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27)
망나니학 개론-228화(228/300)
#228
“…하하, 설마 전하까지 이 자리에 나오셨을 줄은.”
나르하임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이쪽이 우위인 입장이니 어떻게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모양새였다.
나도 그것에 맞춰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회장은 어디지?”
“…이런, 제가 실례를 범했군요.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짐짓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인도했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와중, 그 눈빛이 섬뜩한 빛을 발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허술하군.’
어설프다. 어설프기 짝이 없다.
당장이라도 녀석의 목을 벨 순 있지만, 그래서야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조금만 그 장단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만찬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부디 마음껏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회장엔 휘황찬란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와 백작은 테이블에 착석했고, 기사들과 페트라, 그리고 엘리시아는 그 뒤에 나란히 섰다.
“아쉽군. 만찬이 준비되어 있다면 식사를 하지 않았을 텐데.”
“그거참 안타까운 소리군. 그렇다면 전하는 어떠십니까. 부디 제 성의를 보아…….”
라이프치히 백작은 귀족 계에서 구르고 구른 백전노장.
당연히 나르하임 왕세자가 음식에 수작을 부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직 식전이니 같이 들도록 하지.”
내 쪽은 거리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기를 들었다.
옆에 있던 백작이 괜찮겠냐는 뜻으로 슬쩍 시선을 보내왔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여준 채 고기를 썰어 입에 넣자 나르하임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지어졌다.
‘독은 아닌 것 같고.’
대충 씹어서 넘겨도 아무런 반발이 없다.
다만, 무언가 살짝 이질적인 반응이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마충魔蟲 같네. 아주 옛날에 쓰던 건데. 대상에게 먹이면 숙주를 품고 있는 자가 정신을 조종할 수 있어.]‘고독 같은 건가?’
[비슷해요. 마충은 순식간에 뇌를 장악해서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리는 거니까요. 뭐, 마스터 같은 경우엔 벌써 녹아서 소화돼 버렸지만 말이에요.]즉, 지금은 내 단백질원에 불과하다는 소리였다.
나르하임은 그런 것도 모른 채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곧 식사가 모두 끝났고, 시종인이 차를 내오자 그는 손을 들어 깍지를 끼며 여유로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그 요사스러운 눈빛에 기분이 나빠진 것인지 백작이 슬쩍 이마를 찌푸렸다.
“아, 그 이전에 이 회담의 결정권은 전하께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습니까?”
“그러네.”
그 물음에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의 미소가 짙어졌다.
영락없이 내가 자신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믿는 것일 터.
나는 잠자코 그 말에 따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서로 오해가 겹쳐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본 왕국 쪽에서는 심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이야기를 통해 잘 풀어나가면 되니 말이죠.”
나르하임은 미리 준비해 뒀는지 몇 장의 서류를 우리 측에 내밀었다.
“저희 왕국의 조건입니다. 이것만 준수해 주신다면 제국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작과 나는 그 서류를 받아서 읽어내렸다.
서류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국경이 맞닿은 지역 쪽, 라이프치히에 포함된 데르난 지역 부근을 알리오 왕국에 양도.
오스칼 제국을 공증으로 삼는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자.
이 두 가지였다.
쾅-!
내가 막 그것들을 전부 읽었을 때, 백작은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흉흉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 장난하자는 것이오, 왕세자?”
날 대할 때 보였던 넉살 좋은 태도와 달리 사나운 기세였다. 하지만 나르하임 왕세자는 가늘어진 눈으로 그것에 맞대응했다.
“백작, 당신도 관련인이니 나쁜 소리는 하지 않겠소이다만, 당신의 입으로 결정권자는 전하라고 하지 않았소?”
권한이 없으면 알아서 빠지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왕국의 왕세자라 할지라도 제국의 백작에게 큰 모욕이 되는 발언.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찰나, 나는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래서, 이것이 전부인가?”
“사실 이번 일로 왕국이 큰 손해를 입었지만, 제국의 위신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조건이군.”
“…전하?”
라이프치히 백작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가, 백작.”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펜을 들어 서류에 사인했다.
마력이 깃든 것이라 위조할 수 없었고, 공증인인 오스칼 제국의 보증까지 되어 있는 상황.
나는 다시 그것을 그에게 건넸고, 나르하임 왕세자는 신이 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 들었다.
푹.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자루의 검이 서류를 꿰뚫으며 그의 입으로 박혀 들었다.
“…커, 커헉!”
입안으로 검이 들어가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차가운 칼날이 제 얼굴을 베어 가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
“레이오스 전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그의 뒤쪽에 있던 호위 기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우릴 향해 다가왔다. 그것에 난 검 끝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였다간 재미없을 줄 알도록.”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녀석들은 주춤하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전하.”
내 뒤쪽에서 라이프치히 백작이 나지막하게 날 불러왔다.
우리 쪽의 기사들 역시 언제라도 검을 뽑아 들 수 있도록 준비 중인 상태. 그것에 난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부들부들 떨고 있던 나르하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에 관한 소문은 듣지 못했나? 그랬더라면 음식에 마충을 타지 않았을 텐데.”
창백하게 질린 표정을 보아하니 그리 쓰임새 높은 패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올 것도 모르고 있던 것이겠지.
녀석의 처지가 가여워 피식 웃은 나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울려 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저하를 지켜라!”
그러자 호위 기사들이 나에게 닥쳐왔다.
나는 그들을 신경 쓰는 일 없이 나르하임의 목을 붙잡아 탁자에 내던졌고, 그 얼굴을 베어 갈랐다.
“…아.”
기사들이 비통한 탄식을 토해낸다. 하지만 그것은 곧 경악과 의문으로 뒤바뀌었다.
“…이런, 알고 있었나?”
반으로 갈라졌던 나르하임의 얼굴이 다시 붙으며 원상 복구되기 시작했다. 그 비정상적인 광경에 기사들은 입을 벌리며 두 손을 떨었다.
‘몰랐던 건가.’
기사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그의 호위만을 담당했던 것 같았다.
“마인을 죽이기 까다로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지. 이들은 단순히 검으로 찌르고 불에 태운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마법이나 오러를 사용해도 마찬가지. 타격을 줄 순 있지만, 그 영혼이 마족에게 저당 잡혀 있어 소멸시킬 순 없지.”
녀석은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알면서 감히 나를 건드렸다?”
한껏 여유로운 태도였지만,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늦었다, 레이오스 황자여! 이미 네놈은 그 공증에 사인했지. 만약 그것을 어길 시엔 오스칼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퍽-!
나는 다시 나르하임의 입에 검을 박아넣었다. 그러곤 두 눈을 가까이하며 싸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 몸이 고작 오스칼 제국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나?”
쐐애액-!
더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 녀석은 손을 뻗어 내 심장을 노려왔다. 그것에 피식 웃은 나는 왼손을 뻗었다.
파아앗-!
순식간에 나타난 엑스칼리버가 녀석의 손바닥을 꿰뚫으며 탁자에 박혔다.
“끄악, 끄아아아아악-!”
그 신성한 성검의 기운에 나르하임은 몸부림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제깟 녀석이 발버둥 쳐봤자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푸쉬시시식.
나르하임에 몸에 잠들어 있던 마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오며 몸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를 잡기 위해 다시금 팔을 뻗어오는 근성만은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뭐, 이 정도인가.”
콰직.
오러를 일으켜 계약서를 무효로 만들어 버린 후, 녀석의 두 팔을 모조리 잘라내 버렸다.
그것들은 곧바로 재로 변해 사라졌고, 나는 몸을 돌려 아직 우두커니 서 있던 호위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자, 보아라. 이게 너희가 지키던 왕세자라는 녀석의 실체다. 요새 대륙을 시끄럽게 했던 마계 세력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
다들 상당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설마 왕위 계승자가 마족에게 영혼을 판 타락자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슬슬 오는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기 시작하는 기척들에 고개를 들자 백작이 물었다. 그것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긴 뭐겠나. 이 회담이 끝나고 나면 자네들을 죽이기 위해 준비해 뒀던 병력이겠지. 국경에 군사를 남겨둔 것도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곧바로 라이프치히 영지를 공격하려는 것이겠고.”
“무슨……!”
백작이 사실이냐며 그들을 다그치자 기사들은 헐레벌떡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아닙니다!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그저 회담을……!”
“제 주인이 마족과 손을 잡은 것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의 말을 믿으라?”
그 말에 기사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
“살고 싶으면 나가라. 내 목적은 애초에 이놈이었으니.”
엑스칼리버에 당한 탓인지 나르하임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난 녀석의 목을 잡고 회장을 나섰고, 그런 내 옆으로는 페트라와 엘리시아가, 뒤로는 백작과 그의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역도들을 사살하라!”
저택의 입구로 나가자니 기사단을 필두로 한 수많은 병사가 이곳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마인의 존재감이 내 감각을 찔러댔다.
‘그런가.’
마인들은 딱히 알리오 왕국에 이득을 주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제국과 분쟁을 만들 구실이 필요했던 것.
나르하임 왕세자, 아니, 이 알리오 왕국 자체가 미끼였다.
‘스케일도 참 크군.’
나는 우리를 포위한 채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나르하임을 들어 올렸다.
“보라! 너희가 왕세자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아까 했던 것과 같이 엑스칼리버의 빛이 녀석을 감싸자 녀석의 몸에 마기가 피어오르며 추한 모습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이 중 그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사와 병사들은 자리에 멈춰선 채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제국의 3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다. 우리는 그대들을 핍박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이 나라에 성행하고 있는 마계 세력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확실한 증거까지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것에 흔들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터.
하지만 지휘하는 기사 중에 섞인 마인이 더 큰 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왕세자 저하를 저 간악한 무리에서 구출하라! 감언이설에 휘말리지……!”
서걱.
나는 가차 없이 나르하임의 목을 베었다.
녀석의 머리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선명한 마기를 피어 올리며 그 몸과 마찬가지로 재로 변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