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46)
망나니학 개론-247화(247/300)
#247
웅웅.
마계 군세 위로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생겨났다.
찢어질 듯 부릅뜬 그것은 성벽 위를 바라보았고, 시선을 마주친 병사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대가 검성인가.
마치 머릿속에 때려 박듯 울리는 그 목소리에 모두가 침음성을 흘릴 때, 오직 검성만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제국의 검성, 요하넬이다.”
-본인은 이 군세의 사령관인 알로켄이라 한다. 어떤가, 이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축제를 벌이기 전에 서로 가볍게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은.
즉, 대장끼리 일기토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검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피와 향유로 점철된 축제라니, 정말로 악취미가 따로 없군.”
이쪽은 죽을 각오로 싸우기 위해서 나왔다.
그것을 고작 축제 취급하다니. 태생부터가 다른 종족이리라.
“…어쩌시겠습니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가야온 재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이것이 보통의 전쟁이라면 시답지 않은 소리라며 들을 것도 없이 무시했겠지만, 이쪽은 아직 전력이 다 도착하지 않았다.
“이 한 몸 바쳐서라도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검성은 별수 있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곤 앞으로 나가며 제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오라, 마계의 주구여! 내 제국을 대표해 능히 네놈의 목을 베어내겠다!”
그러곤 한술 더 떠 도발까지 날리자 마계 군세 쪽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파아아앗-!
성벽과 마계 군세 사이, 그 가운데 시커먼 어둠이 솟구친다. 그와 함께 한 인영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성벽을 올려보았다.
“오너라, 검성이여. 이 알로켄이 직접 상대해주지.”
툭.
검성은 망설일 것 없이 성벽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상대 쪽에서 굳이 시간을 벌어주겠다는데 거절할 것도 없지 않은가.
곧 바닥에 내려선 그는 알로켄의 앞에 서서 천천히 그를 탐색했다.
‘알로켄, 지옥대공이라 불리는 마계 군세의 총사령관.’
형태는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이마에 돋아난 두 개의 뿔 그리고 시뻘건 피부와 시커먼 눈동자 안에 갈라진 샛노란 동공은 알로켄이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마 마왕을 제외하고 마계에서의 최강이라 불릴 터.
자신의 대적자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스릉.
둘은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검성의 검은 순백의 빛이 감도는 것과 반대로 알로켄의 검은 핏빛 혈기가 흘러내리며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내비쳤다.
“보통의 것도 아니군.”
그가 든 검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자 검성은 가늘어진 눈으로 말했다. 그것에 알로켄은 알아봐 주어서 기쁘다는 표정으로 제 검을 흔들며 말했다.
“레반테인이다. 이름은 들어봤겠지.”
“레반테인이라.”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름이 아닌가.
검성의 검 역시 충분할 정도의 명검이자 보검이었지만, 레반테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뭐, 상관있는가. 자네나 내 수준이면 들고 있는 것이 나무 작대기든,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보검이든.”
“그것도 틀린 소린 아니군.”
알로켄의 말에 검성은 씩 웃었다.
검은 그저 의념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일 뿐.
물론 검의 수준이 높으면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그것은 일정 선이 있었다.
아무리 신화시대의 명성을 가진 마검이라 할지라도 극의에 달한 두 사람에게는 그저 검에 깃든 역사에 지나지 않았다.
웅웅.
검성과 알로켄의 기세가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주위를 뒤덮은 소란스러움은 쥐 죽은 듯 사라졌으며, 공기까지 무겁게 내리 앉은 듯싶었다.
파아아앗-!
먼저 공격을 가한 것은 검성 쪽이었다.
그의 검 끝에서부터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세상을 베는 일 검이 휘둘러졌다.
“어이쿠, 인사치곤 격하군.”
알로켄은 가볍게 땅을 박차 훌쩍 옆으로 돌아서며 그것을 피해냈다.
하지만 피해낸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참격이 마계 군세를 휩쓴다. 수십, 수백의 마물이 갈가리 찢겨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해 버렸다.
한 개인이 냈다기엔 파멸적이기까지 한 결과.
그것에 알로켄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이번엔 그 자신이 검을 움켜쥐었다.
“인사를 받았으면 화답해야 하는 법.”
쿵.
강하게 내디딘 발에 땅이 뭉개지며 그 주위로 잔뜩 균열이 생겨난다. 곧 알로켄의 검 위로 시커먼 마기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미친 듯이 피어올랐다.
파아아아앗-!
일전 그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말하길, 마치 검은 불꽃으로 이어진 파도가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것 같았다는 그런 풍경이었다.
“…이런.”
다만, 그 방향은 검성을 향해있지 않았다.
자신의 군세가 입은 피해를 복수하기라도 하듯 알로켄의 검 끝은 검성을 지나 그 뒤에 있는 성벽 쪽으로 향해있었다.
타닷-!
검성이 황급히 땅을 박차 그것을 막아내려 했지만, 어느새 지척까지 따라붙은 알로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눈을 파는 건 날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생각은 없었다네.”
검성은 자신의 심장을 노려온 검을 유려한 검 놀림으로 걷어내었다.
하지만 그 탓에 뒤쪽으로 흘러간 그의 공격엔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검은 화마가 성벽을 집어삼켰고, 그곳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뒤바뀌었다.
“끄아아아악-!”
“물! 물을 뿌려라!”
“물러나!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닿은 부위는 가차 없이 잘라버려라!”
사람들 몸에 불은 물을 뿌려도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반항하듯 더 격렬하게 타올라 옆에 있던 이에게까지 번져갔으니,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었다.
“하다못해 빨리 숨을 끊어주어라. 덜 고통스럽도록.”
에른스트 백작은 비통한 표정으로 손수 검을 들어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병사들의 목숨을 끊어주었다.
그러곤 침중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평야를 바라보았다.
검성과 마계 군주의 싸움.
단순히 개인의 일기토가 아니었다.
이것은 마계와 중간계가 벌이는 최초의 전투. 앞으로의 전황에 있어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쿵-!
둘은 더 이상 서로의 공격을 피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공방을 나눴다.
초월자들이 벌이는 전투에 땅은 지진이라도 난 듯 여러 갈래로 갈라졌으며, 하늘은 불길하게 요동치며 점차 먹구름으로 뒤덮여갔다.
검을 쥔 손에 쌓인 충격을 털어버리며 검성은 가라앉은 눈으로 알로켄을 바라보았다.
‘분명 크리스 그녀에게 힘의 일부를 빼앗겼다고 들었는데.’
일전 4황자 아우구스의 몸에 빙의했을 때, 크리스는 자신이 그 화신체의 격을 조금이나마 갈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느껴지는 알로켄의 기세는 이곳 전부를 뒤덮고도 남을 방대한 것이었다.
꽈아악.
검성은 검을 다잡았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자신은 쓰러지지 않는다. 자신은 검성, 제국의 기둥이었다.
츠즈즈즈-.
진심을 내보인 그의 검 위로 작열하는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에 알로켄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검 위로 내뿜은 마기의 기운을 더욱 거세게 둘렀다.
일 검에 폭풍이 일어나고, 이 검에 땅이 터져나간다. 삼 검째에 하늘마저 베어 가르는 검이 휘둘러졌지만, 알로켄은 그것이 끝까지 휘둘러지는 것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단순히 검과 검이 충돌했을 뿐인데, 양측 진영을 뒤흔드는 거센 지진이 일어났다.
이미 그 주위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기세가 충돌해 일어난 인위적인 폭풍이 주위를 휩쓸고 있으며, 간간이 그것이 요동칠 때면 뇌성까지 들려왔다.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고서야 섣불리 발을 내디뎠다간 온몸이 갈가리 찢어질 터.
“…어떻습니까?”
망루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가야온 재상의 나지막한 질문에 에른스트 백작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지는군요. 누가 유리하고 말할 것도 없는 싸움입니다. 저 사이로 들어간다면 저는 십 초도 버티지 못한 채 갈가리 찢겨 죽겠죠.”
감히 자신이 판단할 수준이 아니라는 그 말에 가야온 재상은 신음을 흘렸다.
검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검성을 잃을 수 없었다.
검성은 그 상징만으로도 억제력을 가져 큰 의미가 있었지만, 진정한 힘은 그가 검을 드는 순간부터 나왔다.
검성은 검성이었을 때부터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 개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장을 아우르는 이야기였다.
불패의 신화, 그렇기에 검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지방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현재 전언을 한 대로 마계 군세를 중심으로 포위망의 구축이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군.”
가야온 재상은 그 말에도 침중한 안색을 지우지 못했다.
포위망을 구축했다곤 하지만, 여기 있는 군세가 일부라도 방향을 돌린다면 금세 휩쓸려갈 터.
마계의 군세는 일반적인 싸움으로 쓰러뜨리기 어렵다.
언젠가 레이오스 황자가 한 말이었기에 가야온 재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말을 따라 신성 왕국과 협력했고, 언젠가 올 재앙을 대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준비가 오래 걸리는 것인지 금방 오겠다고 하는 그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검에는 교양 정도의 실력밖에 없는 자신이 보기에도 두 초월자의 전투는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일격 일격은 천지를 울렸고, 서로의 기운을 크게 갉아먹었다.
승부는 이미 도처에 있었다.
“…대단하구나, 수명이 짧은 인간의 몸으로 그만한 경지를 쌓다니.”
“살아가는 세월이 짧기에 자네들보다 더욱 격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지. 자, 이제 그만 이 대결에 종지부를 찍어보자꾸나.”
검성은 승리를 예상했다.
알로켄은 이미 몇 군데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자신 역시 온전하다곤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상대보단 여력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조금의 차이지만, 그들 같은 초월자 사이에선 메울 수 없는 간극이나 마찬가지였다.
“후우…….”
한숨으로 호흡을 진정시킨 검성은 다시 검을 들었다.
선봉장으로서 지옥 대공의 목을 베고 제국의 위상을 높인다면 그것만큼 영예로운 일은 없을 터.
검성의 위상에 걸맞은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나는 이 싸움을 가벼운 여흥으로 여기고 나왔다네.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날 몰아붙일 줄은 몰랐군.”
알로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설마 인간계에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비록 그것이 제약 때문에 본신의 힘을 낼 수 없는 상태라 할지라도.
“아가레스 그 친구에게 고마워해야겠군. 설마 이것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어.”
“…….”
알로켄이 손 위로 시커먼 무언가를 쥐었다.검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뭘 하려는지 모르지만, 하게 놔두어선 안 된다.’
단숨에 판단을 마친 검성은 휘두르는 검에 전력을 담았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력.
공간 자체가 갈라지며 그 너머 미지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검성은 그런 것에 일절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목표로 하는 알로켄의 목에 집중했다.
“…이미 늦었네.”
하지만 알로켄은 이미 그 의중을 눈치챈바. 어떻게 할 틈도 없이 그 시커먼 것을 입에 넣고는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