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64)
망나니학 개론-265화(265/300)
#265
“…저게 뭐죠?”
레이시스가 가늘어진 눈으로 의문성을 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수도의 하늘 위로 예상했던 이변이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커먼 그림자가 일어나 그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쉬이 당해 주지 않겠다는 듯 바닥에서 솟구친 그림자는 이내 자신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마법들을 잡아먹었다.
“무슨!”
“다시 공격한다! 각자 여력이 허락하는 내에서 자유롭게 공격하도록!”
지휘를 맡은 어느 마도사의 말에 따라 다시금 마법사들 사이에서 산발적인 마법들이 솟구쳤다.
수도를 감싼 그림자는 다시 제 몸을 출렁거리며 그것에 대항했고, 빛과 어둠이 서로 구분되어 충돌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라 할 수 있었다.
“…저희가 이기겠죠?”
유리아가 살짝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려 200명이 넘는 마법사가 쏟아부은 화력이다. 일부는 혹시나 모를 적의 기습을 대비해 방어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지만, 이 정도 화력이라면 어지간한 성이라도 버텨 내기 힘들 터.
“글쎄, 그렇게 쉬울까?”
녀석들은 상식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더욱이 지금은 마족이나 마인에 관한 전투 데이터가 적은 시점이다. 일방적으로 마법을 쏟아붓기만 해서는 유효한 타격을 입히기 힘들었다.
단적인 예로 나를 저 가운데 세워 놓아도 쏟아지는 마법들을 모조리 피해 내거나 막아 낸 뒤, 유유히 빠져나와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을 모조리 도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파아아아아앗-!
수도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마법들을 막아 내던 그림자가 몸집을 더욱 부풀렸다. 그것은 이내 하늘을 뒤덮었고 오히려 이쪽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막아!”
그 갑작스러운 현상에 대기 조에 편성되어 있던 마법사들이 황급히 앞으로 나서며 실드를 펼쳤다.
연합군의 앞으로 수십, 수백 개의 장벽이 나타났고, 그것은 이쪽을 향해 쇄도해 오는 그림자의 촉수를 막아 냈다.
쿵- 쿵쿵-!
다만, 그것들은 단 한 번의 공세로 그치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제 몸을 틀어 틈을 파고들었고, 마법사들은 그것을 막아 내려 심력을 다하고 있었다.
“…큭.”
내 옆에 있던 레이시스와 유리아 역시 실드를 펼쳐 그림자의 접근을 막았다. 코앞에서 짓뭉개진 그 시커먼 것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혐오감이 생길 정도로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요?”
유리아가 슬쩍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이레이저라면 이쪽을 공격해 오는 그림자 촉수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릴 수 있을 터.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너한테는 부담이 너무 커.”
이레이저는 일정 영역 내에서 마법의 발현을 없애는 것이지, 특정 대상이 마법을 발동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다.
숙련도가 오른다면 영역 내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해 적용 대상을 고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였다.
“이만한 영역 전부를 지워 내면 피 토하면서 쓰러질걸?”
이레이저는 분명 사기라 부를 만한 능력이다.
하지만 그런 부류의 능력은 대가도 큰 법. 이 정도 범위를 모두 지워 낸 후의 반동을 무마하려면 적어도 마도사급의 경지엔 올라야 할 것이다.
“…….”
유리아 역시 그간의 훈련으로 대충 짐작은 하고 있는지 수긍하는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페트라 언니랑 앨리스는 어디 있어요? 당신 옆에 붙어 있을 줄 알았는데.”
슬쩍, 레이시스가 끼어들며 물었다. 그것에 난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군대가 주둔 중인 막사에 눈짓했다.
“후방에 배치했어.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꼭꼭 숨겨 둬야지.”
“…지극정성이시네요.”
“부러워?”
“당연히.”
감정을 숨길 이유 따윈 없다는 듯 당당히 말해 오는 그 태도에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것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쪽은 할 일이 있어서 따로 빼놓은 거야. 고생 좀 할걸?”
“그러면 부럽진 않네요. 지금은 제가 승리자인가요?”
레이시스는 실드를 유지하면서 내 옆으로 찰싹 붙어 왔다. 유리아는 그런 우리를 가늘어진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그러자 주위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의 농도가 진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녀 역시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지만,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고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뻔뻔해진 것 같았다.
“데이트 정도야 시간 나면 원하는 대로 해 줄게. 그러니까 지금은…….”
가볍게 손을 뻗어 엑스칼리버를 쥐었다.
그와 동시에 감각을 열어 그림자 촉수를 거슬러 올라가자 금세 그 근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호오?”
수색 파티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존재.
그리고 지금 수도를 뒤덮는 그림자를 만들어낸 장본인.
마계 군주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강함을 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 역시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후.”
입가에 가는 미소를 띤 채 엑스칼리버를 들었다. 짧게 심호흡을 토해 낸 후 그 위에 힘을 실었고, 검 끝은 맹렬하게 허공을 갈랐다.
쐐애애애애애액-!
눈부신 빛 무리가 엑스칼리버에서 쏘아졌다. 그것은 곧 긴 궤적을 그리며 그림자 촉수를 꿰뚫었고, 이내 그 근원에 있는 존재에게까지 다다랐다.
쿠웅-!
수도 안쪽에서 커다란 광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것에 나는 가볍게 검을 돌린 뒤, 주위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에게 말했다.
“먼저 가서 대충 정리해 놓을 테니까, 상황 보고 적당히 따라와.”
“…네? 잠깐, 뭘…….”
파아아아아아앗-!
힘껏 땅을 박차니 순식간에 몸이 앞을 향해 솟구쳤다.
몸을 짓이길 듯한 풍압을 가볍게 견뎌 내며 다시금 달려 나가길 몇 번, 성벽을 넘어 엑스칼리버의 빛 무리가 만들어 낸 궤적을 따라 수도 안쪽까지 도달하기까지 1초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탁.
가볍게 땅에 발을 내디디며 내려서니 아까 화면에 보았던 광장 가운데 서 있던 여성이 눈에 보였다.
“안녕.”
“…….”
가볍게 인사를 건네 보았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녀는 손을 들곤 그림자를 움직여 재차 연합군에게 공세를 가했을 뿐.
“무시한다 이거지.”
명백히 인외의 존재였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가졌어야 할 생기가 그 안에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바닥을 알 수 없는 시커먼 심연만이 그곳에 자리할 뿐.
인사차 가볍게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니, 광장 바닥 밑에서부터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촉수가 솟구쳐 내 앞을 가로막았다.
서걱.
그것을 두부 가르듯 부드럽게 베어 버리자 그녀는 그제야 내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입을 열어 이쪽을 향해 무어라 말한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것 같았다.
슬쩍 시야 한구석을 바라보며 시스템 어시스트의 해석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곳엔 아무런 표시도 떠오르지 않았다.
푸슉.
그렇게 서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니, 다시금 광장 밑바닥에서 검은 가시가 솟구쳤다. 그것은 일전 수색 파티의 목숨을 앗아 간 것으로, 육안으로 파악하기엔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타닷.
속도뿐만이 아니라 찔러 오기 시작한 숫자도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땅을 박차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녀석은 내 쪽으로 손을 뻗어 가볍게 움켜쥐었다.
꽈드득.
“……?!”
온몸이 짓눌리는 충격에 나는 황급히 머리를 뒤로 뉘여 무게중심을 바꿨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림자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시커먼 운무가 일어나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재밌는 능력이네.”
엑스칼리버의 신성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러자 혀를 날름거리던 마기들이 전부 정화되었고, 그 밖에 있던 것도 일정 영역 안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족은 싸우기 전까지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몰라서 골치가 아프단 말이야. 차라리 검이나 창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무투파 녀석들이 낫지.”
파아아아아앗-!
내 말에 화답하듯 그녀는 크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광장 전체가 그림자로 물들며 수십, 수백 개의 촉수 끝이 날 향해 닥쳐왔다.
파바바바바박-!
엑스칼리버에서 일어난 신성이 날 중심으로 한 결계를 만들어 냈다. 촉수는 그것을 깨부수려 몇 번이고 이쪽에 몸을 부딪쳐 왔지만,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실드와는 달리 이쪽은 완벽한 상극을 자랑하고 있다.
고작 이 정도 공격 따위로는 흠집 하나 내지 못할 터.
‘느껴지는 기운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닌데, 뭔가 목적이 있는 건가?’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지면 그레모리는커녕 그 이전에 싸웠던 고위 귀족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것에 나는 엑스칼리버를 고쳐 잡고, 녀석을 향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것을 그어 내렸다.
키아아아아아아악-!
엑스칼리버의 신성이 그 몸을 태운다.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하고 있던 모습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부터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녹이기 시작했다.
“슬라임의 종류인가?”
내재한 기운이 모두 흘러나오면 이 도시를 뒤덮고도 남을 터.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 엑스칼리버를 들었을 찰나, 돌연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
데메드리오 왕궁.
그곳에서부터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의도적으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애꿎은 그 아이는 그만 괴롭히고, 그만 이곳으로 오게나.]“아이작.”
아이작 검호대장군.
아마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일 터인 그가 드디어 제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내 몸을 휘감으려던 촉수들을 모두 베어 버린 채, 더더욱 엑스칼리버의 힘을 실어 녀석을 내려쳤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순식간에 바닥에 녹아들었고, 이내 한 줌의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사라져 버렸다.
“…좋아, 그쪽으로 오라 이거지.”
눈앞에서 먹잇감을 놓치자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고개를 들어 왕궁을 바라보았다.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서 다 부숴 놓으면 되는 것일 터.
웅웅웅웅.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도 성벽 외곽으로 무지막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또 다른 마족이 나타난 것인가 싶었으나, 그것은 수천 마리의 마물이 출현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곧 저 너머는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나로선 머쓱할 따름이었다.
기세가 올라 혼자 수도 안쪽으로 파고들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물 군단 때문에 혼자 격리되게 생겼다.
“음.”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잠시 고민했다.
발걸음을 돌려 연합군과 합류해 마물 군단을 소탕할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왕궁으로 나아가 아이작과 마주할 것이냐.
타닥.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고, 광장을 넘어 데메드리오 왕궁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는데 가지 않을 수가 없지.”
안쪽에서 기다리는 것이 무슨 마인이든, 마족이든 상관없었다.
물론 마계 군주 파티가 이쪽을 향해 환영해 온다면 조금 곤란하겠지만, 아이작에게 과연 그럴 여력이 있을까.
곧, 나는 왕궁의 대전 안으로 발을 내디뎠고.
“왔는가, 당대의 용사여.”
권좌 위에 앉아 나를 맞이하는 아이작 검호대장군을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