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67)
망나니학 개론-268화(268/300)
#268
“어째서 그런 것이지?”
나는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가레스는 아이작에게 계약을 어기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몸을 차지하는 것까지 모종의 계약으로 묶여 있다는 것일 터.
하지만 아이작은 이 상황까지 와서 왜 그것을 거부했는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말해 무엇 할까. 그저 내가 짊어진 원죄를 조금이나마…….”
쿨럭.
시커먼 피가 그의 입에서 토해져 나왔다.
계약을 어긴 탓인지 아이작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마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강직했던 근육은 풍선에 바람이 빠진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피부는 찰나 동안 수십 년의 세월을 겪은 것처럼 늙어 가기 시작했고, 새로이 만들어진 좌안도 흘러내려 다시 텅 빈 동공이 드러났다.
스스로 심장을 파괴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아이작을 기다리는 것은 아가레스의 말처럼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옥에서 영원토록 제 몸을 태우는 잔혹한 형벌뿐일 터.
하지만 빛이 꺼져 가는 그 눈동자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술렁이는 가슴을 억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정을 말하라.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 성검의 권능으로 네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다.”
“…….”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던 아이작의 얼굴에 한 줄기 갈등이 서렸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을 적에도 이렇게 고생하고, 죽어서까지 안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이작도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남은 미련이 많을 터.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을 본 나는 왼손에 티르빙을 소환해 가볍게 휘둘렀다.
웅웅.
그녀의 마기가 아이작의 몸을 감싸 조금의 유예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이제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한숨을 토하며 몸을 일으켰고, 근처에 있던 잔해에 기대앉았다.
“…….”
그럼에도 심경이 복잡한지 잠시간 그대로 침묵했다. 난 가늘어진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엑스칼리버의 신성을 이용해 회복시켰더라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지 몰랐겠지만, 아이작의 몸은 이미 마기로 얼룩진 상태였다.
거기에 섣불리 신성을 쏟아부으면 그대로 소멸할 위험이 있을 터.
그렇기에 티르빙의 힘을 빌린 것이었으나, 그녀의 본질은 파괴와 탐욕이다. 상태가 호전된 것은 극히 잠깐에 불과할 터.
내 말에 알겠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작인 이내 각오를 다진 듯 입을 열었다.
“…마족과 계약한 것은 사실 내가 아니라 내 형님이었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제일 처음의 학술제 당시, 데메드리오 국왕은 다리우스와 손을 잡고 내 목을 노렸다.
대가는 데메드리오 왕국의 독립과 전폭적인 지원. 그것은 아이작 역시 바라던 것이었기에 제 형님을 도와 나를 압박해 왔다.
하지만 마족, 마인 세력까지 개입해 있던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이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봤지. 처음엔 절멸했다고 알려진 흑마법사인 줄 알았지만, 설마 마인이라니.”
왕국의 번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좋았다. 아이작 그 자신도 대를 위해선 얼마든지 소를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족은 아니었다.
권력을 세우기 위해, 혹은 큰 힘을 얻기 위해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영혼을 팔고 몸을 넘겨 준 이들은 많았다.
그 결말이 어떻던가.
하나같이 다 파멸을 피하지 못했다.
아이작은 지혜롭진 않지만, 현명했다. 그렇기에 제 형님에게 그들과의 연결 고리를 끊을 것을 간청했고, 끝내 거부당했다.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했지. 그 이후부턴 자네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마족과 손을 잡은 왕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해 뒷수습에 나섰다.
“더 깊게 알아보니 왕국은 내 상상 이상으로 썩어 들어갔더군. 검성의 회합에서 테러를 일으킨 왕세자를 비롯해 여러 귀족이 이미 그들에 깊숙이 관여한 상태였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이작은 베르너를 배척하는 척 내 곁으로 떠나보냈고, 그가 돌아오지 못하도록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너 역시 마족과 손을 잡은 거지?”
“그것이야말로 원죄다. 내 형님은 나처럼 그들과의 계약을 어겼다. 누군가가 그 대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그 영혼은 영원히 불에 타 고통받을 운명이었겠지.”
즉, 제 형님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긴 한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수도에 있는 백성들을 모두 제물로 바치겠다는 계약을 맺었는지는 몰랐지만.”
그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많은 사람은 어떻게 됐지? 수도에는 족히 수백만 정도가 있었을 텐데.”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다음에 발생할 균열로 게이트를 잇는 데에 사용한다고만 얼핏 들은 기억이 있군.”
“…그런가.”
수백만의 인구.
말로만 들어선 어림짐작조차 되지 않는 숫자였다.
그 정도 규모라면 군주급의 마족을 현현시키거나, 아이작이 말했던 대로 게이트를 열 수 있을 터.
“…….”
아이작의 숨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티르빙의 힘으로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점점 빛이 꺼져 가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베르너에겐 말하지 말아다오. 그는 제 아비를 존경했으며, 형을 사랑했다. 그들이 마족과 결탁하고, 나라를 팔아넘긴 것을 알게 된다면 다신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심연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겠다?”
“복수는, 분노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설사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 마음이 단단해진 이후라면, 견뎌 낼 수 있겠지.”
나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오해와 음모로 얼룩진 이야기였다. 만약 내가 알았더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사치스러운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왕국을 버리고 홀로 살아남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터.
검호대장군의 이름은 높다. 제국으로 망명해 왔다고 하더라도 백작의 위는 받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이작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가족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그만 편하게 해 달라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엑스칼리버를 들었다.
“편히 쉬어라, 알려지지 않을 영웅이여.”
내 말에 만족한 듯, 아이작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엑스칼리버를 휘둘렀고, 그의 목을 베었다.
성검의 신성이 마기에 얼룩진 육체를 정화한다. 영혼까지 달라붙어 있던 오염을 씻어 내고, 천천히 그것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파스스-.
마기로 이루어진 맹약이 끊어지며, 깨끗이 정화된 그 육신과 영혼은 서서히 세상에서 흔적을 지워 갔다.
부디, 이것으로 편히 쉴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검을 내렸다.
“…하.”
빌어먹을 이야기였다.
제 일신의 안위를 위해 가족과 나라를 팔아넘기고 마족과 계약한 악인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마계의 녀석들은 인간들을 한낱 노리개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마족조차 하찮게 여기는 마계 군주 정도 되는 놈들은 어떻겠는가.
도시를 넘어 무너져 내린 왕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연합군을 보며 나는 움켜쥔 두 자루의 검에 맹세했다.
아가레스, 그 녀석만은 반드시 이 두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일 것이라며.
* * *
아이작이 죽고, 남은 마물이 전부 소탕되며 데메드리오 왕국의 일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다행히 수도 자체는 왕궁을 제외하곤 파괴된 곳이 없어 이쪽에서 뭔가 더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수백만의 인구가 사라진 탓에 엄청난 공백이 생겼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이 기회를 틈타 수도에 오기를 원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일 터.
그렇기에 나는 데메드리오 대사에게 전권을 주곤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물론 제국의 귀족이나, 다른 왕국의 유력 인사 중에는 그것에 흥미를 보이며 한 다리 걸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원천 봉쇄 한 채 마계 군세를 상대할 준비나 열심히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데메드리오 왕국은 그 모습을 유지해야 했다.
어찌 되었든 제국의 국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이니.
제국으로 돌아온 연합군은 곧 뿔뿔이 흩어져 자기 세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이제 각자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을 터.
수하들을 통해 슬쩍 소문을 듣자 하니, 데메드리오 왕궁이 무너진 덕분에 나와 아이작이 싸우는 광경이 적나라하게 보였다고 했다.
그야말로 거센 해일과 폭풍이 부딪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으니, 내 이름도 적잖게 퍼져 나갈 테지.
이제 연합에서도 절대적인 위치에 이르지 않았나 싶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군.”
그 이후로 며칠간 나는 쌓인 업무를 처리하는데 애썼다.
국가 행정은 가야온 재상과 그 밑의 수하들이 열심히 나서 주고 있다곤 했지만, 연합의 일은 대부분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수많은 국가가 속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재화와 인력의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그런 흐름에는 필연적으로 승냥이들이 끼어들게 마련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는다면, 그 끄트머리에서부터 야금야금 갉아먹어 올 터.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온전히 그쪽으로 의식을 집중해야 했기에 그 전까지 확실히 시스템을 잡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그런 수작을 벌여 오는 이들은 인류에 대한 배신이라는 명목으로 전부 목을 쳐 버렸다.
마침 마족과 결탁했다는 좋은 핑계도 있으니, 겸사겸사 내 계획에 방해가 되는 녀석들까지 한 번에 숙청해 버렸다.
잔혹한 이야기지만, 어설픈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삥땅 칠 거라면 들키질 말았어야지.
“…잠깐 쉴까.”
밤낮 가리지 않고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몸이 찌뿌둥했다. 그렇기에 잠시 그것들을 뒤로한 채 나는 집무실을 나섰다.
등 뒤로 자연스럽게 로열 나이츠 무리가 따라오며 호위를 섰다.
근래에 이르러선 그들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기에 자연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며 황궁 안을 거닐었다.
마주치는 이마다 모두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며 극진한 예의를 표해 왔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권력의 참맛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회복되었을 찰나, 저 끝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난 것이 느껴졌다.
“…잠시 보고 오겠습니다.”
“되었다, 직접 가지.”
혹시나 적의 습격일 수도 있기에 로열 나이츠 중 한 명이 말했지만, 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상대 쪽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제국의 귀족이면 황궁에서 소란을 피운 것을 엄하게 질책할 것이고, 타국의 대사이면 그것을 빌미로 뭔가 더 뜯어낼 것이 없나 겁박할 생각이었다.
‘루인?’
소란의 주인공은 루인과 오스칼 제국의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잔뜩 화가 난 루인 앞에 그 귀족은 쩔쩔매며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간청하는 듯했다.
곧 루인은 이성이 끊어졌는지 시뻘게진 얼굴로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황제 안 한다고! 너희들끼리 갈라 먹든, 다른 사람을 추대하든 알아서 하라고!”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