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37)
망나니학 개론-238화(238/300)
#238
약 사흘간 페르포치아와 나르마치 왕국 도시 곳곳에 피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예상외였던 점은 자리 잡고 있던 마인 세력이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는 것.
다행인 점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두 국왕의 눈이 뒤집혀 녀석들이 어찌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쓸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정말, 자네에게는 고맙다는 소리밖에 할 말이 없군.”
제 아들의 검에 가슴을 뚫린 제네딘 공작은 소드마스터는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듯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
다만, 육체적인 상처보다 정신적인 상처가 더 커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태생부터 몸이 허약해 가문을 물려받지 못한 첫째.
재능이 특출나 가문에 입양되어 자신을 대신하는 둘째.
어디에나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마인의 지독함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알리안이라는 남자도 처음엔 그렇게 제 아버지와 동생을 증오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 상실과 고통으로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왔을 테고, 끝내 지금의 사달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딱히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네.”
사후 처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혹시 그 안에 쓸 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직접 방문 시찰을 몇 번 나갔다.
아쉽게도 쓸 만한 건 건질 수 없지만, 포박되어 질질 끌려가거나 사지가 잘려 나뒹구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으로 꼴좋다는 느낌이 솟아올랐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는 건가? 자네가 이 두 나라에 끼친 은혜가 적지 않거늘.”
떠난다는 내 말에 애드윈 공작은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 사흘간 할 건 다 했다.
마인 세력의 소탕 보고를 받으면서도 먼저 온 후배 놈들과 함께 애드윈 공작 가문의 자랑인 관광지를 돌아보며 나름대로 힐링도 했고, 여러 인사를 두루두루 만나며 적당히 외교 공작도 펼쳤다.
종래엔 두 국왕을 대면해서 나중에 일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돕겠다며 이야기까지 했으니.
구두 약속이라 얼마만큼 효력이 있겠나 싶었지만, 국가 간의 알력 다툼이 아니라 마계 세력과의 전쟁이라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는가.
“또 이런 일에 휘말리고도 다시 아카데미에 가야 한다는 게 조금 웃기네요.”
떠날 준비를 끝낸 루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해왔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심정인 듯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에 나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며 무슨 소리냐는 뜻으로 말했다.
“아카데미를 왜 가?”
“…예?”
“설마 이 지경이 됐는데 편안한 학창 시절을 즐길 생각이었어?”
오히려 내 쪽이 더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무슨 속 편한 이야기인지.
페르포치아 왕국과 나르마치 왕국에서 난 일도 분명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두 왕국의 시선으로 보아서일 뿐, 대륙 전역으로 보자면 콧방귀도 나오지 않을 만큼의 사소한 일이었으니.
“오스칼 제국은 이제 대놓고 전쟁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가 매일같이 파발을 타고 들어온다. 그 빌어먹을 왕국 연합 놈들도 아예 데메드리오 왕국에 진을 치고 눌러앉아 계속 우리 쪽을 도발하고. 이틀 전인가 한 번 소규모지만 전면전까지 벌어졌었다고 하던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마찰을 빚었던 알리오 왕국은 왕자가 마족에게 농락당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발칵 뒤집혔다.
지금은 국왕의 동생인 무슨 공작이 제국에 복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반역을 일으켜 대대적인 내전이 일어났을 정도.
규모가 다른 불씨가 대륙 곳곳에 얼룩지고 있었다.
“너희도 이제부터 내 밑에서 대차게 굴러야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데시아와 베르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저, 저는 아버지가 아직 다 낫지 않으셔서 조금 시간을 두고 떠나려고 했는데…….”
그러자 슬쩍 눈치를 보던 데시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나는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미 두 국왕과 네 아버지에게 허락받은 사안이다. 여차하면 군사 행동을 하셔서 도와주신다고 하실 정도니까.”
특히 이번 일로 제 아들을 잃은 제네딘 공작이 병석에서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나에게 부탁해 왔다.
-어떻게든, 자네가 말한 그날까지 어떻게든 몸을 회복시키고 병사들을 준비해 놓겠네. 그러니 부디 한쪽 팔을 거들게 해주게나.
그 눈 안에 깃들어 있던 것은 대륙을 지켜야 한다는 공명심이나, 그런 종류의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피어올라 위험할 정도로 일렁거리는 시커먼 불꽃.
자신 때문에 제 아들이 마족과 손을 잡았고, 자신을 죽이려 했다.
상실, 분노, 회의…….
갖가지 감정이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딱하기 그지없었다.
글로 읽었더라면 자업자득 아니겠냐며 그냥 넘어가겠지만, 글에는 이런 선명한 감정의 잔류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 있어선 좋은 이야기였다.
다룰 패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은 거리낄 일이 아니었으니까.
“가자.”
국왕이랑 아버지까지 거론하자 더 할 말이 없는 듯 그는 고개를 떨구며 내 뒤를 따랐다.
루인을 비롯해 다른 녀석들이 데시아를 불쌍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나는 콧방귀를 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같이 지옥에서 구를 건데 누구를 동정하고 있는가.
* * *
-에르메스, 오스칼 제국의 내부는 어떻게 되었나?
“이쪽은 문제없다. 7할 가까이 섭렵했으니 나머지도 시간문제겠지.”
에르메스는 백발이 성성한 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다.
본래라면 어릴 적부터 앓고 있던 지병으로 벌써 숨이 끊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찾아온 운명과도 같은 만남에 그의 인생은 뒤바뀌게 되었다.
전성기를 뛰어넘는 강함.
리베라 제국과 함께 대륙을 양분하는 오스칼 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
모든 사람이 겉으로는 황제를 칭송하지만, 그 뒤에 에르메스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비록 인간임을 버려야 했으나, 그것이 뭐가 어쨌는가.
무한한 생명, 주체할 수 없는 힘, 만인지상의 권력까지.
모든 것을 얻은 몸이다. 그것에 반해 잃은 것들이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축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대가는 지불해야 했다.
언젠가 자신의 영혼은 저 지옥 밑바닥에 묶여 영원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터.
그래도 썩 나쁜 결말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면 다음 의제다.
수정구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상념 속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마족과 계약을 맺은 마인 세력은 서로 커넥션이어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대륙의 물밑에서 암약하고 있는 ‘마인회’.
각 군주, 혹은 고위 마족이나 악마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한자리에 모여 향후 방침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보통은 서로 활동하는 구역이 다르기에 평상시에는 접점이 없지만, 혹시나 협력이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선 발 빠르게 조치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가끔, 공통된 적이 나타나면 마인회 자체에서 현상금이나 보물 따위를 내걸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용사로 알려진 리베라 제국의 3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에 관해서다.
수정구 안에서 들려온 이름은 에르메스에도 익숙한 것이었다.
마인회의 다른 이들 역시 이야기는 익히 전해 들었는지 잠시간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제국의 3황자에 최연소 소드 마스터, 검성의 제자? 그리고 성검 사용자에 용사까지. 참나, 가지고 있는 타이틀도 화려하군.
-용사라는 것은 확인된 사실인가?
-저런 게 용사가 아니라면 뭐가 용사겠나.
-성검 사용자에서부터 끝난 이야기다. 고대부터 용사는 성검을 사용했으니.
마인들은 각자 알고 있는 정보를 꺼내놓았다.
정확한 사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으니.
곧 사회를 맡은 마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우리 중 그를 직접 만난 이가 있지. 그렇지 않나, 에르메스?
수정구 안쪽에 있던 마인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다. 그것에 에르메스는 가볍게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변명하듯 답했다.
“그렇지. 리베라 제국의 다리우스 2황자의 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너는 그때 분명 그가 마인이라고 했지.
“나도 깜빡하고 속아 넘어갔지 뭔가. 실상은 마인이 아니라 마검을 사용한 것인데.”
-…잠깐, 이야기가 이상한데? 마검을 사용했다고? 용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웅성거림이 일어난다. 그것에 무게를 더해준 것은 악마 공작 측의 마인이었다.
-사실이다. 알로켄 님께선 그자가 성검과 마검을 동시에 다룬다고 말씀하셨다.
-악마 공작의 말씀이라면…….
“덕분에 이쪽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무려 그 루시퍼 님께서도 휘말렸으니.”
루시퍼란 이름에 좌중은 입을 닫았다.
마계 왕자가 중간계에 유희를 나왔다가 당해버린 사건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큰 중대사였으니.
-알로켄 님께선 녀석을 쉽게 보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지금 리베라 제국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일들은 전부 망가져 있지 않나.
-흠…….
그 말에 누군가 신음을 내뱉었다.
저번 황궁 습격 이후 리베라 제국은 제대로 칼을 뽑아 들었다.
어떻게 안 것인지 제국 내부에 숨어 있는 마인 세력을 10할 가까이 절멸시킨 것도 모자라 다른 왕국에까지 손을 뻗고 있지 않나.
자신들이 고생해서 오스칼 제국과 왕국 연합을 움직인 것이 역효과가 날 만큼 발 빠른 대처였다.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다. 중간계에 마계와의 길을 잇는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최대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최우선이니.
-그렇다면 용사의 제거는 필연적인 일이겠군. 이미 이쪽의 정체가 까발려진 상태에서 거리낄 일은 없으니…….
-누가 맡을 건가?
그 의제에 마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용사를 쓰러뜨리는 것은 큰 공적이지만, 감수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크다.
실제로 지금까지 인간의 몸에 의태 하거나 빙의한 마계 군주들 역시 낭패를 보지 않았나.
더군다나 신분 또한 제국의 3황자였으니 권력을 차지한 지금 더욱 방비를 단단히 했을 터.
“그 이전에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말이야.”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가운데 지금껏 조용히 있던 에르메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쪽이 오스칼 제국과 더불어 페르포치아와 나르마치 두 왕국에도 작업하는 걸 모르는 이는 없겠지.”
-그렇지.
-이번에 크게 당했다고 들었는데. 너무 허술하게 처리하는 게 아닌가?
작은 왕국의 이야기지만, 마인회는 자신들과 관련된 정보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왕국에 숨어든 마인 세력이 절멸한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재밌는 사실이 이번 일에 레이오스 황자가 개입해 있다더군. 그가 직접 두 왕국을 움직여 마인들을 소탕했다고 하던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정보가 새어나갔다고 의심하고 있나, 자네?
-설마. 너무 억측이 심하군. 왜 마인이 마인의…….
“레이오스와 마주쳐 살아남은 마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악마 공작을 거론했다고 하네. 알력 다툼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우리 정보를 팔았다면서.”
-감히 망발을!
알로켄 측의 마인이 분개하며 소리쳤고, 에르메스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침 기회도 있지 않았는가. 황궁 습격 때의.”
마치 누가 짠 것처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는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