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63)
망나니학 개론-264화(264/300)
#264
수많은 군세가 데메드리오 수도를 앞에 둔 채 멈춰 섰다.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우뚝 솟은 가운데, 그 주위로 연합에 소속한 여러 왕국 군의 표식 역시 자리를 빼곡히 메웠다.
리베라 제국의 6군단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의 숫자는 무려 이십 만에 달하는 것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이 군세만으로 리베라나 오스칼 제국과 당장 전면전을 할 수 있는 규모였으니.
그 참여한 면면 역시 화려했다.
리베라 쪽에선 나와 내 일행 그리고, 6군단의 군단장을 맡은 레겐스부르크 장군과 함께 수많은 소드 마스터가 나섰다.
다른 왕국들 역시 연합에 파견된 대사들과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참여했으니 정예 전력으로도 어디 가서 부족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사실 데메드리오 왕국을 정벌하기엔 차고 넘치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수도인 폴포아르델에 닥쳐온 마계 군세 이후 연합군이 창설되고 난 뒤의 첫 전투였으니 시사하는 의미가 큰바.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로 직접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 기개는 손뼉을 쳐주고 싶었으나, 밑바탕엔 연합 안에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높이고 싶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터.
씨알도 먹히지 않는 수작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자주 이용하기 좋은 패턴인 것 같기에 나는 그저 그들의 의기를 칭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돌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진지 구축이 끝나갈 때쯤 연합군의 대사들을 막사로 불러모아 회의를 열었다.
“척후병의 말로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고 합니다. 성문은 열려 있고, 그 앞을 지키는 개미 한 마리도 없다고 하니.”
“안쪽으로 들어간 이들은 전부 연락이 끊겼습니다. 마법적인 탐색 역시 모두 차단되고 있고요.”
“궁금하다면 직접 들어오라는 거군. 당돌하기 짝이 없어.”
“놈들의 간악한 수작이오. 압도적인 힘 앞에는 모든 것이 무력한 법. 레이오스 황자와 신성 왕국, 그리고 연합군의 군세가 있으니 정면으로 밀어붙이면 낙승 아니겠소!”
대사들은 각양각색의 의견을 내놓았다.
진지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제법 일리가 있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가 있는 반면에, 생각이라곤 티끌조차 하지 않은 태도로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중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을 눈여겨 두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 파악을 잘하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생각 없는 놈들은 금방 나가 죽을 것이 뻔하지만.
“실력 있는 이들로 구성된 수색 파티를 투입합시다. 정면으로 진입했다가 대단위 마법이라도 걸려 있어 이쪽의 피해가 생긴다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니.”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저도 그게 가장 좋을 거로 생각이 듭니다. 역시, 레이오스 황자님께선…….”
이대로라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대충 방향을 제시하니 떠들던 이들은 태도를 바꾸어 연신 고개를 끄덕여 왔다.
더러는 내 말에 크게 동조하며 아부성 짙은 말을 내뱉기까지 했으니.
“누구 추천할 만한 이가 있습니까?”
“아, 저희 오이겐 왕국의 기사들이 용맹하기 짝이 없으며…….”
“어허. 이런 일에는 저희 마법사들을 빼놓을 수 없지요.”
공을 세울 기회가 눈앞에 있으니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신의 휘하 기사나 마법사의 이름을 읊어댔다.
그것에 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레겐스부르크 장군에게 눈짓해 적당한 인선을 부탁했다.
곧 연합군의 각 왕국 사이에서 정예가 선출되었다.
소드 마스터가 두 명에 익스퍼트 최상급, 그리고 상급이 모두 열세 명. 그리고 4, 5 클래스 마법사 5명까지 모두 스무 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흠.”
솔직히 이런 수색 파티로 투입하기엔 아까운 전력이었다.
하지만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빠르게 결정을 내렸고, 그들은 곧 이쪽의 수정구와 화면이 연결되는 아티팩트를 지닌 채 성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람이 한 명도 없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디 싸움이 일어난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텅 빈 도시는 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기사들은 혹시나 무언가 있을까 천천히 사방을 수색했고, 마법사들은 탐색 마법으로 생존자나 이질적인 기운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도시의 모습은 멀쩡했다.
노점의 가판 위엔 식은 음식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과일이나 고기 따위를 파는 가게들 역시 문이 활짝 열린 채 손님을 환영하고 있었다.
길드나 행정 구역으로 보이는 곳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수색 파티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이쪽의 의문만 커질 뿐이었다.
‘…사람만 쏙 빼 갔다고?’
참으로 얌전하기 그지없는 녀석이 나온 것 같다.
그러던 차, 수색 파티는 처음으로 이질적인 무언가와 마주했다.
[사람입니다. 어떻게 할까요?]대광장의 건너편.
멈춰 버린 분수대 앞에서 뒤돌아 있는 여성의 모습이 화면에 들어왔다.
그것에 내가 눈짓하자 레겐스부르크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곤 수정구를 잡았다.
“천천히 접촉해 보도록. 다만, 마인이나 마족과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니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잊지 말게나.”
[알겠습니다.]광장에 홀로 뒤돌아 가만히 서 있는 상황이니 이미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리라.
레겐스부르크 장군의 말에 소드 마스터 두 명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아갔다.
수색 파티는 여러 마법과 아티팩트, 그리고 사제들의 가호로 보호받고 있는 상태였다. 고위 마족이 상대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터.
[본인은 오이겐 왕국의…….]그래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조심스레 말을 건넸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푹.
바닥에서부터 솟구친 시커먼 그림자가 기다란 가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 끝으로 시뻘건 핏줄기가 주르륵 떨어졌을 때, 뒤쪽에서 정신을 차린 다른 마스터가 다급하게 외쳤다.
[공격해!]수색 파티는 각 왕국의 정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반응했지만, 그런 것들이 무색하게도 곧 광장 바닥 전부가 시커먼 그림자로 물들었다.
푸슈슈슉-!
감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가시가 우후죽순으로 솟구쳤다.
기사들은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몸을 비틀며 그것을 피해 내려 했고, 마법사들은 실드를 만들어내 그것들을 막았지만, 그 모든 시도가 부질없게도 그림자에서 솟구친 가시들은 사정없이 그들을 꿰뚫었다.
푸슉.
누군가의 몸에서 솟구친 핏줄기가 화면을 적신다. 그러곤 곧 무언가의 압력을 받았는지 영상을 비추던 수정구에 균열이 일며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
그 충격적인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침묵했다.
수색 파티로 투입된 전력은 절대 어중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한순간에 당할 정도라면 안쪽에 있는 괴물은 예사롭지 않은 존재라는 것.
‘그림자를 다루는 마족이라.’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전부 다 작중에 등장한 적 없는 존재였다.
아마 내가 모르는 마족일 터.
“다들 어찌하고 싶습니까.”
나는 여전히 침묵하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제 왕국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귀족들이다. 제 몸을 귀히 여기는 만큼 저런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먼저 나서고 싶어 하는 이가 없었다.
물론 연합군이 승리하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을 터.
다만, 제일 먼저 나서서 고기 방패가 되는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리라.
“피해를 가장 적게 보려면 외부에서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밀어붙여야 하겠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침묵을 깨고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것에 모두가 시선을 보내자니 오스칼 제국의 젊은 대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적이 도시 한가운데 있다면, 굳이 가서 싸워줄 필요는 없잖습니까. 저희 목표는 적의 몰살. 어차피 협상이나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도 아니니까요.”
“아, 아니 되오! 그러면 왕국의 수도가……!”
데메드리오 왕국의 대사가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그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루인은 입가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다.
“대사,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우리는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지 그대들을 위해 헛된 희생을 하려는 것이 아니오. 무너진 건물은 다시 쌓으면 그만이지 않는가. 어차피 연합 측에서 충분한 보상을 할 터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이쪽을 바라보며 말하는 루인의 말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칼 대사의 말대로다. 피해가 적다면 수단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이제부턴 인명이 제일 중요한 전쟁이 계속될 터인데 눈에 보이는 위험에 스스로 뛰어들 필요가 있겠는가. 데메드리오 대사, 연합의 이름으로 충분히 보상하도록 하겠다는 것을 약속하겠네.”
루인의 말에 나는 화끈하게 지원사격을 해 주었다.
다만, 좌중에 있던 몇몇은 그 말의 속뜻을 눈치챘는지 가만히 입을 닫았다.
나는 연합에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에게 가입비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재화를 받았다.
가입비는 나라마다 차등이 존재하며, 왕국 연합에 속해 있던 국가에는 좀 더 많은 금액을 청구했다.
명목상으로는 가입비였지만, 그것은 이전 왕국 연합이 벌였던 일들을 용서해 주는 대가로 받은 것이기도 했다.
어차피 연합의 주축은 제국이다. 그들로서도 주지 않고 버티는 것보단 빨리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좋을 터.
그것을 전부 합하니 제국의 1년 예산과도 맞먹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되었다. 데메드리오 왕국의 수도를 재건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터.
물론 순순히 돈을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앞으로 전쟁이 계속 이어질 터인데, 타 왕국의 수도 복구를 위해 돈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기한도 정해 두지 않았으니, 여차하면 시일을 미뤘다고 답변하면 될 뿐.
…하나하나 나열하자니 솔직히 조금 쓰레기 같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썩은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그 주위도 곪을 위험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생존자가 나왔을 땐 결정의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데메드리오 대사는 최후의 보험을 깔았다.
정말로 애국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할 포석을 깔아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이제 저 녀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긴 할까 싶다.
의견이 모이니 실행까지 이르는 것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합군에 소속된 마법사는 무려 300명에 가까운 규모였다.
거대 마탑 3채가 있어야 비슷한 규모가 맞춰질 터. 더욱이 그 한 명 한 명이 수준급에 이르렀으니, 질적으로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 그 300명의 마법사가 도시를 향해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사람이 만들어낸 재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인위적으로 움직인 마나가 세상과 공명해 수십, 수백 개의 변화를 일으키며 도시를 향했다.
불길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거센 폭풍이 몰아치며 성벽을 뒤흔들었다.
그 장엄한 광경에 모두가 압도되어 감탄을 내뱉었을 뿐.
“대단하네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레이시스와 유리아 역시 감탄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색 바탕에 가장자리에는 금테가 새겨진 제국 정규 마법사 로브가 제법 잘 어울려 가볍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대기 조인가?”
“네. 아무래도 저희는 이렇게 높은 클래스의 마법으로 합을 맞춰 본 경험이 없으니까요.”
말은 겸손을 표했지만, 그녀들의 경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레이시스는 벌써 5클래스를 마스터했고, 유리아 역시 4클래스를 넘어 5클래스의 초입으로 다가섰다.
지금 나이에 몇 살을 더해도 1, 2위를 다투는 실력이 아닐까 싶다.
세기의 천재라 불렸던 가베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었으니.
‘그 녀석도 조만간 데려와야겠군.’
아직 아카데미에서 교관으로 구르며 크리스에게 수련을 받고 있을 터.
그녀 말로는 이제 1인분은 충분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했으니 제법 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