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24)
망나니학 개론-225화(225/300)
#225
“닥쳐! 네놈들과 난 달라! 살아야 한다고!”
“닥쳐야 하는 것은 네놈이다! 당장 싸움에 합류하지 않으면 이 건은 아가레스 님께 직접 고하겠다!”
아가레스.
그 이름을 거부할 순 없는지 이사벨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려 내 쪽을 향해왔다.
“뭐, 고하고 자시고가 있을까. 어차피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소멸할 것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부 죽일 생각은 없었다.
두 놈 정도는 사로잡아 녀석들이 어떤 계획을 짜고 있는지 계획을 캐내는 것이 좋을 터.
예전에는 놈들과 비등하거나 조금의 우위밖에 점하지 못해 그러고 싶어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떠들 틈이 있다니. 너무 여유로운 것 아닌가?”
순식간에 자신들의 틈 사이로 파고든 내 모습에 녀석들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티르빙과 엑스칼리버의 끝은 매정하게 그들의 피륙을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커……!”
고작 이 자리에서 죽기 위해 마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의 인생은 기구할 것이다. 돌고 돌아 다다른 끝에 마족에게 영혼을 팔았을 터이고 지금 이런 강함을 손에 넣었을 터.
그것으로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계획하고 부푼 꿈을 꾸었겠지만, 그것은 오늘로 끝이었다.
어쩌겠나. 상대가 나인 것을.
파스스.
한쪽은 엑스칼리버의 신성에 소멸했고, 한쪽은 티르빙에 의해 흔적도 없이 잡아먹혔다.
한 명, 한 명, 그리고 둘이 죽고 남은 것은 이제 세 명뿐.
난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그간 정이 있으니 두 놈은 살려주마. 겸사겸사 너희들이 뭐를 계획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니까 말이야.”
“빌어먹을!”
마인들은 그제야 전의를 상실했는지 주위를 뒤덮은 권능을 해제했다. 그러자 어둠으로 만들어진 벽과 하늘이 사라졌고, 바깥세상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직 성벽 쪽은 몬스터와의 전쟁이 한창인지 불빛이 번쩍이며 시끄러운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그러자 남은 세 명의 마인은 각자 눈을 맞추더니 이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가?”
휘릭.
제일 먼저 정면을 향해 티르빙을 쏘아낸 나는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권능의 제약에서 해제된 리버가 그간 쌓인 것을 풀어내려 하는 것인지 강렬한 빛 무리를 피워 올리며 다른 한 명을 휩쓸었고, 정면에서 도망치던 이도 맹렬하게 날아간 티르빙에 몸이 꿰뚫려 바닥을 뒹굴었다.
“으으…….”
나는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는 이사벨의 앞을 막아선 채 작게 조소를 흘렸다.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겠지?”
아공간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큐브 두 개를 꺼냈을 때, 그녀는 겁에 질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 * *
“읏차.”
마인과 싸움을 모두 끝낸 채 성벽에 올라서니 여전히 거친 전투가 한창이었다.
몬스터들은 꾸역꾸역 성벽을 오르려 애썼고, 기사와 병사들은 악에 받친 채로 녀석들을 막아서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사수해 나갔다.
“허.”
다만, 그 너머로 펼쳐진 몬스터의 규모는 끝이 없었다.
이 순간에도 산맥에서 꿈틀거리며 내려왔고, 앞쪽에 있는 제 동족을 짓밟으며 브리튼으로 향하고 있었다.
크어어어엉-!
잠시간 그렇게 있자니 조금 앞에 있던 집채만 한 샤벨 타이거가 성벽을 타고 올라 이빨을 들이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에 가볍게 손을 휘둘러 녀석의 몸을 베어내니 물려 죽을 뻔했던 병사가 멍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정신 차려. 곧 끝날 테니까.”
나는 그의 투구를 가볍게 툭 쳐준 뒤,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몬스터 따위를 베는 데 성검이나 마검을 꺼내기도 뭐 하기에, 대충 시체 사이에 꽂혀 있는 검을 빼내 휘두르자 지나가는 경로에 있던 몬스터의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가며 피를 내뿜었다.
“아!”
그것에 이쪽을 알아본 기사와 병사들이 탄식을 내뱉었고,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나는 저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엘리시아는 저쪽인가.”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구역에 브리튼의 주 전력이 몰려 있었다.
아서왕 같은 경우엔 상위 마물로 보이는 개체와 홀로 싸우고 있었고, 원탁의 기사들 역시 분전하며 성벽을 오르려는 마수들을 필사적으로 막아내었다.
“그러면…….”
그것에 나는 들고 있던 검을 역수로 쥔 채 잔뜩 힘을 불어 넣었다.
“흡-!”
그러곤 성벽 아래로 강하게 쏘아 보내자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에 휘말린 몬스터들은 걸레짝이 되었고, 잠시나마 그 공간에 공백이 생겨나 기사와 병사들은 잠깐이나마 숨을 돌릴 여유를 얻었다.
“어째 힘들어 보이십니다.”
그 사이 상위 마물을 가차 없이 베어낸 아서왕에게 다가가자니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야 몸 하나는 튼튼하니 괜찮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문제지 않는가. 더군다나 이 마수들은 적지 않은 마기를 머금고 있어 어지간한 마수보다 더 강하다네.”
“확실히 그렇군요.”
마인 녀석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인가.
오크와 고블린 같은 하위 마물부터 그 무기에 마기를 두르고 있을 정도로 골치 아프기 짝이 없었다.
“지원은 보내준답니까?”
“마법 병단이 출정했다는군. 한두 시간 이내로 도착할 것이라고 전해왔다네.”
“쯧, 그 굼벵이들이.”
기사도 병사도 아닌 이들이 뭐가 그리 준비할 것이 많아 몇 시간씩이나 걸리겠는가.
전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슬쩍 모습을 드러내 손쉽게 승리를 챙기려 하는 것일 테지.
원작에서부터 제국 마탑의 녀석들은 항상 늦게 나타나 중요한 전공은 독차지하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그러려는 모양새겠지만, 이곳에 내가 있는 한 어림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피해가 더 커질 것 같은데…….”
“그렇군. 벌써 이렇게 손실이 누적되면 겨울엔 더 고달프겠지.”
살짝 어두운 아서왕의 표정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서왕이나 원탁의 기사 같은 실력자들은 이런 마수 따위에 당하지 않겠지만, 일반 병사나 기사들은 달랐다.
아무리 사기가 높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명확했다.
“잠시만 제 호위를 부탁드립니다.”
“무슨 방법이 있는가?”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전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곳으로 오면서 마인 일곱 명을 쓰러뜨렸습니다. 모두 마스터급으로 아마 브리튼에 잠입한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 말은…….”
일곱 명의 마스터급 마인을 쓰러뜨렸다는 소리에 아서왕의 두 눈이 커졌다. 그것에 난 미소 지으며 검을 들었다.
“네, 가호를 각성했습니다. 아직 전부 해본 건 아닌데 성능은 좋더라고요.”
그것에 아서왕은 크게 웃으며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그래, 그래야 투자한 기분이 나지. 잘 좀 부탁함세.”
그 말에 나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티르빙을 소환했다.
일족만이 받을 수 있는 시련을 받게 해준 것만으로도 아서왕에 은혜를 갚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티르빙.”
내 부름에 그녀는 매끄럽게 뻗은 검신으로 거칠게 마기를 일으켰다.
다섯 명분의 마기를 흡수해서 그런 것인지 예전보다 더 농밀했고, 진득했으며, 그 한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위에 피어오른 마기를 이전같이 한 줄기로 모으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풀어헤치며 더더욱 규모를 부풀렸다.
[이번엔 몬스턴가. 뭐, 내 쪽은 마족이나 마인이 좋긴 한데. 디저트로는 나쁘지 않네.]성벽의 끝에 서서 티르빙을 들어 올리니 일순간 전장의 공기가 침묵에 잠기었다.
격렬하고 싸우던 이들은 손을 멈췄고, 성벽을 타고 오르던 수천, 수만에 달하는 몬스터들 역시 내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큭.”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기운이 티르빙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질보단 양이다.’
이만한 군세를 뒤덮기 위해선 힘을 정제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때까지 축적된 힘을 모두 쏟아붓듯이 마기를 부풀어 올렸다.
덜덜덜.
검의 손잡이를 쥔 손이 절로 떨려왔다.
팔 위로는 핏줄이 툭툭 튀어 올랐고, 꽉 다문 입안에는 비릿한 쇠 맛이 느껴졌다.
극한까지 마기를 뿜어낸 티르빙의 무게는 마치 수 톤에 이르는 듯했다.
“파멸의 불꽃”
파멸의 불꽃(Flame of Destruction).
티르빙의 전용 스킬이 발동되자 전장의 위를 뒤덮은 마기는 그 성질이 반전되어 점차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곧바로 질량을 가진 채 전장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아아아앗-!
그것들은 몬스터의 몸에 닿자마자 시커먼 불꽃을 피워 올렸다.
한번 피어난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오히려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의 몸까지 뒤덮으며 맹렬하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구어어어어어-!
오크나 고블린 같은 하급 마물부터 트롤 오우거 같은 중상위 마물까지 모두 예외 없이 파멸의 불꽃에 의해 타들어 갔다.
“아…….”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불길에 휩쓸린 몬스터 군세는 전의를 잃었다. 그저 파멸의 불꽃에 타들어 가며 몸을 비틀었고, 메케한 탄내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은 지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
“아버님, 이건!”
그때, 엘리시아를 비롯한 원탁의 기사들이 이쪽으로 들이닥쳤다.
곧바로 티르빙을 휘두르던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입을 닫았고 아서왕이 날 대신해서 말을 이었다.
“그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그 말엔 나도 동감하는 바였다.
처음으로 티르빙의 전력을 끌어내 봤던 것이었는데, 그 파괴력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하아…….]하지만 그녀 본인은 더 없이 만족해하는 것 같다. 나는 티르빙의 소환을 해제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뭐, 이게 제일 피해가 적은 방법이니. 그리고.”
“그리고?”
“이걸로 끝낸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엔 엑스칼리버를 소환해 들어 올렸다.
신성한 빛이 어둠 위로 솟구치자 눈앞의 참상에 침묵했던 성벽의 분위기가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구세의 성검.
세상을 구원하는 신성한 빛이 전장에 내리 앉은 파멸의 불꽃을 부드럽게 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수들의 숨통을 끊어냈다.
“아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성벽 위를 뒤덮었다.
브리튼은 특히나 엑스칼리버에 대한 전설이 토속 신앙으로 내려오는 것.
원탁의 기사들은 가볍게 성호를 그었고, 기사와 병사들은 그 빛 무리 앞에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올렸다.
츠즈즈즈.
엑스칼리버를 거두자 땅을 뒤덮었던 마기가 전부 사라짐을 확인했다.
쓰러진 몬스터는 대략 몇천 마리에 달할 터.
물론 이쪽은 아직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 군세는 전의를 상실했고, 그제야 자신들이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을 가진 것처럼 하나둘씩 몸을 돌려 산맥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또다시 승리했다.
누군가의 환호를 시작으로 성벽은 다시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뒤덮였다.
“후우.”
나는 조용히 벽 한쪽에 기대 한숨을 흘렸다.
‘지쳤다.’
일곱 명의 마인과 싸우고, 티르빙과 엑스칼리버의 전력을 해방했다.
분명 예전이라면 이 직후 뻗었을 터이지만, 그간의 성장과 드래곤의 가호 덕분인지 육체적으론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다만, 정신의 마모가 컸다.
이제 이런 전투는 숱하게 거쳐야 할 터.
‘이것도 차차 익숙해지겠지.’
물론 전장의 혼란스러운 냄새는 언제까지나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