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38)
망나니학 개론-239화(239/300)
#239
라이프치히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국경에 자리한 레겐스부르크 영지.
원래라면 그 앞쪽 너머에 있는 데메드리오 왕국이 완충지대의 역할로 있기에 타 왕국과의 마찰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근래 새롭게 떠오르는 왕국 연합의 세력이 제국의 수탈에서 데메드리오를 구해내겠다는 명분으로 그곳을 실효 지배 중, 이제는 군사까지 움직여 국경을 침범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원작의 시간으로 따지면 이제 1부 중후반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전쟁 발발 직전.
혼란스러운 대륙의 상황을 보이는 2부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아카데미 개강일은 훌쩍 지났다.
제국 내외부가 시끄럽지만, 그곳은 정상적으로 수업을 재개했을 터.
다만, 나는 물론 내 일행들은 아카데미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챙겨주겠다는 명목으로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모조리 끌고 나왔다.
아직 카리우스와 가야온 재상이 복귀하지 않은 판국에 정계에서 내 편은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검성은 그놈의 깨달음 때문에 칩거에 이르렀고, 브리튼의 공왕인 아서는 내전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부르기가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모조리 힘으로 찍어 눌렀다.
황궁 습격을 빌미로 수도를 순식간에 휘어잡고, 지방에 있는 마인 세력을 절멸시킬 겸 나에게 반기를 드는 귀족들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인선이나 알력 같은 것은 라이프치히 백작이나 셰필드 백작 쪽에서 도와주었으니 이제 대놓고 설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앞서 전례가 있으니 그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잘 알겠지. 지금 내 눈 밖에 났다간 마족과 결탁했다는 오명을 쓰고 가차 없이 멸문당하리라는 것을.
실제로 그런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 녀석들 몇몇을 그와 같은 이유로 정리해 버렸다.
불안이나 불만 정도는 나올 수 있겠지만, 내게 반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놓는다면 지금 당장은 문제없겠지.
내 일행 역시 뿔뿔이 흩어져 각자 내가 맡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제국의 그림자 기관과 함께 아직 이쪽 내부에 숨어든 마족과 마인 세력을 정리하는 데 애쓰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단독 행동은 시키지 않겠지만, 그녀는 이제 소드 마스터에 이른 상태다. 더군다나 용사의 힘까지 각성했으니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상처 하나 입히기 힘들 터.
거기에 내가 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온몸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니 움직이기도 더욱 쉬울 것이다.
레이시스와 란돌프는 황궁에서 내 대리로 국정을 살피며 귀족들을 조율하고 있었다.
애초에 명문 출신이고, 마도 명가라는 위치도 있기에 귀족들 역시 별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둘은 명석하니 어지간한 트러블은 알아서 잘 정리해 줄 거라 믿는다.
디아크와 마리아에겐 지방 쪽을 맡겼고, 실비아는 신성 왕국 쪽의 일을 부탁했다.
마계와의 전쟁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원작과 달리 상대에게 더 변수가 늘어났다면 이쪽 역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통해 성왕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건넸고, 지금은 그 일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나머지는 나와 함께 움직였다.
엘리시아는 브리튼 공국의 출신이라 대외적으로 앞세우기엔 무리였고, 평민인 유리아도 마찬가지였으니.
나머지 루인과 데시아 베르딘은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투입했다.
제 나름대로 영웅의 자손이라 그런지 기본 피지컬이 뛰어나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니 빨리 경험치를 축적 시켜 제대로 한 사람분의 몫을 할 때까지 굴려야 했다.
“전하, 시간이 되었습니다.”
“흠.”
성벽에 올라 저 멀리 자리 잡은 왕국 연합의 군세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사이, 루겐스부르크 장군이 다가왔다.
내가 바쁜 와중에 굳이 이곳에 온 목적은 왕국 연합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 골치가 아파지지 않겠나. 그렇기에 내줄 것은 내주고, 챙길 것은 챙기며 적당히 체면치레나 할 생각이었다.
회담장은 적당한 크기의 공간에, 중심엔 큰 원형 탁자가 놓인 구조였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자리하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것이 설마 내가 직접 이곳에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눈치였다.
“레이오스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연합의 대사로…….”
연합의 대사는 거만했던 태도를 지우고 가볍게 예의를 표했다.
행색을 보니 연합의 어디 끗발이 조금 있는 왕국 출신인 것 같다.
“그래, 레이먼드 백작. 이 자리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지. 부디 회담이 좋은 결말로 끝날 수 있기를 바라는 바네.”
가볍게 환대해 주자니 그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그리 환영해 주시니 저로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군요. 말씀대로 좋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좋은 자리가 될 것 같았으면 저렇게 군대를 가져와 무력시위를 하지도 않았을 테지.
하지만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서, 자네들이 원하는 바가 뭐라고?”
“…저희는 데메드리오 왕국의 완전한 해방을 바랍니다.”
레이먼드 백작은 단호하게, 하지만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 당당함만을 표하며 말했다.
“완전한 해방?”
“데메드리오 왕국이 제국의 속국으로 지난 백 년 가까이 지내온 것을 아실 겁니다. 저희는 과거의 이야기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부터라도 왕국이 같은 대륙의…….”
겉은 번드르르한 말이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대충 정리해 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데메드리오 왕국의 해방, 그리고 상호불가침 조약.
이 두 개인 듯했다.
‘말은 잘하는군.’
핍박과 수탈을 당하는 왕국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내가 그 요구를 수락하면 데메드리오 왕국의 지배자가 바뀌는 이야기로 끝날 뿐이겠지.
그리고 레이먼드 백작의 말은 틀렸다.
제국은 데메드리오 왕국을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그들을 핍박하거나 수탈하지는 않았다.
제국이 무엇이 부족해 먹을 것도 없는 소국을 쥐어짜는가.
데메드리오 왕국의 역할은 완충지대. 우리 쪽에선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됐을 뿐인 곳이다.
왕국 연합은 그런 것을 굳이 건드린 것이고.
“…….”
대륙의 복잡한 정세 관계까지 일장 연설을 마친 백작이 이쪽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것에 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작, 터놓고 말하지.”
“무엇을 말입니까.”
“진정 원하는 것이 뭔가.”
왕국 연합은 절대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철저히 이득을 보기 위한 단체.
그렇다면 그 목적의 방향성은 분명하겠지.
“연합의 목적은.”
레이먼드 백작은 잠시 말꼬리를 끌더니, 이내 작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데메드리오 왕국의 해방, 그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런가.”
끝까지 일관성 있는 대답에 나는 가볍게 감탄했다.
보통, 이 물음에 나오는 대답은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그 미묘한 뉘앙스를 눈치채고, 그것이 연합에 물은 것인지, 혹은 자신에게 물은 것인지 되묻는 이들이 있었다.
이런 대답이었더라면 적지 않은 재화를 뇌물로 찔러주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레이먼드 백작은 끝까지 그 답변을 고수했다.
그렇다면 이쪽 역시 정공법으로 나아가야겠지.
“그것을.”
내 손짓에 회담을 지켜보고 있던 관료 한 명이 서류 몇 장을 가져왔고, 난 그것을 탁자 위에 툭 내던졌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직접 보도록.”
설명을 요구하는 그 태도를 가볍게 뭉개 버리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대사라는 직함은 도박판에서 딴 것이 아닌지 다시 가벼운 미소와 함께 탁자 위에 있는 서류로 시선을 보냈다.
“…….”
곧 그 내용을 읽는 레이먼드 백작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난 그것에 쐐기를 박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때껏 제국이 데메드리오 왕국에 해준 원조다. 원래는 무기한 대여 형식으로 준 것이지만, 말 그대로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을 뿐이지.”
“…….”
“정 그대들이 데메드리오 왕국을 해방하고 싶다면 채무의 이행을 받고 싶은데. 물론 그동안의 온정을 생각해서 이자는 받지 않겠네.”
내가 던진 서류에는 그간 제국이 데메드리오 왕국에 보내준 재화나 물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전부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음식이 있는 곳에 파리가 꼬인다고, 각종 부패 귀족들이 제 재산을 불리기 위해 그 규모를 부풀렸고, 그것이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이번에 마인 세력을 소탕하면서 어느 귀족의 저택에서 발견한 것을 앨리스가 쓸모가 있을까 싶어 챙겨두었다가 내게 전달해 준 것인데, 설마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그 귀족 본인조차 몰랐겠지.
하지만 부풀렸을 뿐 사기는 아니다.
데메드리오 왕국 측의 인장도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 각종 절차나 법에 저촉되지 않은 공식적인 문서였다.
“허허…….”
제국 측의 인사들 역시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애초에 가진 재산이 많았으니 좀스럽게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귀족엔 여러 부류가 많았고, 더군다나 긴 시간과 적당한 수단까지 있으니.
백 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얼마나 해 먹었겠는가.
국가 단위로 움직이는 규모이니 아무리 왕국 연합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토해내기란 부담스러운 일일 테지.
“이, 이런 것은 듣지 못해…….”
“당연히 듣지 못했겠지. 제국은 그저 상생을 위해 대가 없이 했던 것이니 말이야. 실제로 내 아버지인 황제 폐하께서는 이것들을 받을 생각이 없으셨다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난 굳어 있는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제국은 절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네, 백작.”
데메드리오 왕국의 해방?
원하면 해주겠다. 다만, 이쪽에서 준 것은 토해내라.
연인끼리의 치정 싸움도 아니고 조금 지저분한 양상이 있었지만, 어쨌든 명분은 이쪽에 넘어왔다.
이것을 잡음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스칼 제국뿐이겠지.
녀석들이 지금 군사를 일으키며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연합과 제국이 회담 중 마찰을 빚게 되면 그것을 빌미로 대륙의 평화니 뭐니 하는 명분으로 움직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럴 빌미를 주지 않으면 됐다.
그래서 나는 연합의 주장에 조건을 제시했다. 이제 뒷일은 이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이건 수용할 수 없는 요구입니다! 일방적인 원조에……!”
백작은 당황한 얼굴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의미도 없는 말을 떠들었다. 그것에 난 살짝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말을 막았다.
“그러면 뭘 더 원하는 것이지? 연합은 본인에게 요구했고, 본인은 연합에 그 요구에 대한 합당한 조건을 제시했다. 아니면, 그렇게 전쟁이라도 일으켜 오스칼 제국이 끼어들 빌미를 제공해 주고 싶은 건가?”
“…….”
정곡을 찔린 듯 그의 말문이 일순간 막혀 버렸다.
난 귀찮다는 얼굴로 손짓하며 최후통첩을 고했다.
“돌아가서 연합에 본인의 말을 전해라. 원래는 일을 이렇게 키울 생각이 없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뒷일은 상상에 맡기겠다는 뜻으로 가볍게 미소를 짓자, 레이먼드 백작은 이 한순간에 몇 년은 늙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