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43)
망나니학 개론-244화(244/300)
#244
농밀한 마기는 사정없이 찢겨 나갔다.
에르메스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엑스칼리버가 제 가슴을 베고 지나간 상처를 바라보았다.
“…….”
아무리 자신이 아몬의 힘을 받았고, 인간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회생 불가의 상처임을 모르진 않을 터.
하지만 그의 눈은 포기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수 없다든지, 아니면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수 없다든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의 손이 아직 검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척.
마기를 전부 끌어낸 것인지 몸을 태우는 성스러운 불꽃을 막아내던 저항이 약해졌다.
솔직히 적이었음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엑스칼리버의 신성과 프로메테우스의 정화는 마기에 물든 신체만이 아니라 마족에게 종속된 영혼마저 재로 만들어 버리는 불꽃이었다.
어지간한 심지를 가졌더라도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텐데, 에르메스의 두 눈은 냉정하기 그지없다.
아마, 생의 마지막 일격.
삶도, 죽음도, 그런 잡다한 굴레를 초월한 의지가 검 끝에서 휘둘러졌다.
덜컥.
하지만 그것은 이내 무언가에 걸려 멈추고 말았다.
딱히 이쪽에서 수를 쓴 것은 아니었다.
내 쪽은 같은 검사로서 에르메스의 생명을 태운 마지막 일격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비록 그것이 그의 생명을 더욱 갉아먹는다고 할지라도.
“…윽?!”
그 직후 에르메스는 손에 쥔 검을 떨어뜨릴 정도로 동요했다.
불꽃이 그의 핵심까지 파고들었나 싶었지만, 두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당혹감이었다.
“…아몬 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에르메스의 목이 돌아갔다.
의미 그대로 인간의 신체 구조상 돌아갈 수 없는 방향까지 그의 목이 돌아갔다.
마인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대신 척추며 온갖 신경이 찢기며 터져 나갔는지, 그의 얼굴에 울룩불룩한 핏줄이 튀어나왔다.
“…이건.”
그것은 애드윈 공작조차 무심코 신음을 흘릴 정도로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나 역시 엑스칼리버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에르메스?”
천천히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은 없다. 부러진 목만 그의 몸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을 뿐.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천천히 발을 떼자, 다시금 에르메스의 얼굴이 번쩍 들렸다.
[…확실히 보았다. 네가 당대의 용사인가.]인간의 것이 아닌, 저 밑바닥 어딘가에서부터 올라온 목소리.
시커멓던 동공엔 이제 텅 비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자리했다.
“아몬인가.”
그것에 난 직감적으로 에르메스의 몸에 아몬이 깃들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목을 돌려 부러뜨린 것은 몸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서겠지.
“레이오스!”
주변을 뒤덮는 선명한 마력의 파동에 모두 놀란 것인지 앨리스를 비롯한 일행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슬쩍 그녀의 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앨리스는 남은 잔당의 처리는 전부 끝났다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 왔다.
“…저건 대체?”
“아몬, 오스칼 제국을 휘어잡은 마계 세력의 군주다.”
추측성의 발언이지만, 아마 틀림없겠지.
그저 앞에 서는 것만으로 피부가 따끔따끔한 이 파동은 마계 군주급이 발하는 무지막지한 존재감이었다.
나는 한 손을 들어 주변에 있는 이들을 조금 더 뒤로 물렸다. 그러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던 아몬에게 말했다.
“먼저 묻지. 너는 마계 군주 중 한 명인 아몬인가?”
[그렇다, 이 몸이야말로 일흔둘의 마계 군주 중 정점에 이를 존재, 아몬이다.]상당히 자신감 있는 자기소개였다.
내가 알기로 아몬은 암약과 모략으로 자기의 세를 부풀린 악마였다.
다른 군주들에 비해 약하다는 소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성질을 지닌 무투파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주위에 있던 일행들이 술렁이는 것을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상당히 늦은 등장이군. 이미 네 세력은 절멸한 지 오래다. 이곳만 아니라 오스칼 제국 전역에 있는 모든 거점에 공격이 가해졌지.”
[알고 있다, 그런 것 따윈.]족히 몇십 년이나 공들여 준비한 계획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몬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통해 자신의 우위와 여유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일 터.
턱.
나는 대놓고 엑스칼리버를 들어 올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전면전에 나설 생각임을 숨기지 않으며 기세를 피워 올리자, 아몬은 가늘어진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성검인가. 여전히 기분이 나쁜 모습이군. 듣자 하니 네놈은 마검도 사용한다고 하던데?]“부정은 하지 않겠다.”
에르메스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 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듯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다.
나는 천천히 아몬의 기세를 가늠했다.
중간계에 강림한 마계 군주와의 싸움은 처음이 아니었다.
제일 처음은 란돌프의 몸에 깃든 그레모리와 싸웠다. 하지만 그 강림은 불완전한 것이었고, 셰필드 백작가의 도움을 받아 격퇴할 수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아가레스나 다른 녀석과도 교전을 나눴지만, 그것들 역시 모두 일시적이거나 불완전한 강림.
제대로 마주한 것은 바로 얼마 전, 다리우스의 몸을 빼앗은 알로켄 쪽이었다.
리베라의 혈통 덕분인지 알로켄은 무리 없이 그 몸에 깃들었고, 어느 정도 본신의 힘을 끌어올 수 있었다.
아마 그 순간에는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의 우위를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이 흐른다면 더 강해지겠지만, 그때는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몬이 깃든 육체 역시 인간으로 따지자면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리베라와 쌍을 이루는 오스칼 혈통에 이룩한 경지는 다리우스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스릉.
그 손이 다시 검을 쥐자 난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엑스칼리버에 힘을 실었다.
[그리 열 낼 필요 없다. 어차피 이 싸움은 성립되지 않으니까.]“…성립되지 않는다고?”
내가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며 깔보는 것일까.
하지만 그 말과 동시에 에르메스의 신체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성검의 신성과 이건 고대 반신의 불꽃인가? 참으로 기묘한 조합이군. 하여튼 네놈의 공격은 이미 이 녀석의 중심까지 파고들었다. 아깝긴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런 몸에 강림하고 싶지는 않군.]아몬은 흥미가 깊다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와 싸울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굳이 그 몸을 빌려 이쪽에 말을 건 것이지?”
[그렇군.]그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 좋게 이용당했으니 인사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나.]“알로켄의 건 말인가? 덕분에 내 쪽도 득을 많이 보았지.”
리베라 제국과 나르마치 페르포치아 두 왕국에 숨어든 마계 세력을 몰아냈을뿐더러 이간계도 적당히 성공한 듯싶다.
오스칼 제국의 정상화까진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왕국 연합을 움직이던 뒷배도 사라졌으니 이쪽도 이제 한결 숨통이 풀리겠지.
‘적어도 원작의 이야기보단 상황이 훨씬 좋다.’
척.
내 뒤로 페트라와 앨리스를 비롯한 일행이 늘어섰다.
특히 제국에서 쫓겨나 바이에른 아카데미로 망명 아닌 망명을 오게 된 루인은 싸늘한 눈초리로 썩어가는 에르메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데시아와 베르딘 역시 제 왕국을 좀먹던 세력의 수장을 보곤 속 시원하단 표정을 지었고, 애드윈 공작을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인 기색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아몬은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 탓에 녹아내린 안구가 흘러나오고 팔꿈치부터 뼈가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알고말고. 다만…….]“다만?”
[이용당한 것은 이쪽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말이야.]“…뭐?”
그것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몬이 중간계에 뿌린 세력은 확실히 뿌리째 뽑혔다.
더는 이런저런 수작을 부려올 수 없을 터.
그렇다면 어째서 저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는 것인가.
[여기까지 와서 하는 말이다만, 사실 너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군주들 사이에서 많이 돌았다.]눈이 녹아내려 텅 빈 구멍이 이쪽을 응시한다. 그것에 난 왠지 모를 한기가 음습하며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성검의 사용자, 당대의 용사. 분명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존재다.]툭.
아몬의 팔이 어깨까지 삭아 떨어졌다.
그가 중간계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에 점점 다다르고 있다.
그것을 깨달으면서도 나는 어느샌가 초조히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말한 것은 알로켄이다. 너와 가장 먼저 만나 가장 먼저 싸운 그는 네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미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냈지.]그 말에 나는 가슴 속에 묵직이 무언가가 떨어져 앉음을 느꼈다.
단서 따위 준 적은 없다.
날 지켜보았어도 그러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알로켄은 그런 의견을 냈는가.
[성검, 용사. 그것들 모두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손을 잡았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말이야.]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것을 묵인했고, 용사라는 이름의 내가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을 감수했다.
단 하나의 목적.
그것에 의식이 다다른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쯤이면 연결됐겠군.]아몬은 슬쩍 시선을 돌려 리베라 제국 쪽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리베라 제국의 수도인 폴포아르텔 근교에 마계와 중간계를 잇는 게이트가 연결되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알로켄이 그 선봉대를 맞이하며 진군을 시작했겠지.]“…그래서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던 건가.”
[오스칼 제국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뭐 상관없다. 어차피 당분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터고, 회복하기도 전에 우리 군세가 들이닥칠 테니 말이야.]이쪽은 그저 멍하니 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이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탈력감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나를, 이쪽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이용했다?
그야말로 손바닥 위의 원숭이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을 터.
흥분을 가라앉히려 깊게 숨을 내뱉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여러 생각으로 복잡해져 있었다.
아몬과 시선을 마주치자 일순간 눈앞이 흔들린다. 지금껏 잘 해내 왔다고 믿으며 한 일이 누군가 조작한 것이었다니.
“레이오스.”
“…아.”
양쪽에서 내 팔을 잡아 오는 손길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흐려졌던 머릿속은 어느덧 다시 말끔하게 개인 상태. 그러자 눈앞에 보인 것인 나를 보며 환희에 찬 미소를 짓고 있는 아몬의 모습이었다.
“이 개자식…….”
그와 대화를 나누며 깨닫지 못한 사이에 사술에 말려든 듯싶다.
하지만 마음 쪽 한구석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에 대한 경계는 제대로 구분 지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 아몬은 다시 한번 실소를 내뱉고는 마지막이 될 말을 내뱉었다.
[어쨌든 잘해보아라, 용사여. 네가 그 군세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견뎌낸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때는…….]툭.
에르메스의 몸이 완전히 썩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고약한 악취와 정제되지 않은 마기가 그 위로 피어오른다. 난 한 손을 휘둘러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으로 그것을 깨끗하게 소멸시키며 몸을 돌렸다.
“서둘러 제국으로 돌아간다.”
어찌 되었든 그곳에 마계와의 연결을 잇는 게이트가 생긴 것은 사실일 터.
즉, 2부의 종말을 고하고 3부에 진입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첫 에피소드는 바로 ‘검성과 알로켄의 동귀어진’.
그것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다들 내 말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 나는 고개를 돌려 사라져가는 에르메스의 잔재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만나면 철저하게 짓밟아주마.”
날 우롱한 대가는 확실하게 받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