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o scoundrel Studies RAW novel - Chapter (28)
망나니학 개론-28화(28/300)
#028
여신 디케(Dike).
분명 그리스 신화 계열 쪽의 여신으로 기억하고 있다.
전공은 법과 정의. 후에 이 땅에 도래할 마계의 군세를 상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앨리스를 아르테니아에 전이시킨 장본인이자.
“너와 처음 만났을 때, 아카데미 식당에는 빈자리가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굳이 네 앞자리에 갈 이유가 있을까?”
지구의 이야기 이외에 그녀와 나를 엮어줄 유일한 요소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뭘 좀 아는 녀석’이라는 포지션이었다.
자신을 이곳에 보낸 여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면 나에 대한 흥미가 솟을 수밖에 없을 터.
“…….”
과연 내 의미심장한 말에 그녀의 두 눈에 지금까지 없던 빛이 서리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이 이제야 좀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여신에게 선택받은 자는 각각의 표시가 몸 한구석에 남아 있지. 누구는 목에, 누구는 가슴에, 누구는 손등에 말이야. 만약 둘이 서로 마주치게 되면 그 표식은 공명한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앨리스도 주인공의 포지션인 이상 몸 어딘가에 여신의 증표가 새겨져 있을 테지. 원작에 따르자면 아마 어깨 부위가 아닐까 싶은데.
“…당신은?”
“보고 싶어?”
내 표식의 위치를 묻는 그녀의 말에 씩 웃으며 살짝 밑을 바라보자 다행히도 이해했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순진무구한 소녀라 다행이다. 어디 한번 보자고 달려들었으면 이런 거짓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나중에 문신을 새기든지 해야겠다.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하지만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닌 듯 살짝 불신 어린 목소리로 말해왔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서로 간의 실력 차가 많이 난다면 낮은 측은 느끼지 못한다고 고서에 적혀 있었다.”
“…많이 알고 있네.”
“날 표적으로 삼았으니 내가 황자란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너보다 그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내 말에 그녀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았고 일 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겨우 말을 이었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난 다른 세계에서 왔어.”
‘옳지.’
드디어 숨겨져 왔던 이야기가 드러난다. 그것은 앨리스가 이제 어느 정도는 나를 믿는다는 증거. 설정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치고는 꽤 설득력이 있었기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그녀로선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게 바로 편집자의 짬이라는 것이다.
비록 반년도 안 됐지만.
그녀는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평범했던 지구의 삶. 갑작스럽게 사고에 휘말렸고 이 세계에 홀로 떨어져 내렸다.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살짝 가슴이 무거워졌지만, 이제 내가 앨리스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용사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에 가까운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후련해진 얼굴과 함께 한결 밝아진 기색으로 물어왔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미처 막지 못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말은 이 세계에 넘어온 뒤, 아직 적응하지 못했을 때 내가 질리도록 내뱉던 말이었기에.
어찌 보면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같이 아카데미에 들어가자.”
각박하게 살아왔던 삶이다. 갈 땐 가더라도 조금은 즐겨도 괜찮잖아?
* * *
“앨리스에게는 연락이 없었나?”
“정기 연락은 이미 끊긴 지 오래입니다. 비상 연락도 없는 걸 보니 당했나 본데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깟 망나니 한 명 처리하는데 앨리스가 당해?”
그믐달의 발자취는 리베라 제국의 수도인 폴포아르델에서 세 번째로 큰 어쌔신 길드였다. 길드의 장이자 어쌔신 마스터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알타르는 언젠가 자신의 앞에 있는 두 길드를 제치고 제국 최고의 어쌔신 길드로 서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길드의 간판이 될 상급 어쌔신이었다. 다른 상위 길드는 복수의 어쌔신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어 그들을 내세웠지만, 그믐달의 발자취는 비교적 상급 어쌔신들의 수가 적었다.
세 번째로 큰 길드까지 성장할 수 있던 것은 모두 알타르 본인의 강함 덕분. 하지만 그 필연적인 한계가 지금에 와서 발목을 잡았다.
“제길, 앨리스 그년은 이 시국에 대체 뭘 하느라 연락도 없는 거야!”
전력의 부족함은 시간을 두고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을 찰나, 그들은 운이 좋게도 단번에 도약할 찬스를 잡게 되었다. 바로 고위 귀족 중 누군가가 곧 아카데미에 입학할 세 번째 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의 암살을 의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알타르는 길드 최고의 어쌔신인 앨리스를 임무에 투입시켰다.
앨리스는 비록 어쌔신 마스터급은 되지 못했으나 상급 어쌔신 중에는 수위를 달리는 실력이었다. 소드 유저로 추정되는 망나니 따위는 눈을 마주치는 순간 목숨을 빼앗을 수 있기에 암살 그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다른 길드가 꺼리는 것은 황족살해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비롯해 귀족 간의 권력 싸움에 휘말리는 것일 테지만, 이건 오히려 기회다.’
명색이 황자가 암살당했으니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어둠 속에 사는 어쌔신. 반년 정도 잠적했다가 다시 복귀하면 황족을 암살했다는 명예와 함께 화려한 개막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마스터,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
“뭐? 네 짬이 얼만데 그것까지 일일이 보고해?”
자신을 찾는 수하의 모습에 알타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한 업무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내버려 둔 상태. 자신은 현재 자잘한 것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 그것이 의뢰인이 평범한 자가 아닌지라…….”
하지만 수하는 억울한 표정으로 밖을 가리켰다.
“뭐, 고위 귀족이라도 돼?”
“자신을 제국의 삼 황자, 레이오스 폰 리베라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여부를 판별하느라 일단 기다리라고 했는데…….”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의 알타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목표물이 직접 길드의 본부까지 찾아왔다는 건 무슨 소리겠는가.
“밖에 있는 애들 모두 불러들여.”
“나간 애들 없습니다. 마스터가 한동안 의뢰받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참.”
알타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시국에 삼 황자가 직접 찾아왔다?
‘좆 됐구나.’
앨리스가 암살에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어떤 변수가 있었던 이곳을 찾아온 삼 황자는 진짜일 가능성이 컸다.
“몇 명이 함께 왔느냐?”
알타르는 제발 다수의 인원이 호위로 왔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어중간한 실력자야 길드의 어쌔신으로 물량 공세를 하고 자신이 직접 나선다면 처치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 명이라면?
소수로 온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황궁은 그런 괴물이 득실거리는 곳.
‘나만이라도 어떻게든 도망친다.’
“지금 신분의 확인을 하며 뒤따라온 일행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는데, 아마 혼자 온 것 같습니다.”
“…혼자 와?”
알타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에 수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어떻게 할까요?”
“…진짜면 들여보내고 가짜면 반쯤 죽여서 쫓아낸 다음 으슥한 곳에 가서 진짜 죽여 버려.”
오 분 후, 아쉽게도 알타르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레이오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선명한 금발과 푸른 눈동자. 리베라 황족을 가리키는 확실한 증거에 그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고객을 받아봤지만, 황자 전하 같은 직계 황족께서 직접 찾아오신 적은 처음입니다. 이거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우선 레이오스를 띄워주는 사탕발림을 내뱉으며 은밀히 분위기를 살폈다.
딱히 분노한 것 같지 않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를 아리송하게 했다.
“얼마 전, 암살자 한 명이 찾아왔다. 자신을 앨리스라 하더군. 이곳의 소속이라지?”
“…앨리스가 이곳의 소속인 것은 맞으나, 저희 길드는 황자 전하의 암살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녀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꾸민 것 같군요.”
준비해 두었던 대답이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었지만, 알타르는 다른 것에 희망을 두었다.
‘자신이 표적이 된 것을 알게 된 삼 황자가 왜 나를 찾아왔을까.’
필시 다른 무슨 목적이 있어서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레이오스 역시 그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구태여 다시금 추궁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네게 의뢰를 하고 싶다. 그걸 들어주면 내 암살 건은 묻어주도록 하지.”
“…의뢰, 입니까.”
절그럭.
레이오스는 한 장의 양피지와 함께 묵직한 주머니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알타르는 먼저 무게가 짐작되지도 않는 그 묵직한 주머니의 안을 살폈다.
“…헉!”
그야말로 헉 소리가 나오는 재화였다. 그를 반긴 것은 단순한 금화가 아니었다. 주머니 안에는 하나하나가 천만금의 가치를 가진 보석들이 번쩍이는 빛을 내며 그의 눈을 시리게 했다.
‘이, 이 돈이면 단숨에 제일의 어쌔신 길드로 떠오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어쌔신의 고용관계는 철저한 이득 관계로 이어진다. 수많은 재화를 마다할 어쌔신은 없는 바. 이 정도의 돈이라면 이 거리에 있는 모든 상급 어쌔신을 고용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 그래서 의뢰는 무엇입니까?”
알타르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지만, 목소리까지 떨리는 것은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그의 물음에 레이오스는 턱짓으로 주머니 옆에 놓여 있던 양피지를 가리켰다.
“의뢰서다. 읽어보도록.”
어떤 의뢰가 적혀 있더라도 그것을 수행할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제일 첫 줄에 적혀 있는 문장을 읽은 알타르는 당황하며 레이오스에게 말했다.
“이, 이게 대체…….”
<의뢰서>
그믐달의 발자취의 길드장인 어쌔신 마스터 알타르를 비롯해 그 휘하 세력의 소멸.
알타르가 무슨 농담이냐고 물을 찰나, 레이오스는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쐐애애액-!
오러를 머금은 검이 빛살처럼 허공을 가른다. 곧 그것은 알타르가 들고 있던 양피지를 꿰뚫고 그의 목을 향했다.
“흡!”
하지만 알타르의 반응은 기민했다. 어쌔신 마스터라는 것이 허명은 아닌 듯 재빨리 땅을 박차며 거리를 벌렸지만, 레이오스의 검은 일말의 자비조차 없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푹.
“…컥!”
심장 한가운데를 관통당한 알타르가 벽에 매달려 피를 토해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벽 한쪽에 매달려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쿨럭, 이 개… 같은… 자식. 너는… 결코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부하들이라도 불렀나 보지?”
레이오스는 씩 웃으며 검을 놓았다. 알타르만이 그것에 꽂혀 벽에 매달린 상태. 그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가 주머니와 양피지를 챙기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어떡하나.”
벌컥.
레이오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집무실의 문이 열린다. 알타르는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들어온 수하들에게 레이오스를 죽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너무나도 의외의 얼굴에 할 말을 잊었다.
“밖은?”
“전부 정리했어. 이걸로 그믐달의 발자취는 전멸이야.”
“…네년!”
알타르는 열린 문에서부터 들이닥친 자욱한 혈향에 밖에 있는 수하들이 전부 당했음을 직감했다. 앨리스는 상급 어쌔신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실력, 적어도 그들 중 그녀를 막아 세울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네놈은 늦든 빠르든 내 손에 죽을 운명이었어. 그때가 조금 빨리 온 것으로 생각해.”
알타르가 핏발이 선 눈으로 그녀를 저주했지만, 앨리스는 냉담한 얼굴로 그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 들 뿐이었다.
푸슉.
잠깐이나마 상처를 막아 생명을 연장해 주던 검이 뽑혀 나오자 알타르의 숨이 끊어졌다. 싸늘한 주검이 된 그의 시선 위로 앨리스는 보기에도 더럽다는 듯 침을 한 번 뱉었다.
“방해꾼도 제거했으니, 이만 돌아갈까.”
앨리스가 돌려준 검을 받아 든 레이오스는 한 건 해결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제국의 뒷골목을 주름잡던 어쌔신 길드 중 한 곳인 그믐달의 발자취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남아 있는 잔당은 다른 곳에 먹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즐거운 아카데미 생활을 보내기 위해 레이오스가 계획한 일임을 알게 되면 알타르는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오지 않을 것이었다.