒤집어 그것을 피해냈다.
묘기에 가까운 몸놀림이었기에 적이 아니었다면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흡!”
그녀는 잠깐 생긴 틈 사이에서도 내 심장을 찔러왔다. 가볍게 몸을 돌림으로 그것을 피해낸 나는 순식간에 그 머리를 붙잡았다.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바닥에 내리치니 땅에 균열이 생기며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
이사벨의 몸은 그대로 머리부터 박혀 축 늘어졌다. 그 상태로도 검을 쥐고 있는 것이 용하다 싶었지만, 난 슬쩍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연기하지 말고 빨리 튀어 일어나라.”
벨페고르 정도는 돼야 속아줄 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